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강해(11)
성령을 믿사오며
본문 : 요한복음 3장1~8절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재림을 고백함으로써 성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마무리한 뒤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 갑니다.
사도신경은 아주 간략하게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에서 성령이 차지하는 위치는 이 한 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령에 관한 고백에 이어서 등장하는
고백의 내용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사역을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사역들인데,
이 사역들은 모두 성령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거룩한 공회와 곧, 교회가 설립되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교제(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하기 시작하고,
죄 사함(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받고,
죽은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여(몸이 다시 사는 것) 영원히 사는 일(영원히 사는 것)들은 모두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이므로, 실제로 성령에 대한 고백은 사도신경의 마지막 구절까지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신자들의 실제적인 신앙생활을 주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성령이 어떤 분이시며,
성령의 사역은 어떤 것인가에 관하여 바르게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성령에 관하여 네 가지 주제에 대하여
첫째, 성령에 관한 일반적인 서론과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둘째, 성령의 충만에 관하여,
셋째,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넷째,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에 관한 일반적인 서론과 성령의 세례]
1.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성령이 지닌 어떤 신비스러운 능력을 떠올리기 전에 성령이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한 하나님이요,
인격을 지니신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빈번히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끌어다가 쓸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성령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지시와 가르침에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2. 성령 하나님의 사역
1) 창조(성부가 주도)와 구속(성자가 주도)에 참여하고 구속의 적용을 주도하신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성령의 사역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성령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주도하신 사역에 동참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부 하나님이 주도하신 창조와 섭리사역에 동참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 주도하신 구속사역에도 참여하십니다.
둘째로, 성령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서 주도하시는 사역이 또한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성도들에게 적용하고
완성시키는 사역을 말합니다.
2) 일반적 사역과 특별사역
가. 일반적 사역
다른 방법으로 말한다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은
다시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께서는 자연과 인간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일예 참여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반적 사역 이라고 부릅니다.
둘째로, 오직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사역으로서,
구속사역과 구속사역을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이 사역은 성령의 특별한 사역입니다.
[성령의 일반적 사역]
성령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도와서 이 세계의 창조와 창조된 세계를 섭리하고 유지하는 일에 참여하십니다.
자연 만물 속에 있는 온갖 질서와 법칙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도덕의식,
죄를 범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재를 받고 벌을 받는 것,
정부를 통한 사회질서의 유지
이와 같은 일들이 모두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의 증거들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겨져 있는 진선미를 탐구하는 마음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의 증거이며, 죄를 범한 인간은 죽음의 형벌을 당해야 하는데,
그 형벌을 즉시 내리시지 않고 이 세상에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형벌을 유보해 주시는 것도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입니다.
이와같은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이 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이 모여서 사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람이 살만한 사회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일반적 사역의 한계]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은 물론 매우 중요한 사역입니다.
이 사역이 없이 자연계와 인간세계가 사탄의 세력에 그냥 방치되어 있으면,
자연계와 인간세계는 극히 무질서한 복마전으로 변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일반적 사역 그 자체에도 이미 한계가 있습니다.
자연의 세계는 한편에서 보면 매우 아름답고 선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계를 잘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살벌하기 이를데 없는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에게 도덕의식이 심기워져 있고 도독을 지키는 생활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인간세계 안에는 또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패륜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또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선한자를 보호하고 악한자를 벌하려는 좋은 목적으로 정부를 세워놓았는데, 오히려 정부 자체가 부패하고 타락해서 악한 자들을 두둔하고 선한 자를 잡아 가두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또한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능력의 개발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달에 사람이 갔다오고 지구궤도에 우주왕복선을 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굉장한 발전입니다.
그러나 달에 한번 사람이 갔다 오고 우주왕복선을 한번 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되어야 합니까?
수만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천문학적인 숫자의 예산을 사용해 가면서 어렵게 이룩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겨우 달에 몇일 가서는 돌덩어리 몇 개 주워오는 것이 전부이고,
겨우 지구궤도 몇바퀴 뱅뱅 돌다가 내려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너무 힘들고 너무나 돈이 많이 드니까 달에 몇 차례 갔다가 온 뒤로는 이에 다시 달에 갈 염두도 못 내고 있지 않습니까?
들어간 인력과 예산에 비해서 결과는 너무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의학이 현란할 정도로 발달했다고 하지만 의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병이 너무나 많고, 더욱이 인간의 자연적인 죽음 앞에서 고도로 발달한 의학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한계 이외에 더 중요한 한계는,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으로는 결코 죄 문제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찾아오는 사망도 해결하지 못하고,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만으로는
결단코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로 세울 수 없습니다.
인간들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 모든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인
죄와 죽음에 대해서 이 일반적인 사역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제 죄와 죽음이라는 가장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령의 특별한 사역 또는 특별한 은총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특별한 은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인간들에게 적용하는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 사역의 첫 출발점을 성경은 성령세레라는 용어로써 표현합니다.
나. 성령의 특별한 사역의 출발점으로서의 성령의 세례
성령의 세례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는가를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롬3:23절“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씀과 같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죄인들이요,
또 롬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에 따라서,
모든 인간들은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을 사랑하신 성부 하나님은 인간들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에게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성부 하나님이 내리시는 죽음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흠이 없는 깨끗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룩하신 이와 같은
대속의 사역이 어떻게 인간들에게 연결될까요?
바로 이 예수님이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인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이 받으신 모든 형벌을 내가 받은 것으로 간주하시고, 나의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죽으신 죽음이 내가 죄의 형벌을 받고 죽은 것으로 간주되어서 사망의 형벌로부터도 해방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의로움이 나의 의로움으로 전가되고 옷입혀져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되며,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이 모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특별한 사역의 첫 출발점인 성령의 세례는 언제 찾아올까요?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성령이 나의 영혼에 찾아 오십니다.
나의 마음속에 찾아오신 성령께서 예수님이 이룩하신 구속사역을 성도들에게 적용하시면서 단번에 우리를 사탄과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을 입혀 주시며,
우리의 영혼을 속사람으로부터 거듭나게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로 인쳐 주십니다.
나의 영혼 깊은 곳에 들어오신 성령님께서는 즉시 단번에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의 뿌리를 제거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심어 주신 다음에는,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성장하는 길고 힘든 사역을 시작할 준비를 갖추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단번에 일어납니다.
마3:11, 막1:8, 눅3:16, 요1:33,에서 셰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예고했는데,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이 이와 같은 성령의 사역을 뜻합니다.
[세례의 의미: 죄를 씻음과 연합함]
세례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고,
따라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와 연합하시고 동시에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은 성령의 사역을 잘 말해주는 본문이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오직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사건을 말합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니고데모는 무슨 뜻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죄의 뿌리가 제거되고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사역은 바로 성령이 주도하는 사역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인간의 노력도, 공로도, 업적도, 재능도, 인격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이 은혜로 값없이 진행될 뿐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경험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계속해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다는 말을 하시자 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 있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요3:8에서 말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성령의 사역이 바람의 움직임과 같다는 말은 바람의 모양과 진원지를 우리가 알 수 없듯이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 곧 성령세례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사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우리의 눈에 잡히지 않는 사역입니다.
우리의 감각으로도 잡히지 않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해서
즉시 나의 이성이 확 바뀌어서 모든 성경의 말씀들을 다 믿게 되는 것도 아니요, 나의 감정이 즉시 발동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도 아니요,
나의 눈 앞에 뭔가 새로운 환상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현상들이 곧 뒤따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영혼이 거듭나는 것은 인간이 이성이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겉 사람 또는 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영혼의 깊은 속사람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거듭나게 하는 사역인 성령세례와 이 사역이 맺는 열매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혼의 깊은 속사람 안에서 진행되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과 이 사역이 맺는 열매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는 열매를 보고서 거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거듭나는 사역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각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특별한 열매난 체험을 일반화시켜서
그런 체험이 있어야만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방언을 받은 뒤에 방언 받아야만 거듭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맺는 열매 또는 은사는 너무나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한 가지 열매나 은사만을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거라고 고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는 모든 신자에게 똑 같이 찾아오는 사건입니다.
고전12:3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은 모두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세례를 받은 증거를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은사를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믿음이 나에게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만일 그 믿음이 있으면, 바로 그 믿음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증거요,
성령이 나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증거라고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재 창조의 사역,
곧 성령의 세례는 깊은 속사람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변화인데다가 너무나 신비로운 사역이기 때문에 이 사역 그 자체는 우리의 이성이나 의식으로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들뿐입니다.
예컨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이 내주 하시면 대부분의 경우에 열매나 은사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열매나 은사들을 보고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돈독해지는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의 영혼이 거듭났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해가는 가운데 하나씩 둘씩 그 열매들이 쌓여가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우리의 생활속에서 역사하시는 체험이 점점 쌓여가다 보면, 그것들을 토대로 귀납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닙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 때,
당분간은 자기속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계속 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기도 하고 미숙하게나마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했는데 응답을 받아 보기도 하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다 보니까 집사가 되어서 교회봉사를 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 십년 가량 지나간 뒤에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니까 참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같이 고집이 세고 예수님 믿는 일을 우습게 여기고 의심이 많던 사람이 기도도 하고 은혜도 받고 집사로 봉사도 하고 심지어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게 되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떤 힘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황을 적절하게 인도해서 이런 일을 하게 하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갖게 되면서,
“아하, 바로 이 모든 일들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증거들이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느냐? 다 내가 한 일 같았는데, 결국 하나님의 은혜였구나”하고 간증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의 비밀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이 강화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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