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파노라마
주제(主題) :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성경을 기록한 문서 선지자 16명의 활동 시기를,
포로 이전과 포로기와 포로 이후, 세 시기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포로 이후에 활동한 선지자들인데 그 중 제일 먼저 세움을 입은 선지자가 학개입니다.
포로 이후 시기란 회복기를 의미합니다.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한결같이 회복을 약속함으로 소망을 주었습니다.
70년 포로기간을 마친 후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일 먼저 번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스 3:3)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불타버린 성전 재건에 착수했습니다.
이때에 앗수르 왕의 이주(移住) 정책에 의하여 혼혈족이 된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건축하자고 요청을 합니다.
혼합종교가 된 저들의 제의를 거부하자 맹렬히 대적을 합니다.
결국 성전 건축은 2년 만에 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회복기에 처한 이스라엘의 상황은 선지자들의 약속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는,
“말세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 2:2, 미 4:1)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1:2) 하고
중단된 책임을 변명을 했던 것입니다.
성전 재건은 14년이나 중단이 된 채 점차 망각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로 말미암아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1:4).
㉡,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 지니라”(1:5).
㉢, “너희가 많은 것을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1:6).
㉣,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1:9) 하고 책망하십니다.
학개 선지자의 메시지는,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는 것이었습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전 역사”(1:14)를 다시 시작을 합니다.
이점에서 조심해야할 점은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신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영광을 얻으실”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전을 건축하라” 명하시는가?
그 의도를 구속사라는 지평에서 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의도가 무엇이며,
성막을 세우라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상고해보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의도에 대해서,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9:46, 레 11:45)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막을 지으라 하시는 목적도,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으라”(출 25:8) 하십니다.
핵심은 “그들 중에 거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2장의 극히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이 함께 거하심이 인류의 시조의 범죄로 말미암아 3장에서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구원계획은 이를 회복하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약속한 회복도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예표로 하여 사탄의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귀환한 저들은 그 회복이 자신들의 당대에 다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 회복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만이 가능하여지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성이 될 회복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
“성막, 성전”의 참 의미는 “임마누엘”로 성취될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성전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하며, 생축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드려주실 구속을 대망(待望)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이 중단이 되고 망각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메시아언약을 망각하기에 이르렀다는 증거입니다.
이점이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 하였었느니라”(2:17)는 말씀에 나타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전을 건축하여 조석으로 상번제를 드리기에 이르면,
“그리하면 내가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 하시는 것입니다.
학개서는 네 차례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4번의 설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주목해보면 1장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평면적(平面的)인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장, 즉 두 번째로부터 네 번째에 임한 말씀은
그 초점이 물리적인 건물이 아니라
참 성전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맞춰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殿)의 이전(以前) 영광(솔로몬 성전)을 본 자가 누구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 하냐”(2:3) 하십니다.
하나님은 재건되는 성전의 “보잘 것 없음”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2:8)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
“내가 은이나 금으로 지으면
기뻐하고 영광을 얻는 하나님인 줄 아니냐 아니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영광으로 이 전(殿)에 충만(充滿)하게 하리라”(2:7) 하시면서,
“이 전(殿)의 나중 영광(榮光)이 이전(以前) 영광보다 크리라”(9) 하십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에서 성취될 메시아언약을 가리킴이 명백한 것입니다.
2:10-14절에 나오는,
“성물이 되겠느냐, 부정하겠느냐” 한, 두 가지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는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 도중에 주어진 말씀임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을 때에도 나타나셔서,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 하리라”(왕상 6:12-13) 하고 경계하셨습니다. 만일 이를 명심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殿)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왕상 9:7) 하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물리적인 성전 건물보다 저들의 마음에 있는 성전이 정화(淨化)되어야할 것을 경계(警戒)하시는 것입니다.
학개서는
“성전을 건축하라”(1:8)는 명으로 시작하여
“전 역사를 하였으니”(1:14) 하고,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재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성전”을 완공(完工)했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목해야할 점은
성전건축으로 시작한 학개서는 성전이라는 “건물”(建物)로 끝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라”(2:23) 하고
“너”라는 “인물”(人物)로 결론을 맺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너”가 1차적으로는
스룹바벨이라 하여도 그는 예표의 인물이요, “택하여, 인을 삼으신” 궁극적인 “너”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회복은 성전이라는 건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라 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자기 백성들인 “우리”를 찾으심으로 가능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하나님은 금이나 은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다시 찾은바 된 자기 백성들로 이루어진 성전에 거하시기를 기뻐하심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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