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선교

[스크랩]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일으켜 세우라

하나님아들 2013. 8. 2. 11:41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일으켜 세우라


   최근 중국에서는 수도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남방의 광저우까지 중국대륙을 종단하는 고속열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고속열차가 달리는 철도의 총 길이는 2천298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도다. 우리나라 한반도의 남북한을 합친 총 길이가 약 1천100km이며, 그 중에 북쪽의 백두산 천지에서 남쪽의 한라산 백록담까지의 거리가 약 870km라고 하니, 베이징에서 광저우에 이르는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알게 한다.

   그동안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열차운행에 소요된 시간은 20시간 30분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번의 고속열차 개통으로 불과 8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아서 종전에 비해 무려 12시간 30분이나 단축되었다고 한다. 열차가 평균 시속 300km로 주행하는 데서 가능한 일로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자랑한다.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마지막 전제주의 국가는 청나라였다.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 멸망했고, 같은 해에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그후 중화민국은 1949년 공산당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사라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뚱이 민생정치의 실패로 권좌에서 밀려 절치부심하다가 1966년 린뱌오와 함께 청년학생들을 선동하여 그들 중심의 홍위병과 혁명소조 따위를 동원하여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권좌를 회복했다.

   마오쩌뚱은 문화대혁명 기간에 철저하게 서방세계를 향해 장벽을 높이 쌓고 빗장을 굳게 걸어 스스로 고립시키는 쇄국정치를 했다. 이 때부터 중국은 외부로는 죽의 장막에 가려진 신비의 나라가 되었고, 내부로는 근대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때가 되었다. 이런 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쩌뚱이 사망하면서 종결되었다. 그 후, 몇 번의 정치적 실각에도 불구하고 반복된 재기로 부도옹(오뚜기)의 별명을 얻은 덩샤오핑이 1978년에 중국 최고의 실세가 되어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서 중국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은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굳게 빗장을 걸었던 죽의 장막을 활짝 열어 서방세계와 교류를 시작했다. 이로써 형편없이 추락됐던 중국의 국가경제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어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최고 실세가 되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더욱 가속되었고, 국가경제는 놀랍게 비상하여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함께 G2의 위치를 점유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 결과가 스스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고속열차를 운행하는 나라가 될 수 있게했다.

   중국교회는 어떠했는가? 오늘날 중국교회는 국가의 경제성장만큼이나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더불어 국가의 변화만큼이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교회의 성장과 변화의 모습은 과거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변화했던 때를 훨씬 능가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불과 30여년 전 문화대혁명 당시만 해도 형편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성장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중국교회는 문화대혁명 당시 가장 중요한 척결의 대상으로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로 강력하고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서방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100% 완전하게 추방당했고, 동부연안의 교인들은 전국 오지로 뿔뿔히 흩어 하방당하면서 중국교회는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따라서 서방교회에서는 더 이상 중국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못하고 흔적없이 소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서방교회의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더 이상 중국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못하고 흔적없이 소멸될 것이라고 예상한 중국교회는 소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치가 시작되면서 은밀하게 재기했고, 예상치 못한 놀라운 성장을 시작했다. 이를 보고 서방교회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은 외형적으로는 종교의 모든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법치국가다. 그렇지만 서방세계는 어느 누구도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 물론 중국은 개인의 종교활동이 얼마든지 자유로운 나라인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실상은 개인의 종교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종교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고 있어 엄격한 통제와 간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다. 그것은 상대방이 신앙을 갖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엄격한 통제와 법률적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인이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전교하는 일은 불법행위가 되어 철저한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교회는 재기했고,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치를 통해 은총으로 나타난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치가 교회의 종교활동을 합법적으로 보장하거나 인정했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제재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문화대혁명 당시보다 다소 느슨해졌다는 것이 중국교회로 하여금 재건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암울하고 참담했던 어려운 시기를 끝까지 견뎌낸 성도들이 교회의 불씨로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중국교회의 성도들은 불과 수십 만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수였다. 그런 저들이 중국교회를 재건하는 불씨가 되었고, 지금은 1억명을 상회할 만큼 급성장한 교회가 되게 했다. 그리고 교회의 성장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계속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들 중에 단연 최고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중국교회를 성장시키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생각하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단순히 기뻐할 수만은 없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그것은 현재 중국교회에는 18세 미만의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신앙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환경이 전혀 마련되지 않아 교회의 장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이러다가 자칫하면 중국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방치할 수 없는 일이련만 지금의 중국교회는 속수무책으로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마음을 답답하게 할 뿐이다.

   서방세계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덩샤오핑에 이어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를 지나 올해부터 젊은 지도자 시진핑 시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은 '중국이 사는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라고 부르짖는다. 따라서 서방세계의 중국에 거는 기대가 더 큰 듯이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는 서방세계의 오해다. 서방세계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중국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서방세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무조건 서방의 자유경제체계를 부러워하여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중화민족주의를 더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참된 이유다. 이런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사실상 서방세계와 전혀 융화될 수 없는 정책이다. 세계와 더불어 공존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직 중국만을 위한, 중국식 체제유지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왜 그렇다고 여기는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금 중국은 문화대혁명기에 굳게 걸어두었던 빗장 중에 아직도 풀지 않고 남겨둔 빗장이 있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권한을 제한하는 교육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교육을 나라의 장래가 걸린 일로 자기들의 중화민족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서도 교육정책의 빗장만은 여전히 풀지 않고 넘겨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풀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교육정책은 중국의 유아독존적인 실세인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다. 공산당은 중화민족주의 강화시키려면 오직 교육밖에는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18세 미만의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칠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교육은 공산당의 영도 아래에 수립된 정부와 정부의 비준을 받은 각급 학교로 철저하게 국한한다. 그 외의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자유로운 교육은 철저하게 법률로 금하여 단호하게 다스린다. 어떤 타협이나 용납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중화민족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강한 열등의식이 부산물이다. 따라서 중화민족주의를 지키는 일은 중국의 장래가 걸린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정책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교육정책 만큼은 개방의 빗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중화민족주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더 솔직하게 당을 지키기 위한 묘수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이렇게 중국이 빗장을 풀지 않고 있는 교육정책이 오늘의 중국교회에 가장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되게 하고 있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기에 법률의 엄격한 제제로 단속의 대상이 되어 교회가 18세 미만의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일을 제한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교회는 임의대로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마땅한 제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성도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앙교육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신앙교육은 중국교회의 장래가 달렸기에 아주 절실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는 스스로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자율적으로 감당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명분으로도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정부가 용납하거나 허용하지 않고 불법행위로 간주하여 철저하게 단속하는 단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꿈나무다. 저들을 공동체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할 동량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공동체에 합당한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의 미래가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어야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미래의 희망이 없는 공동체는 성장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존망이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런 이유가 중국이 중화민족주의 체제유지와 미래의 성장을 위해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교육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미래도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달려 있다. 저들은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꿈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중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물론 지금 중국교회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신앙교육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신앙교육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한 상황에서 하는 일이기에 중국교회의 진정한 성장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교회는 언제까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신앙교육을 정부의 단속을 피하며 은밀하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대로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의 신앙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혀 방법이 없지는 않다. 정부의 교육정책과 마찰을 피하면서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성경적인 방법이다. 당장 실천하기만 하면 더 이상 중국교회는 장래를 염려하지 않아도 될 우수한 방법이다.

   지금 중국에는 많은 이들이 중국선교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때로는 긍정적이고, 어떤 때는 부정적일 때도 있다. 따라서 중국선교의 무용론과 한계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중국선교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교회의 장래를 위하여, 이 시대에 중국교회가 가장 필요로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중국교회로 하여금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 것인가?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부조하는 일이다. 이는 중국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 자녀들을 가정에서 신앙교육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중국의 교육정책은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강하게 통제하지만, 가정에서 이뤄지는 자녀교육은 통제하지 않는다. 신앙의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으로 가르치는 일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방법을 최대로 활용하면 가능하다.

   신앙가정에서 이뤄지는 자녀의 신앙교육은 장차 교회의 좋은 일꾼을 배양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중국교회를 장차 신앙으로 굳게 다져진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 진실로 그러하다.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부조하는 일은 이 시대에 적당한 중국선교를 위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중국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일로 지금 중국교회를 협력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가장 먼저는 중국교회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자녀들의 신앙교육이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킬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 일을 권장하여 고무해야 한다.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방법을 가르쳐야 할 이유는 없다. 오직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자기 자녀들을 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신앙교육에 있서서 가장 기본이면서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부터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부조할 수 있다.

   중국선교를 위하여 더 이상은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은 중국교회의 장래에 가장 중요한 뿌리공동체다.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건강할 수 있듯이 중국교회도 성도들의 가정이 신앙으로 튼튼하게 성숙되어야 장래의 중국교회를 튼튼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코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을 가볍게 여겨 수수방관하거나 방임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우려 부조해야 한다.

   진실로 오늘의 중국교회는 성도들의 가정을 신앙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절실하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바르게 양육한다면, 오늘날 중국의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만연해지고 있는 영적인 공동화현상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도 있다. 또한 더 나아가 그래야 중국교회에 미래에 희망이 있고, 그것이 중화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의 장래에 진정한 변화의 미래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일은 아주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느라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미래 희망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생모 요게벳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4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애굽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였던 사무엘도 기도의 어머니 한나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구약시대에 가장 훌륭한 군주였던 다윗왕을 기름부어 세우는 선지자가 될 수 있었다.

   신약시대에서도 디모데는 훌륭한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로 여겨 오늘날도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목회서신을 보낼만큼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유니게에 의해 양육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의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양육된다는 것이 이렇듯 아주 중요한 것이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교육딘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중국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의 가정들에서 부모가 자기들의 자녀들에게 신앙으로 교육시킬 수 있게 하는 사역은 이 시대의 선교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아주 소중하고 귀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중국선교의 방법이 있다면, 감히 중국교회 성도의 가정을 부조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성도의 가정에서 신앙으로 자란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장차 중국교회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이 세계에서 G2 국가로 이기적인 중화민족주의를 초월하여 세계의 책임있는 리더국가로 발전하게 하는 동력도 될 수 있다.


   현재 중국교회는 자체적으로 성도의 가정을 일으켜 세울수 있는 여력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교회에서 신앙의 부모를 훈련하여 그들로 하여금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가르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일이 어렵다.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꾼의 수가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일꾼들을 배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중국선교를 위한 일이다. 이 일이 오늘날의 중국교회에 매우 절실한 일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교회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재림의 날까지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중국교회에 궁극적으로 맡기신 서진사역의 마무리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래야 중국교회로 하여금 세계의 모든 교회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에 중국교회 성도들의 가정들을 부조하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여 투자를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집중적으로 부조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진정한 중국선교의 성공을 기대하는가? 중국교회의 장래를 위한 희망에 투자하라. 진실로 중국교회의 가정을 부조하는 일을 투자하는 것이 곧 중국교회의 장래를 위한 희망에 투자하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재능과 시간을 다하여 부조하기 위해 몸을 드려 헌신하라. 또는 이 일을 위해 선교의 맨 앞에서 수고하는 이들을 적극 협력하며 기도와 물질, 그리고 격려의 말로 부조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시대에 맞는 중국선교를 위한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부조하라. 자칫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여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바로 시작하라. 중국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라.

   2013년 1월 6일 (주일)

   글 /
불꽃 石 一 進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글쓴이 : 왕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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