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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강>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아들 2014. 1. 11. 13:28

<주기도문 강해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6:9-

 

 

  지난주에 주기도문 강해 서론에 해당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본론으로 일곱 개의 기도 주제 중에서 첫 번째 주제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설교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진행을 할 것입니다. 먼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것이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가에 대해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Ⅰ.“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의미에 대해 살펴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돼지라고 하는 동물의 이름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생각이 듭니까? 돼지우리에 가 본 사람은 “더럽다”, “지저분하다”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어 본 사람은 “삼겹살”, “맛있다.” 등의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뚱뚱하다”, “게걸스럽다” 등의 단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이렇게 돼지라고 하는 이름은 돼지의 이미지, 특성 등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때에는 그 사람이나 사물의 이미지, 특성과 기능 등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이름을 짓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문명 시대에는 어떤 상품을 만들어 낼 때에도 이름을 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름을 잘 만들어서 붙이면 그 상품이 잘 팔리지만 이름을 잘못 지으면 그 상품은 거의 팔리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이름은 그 이름의 소유자에 대한 이미지, 특성과 기능을 연상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성경에서 여러 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름을 가진 어떤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이 나타내고 있는 인격과 능력과 권위를 가진 분이심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그런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이름으로 표현되는 인격과 능력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인격과 능력과 권위를 통해서 지극히 명예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과 권위,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럼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예는 피조물들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는 피조물들과 비교할 수 없이 높고 영화롭기 때문에 함부로 취급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나님의 명예가 지극히 높아지고 영화롭게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경스럽게 대하는 죄인의 부패된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가 세상으로부터 더럽혀지지 않기를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의해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게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Ⅱ.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명예를 지극히 높여드릴 수 있는가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를 지극히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요일5:10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불명예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예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예를 짓밟는다, 하나님의 명예를 욕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부인하고 가장 비열하게 더럽히는 악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깡그리 짓밟아 버립니다. 우리들이 그런 악에 빠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절대적인 믿음으로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을 때에 하나님의 명예를 지극히 높여드립니다.

시16:8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 하리로다”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의 진가를 알고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우리의 생각 속에서 최고의 위치에 모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우리 집에 귀한 분이 오신다면 그분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드릴 것입니다. 상석을 그분께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최우선의 자리, 상석에 앉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첫 번째 대상이셔야 합니다. 이것이 그분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찬들이 하나님을 두 번째 세 번째 자리에 놓습니다. 이것을 따르고 저것을 추구하다 맨 나중에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다가 세상의 좋은 것들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버리고 그것을 좇아갑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지도하다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세 번째에 두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공부가 첫 번째인 친구들이 제법 많습니다. 나의 안락한 삶을 첫 번째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친구와 하나님 사이에서 친구를 택하는 친구들이 꽤 많습니다. 부모님과 하나님 사이에서 부모님 편으로 기우는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아마 돈과 하나님 사이에 서면 돈을 택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성공과 하나님 사이에 서게 되면 성공을 택하기가 아주 쉬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주님의 돈궤에서 한 푼 두 푼 훔쳐가던 가룟 유다가 주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린 것처럼 지금 하나님을 두 번째 세 번째로 놓고 적당히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주님을 팔고,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못 밖고, 주님을 욕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최고 앞자리에, 최고 높은 자리에 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를 지극히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시29:2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받으실 이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에게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지극히 멸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예배를 강조하고, 예배를 잘 드리게 하려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예배의 중요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충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지각을 할 수도 있고, 친구와 잡담을 하거나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졸기도 하고 말씀이 재미없다고 낙서를 끄적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불경스럽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급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초대해서 연설을 시켜놓고 자기들은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며 놀고 있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에 참되게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예배 중에 임하신 하나님을 영안을 열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영적 감각을 동원하여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을 높이고 찬양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께 최상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참되게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넷째,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 하나님의 명예를 지극히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이 말은 사도 바울이 한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자 하는 바울의 뜨거운 감사가 배어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자랑할 때가 있습니다. 입만 열면 나를 자랑합니다. 이것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무슨 일을 잘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잘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과 시기와 상황을 그렇게 조성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피나는 노력을 해서 무엇인가 잘 했다면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무슨 일을 성취했을지라도 이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려져야 마땅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 것도 나는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나를 자랑하는 입술을 닫아버립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계4:10에 보니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이들에게 하나님은 면류관을 주시고, 그 면류관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 앞에 다시 면류관을 되돌려 드립니다. 이런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랑하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일도 없고, 들어가도 적응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나를 자랑하는 입술을 닫아버립시다.

 

  다섯째, 순종과 헌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지극히 명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40:8)라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의 법,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꼭 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극히 소중한 말씀으로 가슴에 담고 새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름에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찬송했을지라도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노라고 사람들 앞에서 공언을 하고 나의 믿음과 헌신을 자랑했을지라도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힘겨워하고 부담스럽게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을 묵묵히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신앙을 공표하지 못할지라도 은밀한 곳에서일지라도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주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 전에 우리 중고등부 예배에 대해서 난상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찬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열정적으로 찬양하게 할까를 많이 의논했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학생들 중에는 찬양할 때는 열정적이지만 삶 속에서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고, 비록 찬양할 때는 소극적이지만 매일 매순간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힘쓰는 학생들도 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힘쓰는 것에 더한 가치를 둔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찬양만을 생각하면서 예배를 생각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정적인 찬양도 필요합니다. 춤도 추고 즐겁게 예배를 참석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주님을 위한 예배는 열정적인 찬양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순종과 주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찬양을 즐기는 예배를 선호하지 맙시다. 우리를 즐기는 어떤 신앙생활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것을 즐겨 지키는 삶의 예배, 순종과 헌신이 있는 신앙생활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여섯째, 하나님의 이름이 불명예스러워지는 것을 슬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를 높여드리게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받아 내려왔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의 분노가 어떠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돌판을 깨뜨리며 불같이 진노하였습니다(출32:19)

또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그는 페르샤 왕궁에서 호의호식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떠나온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불타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1:4)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루살렘 성의 훼파는 하나님의 명예가 이방인들에 의해 훼손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이름이 욕되게 되는 것에 대해 슬퍼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불신자들에 의해 주님의 이름의 영광이 훼손된 것을 슬퍼해 보셨습니까? 교회의 침체와 교회의 타락이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를 드리는 것이기에 이를 슬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불신자들이나 이교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칭할 때에 분노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주 오래 전입니다. 제가 여러분들 나이 때입니다. 우연히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내 아버지를 욕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팰 수는 없고 그들의 사무실을 몽땅 뒤집어놓고 부숴버렸습니다. 경찰 출동을 했지만 저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들을 내가 본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업신여김을 받는 것을 보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격하게 세상을 뒤집어엎는 등 폭력적으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슬퍼해야 합니다. 분히 여기며 슬퍼해야 합니다. 특히 나 때문에 주님이 욕을 듣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슬퍼해야 합니다. 통곡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이 회복되게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일곱째,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치욕을 당할 때 참고 견디고 이기는 것이 주님의 명예를 높여드리게 됩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부귀영화보다 값지게 여겼습니다(히11:26), 주의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핍박받고 능욕 받는 것을 오히려 지극히 영광스럽게 여기고 기뻐하였습니다(행5:41). 그리고 모든 주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주를 위해 고난 받고 핍박 받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을 했습니다. 왜 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고,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여 주님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과 유혹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고난과 핍박을 이기며 승리하는 것은 주님의 명예를 수호하는 것이며, 이것은 주님의 명예를 한껏 높여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다가 고난을 받고 치욕을 받을 때에 이를 잘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에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여덟째, 주님의 이름으로 선을 행함으로 우리는 주님의 명예를 지극히 높여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우리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근면하게 살아가고,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높임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의 회심을 위해 일함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여 드려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당신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믿고 죄 사함 받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다만 남은 것은 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죄인들이 회심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주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요 직분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과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사도들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생을 영혼을 건지는 일에 바쳤습니다. 수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하였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복음의 증인이 되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 이것보다 주님을 명예롭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됩시다. 영혼을 건지는 사람이 됩시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그래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서 하나님을 찬송하기까지 예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합시다(계7:9).

사랑하는 여러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말씀을 읽을 때 저는 십계명 중에서 제 3계명을 떠올리게 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떠올리게 될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을 통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주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고, 주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합시다. ①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으로, ②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음으로써, ③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④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⑤순종과 헌신을 주님께 드림으로, ⑥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슬퍼함으로, ⑦하나님의 이름을 인하여 치욕을 당할 때 인내하고 이김으로써, ⑧선을 행하고 ⑨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지극히 높임을 받으시도록 해 드립시다. 이를 위해 늘 기도합시다. 그런 삶을 추구하며 몸부림쳐 기도합시다. 기도하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몸부림칩시다. 할렐루야.

출처 : 행복한 글밭 / 책읽기 운동본부
글쓴이 : 작은 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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