성전이란 무엇인가?
1. 이끄는 말
2. 성전이라는 말의 뜻
3. 성전의 역사
4. 성전의 특징
5. 성전의 용도
6. 성전의 복음적 의미
7. 맺는 말
5. 성전이란 무엇인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4)
1. 이끄는 말
일반적으로 종교는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함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 의한 체계라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들이 주된 본연의 임무 수행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종교적인 의식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에 더 큰 관심과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각 종파마다 종교 의식의 특성에 맞는 웅장하고 화려한 시설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건축 예산이 필요하게 되고 그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을 빙자한 거액의 헌금을 선량한 신도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그 결과로 돈이 없이는 순수한 종교적 신앙을 갖기가 힘들어지는 여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기독교의 경우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알아서 믿고 경외하며 섬기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기독교는 성경을 신자들에게 가르쳐서 진리를 후대에 전수하며 지워야 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역시 여타의 종교들처럼 기독교 본연의 임무에는 소홀이 하고 잘못된 예배 의식에 필요한 시설을 성전(聖殿)이라는 이름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세우는 일에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엄청나게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성전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개혁 이전 중세교회가 의식 중심의 미사(missa)를 드리기 위하여 시도했던 잘못된 관행(慣行)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말씀 중심의 예배를 내세우면서 기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 후예들인 개혁파 교회들이 다시 중세 로마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따라 의식 중심의 제사를 재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기 위한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성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종교가 성행하는 나라마다 그 종교의 특성에 맞는 신전들이 도시마다 군데군데 세워져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수려한 산속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불교의 전각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고, 도시는 물론 시골 마을에는 교회의 건물들이 특유의 양식을 갖추어 우뚝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의 건물들이 과연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란 말인가?
아마도 성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라면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 모든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집 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건물을 신성시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그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얼마나 무속화 되어졌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기독교를 무속화하는데 기여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무속적인 의식 중심의 예배에서 벗어나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건전한 교회로 궤도를 수정해 가려면 성전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2. 성전이란 말의 뜻
‘성전’이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특히 구약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이트( )’와 ‘헤칼( )’을 주로 사용한다. 그 가운데 ‘바이트’라는 말은 본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헤칼’은 ‘궁전’이나 ‘성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큰 공공건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이방 종교의 신전이나 사원을 가리켜 언급할 때에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대부분 ‘성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큰 공공건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이방 종교의 신전이나 사원을 가리켜 언급할 때에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대부분 ‘성전’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집이나 공공건물 그리고 이방 종교의 신전이나 사원과 구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집’ 또는 ‘거룩한 집’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약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히에론( )’ 나오스( )‘를 주로 사용한다. 그 가운데 ’히에론‘이라는 말은 성전에 속한 건물들이나 현관 및 뜰을 포함한 시설 전체를 총칭하여 일컫는다.
그리고 ’나오스‘라는 말은 성소와 지성소를 이루고 있는 거룩한 건물만을 가리켜 일컫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주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히에론‘이 예루살렘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나오스‘는 예루살렘 성전의 부분적인 한 건물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신구약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 또는 ‘거룩한 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 하여 계시는 처소라는 뜻이며, ‘거룩한 집’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처소라는 뜻에서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스스로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곳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백성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제사장들이 제사의식을 행하는 거룩한 처소이다.
3. 성전의 역사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크게 족장시대와 왕정시대로 구분이 된다.
족장시대가 국가 형성의준비기라면, 왕정시대는 국가 형성의 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역시 족장시대는 예루살렘 성전이 구체적인 건물로 세워 지기 전 시대이고, 왕정시대는 예루살렘 성전이 구체적인 건물로 세워진 시대이다.
성전이 건물로 세워지기 이전의 이스라엘 족장시대는 성전 건축의 준비기로서, 이스라엘 열조와 그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다가 그 후에 제사장을 세워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리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성전이 구체적인 건물로 세워지기 이전의 성전에 대한 역사는, 족장들이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시대와 제사장들이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리는 시대로 구분이 된다.
이스라엘 열조가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종교 의식은 인류 초기로부터 전수 되어져 온 것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아들 아벨이 자기가 기른 양의 첫 새끼를 잡아 제사를 드린 바 있다.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그리고 그 후손 가운데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여 번제로 드리기도 했다.
(창 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을 드렸더니 )
그 후에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은 다음, 가나안 땅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창 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
뿐만 아니라, 그는 여호와의 명을 따라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렸다.
(창 15:9-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 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이르러 단을 쌓고 아들 이삭 대신에 수양을 잡아 번제로 드리기도 하였다.
(창 22:9-13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다음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사실이 있다.
(창 26:23-25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하란으로 가다가 도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베게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은 사실도 있다.
(창 28:10-19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게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 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그 후, 그는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오다가 길르앗 산에서 외삼촌 라반의 맹세를 듣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고 제사를 드린 것이다.
(창 31:51-54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너와 나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않을 것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 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경야하고)
그리고 그는 세겜 성에 이르렀을 때, 은으로 밭을 사서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하나님,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 하였다.
(창 33:18-20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 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벧엘로 올라가서 그곳에 단을 쌓고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엘벧엘이라고 이름 하기도 하였다.
(창 35:1-7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 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의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라는 말씀을 듣고서 돌기둥을 세우고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기도 한 것이다.
(창 35:9-15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 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을 짓고 제사장을 세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종교 의식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 광야에 머물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 규례를 명하셔서 그로 하여금 성막을 짓게 하심으로부터 출발이 된 것이다.
(출 25:8-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 35:10-19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곧 성막과 그 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장과 상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전설병과 불 켜는 등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분향단과 그 채와 권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문의 장과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불두명과 그 받침과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문의 장과 장막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과 그 줄과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공교히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니라)
성막은 여호와께서 언약궤를 보관하게 하시고 거기에 임재 하셔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거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처음으로 성막이 세워지게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 광야에 머무르고 있을 때, 모세가 여호와의 명하신 말씀을 따라 시내산에 세우게 된 것이다.
(출 40:17-33 제 이 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 놓고 장을 드리워서 그 증거궤를 가리우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으로 장 밖에 상을 놓고 또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금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성막 문에 장을 달고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고 자기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리고 그 후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동안 광야 길을 진행하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머무는 곳으로 이동하여 세운 것이다.
(출 40:36-38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진행하다가 어디라도 머무르게 되면 먼저 성막을 세우고 그 성막을 중심하여 열두 지파가 진기별로 진을 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때 까지 그곳에서 생활을 하였다.
(민 9:15-23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까지 몇 차례 성막이 옮겨져 세워졌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처음으로 길갈에 성막을 세운 것이다.
(수 5: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을 일부 정복하여 각 지파별로 분배한 후에 성막을 실로로 옮겨 세웠다.
(수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그런데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에 언약궤를 실로에서 진중으로 옮겼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으며
(삼상 5:1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그 후에 다시 찾아서 기럇여아림의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 20년 동안 있게 하였다.
(삼상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그리고 다윗왕 시대에 성막이 다윗 성으로 옮겨져 세워지고 언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옮겨오게 되었다.
(삼하 6:16-19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돌아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눠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스라엘 왕정시대는 성전의 수난기로서, 이 시대에는 성전이 한 차례 완전히 불타버리기도 하고 중건되기도 하며 건축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은 처음으로 솔로몬 왕이 건축한 것이 있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왔을 때, 스룹바벨이 중건한 것이 있으며, 예수께서 오시기 앞서 헤롯왕이 스룹바벨이 중건한 성전을 헐고 건축한 것이 있다.
솔로몬왕이 건축한 성전은,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부친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 지은 것이다. 그의 부친 다윗왕이 성전을 지으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셔서 짓지 못하고,
(삼하 7:1-7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 밤에 여화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다만 성전을 건축할 재료와 장소를 구입하는 일만을 하였다.
(대상 22:2-5 다윗이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못에 쓸 철을 한없이 준비하고
또 심히 많아서 중수를 셀 수 없는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왔음이라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이다. 솔로몬 왕은 즉위한지 4년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7년에 걸쳐 완공을 하였다
(왕상 6:37-38 제 사 년 시브월에 여호와의 전 기초를 쌓았고 제 십일 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그런데 그 성전이 B.C. 721년경에 바벨론에 의하여 불타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스룹바벨이 중건한 성전은 솔로론 왕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하여 불타버린 후에 다시 중건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지 70여 년이 지난, B.C. 539년경에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솔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 때, 그들은 고레스 왕의 도움으로 과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탈취해 간 성전의 모든 기물들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스 1:7-11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으니 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구요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열이요 기타 기명이 칠천이나 금,은기명의 도합이 오천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그 후에 스룹바벨이 2차로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한 것이다.
(스 3:8-13 예루살렘 하나님의전에 이른 지 이 년 이 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 이에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 형제 레위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전 공장을 감독 하니라
건축자가 여호와의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 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이 성전은 약 500여 년 동안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과거 솔로몬왕이 지은 것이나 그 후에 헤롯왕이 건축한 것보다도 가장 오랫동안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헤롯왕이 건축한 성전은, 스룹바벨이 중건한 성전의 높이가 솔로몬왕이 건축한 성전의 높이보다 낮다는 것을 표면상의 이유로 하여 헤롯왕이 건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면상의 실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가 성전 건축을 통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과 그들의 이두메이아인 왕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축한 이 성전은 B.C. 1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주요 공사는 10년 안에 끝을 냈으나 나머지 부대 공사가 A.D. 64년까지 계속 진행이 되었다.
4. 성전의 특징
예루살렘 성전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적(新的) 기원(起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오직 유일하게 한 곳에만 세울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구별된 처소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 성전의 특징들은 모두가 이방 종교들의 신전(神殿)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은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어느 인간이 고안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 이방 종교의 신전들은 모두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조작하여 세운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명하신 규례에 근거하여 세운 것이다.
그 크기나 모양을 비롯하여 용도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어느 것 하나라도 사람의 마음대로 고안하거나 결정하여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성소와 각종 성구들의 재료와 식양을 명하셨다
(출 25:-27:).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성막 규례에 의한 재료와 식양을 따라 성소와 각종 성구들을 백성으로 하여금 제조하게 한 것이다.(출 35-38:)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모세가 세운 성막의 식양을 따라 건축한 것이기 때문에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음, 예루살렘 성전은 오직 한 곳에만 세울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무 곳에나 여러 개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 종교의 신전들은 아무 곳에나 편리에 따라 여러 개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께서 예비해 놓으신 예루살렘 성 안에 오직 하나만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사람의 마음대로 편리에 따라 온 세상 어디에나 몇 개든지 세워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곳에 하나만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성전은 여러 개가 아니라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로보암 시대에 사마리아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여기 저기에 산당을 세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사실이 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열납하지 아니하시고 책망하셨다.
(왕상 12:25-13:10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 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 하였더라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 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더니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람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 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
그것은 그 제사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에서 드려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마음대로 아무 곳에나 지어 놓은 산당에서 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구별된 처소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일반 건축물과는 아주 다르게 거룩한 처소로 구별된다. 이방 종교의 신전은 억지로 거룩히 구별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구별된 증표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하늘에서 불이 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는 처소였다.
(대하 7:1-3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다른 처소와는 완전히 구별된 사실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룩히 구별되지 않은 자가 성전에 접근하면 죽임을 당하는 처소였다.
(출 28:35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성전 안에는 아무나 출입이 불가능하며 들어가는 경우에도 신분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각각 다르다.
지성소에는 거룩히 구별된 대제사장만이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여호와를 섬길 수 있고, 성소에는 제사장만이 거룩한 옷을 입고 들어가 여호와를 섬길 수 있으며, 성전 뜰에는 이방인은 들어갈 수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들어가 제물을 드려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거룩히 구별된 처소였다.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 신전과는 아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은 반드시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성전으로서의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그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오직 유일하게 예루살렘 한 곳에만 있어야 하며, 실제로 거룩히 구별된 처소여야 하는 것이다.
5. 성전의 용도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게 하셔서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려고 거룩히 구별하여 세우게 하신 처소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곳에 스스로의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한 제사장으로 하여금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처소로 사용하게 하셔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이시므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어 그것을 섬기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택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방법을 명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전을 짓게 하셔서 그곳에 여호와의 형상이 아닌 이름만을 두시고 그 자손으로 하여금 그 속에 각종 예물을 드리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게 하셔서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신 것이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께서 스스로의 거룩한 이름을 두시는 처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명하실 때, 노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시면서 “내 이름을 기념케 하는 곳”에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여 생각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각종 예물들을 드리라고 하였다.
(신 12:5-7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의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처소, 곧 성전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는 곳이다. 여호와께서 처소를 구별하여 스스로의 이름을 두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을 통하여 예물을 드릴 때마다 열조와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 26:1-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 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다윗 왕에게 나단 선지를 통하여 다윗의 몸에서 날 자식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을 예언하여 주신 것이다.
(삼하 7:10-13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그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이 나단 선지의 예언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께 기도할 때에 그 성전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왕상 8:27-29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다음,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께 각종 예물을 드리는 처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와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하셨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열조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기 위하여 그 땅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 그리고 그곳에서 기른 가축 들을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그 자손이 범죄했을 경우에나 절기에는 각종 가축이나 곡식을 예물로 드려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했다(레위기).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처음으로 성막을 세우고 이스라엘 족장들로 하여금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게 한 것이다 (민 7:1-89).
다윗왕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다가 자기가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렸다.
(삼하 6:16-19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눠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뿐만 아니라,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왕은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옮겨다가 지성소에 두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성전을 향하여 간구하고 여호와께 화목제 희생을 드리며 절기를 지키고 즐거워 하였다 (왕상6:-8: 참조).
그리고 에스라 시대에 스룹바벨은 바벨론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여 봉헌식을 거행하고 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다.
(스 6:13-22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신속이 준행한지라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
하나님의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일백과 숫양 이백과 어린 양 사백을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둘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케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의 모든 자손과 자기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무릇 스스로 구별하여 자기 땅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다 먹고 즐거우므로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로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저희에게로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전 역사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 이었느니라)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처소로서 이스라엘 자손이 각종 예물을 드려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처소로 사용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여호와’의 이름을 성전에 두시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종 예물을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드릴 때마다 그 열조에게 언약하신 대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성전을 세우게 하셔서 그곳에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각종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처소로 사용하게 하신 것이다.
6. 성전의 복음적 의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유용하게 사용하신 성전은
신약 시대에 있어서 커다란 복음적 음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게 하여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는 방편이라면,
신약시대에는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께서 택한 성도로 하여금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여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에 대한 예표(豫表, type)인 것이다.
먼저,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 몸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사실이 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거기서 장사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계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께 표적 보이기를 요청한 사실이 있다.
그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사십육년 동안 지은 성전을 사흘 동안에 일으킨다는 말씀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요 2:18-21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합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자기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스스로를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셨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자나다가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안식일을 범한다고 비방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는 율법으로 바리새인들을 반박하시며 스스로를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21:1-6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했어도 죄가 없는 것 같이, 성전보다 더 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어도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전이라고 하였다.
(계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라 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이심을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되듯이, 신약시대에는 택함을 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죄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 여호와이심을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분명하다.
다음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신약교회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택함을 입은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세워진 교회가 바로 신령한 참 성전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참 성전이 되시기 때문에 그의 지체인 택함을 입은 성도도 신령한 참 성전이 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머리가 되시고 택함을 입은 성도로 하여금 지체가 되게 하여 한 몸을 이루어 참 성전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교회당 건물은 성전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교회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합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하였다.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도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대한 예표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잡아 여호와를 섬겼으나, 신약시대에는 택함을 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산제사, 곧 영적 예배를 드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
(롬 12:1-8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신약교회의 예표임이 분명하다.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신령한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의 예표로서의 의미가 있다.
즉,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질 것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7. 맺는 말
지금까지 성전에 대한 언어의 뜻과 그 역사 그리고 성전의 특징 및 그 용도를 비롯하여 복음적 의미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첫째,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지상에서 없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 준다. 예표는 실체가 나타나면 무의미해 지는 것이며, 무의미한 것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전의 지성소에 두는 언약궤는 이미 바벨론 포로시대에 없어져서 그 후에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 안에는 언약궤를 두지 못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기 이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장차 언약궤를 다시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기억하거나 찾거나 또는 만들거나 하지 아니할 것을 예언하였다.
(렘 3: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이는 언약궤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무의미해 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따라서 언약궤를 보존하는 성전 역시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없어진 것이다.
둘째, 신약시대 여러 나라와 지방에 세워진 교회당 건축물은 성전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여기 저기 세워진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당 건축물이 예루살렘 성전의 특징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 준다.
예루살렘의 지정된 장소에 오직 하나만 세워져 있었으며, 실제로 거룩히 구별된 처소로 아무나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당 건축물, 곧 소위 성전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가 예루살렘 성전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을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교회건물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며 성도가 서로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교육관이나 회당은 될지언정 성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는 성전에서 제사의 의미를 담은 예배 의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에는 성전이 없어졌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가 영원한 제사장과 제물과 성전이 되셔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준다.
(히 9:11-14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그런데도 신약교회가 매 주일 아침이면 대예배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이 소위 성전이라고 칭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에 모여 미리 준비된 온갖 다양한 프로그램에 따라 예배, 곧 제사를 드린다.
목사가 제사장이 되어 교회당 건물을 성전으로 삼고 성도가 드리는 연보를 제물로 삼아 그럴듯한 제사를 드리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무색케 한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천주교에서 드리는 미사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본받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무속적인 종교 행위는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결과라 하겠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무속적 종교 의식을 탈피하고 성경을 자세히 가르쳐 진리를 전수하고 수호하는 순수한 기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교회로 탈바꿈하기 위한 궤도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막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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