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6>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오늘은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주제인 죄 사함을 위한 기도를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죄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죄 문제의 해결 없이는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됩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교회를 출입하는 것은 마당만 밟는 종교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명쾌하게 죄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다섯 번째 주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 이어서 나오는 주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순서로 기도하라고 하신 걸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기도를 강해하면서 계속 이 기도문은 기도의 형식(순서나 방법)을 가르친다기보다는 내용(주제)을 가르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에 비춰 볼 때 하나님 앞에서 깊은 죄 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다른 기도제목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위한 기도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확신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후에 다른 제목들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의 순서는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역시 순서에 얽매이기 보다는 내용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다음에 죄 사함을 위한 기도를 놓은 주님의 의도에 대한 설명은 충분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주님의 의도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죄 문제가 더 중요하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냐 라고 할 때 죄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죄 문제도 해결 안 된 죄인이(지옥 갈 사람이) 산해진미가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둔 들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자비하십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영혼의 문제, 죄 문제가 먼저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먼저 먹이시고 입히시고 나서 말씀을 하십니다. 즉 죄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양식 한 톨도 허락할 수 없다고 하는 식으로 우리를 대하시지 않고, 비록 우리가 수많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나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설득하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이 자비 덕분에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 자비 덕분에 우리는 많은 죄악 중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비하신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보다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한 주제이지만 우리의 영혼을 위한 기도는 두 가지 주제입니다. 죄 사함과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문제보다는 늘 영혼의 문제를 더욱 중요시 여기고 많이 기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Ⅰ.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하려면 먼저 죄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에 대해 말씀할 때 쓰는 용어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단어 |
뜻 |
하마르티아 Hamartia |
①과녁을 맞히지 못했다. ②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
파라바시스 Parabasis |
①금(선(線))을 넘어감. ②정도를 걷지 못하는 것. |
파랍토마 Paraptoma |
①미끄러져 넘어짐(실족) ②자제력을 상실하여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
아노미아 Anomia |
①불법 ②율법을 범하는 죄 |
오훼일레마 Opheilema |
①빚(채무) 주기도문에 나오는 죄는 빚을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함. |
이중에서 주기도문에 사용된 죄를 의미하는 단어는 ‘빚’을 의미하는 opheilema입니다. 그리고 마18:24에 의하면 이 빚은 “일만 달란트”의 빚입니다. 1달란트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으로 계산하면 6,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을 10만원으로 칠 때 1달란트는 6억원쯤 됩니다. 그럼 1만 달란트는 6조원정도 되는 돈입니다. 여기서 일만 달란트가 의미하는 것은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빚입니다. 이때 당시는 이렇게 갚을 능력이 없을 만큼 빚을 지면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죄의 종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요8:34). 요즘은 빚을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즉 일만 달란트의 빚은 최악의 채무이고, 죄는 그렇게 우리에게 최악의 채무인 것입니다. 왜 죄가 최악의 채무입니까?
첫째,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진 빚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창조주시요, 우리의 소유주시요, 통치주이시며 심판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의로우신 분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이러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의와 거룩함으로 진노하십니다. 죄는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악의 빚입니다.
둘째, 죄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기 때문에 최악의 빚입니다. 탕감 받을 수 있다거나 갚지 않고 도망을 다닐 수 있다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빚입니다.
셋째, 죄는 내가 친히 갚아야 하는 빚입니다. 자식의 죄를 부모가 대신할 수 없고, 부모의 죄를 자식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내 죄는 내가 철저히 갚아야 합니다.
넷째, 죄의 빚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를 표현할 때 “죄들”(debts)이라고 표현합니다. 죄의 종류가 많아요. 한 가지 죄목만 가지고도 그 빚을 갚을 수가 없는데, 그런 죄가 수없이 많은 것입니다.
다섯째, 그 죄의 빚을 갚기 위해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빚을 갚는 형벌을 받는 장소가 지옥입니다. 지옥에는 지금도 죄의 채무를 갚지 못한 이들이 잡혀 와서 그 채무를 갚기 위해 고통스러운 형벌을 당하고 있는데, 그 형벌이 영원한 형법입니다. 형벌이 영원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범한 죄가 그만큼 무섭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비웃고 조롱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받을 형벌의 양을 가중시키는 것이요, 그 형벌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죄는 최악의 빚입니다. 이 죄의 빚을 그대로 안고 죄의 종으로 사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은 죄 사함의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받는 방법이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는 기도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Ⅱ.죄 사함을 받기 위한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는 기도는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죄 사함을 구하는 기도를 다른 말로 하면 회개의 기도입니다. 즉 죄 사함은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에 대해서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회개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회개는 우리의 공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속한 것입니다. 즉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회개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둘째, 회개가 하나님의 은총에 속한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그 은총을 베푸실 때 강제적 방식으로 회개케 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오셔서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즉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심으로써 죄인이 하나님 앞에 회개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자에게도 동일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라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아서 화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책임입니다.
셋째, 회개 없이 구원이 없지만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우리가 용서를 받기에 합당한 값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즉 우리가 죄 때문에 애통하고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간절히 비는 행위 자체가 죄의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만 가능합니다. 주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속죄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회개 없이는 구원도 용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회개가 구원을 가져오는 원인이 아니라 회개는 구원의 과정 속에 나타나는 분명한 과정이요 현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홀겐티우스는 “주여, 회개를 허락하시고 그 후에는 용서를 내리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보면 회개가 은총에 속한 것이며, 회개와 함께, 회개 다음에 죄의 용서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드렸습니다. 이제 회개의 3요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가 통회(contrition)입니다.
통회란 죄에 대한 슬픔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통회에 대한 여러 표현들이 나옵니다.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겔7:16)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오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이 외에 머리털을 뽑는다든지(스9:3), 눈물로 침상을 적신다든지(시6:6), 옷을 찢는다든지(왕상21:27) 등의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죄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는 마음으로 죄에 대해 인식하고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슬퍼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도 처음 교회를 다닐 때에 그랬습니다.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왜, 뭣 때문에 우는지도 모르지만 왠지 마음이 녹아져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다보면 죄가 생각나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후에 알고 보니 주님께서 제게 통회의 은총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여, 통회하십시오.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멈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많은 죄악 가운데 있으면서도 통회의 눈물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십시오. 훌겐티우스가 회개를 허락하시고 용서를 내리소서 라고 기도한 것처럼 통회의 은혜를 주실 것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고백(confession)입니다.
시32:5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 내 죄를 숨김이 없이 낱낱이 고백할 때 주님이 그 죄를 용서하심을 말씀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슬퍼하는 사람은 이제 그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가서 고백하여야 하고, 그 고백은 거리낌이 없이 솔직해야 하고 위선이 없이 진실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 진실한 고백을 결코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를 즉시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은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죄를 낱낱이 고백하십시오. 눈물을 닦고 일어설 때에 여러분의 죄는 흰눈보다 더 희게 씻겨질 것입니다.
셋째, 회심(conversion)입니다. 이것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애통해하고 고백한 죄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나의 삶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되어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눅3:8).
사랑하는 여러분! 탕자가 돌아오는 과정은 회개의 3요소를 잘 보여줍니다. 탕자는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된 것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깨닫고 돌아옵니다. 그는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애통함을 가슴 가득히 담고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통회입니다. 그리고 탕자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합니다. 이게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께 아룁니다.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라고 말합니다. 이제 아버지께 순종하는 착한 아들이 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가 용서나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가 구원을 받거나 용서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 없이는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다고 단언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여! 죄를 슬퍼하며 낱낱이 고백하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이런 몹쓸 죄인을 대신하여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오니, 그리고 죄로부터 돌이켜 주님을 순종할 것을 결단하오니 주여, 나의 죄를 사하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자비하신 주님이 사죄의 은총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회개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한 번 회개하면 다 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일생에 한번만 찐하게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번의 회개로 죄에서 영원히 떠날 수 있다면 그래도 되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또 죄에 빠질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회개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두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회개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이후에도 또 죄에 빠지는데 이 때에 우리의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두 번째 회개를 성화를 위한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 둘을 합하여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후에 죄를 또 범하거든 역시 통회하고 고백하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 죄로부터 떠나십시오. 진실로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기도의 생활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면 우리는 죄를 이기는 자가 되고, 결국은 죄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주기도에서 가르치는 죄 사함을 위한 기도는 구원받기 위해 회개의 기도를 드리라는 기도가 아니라 죄를 이기고, 죄를 죽이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죄가 우리 안에서 영향력이 사라지도록, 죄가 죽어서 우리에게 전혀 영향력을 주지 못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거룩해지기 바랍니다. 주님을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에서 가르치는 죄 사함을 위한 기도입니다.
Ⅲ. 죄 사함의 축복에 대해 알아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진심으로 회개할 때 주님은 용서를 베푸십니다. 그 용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죄라고 하는 단어는 ‘빚’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빚을 다 갚았을 때, 즉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할 때 그 용서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말이 ‘도말’이라는 말입니다. 도말이란 영어로 'paint out'입니다. 우리말로 도말을 풀이하면 “칠하여 지워 없애거나 덧발라서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서를 지울 때 진한 페인트로 덧발라서 그 흔적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회개하면 주님은 보혈의 피를 우리 위에 덧발라서 우리의 죄를 다 지워버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용서를 표현한다면 빚을 다 갚으면 빚이 기록된 장부를 찢어서 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회개하면 우리의 죄가 기록된 장부(책)을 분쇄기에 넣어서 없애버리는 것처럼 우리 죄를 그렇게 용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용서라고 하는 표현을 통해서 용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용서란 죄책과 형벌을 면제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죄인은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받는 순간 모든 죄의 책임으로부터 면제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형벌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형벌이 바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 모든 형벌을 면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안에서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자는 죄책과 형벌을 면제받습니다.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지 아니하며,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신 말씀은 용서가 가져오는 축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둘째,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개선을 가져옵니다. 죄인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구름은 진노와 저주의 소낙비를 쏟아 부을 먹구름입니다. 그러나 용서 받으면 그 모든 진노와 저주의 먹구름이 걷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라고 하는 찬란한 햇빛이 비쳐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비가 오게 된다면 그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되어 풍요를 가져올 축복의 비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용서와 함께 하나님은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용서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즉 신분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셋째, 용서는 회복이라는 축복을 가져옵니다. 탕자가 회개했을 때 아버지는 그 탕자를 데려다가 ①씻기고(죄책과 형벌을 면제하여 주는 용서를 의미합니다), ②새 옷을 입히고(이것은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칭의의 축복입니다.) ③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④잔치를 벌여줍니다(하나님 자녀로서 받는 모든 영육간의 축복과 영원한 상급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회개 후에 찾아오는 주님의 축복, 회복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회개하면 용서를 해주시는데, 과연 내가 용서받은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즉 내가 범죄 한 후에 얼마나 그 죄 때문에 아파해야 하고,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용서받을 수 있는가? 등등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짧게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회개하는 사람의 애통의 눈물의 진위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진정한 회개를 경험한 사람은 그 눈물의 양과 관계없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성령께서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시고, 죄 사함을 받은 확신을 주십니다.
둘째,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셋째, 죄를 이깁니다.
넷째,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다섯째, 성품이 순결해집니다.
Ⅳ.“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의 의미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내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 주어야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기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용서를 구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르게 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면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려면 나도 자비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이전에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께만 죄가 되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범죄 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도 범죄하고 사람에게도 범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탕자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라고 고백했던 것처럼(눅15:18) 우리도 사람 앞에 범죄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 나아가면서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원치 않는 죄를 범한 것 같이 내게 죄를 지은 자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용서 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혹 지금은 용서받으려고 하지는 않을지라도, 아직 자신의 죄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죄의식조차도 갖지 않고 있을지라도 그는 그 죄로 인하여 분명히 고통 가운데 있고, 그는 죄로 인하여 불행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내게 용서를 구하건 안 구하건, 그가 죄의식을 느끼건 안 느끼건 관계없이 내게 죄를 범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옳습니다.
셋째,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내가 마땅히 베풀어야 할 은혜로 알고 용서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죄를 하나님께 탕감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내 죄를 위해 내어주시며 그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의 용서를 구하며 죽어갔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무한한 자비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돌로 치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측은히 여기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무한한 은총을 입은 사람임을 기억합시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고 용서를 베풀고 은혜를 베푼다고 해도 내가 받은 은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넷째, 용서는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알고 용서하고자 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는 죄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이 증오와 분노가 내 마음의 초원에 가시덤불과 엉겅퀴처럼 뒤엉켜 있으면서 내 마음을 황량하게 만들어갑니다. 주님을 온전히 모실 수 없게 만들고,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내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도 방해가 되고,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도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악에게 시험을 받고 결국은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됩니다. 즉 내 안에 쌓여 있는 증오와 분노는 나를 고갈시키고 결국은 죽이는 독소가 됩니다. 그래서 용서를 통해 이 독소를 다 뽑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통해 독소를 뽑아내지 않으면 나는 독을 품은 독사처럼 누군가를 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독니를 뽑아내듯 우리 안에 있는 분노와 증오를 용서를 통해서 뽑아내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서받았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용서할 때의 기쁨도 큽니다. 큰 평안이 찾아오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주님의 위로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내 안에 부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축복을 위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에 관련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한 1년쯤 설교를 해도 부족합니다. 평생을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1시간 남짓 예배드리는 시간에 설교하려니까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죄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이 기도는 회개의 기도를 주님 앞에 드릴 것을 말씀합니다. 회개는 구원을 위한 회개가 있고, 성화를 위한 회개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성화를 위한 회개의 기도가 평생의 기도제목임을 말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가지고 많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용서를 경험하고, 죄를 버리고, 이기고 죽이는 영적 승리를 경험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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