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설교를 위한 성경해석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구속사적 설교를 위한 성경해석>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1. 마 7:7
1) 이 본문은, 앞뒤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기록 목적을 염두에 두면 “하나님의 의와 나라”로 오신 ( 예수 그리스도 )를 “구하라” 는 말씀이다. 이 의미를 ( 강조 )하기 위해 다른 표현을 상호교환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2) 그러나 도덕적이고 교훈적으로 이 본문을 해석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기 소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것도 반복적으로 강청하여 줄기차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지 않을 수 없다는 설교를 하게 된다.
3) 마 6:31 - 본문 앞의 문맥을 참조하여 바르게 설교할 수 있는가?
- 성도가 이 땅에서 참으로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 예수 그리스도 )이다.
- 이 본문은 하나님의 뜻으로 오신 분이 (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성도가 추구할 분이 바로 ( 예수 그리스도 ) 임을 알려준다.
2. 요 14:9
1) 아담의 ( 타락 ) 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피조세계를 통해서는 ( )을 알 수 없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 줄 수 있는 ( )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보내신 것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고 ( )를 통해
( )이 어떠하신 분이신가에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3)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관한 ( )을 얻게 하는 ( )의 책이다.
3. 언약과 성취
1)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 )해 계시는 “영원한 존재자” 이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와 속성을 피조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사 용하셨다. 그것이 바로 ( )하시고 ( )하시는 방법이다.
2) 즉 하나님께서 역사(시간)의 어떤 시점과 특정의 공간에서 인간과 ( )을 맺으시고,
( )적이며, ( )으로 성취하시는 것이다.
3) 언약의 자손으로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과 사역을 ( ) 것과 ( ) 일에 하나가 되게 하신다. (엡 4:13)
4) 때가 차매 역사를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약에 언약하신 대로 정확하게 그리 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언약을 성취시키셨다. (갈 4:4-7)
4. 그러므로 성경의 골격은 언약과 성취
1) 성경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언약과 성취의 섭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 ) 계시를
위한 ( )적인 주제들이다.
2) 그러므로 아브라함 등의 열조들을 ( )받아 살자고 설교하는 것은 성경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 도덕적 메시지는 이방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3) 아브라함 사건의 의미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권적으로 자손과 가나안 땅을 주시겠 다는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 ) 못하고 실수하고 ( )하여 도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 )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4) 이런 성경의 기본 골격을 통해 드러나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발견될 때라야 기 독교적인 신앙이 정상적으로 자라갈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고 했을 때 이 원리를 성경 자체에서 찾아내는 일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5) 더 나아가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한다는 일도 이 원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인 영광과 은혜를 계시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방법이 기 때문이다. 이를 떠난 성경공부나 설교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허공의 메아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나 말씀증거는 이 골격을 통한 하나님 발견이라고 하는 근본 목적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5. 성경을 연구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
1) 접근하는 자의 태도에 따라서 성경의 무궁무진한 진리가 드러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 오 히려 감추어지기도 한다.
2) 예수님은 이 세상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이 예 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깨닫고 믿은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근본적인 이유는 하 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된 것이다.
3) 그런데 그 현상적인 이유를 분석 해볼 필요가 있다. 즉 예수님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사람 들은 모두가 자신을 죄인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칭 “의인” 들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 )과 ( )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적인 사건들을 목도했 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과 함께 들었다. 결국은 ( )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거부하게 되며, 결국 걸림돌에 걸려 멸망하고 말았다. 자신들이 ( )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이다.
4) 성경에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된다. ( )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진심으 로 갈망하고 사모하는 영혼에게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아름답고 놀라운 진리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즉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어떤 인간적 조건이 필요 없다. 성경은 인 간들의 인위적인 방법과 접근에 의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학자들이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때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목사가 성도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삼을 때, 세속적인 복의 비결을 찾기를 원하는 탐욕적인 눈으로 읽을 때, 도덕적 행동규범을 찾 으려는 시도를 할 때 역시 성경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아 경외하게 되는 신앙에서 빗나가게 된다.
5) 성경은 오직 죄인의 눈으로 볼 때라야 그 본질을 드러낸다. 즉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죄 있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찾 게 하시려는 계시의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세상의 어떤 책과도 다른 특징 이다. 세상의 소위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고 인간 스스로 교양을 쌓고 스스로가 지니고 있다고 가정되는 덕성과 지혜를 계발하여 길을 찾아가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그러나 성경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참된 신앙인은 성경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거 역한 죄인임을 발견하고 오직 길과 진리로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찾게 되는 것이다. 여 기서 복음을 통한 구원의 길과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멸망의 길이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지혜와 덕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철저하게 가리워지는 영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6) 자신이 죄인임이 깨달아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자신이 어리석고 패역한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복음의 지혜로 들어가는 입문이라는 놀라운 역설이 성립된다. 아담의 타락이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의 눈을 잃어버린 죄인인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 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예수님에게 접근하였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7) 복음서는 인간의 죄성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원리를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에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말씀과 표적적인 사건을 통해 증거하지만, 스스로를 지혜가 있는 의인으로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 히려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마11:25-27)
8) 이처럼 성경은 참으로 신묘막측한 책이다. 오늘날 일반학문이 발달하여 성경을 역사학적, 문학적, 철학적, 교육학적 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성경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기록되었으며, 인간의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교육적인 차원 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연구와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들을 가지고는 결코 성경의 본질적인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그것들은 성경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현상적이고 지엽적인 혹은 방편적이고 도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된 신학 적인 책, 즉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9) 그러면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죄인의 눈으로 성경을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학자의 눈으로, 도덕적인 의인의 눈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예수님 당대의 일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할 수 밖 에 없다. 피조자의 자리에서, 죄인의 눈으로 예수님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6.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주관자 - 성령
1) 성령의 사역에 대한 오해가 만연되어 있는 한국 교회
- 성령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만유의 주재자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 )를 절대적으로 장악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미숙하면 성령 하나님이 인간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는 특별한
( )적인 힘으로 오해하게 된다. 이는 무속신앙에서 보는 대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불러 올 수 있는 잡신이다.
2) 성부하나님은 창세전에 ( )하시고, 성자하나님은 그 예정을 따라 이 땅에 오셔서
( )하시고, 성령하나님은 약속의 영으로서 오셔서 성도들을 ( )치심으로 ( )를 구체적으로 주관해가시는 분이다.(엡 1장)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3) 약속의 성령(엡 1:13) - 성령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된 뜻에 따라 오신 약속된 분이다. (행 1:4-5) 제자들은 그것을 알고 전적으로 마음을 같
이 하여 기도하게 된다.(행 1:14)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의 표현인
( )에 근거할 때에라야 올바르게 이루어진다. 만약 먼저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과하고, 뒤에 나오는 인간의 기도만을 강조하여 성령을 인간의 기도대로 오신 분으로 이해한다면 성령은 그때부터 인간의 주관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심부름꾼이 되고 만다.
4) 따라서 성령을 받는 인위적인 비결을 가르치거나 성령을 받게 한다는 주장은, 주권자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오해요 왜곡이다. 인간의 노력과 정성에 의해 성령을 불러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오해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주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주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7. 성령의 사역
1) 성경은 인간이 기록하기는 하였으나 그 인간의 마음에 역사 하시고 영감 하신 분은 전적으로 ( ) 하나님이다. 따라서 성경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이 원 저자이다. 그러므로 원 저자이신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성경의 본래의 뜻을 알 수 없다. 인간이 쓴 어떤 책도 그 책을 쓴 사람만이 그 책의 본래적인 의미를 왜곡 없이 알 수 있다. 인간의 책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계시의 책인 성경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 진리의 영(요 14:17) - 이것은 기독교가 기독교 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오늘날 성령에 대한 이해가 이 점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복음서에서 그렇게도 세속적이고 비겁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이 오신 이후에 그렇게도 담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방언을 하게 되어서인가? 아니면 하늘로부터의 바람 같은 소리를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인가?
3) 그것들은 모두 그 당시 성령이 오셨다는 ( )의 사건이다. 대통령이 행차하게 되면 대통령이 왔다는 표식으로 축포를 울린다. 그것들은 대통령이 왔다고 하는 표시이며, 대통령이 진정으로 하는 일은 별도로 있다. 예컨대, 다른 나라 대통령과 만나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협상을 한다면 그것이 대통령이 오는 진정한 목적이다.
4) 성령의 오심이 또한 그러하다. 오순절 당시에 하늘로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방언이 터지는 것은 성령이 오셨다는 가시적인 싸인(sign)이며 ( )이다. 그러나 진정 성령이 오신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인 ( )를 깨닫게 하심이다.(요 14:26)
5)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 - 이것처럼 중요한 성령의 사역은 없으며 이것이 우리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표현 한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로서 ( )요 ( )이요 ( )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고 나서 두려움이 없는 인생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6)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이시기에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분도 역시 성령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영생의 양식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 )의 인도와 조명에 의하여 이루어진 은혜의 선물이다.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위대한 책인 성경은 원 저자이신 성령의 ( )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깨달아진다.
<구속사적 설교를 위한 성경해석>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1. 마 7:7
1) 이 본문은, 앞뒤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기록 목적을 염두에 두면 “하나님의 의와 나라”로 오신 ( 예수 그리스도 )를 “구하라” 는 말씀이다. 이 의미를 ( 강조 )하기 위해 다른 표현을 상호교환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2) 그러나 도덕적이고 교훈적으로 이 본문을 해석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기 소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것도 반복적으로 강청하여 줄기차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지 않을 수 없다는 설교를 하게 된다.
3) 마 6:31 - 본문 앞의 문맥을 참조하여 바르게 설교할 수 있는가?
- 성도가 이 땅에서 참으로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 예수 그리스도 )이다.
- 이 본문은 하나님의 뜻으로 오신 분이 (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성도가 추구할 분이 바로 ( 예수 그리스도 ) 임을 알려준다.
2. 요 14:9
1) 아담의 ( 타락 ) 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피조세계를 통해서는 ( )을 알 수 없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 줄 수 있는 ( )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보내신 것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고 ( )를 통해
( )이 어떠하신 분이신가에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3)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관한 ( )을 얻게 하는 ( )의 책이다.
3. 언약과 성취
1)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 )해 계시는 “영원한 존재자” 이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와 속성을 피조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사 용하셨다. 그것이 바로 ( )하시고 ( )하시는 방법이다.
2) 즉 하나님께서 역사(시간)의 어떤 시점과 특정의 공간에서 인간과 ( )을 맺으시고,
( )적이며, ( )으로 성취하시는 것이다.
3) 언약의 자손으로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과 사역을 ( ) 것과 ( ) 일에 하나가 되게 하신다. (엡 4:13)
4) 때가 차매 역사를 절대적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약에 언약하신 대로 정확하게 그리 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언약을 성취시키셨다. (갈 4:4-7)
4. 그러므로 성경의 골격은 언약과 성취
1) 성경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언약과 성취의 섭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 ) 계시를
위한 ( )적인 주제들이다.
2) 그러므로 아브라함 등의 열조들을 ( )받아 살자고 설교하는 것은 성경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 도덕적 메시지는 이방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3) 아브라함 사건의 의미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권적으로 자손과 가나안 땅을 주시겠 다는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 ) 못하고 실수하고 ( )하여 도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 )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4) 이런 성경의 기본 골격을 통해 드러나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발견될 때라야 기 독교적인 신앙이 정상적으로 자라갈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고 했을 때 이 원리를 성경 자체에서 찾아내는 일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5) 더 나아가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한다는 일도 이 원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인 영광과 은혜를 계시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방법이 기 때문이다. 이를 떠난 성경공부나 설교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허공의 메아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나 말씀증거는 이 골격을 통한 하나님 발견이라고 하는 근본 목적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5. 성경을 연구하는 자의 자세와 태도
1) 접근하는 자의 태도에 따라서 성경의 무궁무진한 진리가 드러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 오 히려 감추어지기도 한다.
2) 예수님은 이 세상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이 예 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깨닫고 믿은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근본적인 이유는 하 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된 것이다.
3) 그런데 그 현상적인 이유를 분석 해볼 필요가 있다. 즉 예수님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사람 들은 모두가 자신을 죄인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칭 “의인” 들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 )과 ( )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적인 사건들을 목도했 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과 함께 들었다. 결국은 ( )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거부하게 되며, 결국 걸림돌에 걸려 멸망하고 말았다. 자신들이 ( )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이다.
4) 성경에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된다. ( )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진심으 로 갈망하고 사모하는 영혼에게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아름답고 놀라운 진리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다. 즉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어떤 인간적 조건이 필요 없다. 성경은 인 간들의 인위적인 방법과 접근에 의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학자들이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때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목사가 성도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삼을 때, 세속적인 복의 비결을 찾기를 원하는 탐욕적인 눈으로 읽을 때, 도덕적 행동규범을 찾 으려는 시도를 할 때 역시 성경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아 경외하게 되는 신앙에서 빗나가게 된다.
5) 성경은 오직 죄인의 눈으로 볼 때라야 그 본질을 드러낸다. 즉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죄 있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찾 게 하시려는 계시의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세상의 어떤 책과도 다른 특징 이다. 세상의 소위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고 인간 스스로 교양을 쌓고 스스로가 지니고 있다고 가정되는 덕성과 지혜를 계발하여 길을 찾아가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그러나 성경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참된 신앙인은 성경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거 역한 죄인임을 발견하고 오직 길과 진리로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찾게 되는 것이다. 여 기서 복음을 통한 구원의 길과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멸망의 길이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지혜와 덕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철저하게 가리워지는 영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6) 자신이 죄인임이 깨달아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자신이 어리석고 패역한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복음의 지혜로 들어가는 입문이라는 놀라운 역설이 성립된다. 아담의 타락이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의 눈을 잃어버린 죄인인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 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예수님에게 접근하였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7) 복음서는 인간의 죄성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원리를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에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말씀과 표적적인 사건을 통해 증거하지만, 스스로를 지혜가 있는 의인으로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 히려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마11:25-27)
8) 이처럼 성경은 참으로 신묘막측한 책이다. 오늘날 일반학문이 발달하여 성경을 역사학적, 문학적, 철학적, 교육학적 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성경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기록되었으며, 인간의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교육적인 차원 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연구와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들을 가지고는 결코 성경의 본질적인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그것들은 성경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현상적이고 지엽적인 혹은 방편적이고 도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된 신학 적인 책, 즉 하나님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9) 그러면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죄인의 눈으로 성경을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학자의 눈으로, 도덕적인 의인의 눈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예수님 당대의 일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할 수 밖 에 없다. 피조자의 자리에서, 죄인의 눈으로 예수님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6.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주관자 - 성령
1) 성령의 사역에 대한 오해가 만연되어 있는 한국 교회
- 성령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만유의 주재자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 )를 절대적으로 장악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미숙하면 성령 하나님이 인간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는 특별한
( )적인 힘으로 오해하게 된다. 이는 무속신앙에서 보는 대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불러 올 수 있는 잡신이다.
2) 성부하나님은 창세전에 ( )하시고, 성자하나님은 그 예정을 따라 이 땅에 오셔서
( )하시고, 성령하나님은 약속의 영으로서 오셔서 성도들을 ( )치심으로 ( )를 구체적으로 주관해가시는 분이다.(엡 1장)
CSTS 9회 강도사 고시반 스터디 (2007. 3. )
3) 약속의 성령(엡 1:13) - 성령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된 뜻에 따라 오신 약속된 분이다. (행 1:4-5) 제자들은 그것을 알고 전적으로 마음을 같
이 하여 기도하게 된다.(행 1:14)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의 표현인
( )에 근거할 때에라야 올바르게 이루어진다. 만약 먼저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과하고, 뒤에 나오는 인간의 기도만을 강조하여 성령을 인간의 기도대로 오신 분으로 이해한다면 성령은 그때부터 인간의 주관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심부름꾼이 되고 만다.
4) 따라서 성령을 받는 인위적인 비결을 가르치거나 성령을 받게 한다는 주장은, 주권자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오해요 왜곡이다. 인간의 노력과 정성에 의해 성령을 불러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오해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주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주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7. 성령의 사역
1) 성경은 인간이 기록하기는 하였으나 그 인간의 마음에 역사 하시고 영감 하신 분은 전적으로 ( ) 하나님이다. 따라서 성경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이 원 저자이다. 그러므로 원 저자이신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성경의 본래의 뜻을 알 수 없다. 인간이 쓴 어떤 책도 그 책을 쓴 사람만이 그 책의 본래적인 의미를 왜곡 없이 알 수 있다. 인간의 책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계시의 책인 성경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 진리의 영(요 14:17) - 이것은 기독교가 기독교 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오늘날 성령에 대한 이해가 이 점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염려된다. 복음서에서 그렇게도 세속적이고 비겁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이 오신 이후에 그렇게도 담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방언을 하게 되어서인가? 아니면 하늘로부터의 바람 같은 소리를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인가?
3) 그것들은 모두 그 당시 성령이 오셨다는 ( )의 사건이다. 대통령이 행차하게 되면 대통령이 왔다는 표식으로 축포를 울린다. 그것들은 대통령이 왔다고 하는 표시이며, 대통령이 진정으로 하는 일은 별도로 있다. 예컨대, 다른 나라 대통령과 만나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협상을 한다면 그것이 대통령이 오는 진정한 목적이다.
4) 성령의 오심이 또한 그러하다. 오순절 당시에 하늘로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방언이 터지는 것은 성령이 오셨다는 가시적인 싸인(sign)이며 ( )이다. 그러나 진정 성령이 오신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인 ( )를 깨닫게 하심이다.(요 14:26)
5)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 - 이것처럼 중요한 성령의 사역은 없으며 이것이 우리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표현 한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로서 ( )요 ( )이요 ( )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고 나서 두려움이 없는 인생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6)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이시기에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분도 역시 성령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영생의 양식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 )의 인도와 조명에 의하여 이루어진 은혜의 선물이다.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위대한 책인 성경은 원 저자이신 성령의 ( )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깨달아진다.
출처 : 고촌참길교회
글쓴이 : 오직 성경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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