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조각목에서 보는 거듭남

하나님아들 2014. 4. 18. 17:24

  

조각목에서 보는 거듭남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하나님의 성막과 그 기구들의 재료와 쓰이는 용도를 자신에게 적용시켜서 믿음이 척량 받아야 됩니다. 이토록 지정의가 바꾸어지는 삶이 진정으로 거듭남이라고 성경에 교훈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라는데 짓기를 싫어서 피하였는가? 이는 곧 자기의 옳지 못한 성품이라는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지 않으려하기 때문입니다. 안 바꾸는 것은 명령하신 하나님의 인격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은 권리나 의무의 주체가 되는 독자적인 가치로서 인정되는 자격, 본체에 대한 인성을 갖춘 품격, 본체를 이루는 주체인 지정의로서 나타나는 품격이 인격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성령님도. 인격자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며 교제의 상대로서의 사람도 인격자라야 됩니다. 특히 인간을 인간답게 이루는 부분이 하나님을 닮게 지음을 받은 인간의 지정의(知情意)입니다. 이러한 인격문제는 윤리적인 정의와 심리적인 정의로 보게 되는데, 거듭남은 윤리적이 아니라, 심적인 측면이 변해져야 진정으로 거듭남이 됩니다.

 

    지성(知性)=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적인 법으로서 이성에 관하여 이해하고 인식(認識)하는 판단을 말합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지각(知覺)을 바탕으로 정신인 인식을 형성시키는 지적기능입니다. 인식은 대상을 감지하는 감각으로부터 대상을 분별하는 지각입니다. 따라서 지각을 이동되는 인식은 육체 밖에서의 것들을 분명히 알고 그 의를 바르게 분별하고 알아져서 깨닫게 합니다.


   정성(情性)=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느끼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상황판단을 말합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마음이 밖으로부터 받아지는 쾌활과 불쾌를 의식(意識)하여 일어나는 정적기능입니다. 의식(意識)은 각성으로 다른 것과 구별하여 나타내고 판정하는 감정입니다. 감정(感情)으로 이동되는 의식은 대상에게서 느끼고 일어나는 심정으로 의지로 표출하게 합니다.


   의지(意志)=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도덕적인 행위의 주체가 되고, 객체가 되는 정신적 작용을 말합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마음으로 사려(思慮)를 선택해서 결정하고 실행으로 나타내는 기능입니다. 시려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입니다. 지각知(知覺)으로 받아진 인식(認識)을 의식적으로 쾌활과 불쾌를 구분하고, 그 하나를 결정하는 의지로 행동하게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형성되고 성장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로 자라게 됩니다. 지정의가 옳은 방향으로 자리를 잡으면 인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그릇된 방향으로 자리를 잡으면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죄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대부분이 성장하면서 인격을 그릇된 방향으로 틀이 굳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성령께서 나를 변화시키게 합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사려선택에서 자신의 의지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변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변화되면 거듭난 사람이고, 변화되지 않으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기 틀을 바꾸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물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으로 구성시키는 지각이 바꿔지지 않으면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으십니다. 받아들이는 의식이 바꿔지지 아니하고 항상 부정적인 식별로 있으면 이러한 인격자에게는 인격적인 성령은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보고 들을지라도 올바른 의지로 행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는 자가 그리스도인다운 인격이 갖추어질 때에 인격적인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러한 지정의를 새롭게 바꾸는 것이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거듭남입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려면 지나날 자신이 좋아하던 습관이 바꾸어져야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던 습관은 육신이 요구하는 욕심이었습니다. 옛 사람은 예수 믿기 이전의 육체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지정의가 바꿔지지 않았으면 옛 성품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새롭게 되라’는 뜻은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따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자기 자신을 성막으로 지어가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에서 구습은 형용사 파라이온(παλαιόν)이며, 뜻은 ‘오래되고 낡은 옛것’이라는 파라이오스(παλαιό?)의 목적격입니다. 새로움은 같은 형용사 카이논(καιύόν)이며, ‘자시 만들어서 새로움을 마타냄’이라는 카이노스(καινό?)의 주격입니다.  


   정리하면 ‘오래되고 낡은 사고방식을 다시 새롭게 바꾸라’는 말입니다. 아이 지배하던 자신을 성령의 지배받는 새로운 성품으로 바꾸어서 성령의 인격을 갖추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지정의가 새롭게 바꾸어졌을 때 온전히 거듭남 것입니다. 모든 나무가 그러하듯이  조각목도 들판에서 자라났습니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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