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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아들 2014. 1. 11. 13:28

<주기도문 강해1>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6:9-

 

 

  지난번에 9주간에 걸쳐서 팔복을 강해했습니다. 말씀을 귀담아 들은 분들은 무엇이 진짜 복인지에 대해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기도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기도에 대한 설교 역시 8번 정도 설교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우리 학생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잘 다니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 있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꼭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예수님을 잘 믿고 잘 섬기고, 지금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예수님을 잘 믿고 잘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왜 제가 이런 목표를 갖는지 아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언제까지 함께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을 떠나거나 여러분이 저를 떠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을 붙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스스로 신앙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는 일에 많은 비중을 두었고, 많은 공을 들이셨는데, 그것은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고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세워질 교회를 맡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 사도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자신이 떠나고 난 뒤 환란과 핍박이 닥쳐올 때 이를 능히 이기고, 또한 교회를 책임지고 영혼들을 책임질 일꾼들이 필요했기에 그들을 훈련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통감합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제자훈련에 많은 비중을 두려고 하는 것이고, 예배 때에 설교를 해도 여러분의 신앙의 뼈대를 세우는 데에 필요한 진리를 전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언제 어디서나 신앙의 삶을 잘 살아가려면 두 가지 면에서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 훈련입니다. 설교에 의존하지 않고도 늘 말씀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신앙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기도생활을 잘 하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공급받는 은혜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공급받는 은혜도 필요하고 기도를 통해서 공급받는 은혜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은 설교를 통해서 그래도 늘 공급하는 것이기에 저는 이번에 기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다룰 때에 우리는 주기도문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주기도문은 우리 주님이 직접 가르치신 기도이며, 기도에 대해서 가장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해서 배우려면 주기도문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서론을 마치고 오늘 설교의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주님이 언급하신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태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다음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면서 주기도문의 위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Ⅰ.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주님은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시기 전에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언급을 하시고 나서(마6:5-8) 진정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마6:9-13).

그럼 주님이 언급하신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런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첫째, 외식하는 기도입니다(5절).

  외식한다는 것은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극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배우가 연기하듯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외식하는 기도란?

  ①믿음이 없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 없이 기도하는 흉내만 내는 것인지, 진정 그 마음에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사랑과 은혜와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지를 정확하게 분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②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즉 기도는 믿음으로 해야 하고, 지극히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진지하고 올바른 태도와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응답을 강요하듯 기도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배우라는 식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또 광적인 동작과 고함소리를 내는 것이 기도를 잘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태도들은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여 외식하는 것입니다.

  ③기도를 자랑하는 것이 외식입니다.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기도를 잘 한다고 하는 것을 과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외식이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도 외식입니다.

어떤 분은 40일 금식을 몇 번 했다고 주보에 광고를 하기도 하고, 자기를 소개하는 프로필에 그렇게 적어 놓기도 하고 설교할 때마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분은 차라리 40일 금식기도를 안 하고 겸손한 것이 훨씬 나을 뻔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 하는 것을 자랑하며, 새벽기도 못하는 사람들을 마치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산기도, 철야기도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기도의 ‘기’자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결코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기도뿐만이 아니라 신앙생활과 관계된 것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것도, 은혜 받은 것도,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도, 큰일을 한 것도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자기가 받을 상을 스스로 받은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훈장을 만들어 혼자 훈장수여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하나님께 상이나 칭찬받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입니다. 이런 기도를 사람에게 떠벌리고 자랑하고, 사람 앞에서 멋있게 기도하려고 한다든지 하는 것은 연인과의 은밀한 사랑의 대화 내용을 다 떠벌리고 다니는 푼수 이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진지하고 올바른 태도로 기도해야 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마음 깊은 곳에 은밀한 기쁨으로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방인과 같은 기도입니다(7절).

  이방인의 기도에 대해서 주님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중언부언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을 많이 하거나 기도 시간을 오래 끈다고 기도를 잘 하는 게 아닙니다. 하려한 언어를 구사한다고 기도를 잘 하는 것도 아니며, 큰 소리로 기도한다고 기도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기도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며, 진실성과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기도를 중언부언하는 것과 같이 취급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만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진지하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겉으로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는 주님과 깊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좋은 기도입니다.

하여튼 한국교회의 기도가 좀 이상한 데로 흐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소리를 크게 지르는 등 광적인 모습으로 기도해야 기도를 잘 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묵상인지 명상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기도를 정신수련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 지나친 극단입니다. 주기도문을 배우면서 그런 기도에서 벗어나야 겠습니다. 즉 형식이 아닌 기도의 내용과 본질을 회복함으로 진정한 기도를 재정립해야겠다는 것입니다.

 

 

  Ⅱ.주기도문의 위치와 중요성.

  외식하는 기도와 이방인의 기도 등, 잘못된 기도에 대해서 언급하신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은

 

  첫째, 주기도문을 기도의 모델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예배시간에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데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것은 “이 기도로 너희 기도를 꾸밀 규칙과 모형을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기도는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도할 중요한 세 가지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들이 현세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의 필요를 충족 받고자 하는 기도를 할 것을 말씀해 줍니다.

  셋째는 우리들의 경건한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고, 시험과 유혹을 이기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의 여러분 중에는 기도의 순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이 그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주기도는 기도의 순서를 밝히기 위해서 말씀하셨다기보다는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하기 위해 말씀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굳이 기도할 때 어떤 순서를 따르는 게 좋으냐고 할 때 주기도의 순서를 따라도 무방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기도의 순서를 절대적인 순서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 순서가 바뀔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큰 죄를 짓고 죄의식 속에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고,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고 나서 죄 문제를 아뢸 수 있을까요? 이럴 때는 먼저 깊은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순서는 일반적인 순서는 정할 수 있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고정을 시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둘째,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그런 삶을 추구하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질병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의 기도는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도를 아무래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선교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할 것이고, 구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구제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의 삶,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고 추구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주기도문은 우리가 세 가지 측면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이루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주님께 맡기고, 항상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살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음을 지키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가 추구해야 할 삶의 세 가지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러한 삶에 가치를 두지 않고, 이러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주님이 제시하신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Ⅲ.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믿고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되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은 어떤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중보자로 여기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의 힘과 우리의 이름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우리의 힘과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오직 죽음과 심판과 영원한 형벌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획득하며, 그래서 기도할 권리를 취득하게 되어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라는 것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호칭할 수 있게 된 것은 홍길동이 자기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가 아버지의 허락 하에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과 같이, 우리의 신분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영화로우시며, 의롭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하나님 앞에 비천한 죄인이었고, 심판과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고, 죄의 종이던 우리가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자유자가 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맏형이 되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르는 차자의 지위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극히 높은 이름이 되어 천국을 상속받은 것처럼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대통령의 아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고 합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친구와 함 청와대에 놀러갔다고 해봅시다. 대통령의 아들인 친구가 청와대 정문을 들어서면서 “이게 우리 집이야” 라고 하면서 여러분을 청와대 안으로 인도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겠습니까? 너무도 부럽고 그 친구가 대단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무시무시한 경호실과 비서실을 통과해서 일반인들은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대통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우리 아빠야. 인사해. 아빠, 내 친구 ○○야!”라고 소개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만민이 우러러보는 대통령을 아빠라 부르고, 그 대통령한데 반말로 말 할 수 있는 그 친구가 대단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된 지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늘의 천사들도 우리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하나님이 누군지 알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며 대적하고 거역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사는 우리들을 볼 때에 너무나 부러워서, 그리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기회,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원통한 마음에 통곡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를 때에 경외심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르십시오. 큰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은 그 하나님이 너무도 좋은 분이란 뜻입니다.

  첫째,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생명의 시작이요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형상을 우리 안에 넣어서 우리를 지극히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축복입니다. 꽃은 자신을 꽃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토해 냅니다. 우리도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나를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구원받을 자로 택하신 것, 그리스도를 희생하여 우리의 죄를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지극히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택하시고, 나를 친히 부르시며,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희생하신 것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마다 이 은혜를 기억하고 높이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낳을 뿐만이 아니라 보호할 수 있는 힘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창소하셨고, 구원하셨고, 그리고 영원히 보호하실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능력은 전능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그 전능한 능력이 우리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넷째, 우리의 공급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아시는 분이시며, 그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극히 후덕하시고, 자비로우시고 넉넉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따라 넘치도록 공급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대양을 보십시오. 물고기들이 마음껏 헤엄치도록 넓은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바다를 배를 타고 항해할 수 있고, 거기서 마음껏 고기를 잡아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저 들과 산을 보십시오. 우리들이 마음껏 일하도록 드넓은 땅을 주셨고, 우리의 휴식과 정서를 위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풀과 꽃과 나무들이 나게 하셨으며, 산은 산으로 아름답게 하시고, 들은 들로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땅의 소산은 우리로 먹고 남음이 있도록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게 하십니다. 그 넉넉하시고 후덕하신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째, 이러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능가하는 존재는 이 우주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지극히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하며, 다스림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며, 그 누구도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고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시고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적인 능력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적인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절대적인 지혜이며, 하나님의 뜻과 의지 또한 절대적입니다. 이러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스리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심판과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전적으로 보호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풍성하게 응답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삶을 가장 복되고 가치 있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부르고, 그 하나님께 지극한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리고, 그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며,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설교는 이만 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불러 지극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그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지를 진지하게 배울 것을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출처 : 행복한 글밭 / 책읽기 운동본부
글쓴이 : 작은 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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