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것은 가장 치열한 전쟁이다.
결코 안주할 수 없는 사단과 육체와의 전쟁이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육체를 죽이면 사는 전쟁이며,
(롬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소망이 흔들리면 패배하는 전투다.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견고함을 유지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패배할 것이며,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죄에게 패배하면 실패할 수 있는 전투다.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구원만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전투가 없다.
그리스도인을 규정하는 정체성은 전투다.
피 흘리기까지 전투하는 것은...
내가 구원의 좁은 길을 가고 있음에 대한 증거다.
전투가 없다는 것은 그 길을 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당신은...
전투하고 있는가?
빌2:12절에,
이 길을 가는 모든 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 나온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NIV)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KJV) 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이루라 라는 단어 κατεργάζεσθε (카텔가제스세)는 현재명령형이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진행형을 포함하므로,
이 점에 있어서는 NIV 가 더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다.
계속해서 이루어내라 (continue to work out)
구원은 성취해야 할(work out) 대상이다.
그것도 잠시의 쉼 없이 계속해서... (continue to)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열어 놓으신 십자가의 길을,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정욕과 탐심과 싸우며,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며,
세상에서 나그네로, 외국인으로 홀로 가야 하는 고독한 전쟁이다.
오직 자신의 구원을 성취해내기 위해서...
τὴν ἑαυτῶν σωτηρίαν (your salvation)
너희 자신의 그 구원 (원문에는 정관사가 있다)이라고 부른 것은,
구원의 책임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무서운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셨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시작을 의미한다.
구원의 과정은 열어 놓으신 그 길을,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싸워야 하므로 “너희 구원”이다
τὴν ἑαυτῶν σωτηρίαν (your salvation)
너희 구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나의 구원이다.
가장 가치 있는 전투며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될 전투다.
매일 치르는 격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투복을 벗어서는 안된다.
(엡6:10-18)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구원의 격전을 치러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정신이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원문적 표기는 다음과 같다.
μετὰ φόβου καὶ τρόμου
(with - fear - and - trembling)
주로,
두려움(φόβου / 포부)은 내적인 떨림을,
떨림(τρόμου / 트로무)은 외적인 떨림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
두려움(φόβου / 포부)이 존재적인 떨림이라면,
떨림(τρόμου / 트로무)은 φόβου(포부) 때문에 모든 일상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과 위엄과 권위 앞에,
나약한 존재로서의 한 인간인 우리는 압도되어 두려워(φόβου / 포부)한다.
그래서 모든 일상에서,
곧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모든 과정 가운에,
하나님 앞에서(before GOD) 떤다(τρόμου / 트로무).
바로 이것이,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는 사람들(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에게 있는,
공통적인 영적 정체성이다.
구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매일 두려워하며 떤다.
모든 일 앞에 두려워하며 떤다.
그래서 구원을 성취해 간다(continue to work out)
원문에,
두려움(φόβου / 포부)은 같은 의미의 두려움이란 단어 프리소(φρίσσω)와 다르다.
두려움(φόβου / 포부)은 경외와 경건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나 경외심으로, 사랑으로, 경건함으로 떠는 두려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나,
프리쏘(φρίσσω / shudder 공포)는 그냥 공포심 때문에 떠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귀신이 하나님을 두려워 떨 때 표현되는 단어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φρίσσω)
우리가 두려워 떠는 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며, 구원을 이뤄내야 함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서 경외심으로 떠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φόβου / 포부)는 떨수록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며
떨수록 더욱 경건해진다.
그러나 공포심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경건한 두려움(φόβου / 포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고후7:10-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러나
프리쏘(φρίσσω / shudder 공포)는 하나님과 더욱 단절된다.
(막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시대가 암흑기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미혹과 진리의 왜곡, 그리고 사단의 역사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주님께서 공중에 오신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대를 산다.
그래서 더욱 긴장하며 근신한다.
매일, 매순간이 이렇게 떨릴 수가 없다.
잠시의 방심도 용납할 수 없는 시간을 산다.
자신 속에 열매 없음이 두렵다.
구원에 대해 말하면 겁이 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에게... 두려움(φόβου / 포부)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구원의 좁은 길을 가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불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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