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 구원사!!!

[스크랩]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6권 8장

하나님아들 2014. 5. 30. 21:40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롬 8:24-25 )

 

이 논증은 우리가 현 세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진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시대의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들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 이 교훈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행복에 있어서 진실로 진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면 할수록 우리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동안은 더욱 속으로 탄식하게 된다. 탄식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은 함께 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진정으로 즐거워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지금 기뻐하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 ‘소망으로 말미암아’가 아니라 ‘소망 안에서’이다. 구원을 세 가지 국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 구원을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은 ‘나는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이미 죄책과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제 정죄와는 관계를 끊은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모두 우리의 과거가 청산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옛 사람’은 죽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관하여 상관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롬7:6)

 

만일 여러분이 이러한 일에 대하여 명확하지 못하면 나머지의 논증을 따라갈 수 없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제는 연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옛 사람’의 종말이다. 여러분이 용서받았다는 그 문제에 되돌아가지 말라.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라도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상심시켰다. 그러므로 탕자가 했던 것처럼 다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다 잘 되게 될 것이다.

 

둘째, 구원의 현재적인 측면은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고 있다. 여러분이 죄의 세력에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다시는 죄 짓지 않을 것이고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죄의 세력과 죄의 오염과 비열함에서 구원받고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예비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이런 면에서 구원은 계속되는 하나의 국면이다.

 

셋째, 구원의 미래적인 측면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무엇이 있다. 우리의 최종적인 영화, 몸까지도 구원 받아 영화롭게 될 때 오게 될 영광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에 되어지는 일이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우리가 가진 것은 처음 익은 열매뿐이다. 더 충만한 수확을 할 때가 올 것이다.

 

언제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딪쳐 오는 위험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너무 작고 하잖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들은 “나는 어느날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소원하고 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가정으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는 여러분이 구원을 절대적인 확실성과 확신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반대로 우리가 아주 대단하다고 지나치게 주장하는 위험이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완전히 죄에서 해방되며 완벽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 그들의 거룩함이 이 두 번째 체험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병들지도 아프지도 말아야 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사도는 우리는 아직도 완벽한 성취의 단계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망이라는 용어를 너무 적게 주장해서도 안 되며, 반면에 너무 지나치게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 구원의 시제들을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기서 ‘소망’ 이라는 말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인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서 ‘투구’로 묘사되어 세상과 육신을 막아내기 위해서 머리에 쓸수 있다. 히브리서 6장 19절에서는 ‘영혼의 닻’이라고 말하며 강하고 확고한 것이며, 흔들리지 아니할 무엇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서 소망과 믿음의 관계를 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이 증거니” 믿음이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것들을 우리가 신뢰할 근거와 이유들을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소망은 더욱 더 한 단계 나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소망을 우리가 믿음이 약해질 때 우리를 뒤에서 받쳐주는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소망’을 ‘소망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믿음은 소망을 유발한다. 믿음은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에 관한 확신을 주고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기다리면서 발돋움을 하고 서 있게 한다. 소망은 믿음보다 더 강한 것이고, 믿음으로 믿어지고 수납되는 복락들을 너무나도 확신케 하는 것이다.

 

소망은 참된 기독교의 척도이다. 참된 기독교는 내내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참된 기독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안에서 즐거워한다.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은 다만 맛보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일로 넘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세상이 아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세상은 그것을 도피주의로 부를 것이다.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지 내버려 두라. 사도는 ‘두 사이에 끼여’ 있었으나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 위해서 떠나는 ‘이것이 더 좋다’ 고 말한다. (빌 1:21-24)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

출처 : 청교도의 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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