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 에베소서

[스크랩] [에베소서강해] 엡 2:8-10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아들 2014. 1. 2. 10:27
[에베소서강해] 엡 2:8-10 (하나님의 선물)


- 설교 : 전준식 목사

어느 환자가 자신의 몸에 이상한 징후를 알게 되어서 병원에 가 의사에게 설명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다 듣고 난 후에 진찰을 시작합니다. 진찰을 다 한 후에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진찰 결과 우리 몸에 이상이 있으면 의사는 입원을 하도록 하든지 입원을 해서 수술하도록 합니다. 만약 우리 몸에 이상이 있어서 우리가 의사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이상을 설명했는데, 진찰을 해 본 결과 아무 이상이 없어서 의사가 집으로 돌아가라 고 하면 우리는 참 감사한 마음을 의사에게 표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몸에 이상이 있어서 입원을 하라고 해도 우리는 의사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진단을 정확히 내려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병을 자라게 하다가 결국은 손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내 안에 몹쓸 병이 있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유능한 의사가 내 안에 있는 병을 정확히 뿌리뽑아 주었다면 다른 어떤 감사보다도 더 감사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좀더 분석적인 마음으로 환자와 의사가 감사하는 마음을 분석 해보면 일방적으로 의사만 감사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 할지라도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의사는 그 환자를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의사도 환자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표현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마도 우리는 그냥 아프다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의사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일방적으로 고쳐주었다면 우리는 그 의사에게 전적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가 전적으로 감사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2:1절 그렇습니다. 인간은 죽어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은 죽은 존재입니다. 죽어 가는 존재는 내가 죽어 간다고 소리라도 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소리라도 쳐서 누군가가 내 소리를 듣고 달려와 나를 살려 준다면 그 사람에게 참으로 감사할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살려 준 사람은 신문에 장한 인물로 소개가 될 것입니다. 정부로부터 격려금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떻게 이 착한 사람이 신문에도 소개가 되고 사람들에게 격려금도 받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소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만일 죽어 가는 사람이 소리를 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이 아무리 살신성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착한 마음을 사용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소리를 질러 주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착한 마음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소리 지를 힘도 없고 그냥 죽어 가고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달려 와서 나를 살려 주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해야할 것입니다. 서론적인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서론을 길게 말씀드리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 2:8절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습니까? 소리쳐서 누군가 달려 와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그런 은혜가 아닙니다. 내가 소리 질렀더니 착한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 와서 나를 살려준 그런 은혜가 아닙니다. 죽었던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우리를 살리신 그 은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란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얻게 된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완전히 죽은 존재가 아니고 죽어 가는 존재라면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려달라 고 소리친 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공로가 전혀 개입이 되지 않는 도우심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를 도우심이 바로 은혜요 이 은혜를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받아들인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게 된 것, 내가 영원을 사모하게 된 것, 내가 하늘을 바라보게 된 것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을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원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할 때 우리 마음 가운데 아브라함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는 결단을 높이 평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는 사건이 떠오르면서 나는 아브라함처럼 하지 못하니까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서 의로 여겼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아브라함의 공로를 보고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면 아브라함은 결코 의로운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토를 떠난 아브라함이었지만 아비 집을 떠나지 못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간 사람입니다. 친척을 떠나라고 했지만 조카 롯을 데리고 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었지만 아들이 생기지 못하는 급한 마음에 여종 하갈을 아내로 맞이하여 약속의 아들이 아닌 아들을 낳는 불순종도 범하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걸어 온 인생 길을 정리 해보십시오. 어떤 결론이 나옵니까? 아브라함이 한 행위는 온전한 믿음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게 된 믿음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9절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믿음을 가지고 난 다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지게 된 때부터 심각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심각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나서부터 자랑 할 일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새벽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십일조도 기뻐서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합니다. 금식도 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 주기도 합니다. 전도도 합니다. 선교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이런 마음이 듭니다.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야, 저 사람은 집사라는 사람이 새벽기도도 안 해, 금식도 안 해, 전도도 안 해. 저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야 라고 우리 스스로 단정하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새벽기도 나오지 않는 분보다 새벽 기도 하는 분이 믿음이 깊은 사람이지요. 십일조 하지 않는 사람보다 십일조 하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런 행위들이 나에게 종교적인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씩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하는 기도가 어떤 기도였길래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자신이 너무나 거룩하게 보이고 자신이 신실하게 보인 것 때문에 자신 도취 속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악을 만드는 공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오. 이들은 부자였습니다. 아마도 상당한 부자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동산을 다 팔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 중에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자랑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신앙이란 내가 어떤 행위를 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 받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이란 내가 주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오신 주님께서 자기를 낮추신 것처럼 내가 금식하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감추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몰려올 때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리로 가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밤을 새운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40일 금식 기도했다 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신기도 하고 철야기도 했다는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40일 금식하고 산기도 하고 철야기도 한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게 하신 것입니까?-- 10절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선한 일을 위하여 살기 위함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델로 해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멋진 영화배우의 얼굴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면 여러분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인기 있는 영화배우를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라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모델로 만들어 진 존재입니다.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덧입혀 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타락한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만드신 설계자는 하나님이시고 설계자이신 하나님은 나에 대한 설계 도면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설계자는 설계도면을 보고 어디가 문제인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엉망진창이 된 사람도 설계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만지셨다고 하는 것은 나를 향하신 계획이 있다는 말입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를 만드신 것입니다. 내가 한국에 태어난 것도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내가 김씨 가문에 태어나게 하신 것도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향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아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소견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드실 때마다 선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하신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라고 외치십시오. 여러분 앞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보일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선한 하나님의 계획을 어두운 세력에게 넘기지 마십시오. 두 번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은 다 나의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선이라는 것입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자기를 입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입증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피하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거룩하게 돌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술집을 가라고 권면 드립니다. 술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가십시오. 가셔서 그들이 곤드레만드레 취할 때까지 같이 계셔 주십시오. 그리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부추겨서 그 사람 집까지 데려다 주십시오. 술이 몸 안에서 받지 못하는 사람이 토악질을 할 때에 그 사람을 도와 주십시오. 닦아주십시오. 약을 사다 주십시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폐만 끼치고 살다가 죽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 안에서 선을 해하시면서 사시겠습니까? 이웃을 위하여 베푸시면서 사십시오. 어제 결혼 한 커플이 부부로서 이렇게 살겠다고 서약하는 서약 가운데 이런 서약이 있었습니다. "서로 구제 사역하는 데 동역하도록 하겠습니다."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이 능력은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선을 베풀며 사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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