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으로 분류하라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11:1~2)
천사가 요한에게 갈대 하나를 주면서 하나님의 선전과 제단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척량하고 성전 밖 마당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척량하지 말라 하셨다. 문자적으로 볼 때 제단의 위치는 성전 안이 되겠고, 성전은 경배하는 자들이 들어갈 건물입니다. 그리고 마당은 문자대로 건물 밖의 아무것도 가려지는 것이 없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두 곳만 척량하고 밖은 척량하지 말라면서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서 42달 동안 거룩한 성을 짓밟게 된다고 경고 했습니다.
갈대는 척량(μετρέω-메트로)을 위한 도구입니다. 영어 Meter는헬라어 μετρέω에서 유래됩니다. 따라서 갈대는 척량(Measure)하기 위한 잣대와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요한에게 말하는 갈대는 ‘신자들의 믿음을 척량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을 셋으로 분류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첫 번째로 좋은 믿음은 제단에서의 예배하는 신자입니다.
두 번째로 중간 믿음은 성전 안에서의 예배하는 신자입니다.
세 번째로 성전 밖 마당에서 예배하는 신자는 입으로만 믿고 행위가 없는 거짓신자들입니다.
이렇게 세 부류로 분류시키므로 먼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람이라면 제단과 성전에 관한 비밀을 알아야 됩니다. 성전의 유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광야생활을 할 때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원리를 통하여서 자신의 믿음이 셋 중에서 어디에 해당되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성막을 Tabernacle이라 부릅니다. 미쉬칸(ן???) 또는 오헬(ל??)은 ‘머물다’에서 파생된 용어입니다. 성막은 이동시킬 수 있는 장소로서 모세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백성들 가운데 거하는 장소였습니다.
성막 안에는 하나님의 법궤를 두고, 광야기간동안 함께하시면 서 먹이시며 입히시며 인도하며 만나주시던 곳이 성막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목적은 ‘모임’에 있습니다. 이 낱말은 약속에 의해 ‘만남’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교회에 모이는 목적은 하나님을 만남에 있어야 된다고 일렀으되,
내기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ד??-야아드)...(출29:42)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는(ד??)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민17:4)
성전은 하나님과 교제(Fellowship)를 위하여 만남에 있음을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교회라는 성전에 모일 때에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려하십니까?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출29:42)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민7:89)
신자가 교회에 출석하는 목적은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날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에서 자신의 믿음이 척량받게 됩니다. 또한 척량문제는 땅에서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늘에서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성경에 일렀으되,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이 말씀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지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죽던 한번은 죽어야 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니(히9:27)
죽은 자의 부 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
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
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이러한 말씀을 바탕으로 신자들의 믿음을 척량하라는 원리를 성막론에서 이해가 되도록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말하는 ‘안에서(έν αύτw-엔 우투)’는 ‘그곳(αύτw-아우투)’ 이라는 위치를 단수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바깥은 부사(έξ-에쓰)를 붙였으므로 ‘밖에서(έξωθεύ-에쏘던)’ 라고 표기되었는데, 척량하라는 뜻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성막이 이동할지라도 그 안에 설치되는 기구들의 위치는 변동 없이 항상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의복도 항상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신자들은 생활주변이 흔들이고 변동이 생길지라도 믿음만은 변동이 없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믿음을 척량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근거하여 백성들이 유진하였을 때에 성막과 기구들의 위치와 제사장의 의복과 연관시켜서 자신의 믿음이 척량 받아져야 된다는 뜻입니다.
성막론으로 믿음의 척도를 두 가지로 분류시켜서 생각하게 됩니다. 첫 번째 해석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도록 명령 하셨을 때에 브사렐(ל????)과 오호리압(כי??אָ)이 만든 순서가 진진행의 순서인데(출36:1~39:31), 이는 믿음의 성숙과정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 성막기구가 완전히 배치된 상태로서 믿음의 현재를 척량하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뒤의 해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자라나는 성숙단계가 아닙니다. 그러한 수서적용은 상막이 완전하게 배치되었을 때의 결과처럼, 믿음도 성숙된 결과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성숙되는 단계는 성막이 만들어지는 방법대로라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시키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속죄물로 십자가에서 희생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로 인류의 원죄를 사해준 것이지, 일상생활에서 짓는 허물까지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믿음의 기초를 물두멍에서 부터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인식으로 삶의 기초로 정하는 믿음은 잘못이라고 성경은 교훈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은 당신이 아버지께로 향한 그리스도의 의이지 우리들의 의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상람들은 자신은 의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서 예수께서 이룩하신 의를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식하는 이유는 성경을 잘못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성막원리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물두멍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잘못생각 합니다. 그러한 순서는 그렇듯 하게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 우선이 적용되어지고, 하나님께는 다음이 됨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순서는 아닙니다. 따라서 그러한 순서를 믿음에 적용시키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는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행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성막은 셋째하늘나라 공중에 떠 있는 세 예루살렘을 모형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을 설명하셨고, 모세는 자기가 들은 대로 기술자들에게 지시하고, 지시를 받은 대로 만든 순서가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하는 방법으로 되었기 때문에, 성막이 지어진 순서대로가 신자의 삶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모세가 성막을 지었던 식양(式樣), 곧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짓는 순서와 믿음
1. 지성소와 기구들을 만드는 단계
㉠. 조각목: 조각목과 나의 삶 (출25:5~)
㉡. 제단: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삶(출36:8~38)
㉢. 증거궤: 순종의 삶(출37:1~5)
ⓐ. 만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출16:32~36)
ⓑ. 싹난 지팡이: 위임 권에 대한 순종의 삶(민17:8~11)
ⓒ. 돌판: 법도와 규례에 대한 순종의 삶(출34:14,신10;1~5)
㉣. 속죄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삶(출37:6·~9)
2. 성전와 기구들을 만드는 단계
㉠. 진설상: 감사와 기쁨의 삶(출37:10~16)
㉡. 등대: 의로서 밝히는 삶(출37:17~29)
㉢. 분향단: 향연으로 올라가는 거룩한 삶(출37:25~29)
3. 성전바깥 뜰과 기둥들을 만드는 단계
㉠. 번제단: 자신을 태우는 희생의 삶(출38:1~7)
㉡. 물두멍: 허물을 씻는 삶(출38:8)
㉢. 성막뜰: 아름다운 연합과 질서의 삶(출38:9~13)
㉣. 문: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삶(출38:14~15)
4. 거룩한 의복을 만들어 입는 단계
㉠. 거룩한 옷: 세마포가 입혀지는 삶(출39:1)
㉡. 에봇: 성령으로 사는 진리의 삶(출39:2~5)
㉢. 견대: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삶(출39:6~7)
㉣. 흉패: 거룩한 빛을 가진 양심의 삶(출39:8~29)
㉤. 관: 면류관을 쓰는 삶(출39:27~29)
㉥. 인 새김: 이마에 인침을 받는 삶(출39:30~31)
5, 거룩한 성문을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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