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외부적인 증거
그러면서 성령 세례의 외부적인 증거들을 여러 가지 제시합니다.
그 한가지로 교회의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세례가 교회 역사상 모든 위대한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 성령세례와 부흥과의 사이에 있어서 차이점은 단순히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수효의 차이이다. 큰 무리, 즉 사람의 그룹으로서 부흥을 정의하는데, 동시에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성령이 함께 모인 사람들 위에 강림하셨다는 것이다.8)
여기서 말하는 부흥이라는 것은 교회성장 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영적 대각성과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부흥은 사도행전의 교회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재현9)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성령이 교회위에 다시 부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가 집단적으로 부어지는 역사가 부흥이고 부흥이 성령의 세례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령세례는 발생하는 사람들에게와 이 사람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인식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다. 10)
3> 성령세례를 받은 외부적인 증거들에 대한 성경의 증거
이러한 증거들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들을 이러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듯이 오순절 강림사건은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2-13)
사람들이 감정의 격발과 활력, 그리고 기쁨과 풍부와 힘이 넘침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혹하는 것11) 그리고 그 결과가 사도행전 2장 44-47절에 나오는 유무상통하는 삶이고, 이러한 경향들이 부흥의 시기마다 있었다는 것입니다.12)
그리고 사도행전 4장31절에 나오듯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 즉 굉장한 감정의 고조가 그 자리에 모든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에게 있었다는 것13)입니다.
그리고 6장에서 집사들을 임명할 때에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뽑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관찰될 수 있다14)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들이 사도행전 8장의 빌립의 전도와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로 목격될 수 있고 그리고 9장에서 바울을 통해서 아나니아의 안수로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성령이 충만하여 변화된 것15)을 모든 사람들이 목격합니다. 그리고 10장에서 고넬료 집에서 있었던 사건에서 성령이 내려오는 것은 베드로와 그 동행한 자들이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장에서 제자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고 그들이 세례를 받고 후에 바울이 안수를 함으로 성령이 임하는 것16)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서 초대교회에서는 흔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그리고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그들 위에 부으심으로 기독교회가 시작하셨다는 것과 신약교회는 성령 세례를 받은 교회이다 그리고 신약의 모든 교훈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교회가 그렇지 못하여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이며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초대교회와 같아야 할 것이라 17)고 말한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를 부으심과 교회의 부흥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말하고 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은 바로 이 성령세례로 기름부음의 역사를 통해서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부흥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온전히 그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주님이 주권자이며 성자께서 그 자신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서 이 선물과 세례를 베푸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3) 교회사 속에 있었던 증거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성령세례와 부흥의 관계를 교회사 속에서 몇가지로 증거한다.
1904-1905년에 있었던 웨일즈의 부흥에서 사람들은 그의 신앙이 부흥되었다고 표현을 했다. 이전에 신앙이 있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었는데 부흥으로 그들의 신앙에 부흥이 된 것18)입니다. 이것은 부흥의 때에 성령이 사람들과 회중에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1738년 5월 24일에 있었던 올더스 게이트 가에서 존 웨슬리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IVF(UCCF)그 밖의 여러 단체의 원조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지도했던 캠브리지의 유명한 성직자인 찰스 시몬은 “ 이것(부흥/성령의 부음)은 결코 그것을 아직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많은 백성들이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즐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주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찰스 시몬에게 체험적인 사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사람들은 보통 그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인침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믿고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해온 자들을 위해마련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이러한 은사가 그들에게 허락되어지는 것이다.”19) 라고 말하면서 끝맺습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입는 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이고 성령의 부음이고 인 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과 사역자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은 그 사역을 색다르고 능력 있게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4) 성령세례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러면 성령의 세례가 주어지는 목적이 무엇인가?
일차적인 목적과 기능으로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위대한 구원사역에 대한 증인이 되게 한다1)고 말한다.
그는 누가복음 24장 45-49절에서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말씀에서 목격자로서 증인으로 해야 할 일과 더불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은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것이 바로 성령세례라고 설명한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서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모든 말씀에서 성령의 세례의 목적은 바로 증인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2)이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2장을 기점으로 제자들은 완전히 증인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걸음 더나가 성령세례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좀 더 완전한 지식을 얻게 한다고 말한다. 즉 행2장33에서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성령 세례로 인하여 베드로가 설교하는 내용을 통하여 단번에 알게 된 것이고 분명해 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줍니다.3)
즉 이것은 설교의 역사와 관련됩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과 그리고 설교자의 모습과 설교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머레이 맥췌인의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설교단에 올라가서 설교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것은 그가 하나님의 면전에 있으면서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신 결과들 중의 하나가 외부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의 활동을 다시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들은 집회들과 신앙의 운동등을 조직하여 기본적인 요소를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성령이 오실 때 그의 증거가 오류가 없으며, 또 그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4) 그래서 우리가 다시금 신약의 본래에로 되돌아 갈 때에 만이 비로소 소망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신약의 초대교회 본래에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능력과 자유이다.5) 사람들이 담대히 증거하며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세례이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무력해졌을 때 하나님은 갑자기 한 사람을 붙드시고 그에게 성령을 부으시며 그를 일으켜 세워 그의 설교를 변화 시겼다6) 고 말합니다. 그 예로 독일의 요한 타울러 그리고 이탈리아의 사보나롤라 그리고 스코트랜드의 존 낙스 존 리빙스톤 그리고 호웰 해리스 그리고 조지 휫필드나 웨슬리, 찰스 피니 그리고 D.L. 무디와 R.A.토레이, A,B. 심프슨 등을 예로 설명하기를 설교자가 능력과 확신으로 전하기 위하여서는 성령의 세례가 필요하다7)고 말합니다.
성령세례와 성화의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증거로 행 2:9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증거를 통하여 성령세례는 우선적이고 필수적으로 능력의 세례이다.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가 성령 세례를 받았어도 많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이것을 봄으로 성령세례와 성화의 문제는 직접적인 관련됨을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롬8:12 말씀과 같이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죄를 없애버린다면 사도가 굳이 우리에게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7) 성령세례와 성화의 관계
성령의 세례와 성화저인 측면에서 성령의 열매는 자란다는 것으로 구별된다고 보고 있다. 열매가 맺어지고 자라나는 것은 성화적인 측면인데 성령의 세례가 이 성화적인 측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1)고 생각한다.
성령세례는 성화가 다 이루어진다고 보는 성결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성령의 세례는 성화를 가능한 한 가장 많이 격려해 준다. 성령세계가 성화에 가장 자극제이며 동기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매우 좋은 시금석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항상 성령의 사역과 작용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것이나 모든 것에 적용시켜야 한다.2)
4. 성령의 인침
성령의 인침과 성령의 세례는 같다 같은 것인데 문맥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다.3) 라고 말합니다.
1> 인침의 구절과 이해
성령의 인침이라는 것은 고후1:22 20-22 “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그리고 에베소1:13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나니”, 엡4:30 “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이것은 이미 구약에 약속된 것이지만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는 때에 성취된다.4) 인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된 것이고 그리고 신약의 교회와 성도에게 성취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인치는 것이 믿음으로 중생한 이후에 주시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2> 인침의 의미
인침의 의미에서 찰스 하지는“ 인치심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음의 다음에 오는 어떤 것이다”
찰스 시몬은 이것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교회에는 언제나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많은 자들이 있다.……, 이와 같이 성화의 더 높은 확신은 믿은 후에 하나님과 더 가까지 동행하는 사람들의 것이다.5) 성령의 인침의 의미들을 권위자들의 생각을 빌려오면서 인침의 의미가 또 다른 어떤 것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속하여 교회에는 언제나 인침의 의미는 소유권적인 의미가 있고 더나가 권위를 부여하거나 참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6)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요1장 33절과 6:25-27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하여 인쳐 진 자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서 보증의 의미보다 권위를 부여하다. 혹은 참되다 증명하는 것7)이다. 웨스트 코드 감독은 인침과 보증에 대하여 “부과된 것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위해 엄중히 따로 구별해 두며 이해할 만한 싸인들로 말미암아 보증된 것”8)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세례와 인침은 같은 것으로 보고 있고 믿은 이후에 얻게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인침과 성령의 감동으로 믿는 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 인치는 것은 믿은 후에 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은 후”에 혹은 “ 믿고 나서 막”9)을 말하면서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5. 성령 충만에 관하여
그러면서 성령세례의 또 한 증거가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음과 동시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1)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그는 성령의 세례가 “ 성령의 충만함”을 내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체험하지 않고도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다.2)
1) 성령 충만의 의미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테일러의 헬라어 사전을 인용하면서“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기운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으로 성령에 의해서 지?정?의의 인격이 다 다른 영향과 다른 세력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말한다.3)
성령의 충만함에 관하여 충만한이란 ‘가득차다’. 혹은‘성령으로 흠뻑 젖은 것’, 단순히 그들속에 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넘쳐흐르는 성령으로 충만된, ’성령으로 흠뻑 젖는‘ 것4)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성령의 충만을 두 가지로 구분을 한다. 특별한 경우에 주어지는 충만으로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 그 예로 브사렐과 오홀리압 엘리사벳의 경우들이 있다.5)
그리고 생활상에 주어지는 성령의 충만이다. 엡5장 18절의 말씀을 관련하여서는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여기서 성령 충만을 지시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것은 어떤 한 상태나 조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계속적인 현재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자의 임무수행을 위한 충만과 구별6)을 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는 롬5장2절의 말씀에 관련한 존 오웬의 ‘성령과의 교제’를 진술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가운데 기뻐하는 것 ... 그것은 어떠한 고난이나 영광을 통해서 영혼을 인도하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심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 성령은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시면서 즐거움과 희열 그리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심령의 환희로 채우시면서 우리 영혼에 그것을 은밀히 주시시도 하고 거두어 가시기도 한다.”7)
그리고 토마스 굳윈의 글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임하시고 인간을 압도하시며,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또 그는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시켜주며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부터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은 일반적 신앙의 빛을 넘어선 빛입니다.”8) 즉 로이드 존스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백성에서 특별하게 그리고 예외적으로 주시는 어떤 것이라고 말하며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세례는 성령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이 곧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는 아니라고 로이드 존스는 본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을 통해서 중생을 한다. 그리고 그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중생과 더불어 성화의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가 반드시 완전한 성화를 만들어 내놓지는 않지만 가장 큰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세례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교회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확신과 기쁨과 부흥을 맛보게 하는 것이요 설교자나 사역자들이 권능을 입고 능력있게 사역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성령세례라는 책에서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행사하지만 우리가 끈질기게 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말하면서 우리는 힘써 기도하며 힘써 구해야 할 것이라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구할 가치가 있고 내가 힘써 구해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혹은 성령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성령의 은사들
1) 은사들은 구분 기준들
로이든 존스는 성령의 세례를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과 또 다르게 그 은사들을 이해한다. 첫 번째로 성령의 은사들은 자연적인 은사들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연적인 은사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라고 그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성령의 은사들은 이 자연적인 은사들과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성령님에 의해서 주어진 은사들은 직접적인 은사들입니다.1) 지연적인 재능과 성령의 은사를 구분한다.
그는 계속하여 영적인 은사들이란 “어떤 그리스도인을 구별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능력들로 이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영혼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의한 신적 은혜의 능력이기 때문이다.”고 정의한다.2) 교회를 섬기는 목적으로 주어진다고 그는 주장한다.
두 번째로 은사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주권적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주권의 능력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은사를 주실 것인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주시기로 계획하시고 시행하신다는 이것이 성령님의 특권이다.3)
세 번째로 이 은사는 각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소유되고 있는 선물이다. 고전 12장 7, 11절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참된 각 지체는, 한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세례를 받은 참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별한 영적 은사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4)
네 번째로 은사의 중요성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12장14절의 말씀과 같이 몸은 한 지체뿐이 아니요 여럿이니(12:14) 라고 말을 하지만 28절에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라고 인용하면 은사들이 그 중요성에 있어서 다양하다는 분명한 가르친다. 그리고 14장 18-19절을 통해서 "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음5)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로 모든 은사들은 항상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울은 13장을 통하여 "은사는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단순히 그런 이름들은 가진 은사들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성을 평가 혹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6)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어떤 특별한 은사를 소유하거나 나타내지 못한다면, 우리를 향하여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받지도 혹은 성려의 어떤 충만함도 알지 못한다고 비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7) 이러한 가르침은 거짓된 가르침이다.
2) 일시적인 은사
은사들에 대하여 이 모든 은사들이 교회에서 항상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고전 12장의 은사들이 초대교회에만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오늘날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일까? 영속적인 것일까? 이런 모든 은사들에게 이런 원칙 중 어떤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은사들을 나누어야 할까?8)로 질문을 하면서 은사에 대하여 고찰한다.
로이드 존스는 은사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은사적인 이해를 기준으로 가지고 은사들을 구분합니다. 그는 은사들 중에 일시적인 은사가 있고 계속적으로 있는 영속적인 은사가 있다고9) 말을 한다.
로이드 존스는 일시적인 은사로는 첫째로 사도직의 은사입니다. 사도직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으로 영원합니다.10)사도직의 은사와 관련이 있는 예언의 은사11)와 사도적 치유의 은사12)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에 의해서 주어진 직접적인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환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기도의 결과로 환자가 치료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영적인 자들과 어떤 이들이 치유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지만 성령님의 치유의 은사는 사도들과 함께 끝났다고 그는 보고 있다13)고 로이드 존스는 보고 있다. 더나가 기적들14)과 영을 분별하는 은사와 방언의 은사들까지 그는 일시적인 것으로 끝났다15)고 본다.
3) 항존적인 은사
로이드 존스는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항존적인 은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나오는 은사들 중에 항존 하는 은사 목록들을 제시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교육의 능력과 섬김과 돕는 은사, 집행과 통치의 은사, 집사와 장로 그리고 다른 직분자들이 소유한 능력, 복음 전파의 능력, 목회를 위한 능력, 권면의 은사와 9절에서 나오는 믿음의 은사 - 여기서 이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사역을 수행했던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며 그런 일들을 수단으로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 이다16).
4) 방언에 대하여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에 사도들이 했던 방언은 언어로 15개국의 언어 들려 졌다. 그리고 고린도에 나타나는 방언을 어떤 사람들이 이해됨이 없는 단지 소리나 말들로 일종의 무아지경 속에서의 외침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방언의 차이는 오순절 날, 고넬료의 집 그리고 에베소에서 완전함과 영광으로 모두에게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볼 수 있는 차이는 방언을 말하는 자신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으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것은 해석할 수 있는 자들을 새로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던 자들을 볼 때 예루살렘에서도 모든 사람이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할 수 있었던 해석자들이 있었다.17)
로이드 존스는 방언의 은사가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18)
로이드 존스는 사도적인 은사는 그쳐졌다고 말하고 이 사도적 은사와 연관되어 있는 은사들은 그쳐졌고 더불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은사들은 항존적인 은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 론: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이 개혁주의에서 벗어나서 펜타코스트의 길로 약간 기울어졌다고 말한다.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그는 목회자이다. 그는 설교와 목양에 힘쓴 목회자이다. 그래서 그는 목회적 관점에서 그 누구보다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설교자가 이 성령 세례(기름부음, 인침)를 받아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할 때 권능을 입고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적인 부분에서 이러한 성령 세례(인침, 기름부음)가 있음으로 부흥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의미와 관점에서 성령의 기름부음 즉 성령 세례의 중요성은 특별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초대교회와 같은 그러한 일(성령의 기름부음)들이 교회 회복의 유일한 소망임을 필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가 펜타코스트주의 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은사 면에서 그들과 전혀 다른 면을 보이고 개혁주의 측면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사역적인 면과 설교적인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비정상적인 은사 운동에 대하여서는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은사의 유용성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데 목적이 있음을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에서 비정상적인 은사운동들이 횡횡하고 있는데 그러한 경향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지 않나 생각된다. 은사라는 것이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이 주권적으로 은사들을 주신다는 것을 통해서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러한 은사들이나, 마치 자신이 사도와 같은 권위의 은사가 있음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의 교만함이 사악함을 드러내 주고 있는 듯하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단지 논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자로서 그리고 사역에 놓인 우리의 사역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 많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참고도서
성령세례: 로이드 존스, 정원태, 기독교 문서 선교회
성령론: 로이드 존스, 홍정식, 새순출판사
에베소서강해 1 영적 선택, 로이드 존스, 서문강, 기독교문서 선교회
에베소서강해 6 영적생활, 로이드 존스, 서문강, 기독교 문서 선교회
로이드존스 성경교리 강해 시리지2 성령하나님, 로이드 존스, 이순태, 기독교문서 선교회
로마서 강해시리즈 5권. 로이드 존스, 서문강, 기독교문서 선교회
진정한 기독교 1 로이드 존스, 전의우, 복있는 사람
출처..창골산..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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