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의(義)
<말씀 : 빌 3:9>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게 있는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난 의라."
우리는 죽을 때 결코 자기의(自己義) 안에 있지 못한다. 율법의 모든 표준에 맞추어 살려고 애쓰는 것에서 오는 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불 심판에서 소멸될 것이다.
바울의 자기의(自己義)는 그의 종교 안에 있었다. 그는 종교가 요구하는 모든 청구서를 지불했다(6절).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다. 인간의 의(義)가 인간의 눈에는 칭찬할만한 훌륭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선행이나 성실이나 신뢰나 정직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모두 좋다. 수평적 수준에서는 좋다. 그러나 수직적 수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 우리는 마음을 고쳐먹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기독교는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자기의(自己義)가 파산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를 의존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수반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불결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나뭇잎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이 바람같이 우리를 옮겨갔나이다."(사 64:6)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새로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 3:5)
선행은 육체의 에너지를 의존한다. 회심하기 전(前) 바울은 종교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였다. 앞의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끌게 하던 것들을 기록했다. 바울은 그것들 가운데 7 가지를 나열했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부채로 드러난 장점들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거절해야 했다. 바울은 성품, 종교, 성공을 예수 그리스도로 대체했다. 바울은 한 인격을 받기 위하여 모든 것을 처리했다. 기독교는 관계(relationship)이지 종교가 아니다.
"모세가 율법에서 난 의를 묘사하되,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율법으로 살리라, 하였거니와"(롬 10:5). 달리 말하면 율법에서 온 의(義)는 "행하라(do)"는 단어로 요약된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행한 때가 언제인지를 결코 알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만을 낳는다. 우리는 질(quality)이 충분히 좋은지를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양(quantity)이 충분히 큰지를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일하고 소망하지만, 죽음의 문에 도달하기 까지도 우리가 충분히 행했는지를 결코 확신가운데 알 수 없다.
원리: 자기의(自己義)는 결코 하나님의 의(義)를 만족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만이 하나님의 의(義)를 만족할 수 있다.
적용: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공로를 얻으려고 애쓴다. 그들은 십일조나 증거로 하나님을 매수하려 한다. 어떤 전형적인 사업가는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업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自己義)를 의존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뇌물이다. "내가 어떤 표준에 도달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시는 것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세상에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매수할만한 충분한 돈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감동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서 감동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중 누구를 쓰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지,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
이 구절(9절)에서 "but"은 대조의 강한 접속사이다. 두 종류의 의가 있다. 첫째 의는 가짜 의(義), 모조 의(義), 인조 의(義), 사람이 만든 의(義)이다. 하나님의 눈에 자기의(自己義)는 '가짜 의(義)'다. 이것은 '인간의 의(義)'다.
다른 의(義)는 내 손으로 아무 것도 가져 올 수 없는 의로서, 단지 십자가에 매달리는 의(義)이다. 이 의(義)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다.
이 두 가지 의(義)는 섞일 수 없다. 서로에 대하여 상호 배타적이다. 그들을 섞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는 인간의 의(義)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義)이다. 이것이 전가된 의에 대비되는 인간의 의(義)이다. 하나님의 의(義)는 계시에 근거하며, 오직 하나님의 공급(provision)에 근거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through faith)"는 '믿음의 도움으로'를 뜻한다. "믿음"은 여기서 강조를 낳는다. 이 표현에 필적하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의(義)" 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믿음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것은 자기 포기이다. 믿음은 인간 능력의 모든 노력이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의(義)를 위안으로 삼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義) 안에서 죄인의 편을 든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효력을 발휘하는 주체(effecting subject)'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포기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 만약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신다. 만약 우리가 한다면 우리가 영광을 얻는다. 요점은 육체의 영광 대 예수 그리스도 안의 영광과의 대조이다. 이들은 서로에 대하여 배타적이다.
원리 : 우리가 하나님을 자신의 의(義)를 주시는 '효력을 발휘하는 주체'로 간주할 때, 그분께 영광을 드린다.
적용 :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전가된 의(義)의 선물에 항복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러한 인정(acknowledgement)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큼 겸손한가?
믿음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난 의
이것은 인간의 의(義)와 다른 종류의 의(義)이다(3:9a). 먼저, 우리가 만들어내는 의(義)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의(義)가 있다.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큰 논점은 하나님의 의(義)이지 우리의 의(義)가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3,4)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롬 3:10) 하나님과 관련하여 의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의(義)를 만족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서로와 관련하여 의롭지만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의롭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으니, 곧 율법과 대언자들에 의해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모든 자에게 그리고 믿는 모든 자 위에 미치나니, 차이가 없느니라."(롬 3:21,22).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義)를 받을 수 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구원을 받기 위한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행위는 구원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의(義)를 만들 수 없다. 반드시 하나님의 의(義)가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전가(imputation)에 의해 그분의 의(義)를 주신다. (전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義)를 믿는이의 계정에 "넣는" 것이다) 전가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정을 그리스도의 의(義)로 간주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산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셈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義)를 셈에 넣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義)를 셈에 넣으신다.
이 두 가지 의(義)는 서로 배타적이다. 함께 섞일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義) 50 % 와 자신의 의(義) 50 %를 취한 후, 이 둘을 함께 섞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분의 의(義)를 전가하신다.
하나님은 완전함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義)를 우리 앞에 보내신다면, 우리는 영원 안에서 그분 앞에 올바르게 설 수 있다. 그분은 불완전함을 참지 않으신다. 그분은 반드시 완전한 존재로 자존(自存)하신다. 달리 행하는 것은 그분의 완전함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義)의 종교적 버팀목을 두드린다. 우리의 노력과 의(義)는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정밀 검사용 흰색 레이저 열을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義)는 인간의 노력을 불가능하게 한다.
원리 : 하나님은 믿는이에게 주시는 자신의 의(義)의 근원이시다.
적용 :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안에 안식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거나 받을 만한 공로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義)를 만족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義)의 공급 안에 안식하는 것이다.
- Dr. Grant C. Richison의 [빌립보서 연구]에서 발췌 (99.6.27 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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