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 보혜사 하나님!!

[스크랩] 방언

하나님아들 2012. 8. 9. 23:45

1.세가지 구분

1)성령에 의한 방언
이는 복음전파를 위해 전도자로 하여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외국 민족의 언어를 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은사로서 외국어 방언의 은사이다. 이는 신앙적, 영적 성숙이나 능력의 외적인 징표로 주어지는 은사라고 볼 수 없고 오직 복음 전파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사로 주어지는 것이며 어떤 교리적 징표로 다루어질 성질의 은사가 아니다. 이 은사는 본인의 의지나 욕망으로 자유자재 되풀이되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은사는 초대교회 이래 흔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도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는 나타날 수 있는 은사이다.
이 은사가 있다는 것이 선교사로 하여금 외국어 습득과 연구에 게을러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사단에 의한 방언
인류학자, 역사고고학자, 언어학자 등의 전문가에 따르면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교도들, 신비주의 밀교주의자들이 약물에 의해 흥분된 상태에서나 또는 우상신, 조상신의 심령술에 대한 예배의식에서 이상한 소리를 중얼대는 방언현상이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현대에도 모슬렘, 힌두교, 불교 등에서는 예배의식의 한 부분으로 방언 현상이 있다.

3)심령술에 의한 방언(사단에 의해 간접적 방언)
영·혼·육으로 창조된 인간은 애초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이루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타락 이후 그의 영은 죽게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가면서 사단은 인간의 혼(soul)을 계발하여 영적인 힘을 얻는 방법을 인간에게 가르쳤으니 이것이 심령과학에 속하는 것들이다.
레위기 19장 26절에는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와 함께 먹지 말라. 너희는 마법을 사용하지 말며 때를 살피지 말라” 고 성경은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이미 바벨탑 사건 이래 세계적으로 점술, 점성술, 무당굿 등이 있어 왔다. 바벨탑 사건에 관계되는 니므롯 등이 이러한 사단에 의한 심령술을 계발한 것으로 측정된다. 그리하여 스스로 계발한 심령술로 초능력을 행하거나 사람을 미혹하였다.

2.성령 안에서의 기도(엡 6:18, 유 1:20)

1)마가복음 16장 9-20절
이 부분은 은사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것으로 방언과 병자에 대한 안수기도의 정당성을 보이는 구절들이다. 그러나 마가복음 16장 17절의 “새 방언들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지상 명령을 주시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각 민족의 방언들도 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실 것임을 뜻한다.
이 구절에 쓰인 '방언'에 해당하는 희랍어 성경의 원어는 ‘글로싸(γλώσσα, glossa)’인데 그 뜻은 전세계에서 쓰이는 민족의 언어를 뜻하는 것으로서 글로싸는 1개 이상의 언어를 가리키는 복수명사이다. 따라서 오늘날 은사주의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방언기도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2)사도행전 2:1-4
사도행전 1:15에 120명의 성도가 있었다. 사도행전 1:15과 2:1에 등장하는 사람은 120문도들이다. 사도들만 방언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성실한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말하였음을 알 수 있다.

3)사도행전 2장 4-11절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행전 10장의 이방인 고넬료의 집안에 임한 성령의 역사와 함께 마가복음 16장의 명령과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다. 사도행전 2장은 유태인 교회의 탄생을 뜻하며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 교회의 탄생을 뜻하는 것인데 여기에 쓰인(행 2:8-11, 10:46) 방언은 희랍어로 디알렉토스(διάλεχτος)이다. 이는 역시 전 세계의 쓰이는 민족의 언어를 가리키며 영어 성경에서는 tongues로 번역되고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미워하는 적대 관계였으나 위 두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결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며 이방인의 하나님도 됨을 보여준다.
오순절 사건에서의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을 말함은 특수한 사건이다. 그들은 타지방의 언어로 말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방언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12-15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유형의 방언이 시작되었음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0:44-46에서는 성령이 충만히 내려 이방인들도 방언을 하게 되었으며, 성령으로 인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하는 우리 영의 기도이다(고전 14:2).
성경은 성령 안에서의 기도를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방언으로 기도’(고전 14:14), ‘내 영으로 기도’(고전 14:15), ‘영으로 기도’(엡 6:18), ‘성령 안에서 기도’(유 1:20)

4)사도행전 2:4-12
120문도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시 40:5, 66:3). 이는 방언이 주어진 기본적인 목적이다. 그들은 성령으로 하나님께 아뢴 것이다(성령 안에서의 기도). 그들은 방언으로 복음을 나눈 것은 아니다. 방언은 하나님에게 찬미로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 것이다.
기도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예를 들면 회개의 기도, 봉헌기도, 감사기도, 찬양기도 등이다.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방언으로 찬미의 기도를 한 것이다. 방언의 목적은 외국인에게 자국어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신약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구절이 없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120문도가 모였을 때 그곳에 함께 모여온 사람들은 모두 외국에서 출생하여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 외국에서 태어났으므로 실질적 모국인 유대 말 뿐만 아니라 출생한 나라의 말을 모국어로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굳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 외국어로 말할 이유가 없다.

5)사도행전 2:12-15
베드로가 군중들 가운데 서서 그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대 말 밖에는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군중들은 모두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베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적을 보였다고 가정하지만 그러한 가정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다.

6)사도행전 10:44-46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을 때, 성령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이방인의 집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구원을 위하여 방언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7)사도행전 19:1-7
사도 바울이 이들 12명에게 안수할 때, 그들 모두가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이들 12명이 방언으로 외국인에게 증거하였다는 시사점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도행전에서의 방언에 대한 결론
이상에서 본 세 가지 방언 사건(오순절 방언, 고넬료의 집에서의 방언, 에베소에서의 새 결신자)은 신약 성경 안에서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는 예의 전부이다. 다른 부분에서 방언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사건적인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을 언급한 구절에서 볼 때 새로운 신자들은 모두 방언을 말했다는 사실이다.
앞의 두 가지 예에서 방언을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 예는 새로운 결신자들이 방언을 말하고 예언도 하였다. 그들은 방언으로 예언을 하였다고 본다. 물론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이 외국인을 전도하기 위해서 주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바울이 “방언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하나니”(고전 14:2)라고 한 말을 세겨 보아야 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방언
신약 성경은 두 가지 형태의 방언 말함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1)방언으로 예언을 전하는 경우 자신이나 회중의 누군가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는 통역의 은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2)성도는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모두 통역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1
천사의 말은 인간의 말과 다름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실제로 삼층천에 올라가서 천사들이 하는 말을 직접 들은 유일한 사람이다. 따라서 방언이 천사의 말과 흡사함을 언급하고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기도할 때 때로는 사람의 말을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천사의 말을 이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음성(방언)을 이용하기도 한다.

고전13:8-10
사도 바울은 천사의 말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사람의 언어와는 다르다. 그는 직접 그 말을 경험한 사람이다(고후 12:1-7).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천사의 말을 사용하실지 사람의 말을 사용하실지는 알 수 없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언급함에 있어서 예언의 말씀, 지식의 말씀, 방언 등은 방언의 공적인 형태임을 언급하고 있다. 방언의 개인적 형태는 성령 안에서의 기도이며, 공적 형태는 방언의 은사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방언
고린도 교인들은 개인적 형태의 방언을 공개적인 형태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 점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교회 안에서 예배 때에 일어나 방언을 말하는 경우가 있었고 회중은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 방언은 회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방언을 말할 때 통역이 되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개별적으로 성령 안에서 조용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1-3
사도 바울은 방언장이라 할 수 있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예언하기를 구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계속되는 내용을 통하여 예언의 유익과 방언의 교회에서 사용함에 있어서 무익함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방언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한다고 정의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형태이다. 방언기도는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성경의 번역은 다양하다.
he utters mysteries by the Spirit (New International Version, footnote)
and in spirit he doth speak secrets (Young's Literal Translation)
but in spirit he speaks mysteries (Pocket Interlinear New Testament)
but in his spirit he speaks mysteries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howbeit in the spirit he speaketh mysteries (King James Version)
but in the spirit he speaketh mysteries (1901 American Standard Version)
because he is speaking secrets in the Spirit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Yet in the Spirit he is speaking secret truths (Wesley's New Testament)
but he utters mysteries in the Spirit (Revised Standard Version)
in the (Holy) Spirit he utters secret truths and hidden things [not obvious to the understanding] (Amplified Version)
이러한 다양한 번역으로 인하여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spirit에서 대소문자의 표현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령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아닌 우리의 영에게 주신다.

고린도전서 14:4
덕을 세운다는 말의 헬라어는 오이코도메오(οικοδομέω, oikodomeo)이다. 이 말은 ‘믿음을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다서는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써 믿음을 세우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유 1:20). 유다는 성령 안에서의 기도가 우리를 세우고 유익케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방언기도가 우리를 세우고 유익케 한다고 말함으로써 두 사람은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4:5
모든 사람이 다 방언 말하기를 바울은 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유익케 하기 때문이다. 방언이 통역이 되면 그것은 곧 예언이 되며, 이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예언의 은사와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14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것은 우리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다’ ‘내 영으로 기도하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다’라는 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은 말씀을 우리의 영에 계시하신다. 이 말씀이 통역되어지면 방언의 기도가 자신의 말이 아닌 성령의 말씀하심을 알게 된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으로 하는 것과 영으로 하는 것이 있다.

고린도전서 14:15
이 본문은 영어 성경으로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Then what am I to do? I will pray with my spirit - by the Holy Spirit that is within me; but I will also pray intelligently - with my mind and understanding” (1 Corinthians 14:15, AMP)
바울은 그도 때로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때로는 자신의 의식으로 기도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영으로 노래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노래한다고 한다(엡 5:19, 골 3:16).

고린도전서 14:18-19
바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방언으로 기도하게 됨을 감사한다. 그는 교회 밖에서 영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됨을 감사했다. 교회 내에서 일어서서 방언을 말하면 자동적으로 통역이 된다는 어떤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방언은 매우 신중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기도하는 편이 더 유익하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14:21-25
바울은 이사야 28:11-12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였다. 해석되지 않은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표적이 된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해석되지 못했을 때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예고하는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방언이 다른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성취되었다. 여기에 근거해서 해석되지 않은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표적으로 해석했다.
바울은 믿지 않는 자가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이 이상한 소리로 방언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자신들에게 심판이 임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할 것이며 이런 까닭에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출석해 있을 경우 예언이 보다 더 유익하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4:26-29
오늘날 이 말씀이 적용되는 집회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집회에서 이와 같이 진행되는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여러 사람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순서에 따라서 예언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를 분변함으로써 성령의 유익케 하심이 집회를 통하여 교회에 주어진다.
초대 교회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할 때 항상 방언으로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성령이 교회에 직접 관여하였다.

방언 기도는 몇 가지 유익을 준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고전 14:2)
-자기의 신앙적 덕을 세움(고전 14:4)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이 됨(고전 14:22)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이므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고전 12:11)

방언 기도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방언은 통역하지 않고는 본인은 물론 아무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고전 14:4)
-통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전 14:5)
-방언의 은사는 여러 가지 은사들 중의 하나일 뿐이며 특별한 것이 아니므로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12:4-11, 27-31, 13:1)
-교회의 질서를 지키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고전 14:27, 40)
-통역이 되지 않는 방언은 하나님께만 하도록 하고 교회의 덕을 위해서 필요할 때는 절제하여야 한다.
퍼 온글.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 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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