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3장 1절 - 사데 교회가 무엇 때문에 책망을 받았나?

하나님아들 2014. 4. 18. 16:37

 

사데 교회가 무엇 때문에 책망을 받았나?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


   예수께서 사데라는 도시, 사데 교회를 향하여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하신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나는 교회를 다니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으니,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있다 할 것이다. 또한 육신적으로 호흡하고 있으므로 죽은 자가 아니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사데 교회와 같은 교회가 너무도 많다는 말씀이다. 현대교회의 신자들이 사데 교회처럼 영적으로는 죽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고 하신다.


왜 사데 교회가 죽었는가?


첫째는 지형적으로 사데는 사람들을 안일하게 만들어 놓았다.

둘째는 모든 공업과 상업, 등 경제라는 물질이 안일하게 만들어 놓았다.


사데는 환경적으로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퇴폐풍조를 안고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성경 앞 뒷장을 다 읽어보면 다른 교회들은 이질적인 교리에 의해서 압박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사데 교회만은 그러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사데 교회는 외부로부터 오는 종교적인 박해도 없었다. 또한 사데 교회는 신앙적인 핍박이나 진리에 대하여 이단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진리나 박해에 대하여는 안심했던 교회였다 한다.


   우리가 지구촌을 보면 사회주의 지역이나 회교권 같은 곳에는 기독교의 전달이 어려웠다. 혹이라도 있었다면 사정없이 공격하고 박해했다. 정치적으로나 외부적인 어려움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에는 예수를 믿으라고 아무리 교회를 세워도 주변이나, 정치적인 압력이나 박해는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외부의 압력도 없다. 어떤 교회는 이질적인 세력도 없다.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잘 먹고 안심한다. 무엇인가 영적과 정신면과 도덕적으로 해이하여지고, 교리적으로 타락하여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데 교회가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안정된 지역에 이러한 교회들도 있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사데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었다는 문맥에 주목해야 된다. 교회는 교회 같은데 생명이 없다는 경고시다. 교회는 교회 같은데 신앙생활의 규모가 없다는 경고시다. 그러므로 이 교회를 통해서 예수께서 말씀하는 것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네가 가졌으나 영적으로는 네가 죽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하시는가?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3:2)


   사데 교회가 행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행하여야 할 행위가 빠졌다는 것이다. 신자는 교인이란 이름만 걸어놓고, 교회는 교회란 간판만 걸어놓았을 뿐이지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하지않는 다는 지적이다. 이것이 사데 교회가 보여주는 죽은 상태라는 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하신다. 예수께서 사데 교회를 보실 때 너희들의 행위가 온전함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행위가 전혀 없다. 교회는 다니는데 말씀을 읽는 행위가 전혀 없다. 교회는 다니는데 섬기려는 행위가 전혀 없다. 교회는 다니는데 나누려는 행위가 전혀 없다. 교회는 다니는데 바치는 행위가 전혀 없다. 교회는 다니는데 자신을 드리는 봉사하는 행위가 없다. 교회는 다니는데 생명을 구하려고 전도하는 행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신앙으로 살아있는 것을 비유하기를 3장 4절에서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가 몇 명이 있다. 신앙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가 지금 너희교회에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 가지 신앙의 행위


“내 아버지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3:2b)


   첫째는 신앙적으로 할 적극적인 생활이다. 사데 교회가 세상으로 타락한 죄에 물든 행동으로 쫓아가면서도 신앙적으로는 행함이 없는 소극적인 사람을 말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속적인 행위는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살아가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반대로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아니한다. 타락한 세속의 풍조에 따라서 도덕과 윤리적으로 더러워진 교회와 신자가 현대판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늘날 신자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신자라면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서 살아야 된다. 온전한 신앙을 위해서 말씀을 읽는 행위가 따라야 된다. 기도하는 행위가 따라야 된다. 섬기는 행위와 나누는 행위와 자기 육신을 드리는 행위와 전도하는 행위가 따라야 성도로서의 옳은 행실이라 하셨다. 그래야 선한생활이 된다. 죄에 대해서는 물들지 아니하도록 세속과는 타협하지 말고 잘라버려야 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생활이 있어야하는데 온전한 생활이 없다는 것이다.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고 예수 믿는 믿음의 생활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행위가 없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 밖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영적으로 더렵혀져서 벌거벗은 교회가 많다는 말씀이다.


   사데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은 신앙적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행위가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살았다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러한 삶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라 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이 없고 세속에 물이 들어버리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생각도 더러워지고 생활도 더러워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이라 하신다. 이러한 사람은 신앙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영적인 것도 죽고 정신적인 것도 죽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무엇이라 하시는가?


   디모데전서 5장 4-6절까지 읽으면 먼저 자기 집에서 효도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라 하였다. 효도와 보답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해야 된다고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살아있으나 죽었느니라” 하면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하신다.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를 보실 때, 이 교회가 너무 물질이 많고 지역자체가 너무 부요하고 배가 부르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는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회는 기도가 없고, 교회에 대한 열의가 없었다. 세속으로 마음이 기울어져서 노는 것과 마시는 것과 먹는 것과 춤추는 것과 오락 등으로 빠져들어 갔던 교회가 사데 교회와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 하셨다. 사데 교회가 사는 길은 없는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2-3절에서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말씀과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하시는 두 말씀에서 알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