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7-마6:12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본문 : 마6:12
◉제목 : 용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인사(연결)와 서론
지난 시간에는 "믿음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용서하게 하옵소서"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0000년 마지막 주일예배이다.
한 해를 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믿음없이는 살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일본에서 2008년을 상징하는 한자로 ‘변(變)’이 뽑혔다.
주식 폭락과 엔고 등 금융위기, 중국산 농약만두·멜라민 파동으로 식품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변화,
일본 총리와 미국 대통령 교체 등 정치적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서는 “2008년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호질기의’가 선정됐다”고 교수신문이 밝혔다.
護 보호할 호 / 疾 병 질 / 忌 꺼릴 기 / 醫 의원 의. 호질기의는 주로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모습을
풍자하는 표현이다.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周敦·1017~1073)은 당시 세태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 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고 평했다.
교수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정치권의 모습을 빗댔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잘못을 알고, 옳은 길을 알면서도 숨기려는 모습은 비단 정치인들만의 행태는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이 늘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0000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 분명한 뜻이 있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바로 용서이다.
계획을 못 이룬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우리의 복된 새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정말 죽도록 미워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미워하니까 그 사람이 불행해야 하는데 정작 불행은 사람은 누구인가? 나다.
어떤 사람이 말다툼을 벌일 때마다 그 사람을 미워했는데 이젠 앙심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런지 아는가? 내가 앙심을 품고 있는 동안 그 사람들은 춤추러 갈테니까!-버디 해킷
나는 미움에 북받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데 그 사람은 코를 골며 잘자고 있다.
나는 이를 갈며 세상 살기가 싫은데 그 사람은 너무 행복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
결국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나만 죽인다.
용서는 나를 살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떠하든지 간에 내가 살기 위해 용서하는 거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몇 번 용서해 줘야 할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도 해줘야 한다.
상대방이 어떠냐 상관하지 말고 “나”만 생각하자.
사실 내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내가 살기 위함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벽한 인간인가?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잘못한 적이 없는가?
단지 내가 모를 뿐이지 누군가가 나를 엄청나게 미워하고, 나를 저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용서받기 위해서 나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용서가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화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한다.
아버지는 뒤늦게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엘리베랄” 신문에 이런 광고를 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이다.
아버지가 그곳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세상에는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 용서받지 않아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 최대의 복음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죄로부터의 해방은 죽음과 질병과 모든 고통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용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어 준 최대의 선물이요, 그것은 마치 일만달란트 빚진 종의 빚을 탕감해 준 주인과 같은 것이다.
베드로가 몇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당시에 랍비들은 3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일곱 번 정도면 되겠지요?
물었을때 예수님은 7번을 70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비유
어떤 임금에게 1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었는데 ‘기다려 주시면 다 갚겠습니다’고 말하자
주인은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1만달란트는 엄청난 액수이다.
1달란트는 예수님 당시에 가장 큰 화폐단위로 순금34kg으로 노동자의 6,000일 품값(데나리온)에 해당된다.
(3억) 엄청난 빚을 탕감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에게 겨우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옥에 가두고 용서해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와 오늘 우리가 읽은 주기도문의 용서에 대한 기도는 유사점이 있다.
빚이라는 헬라어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언급된 '죄'(오페이레마)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죄와 빚은 유사점이 있다.
(1)죄나 부채는 모두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죄는 하나님께, 부채는 채권자에게.
(2)죄나 부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고 증가되어 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죄는 죄를 낳고 부채는 부채를 낳는 악화 현상이 계속된다.
(3)죄나 부채는 모두 면제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닌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부채를 취소, 탕감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아무도 그것을 법으로 금지할수는 없다.
그것은 그의 특권에 속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죄도 하나님에 의해 취소, 용서받을 수 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 하리라"(사 43:25).
그런데 본문에서는 부채를 담당할 제 삼자의 개입이 없이도 탕감이 가능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일에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전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께 화목 제물로 드려 사람의 죄악을 말소시키는 일을 담당하셨다.
따라서 인간 의롭다 인정받는 것(議認)은 예수의 피흘림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성경은 우리가 바로 일만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요, 구원받은 죄인이다.
우리의 최대 사명은 자기에게 죄 지은자를 똑같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에 있다.
일만달란트 비유의 결론은 이렇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네가 정말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면, 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주기도문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준다는 조건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무조건적이며 하나님의 고유권한이다.
어떤 원인이나 조건에 좌우되거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일은 전적으로 사랑의 하나님 자신의 무조건적 행위이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일에 좌우될 수 없다.
그럼 잘못된 기도냐? 아니다.
예수님은 여러번 이런 관점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함께 찾아보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11:25)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35)
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 것처럼 나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는가?
우리는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부족한 사람임을 하나님은 아신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어도 용서 못해. 내 손에 장을 지지는 한이 있어도 안돼.”
용서해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니가 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고 무조건 용서해 주셨던 그 사랑으로 채워주세요. 가르쳐주세요’하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깨닫게 된다.
용서는 하나님께 많은 잘못과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마땅히 해야할 의무라는 것을!
이렇게 기도하게 함으로 우리가 우리 형제의 잘못을 용서했는지 생각나게 하고 이 기도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됨을 깨닫게 된다.
용서의 삶을 살게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
“내가 무조건적으로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너도 용서해 주면 안되겠니?”하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복음의 핵심은 사랑의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보통 구약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다윗이 죄를 범한후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는 다윗을 용서해 주셨다.(시편51편)
이사야의 말씀은 너무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사랑과 용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도중 질문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입니다.
그럼 세상에 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일까요?”
성도들이 머뭇거리자 목사님이 말했다.
“그 곳은 ‘사랑해’입니다. 우리 마음이 항상 따뜻한 사랑해가 되길 원합니다.”
평소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듣는 것이 소원인 김집사가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게 한번 맞추어 봐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래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디일까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답을 못하자 온갖 애교섞인 소리로 힌트를 주었다.
“이럴 때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
그러자 남편이 답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있게 하는 말.
“ 열~~바다!!!!”
사랑해와 열바다는 정반대이다.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면 열바다가 된다.
열받으면 나만 손해난다.
사람들은 세상 살면서 그렇게 똑똑한 척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그렇게 잘 챙기면서
왜 용서하지 않고, 증오하고, 원망하며 고통의 삶을 사는가?
존 브로크만이 쓴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란 책이 있다.
인쇄술, 전기,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을 포함한 인류의 121가지 위대한 발명품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외인 것은 그 대단한 발명품 중에 지우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우개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인류의 기록문화가 극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우개가 아니었다면 지구상 여러 위대한 예술가의 데생이나 스케치, 또는 시인과 음악가의 작품들은 모두 현재와
같은 완성도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용서라는 지우개는 우리 인생의 오점을 지우고 더 나은 인생으로 만드는 놀라운 발명품이다.
지울때 고민할 필요없다.
누구 탓인가 따질 것도 없다.
틀렸다면 사정없이 지워버리는 거다.
왜? 올바른 정답을 알기 때문이다.
용서라는 지우개를 많이 사용하라. 인생이 즐거워진다.
짜증, 미움, 증오, 한맺힌 것이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다.
80년대에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꿈으로 가득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 너무 어렵잖아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이건 현실과는 약간 다른 노래가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교훈을 준다.
위대한 작가인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죄와 실수와 잘못은 없다.
실수투성이인 인생을 예수의 용서라는 지우개로 완성도 높게 만드신다.
그 지우개가 없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늘 고칠 수 없는 실수로 얼룩졌을 것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용서란 지우개로 우리는 걸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지우개이다.
예수님의 지우개는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는데 그치지 않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27-28)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5-36)
기독교에 원수사랑 정신이 없으면 기독교는 평범한 종교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원수사랑의 힘이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못박는 사람들을 향해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심으로 본을 보여주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23:34)
용서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다.
아니 사랑받고, 용서받았기에 주님 때문에 해야 하는 의무요, 책임이다.
용서없는 사랑이 없고 사랑없는 용서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나는 용서할 정도로 거룩하지도, 대단하지도 않기에 우리에게 주님은 기도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용서란 상대방을 위해 면제부를 주는 것도 아니고
결코 상대방이 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
내자신이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용서란 말은 그리스어로 '놓아버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어찌할 줄 몰라 집착하며 과거에만 머물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절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죠.
여러분!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용서하세요! "나 자신을위해."
- Oprah Gail Winfrey -
간혹 TV를 틀었을때 이 프로그램이 나오면 꼭 보면서 잔잔한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인데 이번 주에 보았던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 아름다운 용서 : 전현숙 편 (48세) >
이미 한 번의 결혼실패로 별거 중인 상태에서 새 남편과 동거를 시작했던 현숙씨.
별거 중이었기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현숙씨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남편과의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딸 슬기가 태어나고, 현숙씨와 남편은 기뻐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현숙씨는 전 남편과 호적 정리가 되지 않아 딸 슬기의 출생신고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정리되지 않는 현숙씨의 과거에 불만이 점점 쌓이던 남편은
술만 먹으면 현숙의 과거를 핑계 삼아 구타를 하기 시작했고, 딸 슬기가 3살때
결국, 현숙씨는 남편에 대한 불신과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집안 살림들을 부수고,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남긴 후 집을 나오고 만다.
얼마 후, 남편이 찾아와 어린 딸을 위해 재결합을 요구 했고...
다시 한 번 가정의 행복을 꿈꿔보지만,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현숙씨는
어린 딸을 뒤로 한 채 끝내 집을 나오고 말았다.
20년동안 죄책감과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오다가 이제 용서를 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딸은 제작진이 찾으러 갔을때 결혼하는 날 이었다.
(영상을 본다)
엄마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전국 방송으로 알리면서까지 용서받기를 원한다.
20년을 괴롭힌 이 짐을 놓아버리고, 용서받기 위해서다.
용서 한다는 것도 무척 어렵지만 용서받기 위해 이런 결단을 하기도 어렵다.
결론 적용 호소 결심 - 마치면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만큼 참된 사랑은 없다
그래서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다.
우리 0000년이 가기 전에 용서하고, 용서받는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길 소원한다.
'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신앙고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0) | 2013.11.27 |
---|---|
[스크랩] 주기도(4)- 나라이 임하옵시며 (0) | 2013.11.27 |
[스크랩] 주기도문6-마6:11 일용할 양식 (0) | 2013.11.20 |
[스크랩] 주기도문5-마6:10 아버지의 뜻, 나의 뜻 (0) | 2013.11.20 |
[스크랩] 주기도문4-마6: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0) | 201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