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 에베소서

[스크랩] [에베소서강해] 엡 3:7-11

하나님아들 2014. 1. 2. 10:29
[에베소서강해] 엡 3:7-11


- 설교 : 전준식 목사

목사로서 심방을 다니면서 경험하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곤 합니다. 간증을 하는 분들 가운데에도 목이 메여서 간증문을 읽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런 목메임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곁을 오랫동안 떠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하나님을 찾아 나오신 분들은 찬송 한절 한절이 다 나에게 하는 하늘의 메시지로 다가와서 눈물이 나와 찬양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도 우리와 같은 경험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율법을 신봉했던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난 바울은 자기가 지금까지 젊음을 다 바쳤던 유대교가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짜를 알면 가짜가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짜를 진짜로 여기는 이유는 진짜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라 할지라도 진자 옆에 가보면 어딘가 틀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봉질이 다르다든지, 마무리가 거칠다든지 색상이 조잡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진짜 같은 가짜 앞에 자신을 헌신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짜를 만나고 보니 가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진짜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짜가 보이기를 바랍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아무리 그럴듯한 사상이라 할지라도 싱겁게 보입니다. 오묘한 철학들이 다 밥벌어 먹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위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을 간증합니다. --7절 바울은 단순히 개인적인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일군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개인에서 출발합니다. 복음은 구조를 먼저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복음은 개인을 먼저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일군으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일군으로 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군이 되는 것입니까? 일군의 자격이 무엇입니까? --7-8절 일군의 자격은 없습니다. 일군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에게는 그런 일을 할 마음이 애당초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입니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라는 말은 민족 주체성이 철저하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만이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개라고 보는 마음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만나고 보니 그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아주 이상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한번 돌아보니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일군의 자격입니다. 이것이 제자 됨의 자격입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구역 예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자격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은 아주 쉬운데 제자는 아주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받는 것은 쉬운데 제자 되는 것은 어렵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지난 주 금요일에 나눈 누가복음14:25-35절의 말씀을 다시 기억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라오는 많은 무리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 부모를 미워해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와야한다. 비용을 계산해야한다. 중도하자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으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우리는 여기에서 처음과 마지막을 보면 어떻게 제자가 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제자의 조건은 자기 부모와 처자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소금이 맛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는 그토록 복음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가족을 버릴 정도로 복음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금이 맛을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금이 어떻게 짠맛을 낼 수 있습니까? 소금은 소금 자체만으로는 짠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낼 수 있으려면 반드시 물과 결합해야만 합니다. 물과 결합하지 않으면 소금은 짠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처음과 마지막인 제자됨의 조건은 결국 무엇입니까? 복음이 나의 삶에 최고가 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만 입니다. 그리고 소금이 물과 결합해야 짠 맛을 낼 수 있듯이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이 땅에 제자됨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물로 상징되는 성령이 나에게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처음도 은혜요 나중도 은혜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일군이 되었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지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일 꼴볼견이라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들이 검은 양복을 입으시고 여자분들 몇 분을 거느린 채 심방 다니는 모습이 보기 싫었습니다. 저는 남자의 체면이 구긴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저는 목사님들이 권사님들과 함께 집집마다 다니면서 축복하는 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심방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토록 심방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몸이 피곤한 것도 있지만 제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어떻게 위로하고 축복할 것인지 모르게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피곤은 육신에서 오는 피곤보다 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럴 때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면 저렇게 아름답게 사는 분들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지 않을 리 없다는 확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했던 바울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 주실 것을 믿습니다. 심방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저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삼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은혜를 내리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교회 나가는 사람을 보고 경멸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사역자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도 은혜를 내리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날마다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은혜를 사모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을 일군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8-9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역자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와서 들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에는 목사는 현실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제 정치와 국내 현안에 대해서 비판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라 가정 문제에 대한 설교를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저는 여러분보다 국내 정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가정 생활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제 나름대로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다 못하지만 나름대로 가정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저의 정치적인 견해를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저의 전문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풍요로움에 대하여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이 교회 사역자가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가져 다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처받은 과거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에게 상처를 치유하시고 미래를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세상의 관점에서 하늘의 관점으로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 시편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편은 온통 삶이 곤고 한 사람의 넋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시편 기자의 삶처럼 살게 된다면 모두가 삶을 포기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고난에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시편을 읽으시면서 읽으실 대 마다 하나님이란 단어를 빼고 다시 읽어보십시오. 그 시는 분노의 시요 저주의 시요 절망의 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망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그 시는 놀라운 소망의 시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 속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그 시는 우리에게 넉넉함이 있습니다.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전하는 곳입니다. 가나안에 정탐하러 들어간 10명의 정탐자들을 보십시오. 이들 중에 8명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상처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보고는 절망스런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소망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풍요로움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곤고한 삶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마음을 열어 보십시오. 넉넉지 못한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살이에 하나님이란 단어를 넣고 다시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거기에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모든 인생살이에 하나님이란 단어를 넣고 다시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이 저주받은 인생이 아니라 축복 받은 풍요로운 인생임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사역을 하나님은 누구에게 맡기셨습니까? --10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 사역을 교회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정사와 권세라는 말은 하늘의 천사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도구로 천사를 사용하시지 않고 교회를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선교를 합니까? 천사는 선교를 하지 않습니다. 천사는 죄 씻음을 선포하지 못합니다. 오직 죄 씻음의 선포는 교회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비밀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이 비밀은 천사들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천사를 통하여 복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인터넷을 통하여 복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내리십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모든 성도들이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복의 통로인 교회는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복의 통로인 교회는 영원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뒤늦게 교회를 만들 계획을 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풍성한 곳입니다. 천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지혜를 하나님은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씻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이것을 못합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예고는 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구원할 자라고 선포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씻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으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씻는 선포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한 백성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죄 씻음을 받은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천사가 갖지 않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 된 성전인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는 천사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천사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지혜를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씻음을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이방인에게 알리십시오. 하나님이 없는 나의 인생의 노트에 하나님이 개입하는 인생이 되었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절망의 삶이 소망의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선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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