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사상과 유대교적 환경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한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다. 그러나 나도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빌3;1~6)
바울은 헬라 대학의 도시인 다소에서의 탄생과 로마 시민권은 바울을 동시대의 광범위 한 이방인 세계와 일찍부터 연결 시키는 두 가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증명한 다른 모든 사실은 그를 마치 같은 정도로 분명하게 이방인 세계에서 분리시켜서 어릴 때 부터 줄곧 엄격한 유대인이라는 인물로 나타난다.
유대교는 성전 중심한 종교요, 지성소 중심으로부터 멀리 떠날 수록 거룩이 멀어진다고 보았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이방으로 나아가면 점점 불결해 진다고 보았다. 가장 멀리 있는 곳이 아닐지라도 이방의 지역에 속하면 인간을 개로 보았다.(빌3:2) 이는 한국 사람들도 상대방과 다투다가 흥분하면 인간을 개로 보거나 개의 속에서 나왔다는 자들이 있다.
바울이 빌3;5에서 히브리인이고 이방인이나 반쪽 유대인도 아니라는 변호를 한다. 태어나기는 다소 출신이요, 혈통으로는 완전한 유대인이요, 헬라어에도 능한자이다. 그러나 개종하는 바울을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였고 이에 대하여 유대인의 방법대로 자기를 소개한다.{어디에서 낳고 어디에서 자랐고 어디에서 배웠다(행22:3)}
바울의 부모는 이주하여(장막 기능보유 자로 로마의 부름을 받은 상류층이다.) 예루살렘 성에서 자랐다고 말하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다고 한다.(행22:3) 그렇다면 바울은 다소라는 헬라의 사상적 배경인지 아니면 유대교적이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사상적 배경이 유대교적이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를 점령하고 멀리는 인도에서부터 이집트까지 정복하였다. 이 때 헬라어는 공용어가 되었으나 질적으로는 떨어지게 되었는데(영어도 영국에서는 좋았지만 세계로 뻗어가면서 질적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바울을 통해서 더 찬란해졌다고 한다.
고후11:1과 6절을 보면 고린도인들이 바울이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가볍게 보았으나 편지는 잘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역하다가 다소로 가는 것은 헬라적인 사상의 배경이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유대교적인 사상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을 가지고 갔으니 유대교 배경이 더욱 강조 된다.
빌립보 3장의 내용은 바울이 율법에 의하면 바리새인이요 열심의 기준으로 말하면 교회의 핍박자 이었음을 통하여 자기의 신학적 노선을 확실히 밝힌다. 바울의 뿌리는 바리새적인 십일조의 열심과 율법으로 특정지어진 사람이요, 하스딘의 후예로서 B.C. 587년 느브갓네살 왕에게 멸망을 당할 때 노예로 잡혀 60~70년에 고레스(바사국 초대 왕으로 주전 546~529년 재위)가 귀환하게 하여(대하36:22,23 ; 단1:21,6 ; 6:28 ; 10:1) 성전을 짓고 성전 국가로 살아가도록 허락을 받았다.
선민들은 회당을 발달시킨 자들이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데, 율법으로 특정지어진 사람들이 성전을 지은 자들이다. 포로 전에는 성전을 중심하였지만 포로가 된 후에는 회당 중심이나 율법 중심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전을 지은 것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바리새인 운동이 일어났다. 그중의 한 줄기가 엣센파(QUMRAN 공동체 : 사독과 관계 없이 제사장을 세워서 성전에서 봉사케 함을 반대한 자들)이다. 이 때에 성전을 지키려는 보수파들은 세력을 잃게 되고 사두개인들에게 성전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사두개인들은 귀족이었고 QUMRAN공동체는 사독의 제사장 전통이 지켜저야 된다고 생각하고 이방의 왕이 세운 제사장은 사단과 같이 보았고 자기들의 단체를 성전이라고 주장하고 제사 방법을 바꾸어서 찬양과 율법을 강조하였다.
이 때에 바리새인은 엣센파의 영향으로 힘이 분산되어 성전의 주도권을 사두개인들에게 빼앗겼으나 바리새인은 매우 비판적으로 제사에 참여 하였는데, 레위인의 제사장 법규를 문자적으로 참여하였다.(여당은 사두개인, 야당은 바리새인 이었다.) 바리새인의 율법관은 쓰여진 율법으로 구약만 보고 그 중에서 모세오경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구전으로 내려온 율법이 있다고 보았다. 물론 구전으로 내려왔다는 율법은 쓰여진 율법에 대한 해석들이다. 모세와 장로의 관계도 이런 의미가 있다.
모세가 지도자를 세울 때 둘씩 둘씩 세웠는데, 기록된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과 구전의 율법을 가르치는 두 선생을 세워서 가르쳤다. 바울도 이 두가지 교육을 받았다.
기록된 율법은 가말리엘의 문화에서 배웠고 구전으로는 조상들의 율법에 엄한 교육을 받았다고 사도행전 22장 3절에서 고백한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열심은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사건들이 비느하스 교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임이다. 민25:8에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하였고 민25:1~13에서 그 비느하스는 평화의 언약을 받았는데, 13절과 같이 "그의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고 하였다.
또한 시편에서도 106편 30,31절에 보면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나 처벌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이 일을 저에게 의로 칭하였으니 대대로 무궁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열성은 피흘림으로 나타나고 하나님께서는 제사로 받았다고 본다.
바울의 지식은 구약을 통달하였고 성전을 중심한 신앙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요2:19)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 없이 무너지게 된다고 말씀하시니(요2:17)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예수님을 죽이게 된 것이고 따르는 제자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핍박의 명분은 율법과 성전과 하나님의 명예와 이스라엘의 순결을 위해서는 누구든지 죽이는 폭력적이었다.
이들의 투쟁의 대상은 이방 정복자들이지만 막강한 군대의 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차적으로 로마의 교류자와 율법을 어기는 자(요16:2,3)로 알아 너희를 죽인 자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하는 열혈당을 예언하신 것이다.(신21:23)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저주 받아 죽은 예수님을 따른 그 제자를 죽여서 피를 흘림이 속죄의 제사로 알기 때문에 요16:2~3에 예언하신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비느하스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유대교적 배경) 피흘리기 까지(갈1:13~14) 열심이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바울의 입장을 알게 되었다.
오직 유대교 율법과 하나님의 명예와 선민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핍박하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 율법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을 어기는 자로 알았다.(성전 중심 사상은 예루살렘 성전이 거룩하기 때문에 성전의 주변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멀리 떠나지를 못했다. 멀어질 수록 거룩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였다. 포로로 잡혀 갔지만 순례 절기 때마다 참여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의 신앙은(스데반) 히브리파 유대인과 신앙이 다르다. 그러므로 같은 예수를 믿지만 분쟁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이 원망은 음식 배급은 증상이요 언어상 문제요 관습의 문제이다. 헬라파는 흩어졌고 누가는 스데반의 설교를 기록하여 헬라파의 신학을(행6;11~13) 소개 하였다. 헬라파는 성전을 공격한다. 예수님의 피로 끝이 났다고 주장하고 제사를 무시하며 율법대로 행하는 것은 타락 성전 제사이니 무효라고 주장한다.(스데반 설교)
* 그들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3가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 째 기둥은 율법이요(하나님의 계시)
둘 째 기둥은 성전이요(하나님께만 숭배)
셋 째 기둥은 선행이라고 한다.(창조의 질서가 유지 된다.)
위의 3가지 기둥이 없으면 뒤죽박죽이 된다. 사람끼리도 사랑이 없으면 동물들이 먹고 먹히는 관계와 같이 치열한 경쟁이 되고 만다. 헬라파가 공격하는 것은 예수님이 성전의 제사를 완성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므로 고백하였다. 이는 사도 바울이 개종전 사울의 마음을 격동케 했다.(신21:23 ; 23:21 ; 갈3:13 ; 고전 12:3 ; 딤전 1:13) 그렇지만 종교 지도자들이 신명기 법으로 죽으면 참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므로 법집행은 빌라도에게 맡겨 정치범으로 몰아서 죽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유대교적 환경 속에 있는 사울이 개종하여 다메섹 도상 체험으로 사울의 사상을 깨뜨리고 바울이 된 것이다. 단 한번의 은혜로 광야에서 초원으로 옮기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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