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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도의 재물관 히13:5

하나님아들 2013. 4. 23. 14:39

성도의 재물관
히13:5

 

 


이번 강릉과 경상도 지역이 홍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집들이 피해를 당하여 정부 집계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2조억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물을 잘 다루면 우리들에게 약수가 되어서 갈증을 면하게 하고 밥을 짖고 빨래를 하고 얼마나 삶에 고마운 것이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을 잘못다루면 홍수가 되고 많은 피해를 당합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을 잘 다루면 유익한 것이요 삶을 여유있게 만들지만 물질을 잘못 다루면 오히려 물질로 인하여 사람을 죽이고 가정이 파괴되는등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물질 그 자체는 나쁜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잘 사용하면 좋은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 육신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가난해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부자로 살면서 여유있게 사는 것이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참된 신앙을 갖는 데 방해되는 요소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물질의 문제요, 둘째로 염려의 문제요, 셋째로 남을 비판하는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이 세 가지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자유롭고 겸손한 신앙 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여러분 물질로 인해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관이 바르지 못하면 인생을 힘들게 살게되고 신앙생활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옵니다 .
신앙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이기적인 물질관 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물질의 유혹 때문에, 물질에 눈이 어두워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보고 그만 물질 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삼촌인 아브라함을 제치고 자기가 그 성을 차지했습니다, 결국 그 성은 유황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게하시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스승 엘리사를 속이고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선물을 가로채다가 문둥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왕하25:27)

아간은 여리고 전투에서 전리품 중 얼마를 감추어 둔 죄로 아골 골짜기에서 그의 가족과 친족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약에서 가룟유다는 은30에 눈이 멀어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그 은30을 쓰지 못하고 성소에 던져놓고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행1:18)

초대교회 아니니아 와 삽비라 부부는 밭을 팔아 얼마를 감추고 성령과 사도들을 속이다가 둘 다 죽임을 당했지 않습니까? (행5:)

우리 사회에서도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인, 기업가, 공무원, 교수, 종교인, 등등 물질 욕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의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것에 눈을 멀게 하고 신앙에서 떠나도록 자극을 합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신앙에서 떠나 살아가지 않습니까?

성경 어느 곳에도 돈을 죄악시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갖지 말라거나 갖는 것이 죄라거나 돈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이 돈을 지배하고 다스려야지 돈이 인간을 지배하면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인격과 양심과 체면과 신앙을 팔아먹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제일 먼저 재물에 대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더욱이 성도의 재물관은 세상 사람들의 재물관 과는 차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재물관은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다스리며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재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며 사람은 자기 분량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성도의 재물관은 어떠해야 합니까?
(1) 돈을 사랑치 말아야 합니다.<5절>
돈을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이 시대의 풍조입니다.
이것을 미리 알고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도 돈의 포로가 될 수 있고,
믿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인격적인 것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할 때 상대방도 사랑하는 것을 인격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영국에서 많은 돈을 벌은 `부자' 3명중 1명은 돈을 사랑하다보니 결혼이 파경을 맞았거나 자녀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가정파괴외에도 자신의 건강을 헤치는 등 대부분의 부자는 부를 축적하기 까지 많은 개인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결국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돈은 수고의 대가로 받는 것임으로 내 피의 수고의 대가로 사용해야지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 둘 다 섬길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발목이 붙잡혀 신앙의 진보가 없게 됩니다.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돈은 말을 잘 듣는 좋은 하인이기도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돈을 잘 사용하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하인이 되지만,
돈을 사랑하다보면 돈에 끌려 다니며 돈에 의해 울기도 웃기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베스트 셀러가 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일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돈이 자신을 위해서 일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를 돈에 지배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에 붙들린 자가 아니라, 돈을 다스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돈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마19:16-22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람이었으나 재물을 때문에 예수를 떠나고 맙니다.
그 청년에게는 재물이 많은 것이 우상이었습니다.

눅19장에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외모가 별로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로마정권 아래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금 징수 원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 그러나 삭개오는 외로웠습니다.
삭개오는 돈이 많으면 그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여지책으로 부끄럼을 무릅쓰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야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留(유)하여야 하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눅19:8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의 물질 관에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질을 위해 죽자살자 돈을 긁어모았던 그가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물질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물질관을 보시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주님 앞에서 계산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했는가 다 낱낱이 회계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모으는 위주로 살았으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여러분, 돈을 버는 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다.
돈을 저축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합니다. 왜 돈을 버느냐는 것입니다.
왜 돈을 저축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3:6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돈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두 가지를 다 추구하려 합니다.
함께 공존하기는 어렵습니다.
돈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영력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잘못된 물질관
첫째로 '내가 번돈은 내것이다'는 마음을 심어 놓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돈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써야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돈을 어떻게 해서든지 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을 하든, 남을 속이든, 일확천금을 바라보고 돈을 벌든 어떻게 해서든지 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개같이 벌어서도 안되지만 번 돈을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돈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벌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돈을 버는데도, 돈을 쓰는데도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허락하실 때 공의롭게 쓰라고 나에게 맡기셨는데,
내가 번 것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감리교회를 처음으로 시작한 요한 웨슬레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 아홉 형제 가운데 열다섯번째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아주 가난하게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빚을 못 갚아서 감옥에 끌려가는 것을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는 아버지처럼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로서 살기에 넉넉했고 또 책을 써서 인세(印稅)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주 풍족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웨슬레는 방에 걸 비싼 그림을 하나 샀습니다. 그 그림을 가지고 배달을 온 사람이 그의 방에 들어 왔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얇은 마(麻)로 된 여름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겨울옷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슬레는 그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내가 주님 앞에 갔을 때 주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는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추위로부터 막을 수 있는 돈으로 그대의 벽을 장식하였도다'라고 책망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웨슬레는 자기 돈이라고 자신이 다 써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평생 연간 생활비로 30파운드를 넘게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2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으며 점점 더 유명해져서 매년 수천 파운드의 수입이 있을 때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평생 백 파운드 이상의 돈을 소유해 본적이 없이 살았습니다.

웨슬레는 '벌 수 있는 것만큼 벌어라'(Gain all you can)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것만큼 절약하라'(Save all you can)고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돈을 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꼭 필요하지 않는 것들에 돈을 쓰기 시작하면 반드시 욕망이 커가니 욕망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도 절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라'(Give all you can)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벌라! 열심히 저축하라! 그러나 열심히 선을 위해 쓰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돈을 벌고, 올바른 동기로 모으기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물질로 선을 행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고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둘째로는,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돈의 전능성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게 돈이다'는 우리 속담처럼,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논리가 팽배합니다. 그래서 돈과 행복을 일치시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될 때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은 더욱 힘이 듭니다.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을 돈이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자이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에서 오는 만족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돈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5:10에서,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할 수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 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어서 사고를 낼 때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진 자가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으로 나중에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결코 소유는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습니다.
'감사,만족,평화'라는 단어는 함께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의 문을 '감사'로 시작하면 영적인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속성은 성령의 은혜로 다스리지 않으면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물질을 다스리는 지혜와 은혜를 사모하며 감사로 만족함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투기, 뇌물, 사행성오락, 공짜심리등 불로소득(不勞所得)은 거절해야 합니다
(창23:16)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매입하려고 하니까 그곳에 살고 있던 헷 사람들이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묘실 중에서 아무 것이나 좋은 것을 택해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십시오. 어떤 것을 택하시더라도 그것을 주지 않겠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창23:12,13).
그리고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말한 은 400세겔을 주고 그 땅을 소유했습니다.
만약에 이때 아브라함이 그것을 그냥 받았다면 반드시 후일 문제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바람직한 물질관
우리는 청지기적인 물질관을 가져야합니다. 청지기 물질관은,
첫째,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을 진실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24:1에,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과 땅과 인간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재물의 주인이라는 신앙 고백이 우선 되어야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욕심을 내어서 취하여 진 것은 내것이 아닙니다.

내손에 있는 내 물질이 영원히 내것 같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잠깐 가지고 누리지만, 언젠가는 놓고 갈 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의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는 훌륭한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자선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재산을 가지고 죽는 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때 미국으로 이민왔습니다. 그는 학교교육은 초등학교 4년밖에 못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성공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벌었고,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썼습니다. 사회에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 카네기는 문화, 교육, 예술, 국제평화를 위해 여러 연구소를 설립하고 자선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카네기는 뉴욕에 유명한 카네기 홀을 만들어 예술진흥에 주력하고,
카네기 교육진흥재단을 창건하고,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을 창립했습니다.
또 카네기 공과대학을 창립하고,
각 지방의 교회에 7천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기증하고 2천8백개 이상의 도서관에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그가 일생동안에 사회에 기증한 돈은 모두 3억 5천만 달러가 넘는 엄청난 물질을 이웃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저는 기독실업인 가운데 이런 인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큰 꿈을 가진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되 목적 있는 데 쓰기 위해 모으고, 투자하고, 또한 기여해야 합니다. 청빈, 깨끗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참으로 깨끗하게 부자가 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회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어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사람의 행복이 물질의 넉넉함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더 행복한 사람은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은 돈을 이웃에게 베푼 사람입니다.
베푸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물질에 관한 믿음의 원리입니다

성경에 지혜로운 청지기가 빚탕감하는 일을 그가 쫒겨나기 전에 한 것 같이 우리들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는 아낌없이 써야합니다.
이 어려운 때에도 우리들은 인간을 구원하는 복음 역사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낭비해야합니다.

행 4:32)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라는 표현처럼 물질을 내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5절>"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는 말입니다.
"내가 내 손으로 수고하여 번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는 만족할 줄 아는 자입니다.
만족함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128:2에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자족의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만족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경제생활에 있어 만족하기를 바라시지만, 인간의 속성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비록 많이 갖지는 못했어도 부부가 만족하며 사는 것이 은혜 있는 삶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거기에 더 보탤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적은 물질이지만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우리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물질을 잘 사용할 만한 쓰임 받을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질을 달라고 간구하기전에 먼저 나를 하나님이 쓰임받는 자가 되도록 간구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쓰실만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부족함을 하소연 하기전에 우리 스스로 축복 받을 만한 믿음의 그릇을 키우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8:32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자가 되지 못하였음으로 아직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국에 문필가요 교수였던 무어(Moore)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문맹퇴치 운동본부에서 모금을 위해서 무어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던 무어가 켜 두었던 두 개의 촛불 중 하나를 끄고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쇼파로 왔습니다.
그래서 방문을 했던 사람들은 속으로 '돈을 받아가기는 틀렸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고자 하는 취지를 다 듣더니 예상하고는 전혀 달리 아주 큰 돈을 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한 사람이 무어에게 '왜 아까 우리가 왔을 때 촛불 하나를 껏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무어는 '글을 쓰는데는 촛불이 두 개 있어야 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는 하나만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낄 때는 아껴야 합니다.
그러나 꼭 써야 할 데는 아낌없이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임 받을 만한 그릇이 된다는 것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사람을 쓰십니다
아브라함은 부지런한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돈의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부지런함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을 열심히 부지런하게 하는 것입니다.
보람있는 일은 행복의 원천입니다. 즐겁게 일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게으르면 가난하게 됩니다.
성공하고 형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게으름이 가난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잠언 24장 33절과 34절에 보면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고 말씀합니다.

열심히 일하되 지혜롭게 일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현실에 맞이 않게 많은 빚은 내어서 투자하다가 크게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보가 어두워서는 안됩니다.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조급하게 빨리 돈을 벌려고 할 때에 무리를 하게 되고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성경은 조급하게 부자가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잠언 21장 5절에 보면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조급하면 망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아무리 수익률이 높아도 본인의 믿음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남을 도와가면서 일해야합니다.
많은 정보를 구하십시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울 줄 알아야합니다.
정보가 많고 정확할 수록 실패할 확률이 적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혼자 독단적으로 하니까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나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하고 좋은 물질을 소원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성경적 원리에 따라 물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물질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압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물질이 필요한 줄을 알지만 물질의 노예가 되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이용해야 하는지 압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고 사람을 이용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고 돈은 이용합니다.

선을 행할 줄을 알고도 행치 않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도적질하는 것이요, 맡은 일에 대하여 직무유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누어주는 삶을 사는 자가 잘되고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마이너스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급하십니다.
하나님께 얼마든지 은혜를 공급받고, 받은 그 은혜와 복을 많은 인생들에게 즐겨 나누어주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낙송의 집
글쓴이 : 낙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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