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강해(9)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본문 : 로마서8:31~39절
예수님의 승천은 성자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서 구속사역을 주도하던 시대가 끝나고 성령과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된다는 말씀을 앞에서 드린 바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승천 이후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니까 바로 성령에 관한 고백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바로 성령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가지 않고 승천하신 이후의 예수님의 천상에서의 사역에 관한 두 가지 고백을 첨가한 뒤에 성령에 대한 고백으로 넘어갑니다.
첫째로, 사도신경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는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고백의 의미를 묵상하고,
다음 시간에는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시는 예수님에 관하여 묵상 하겠습니다.
1. 성경적 근거
우편에 앉으심은 예수님이 이후로는 왕으로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다는 것은,
신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선 구약성경 시110: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 본문에서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말하고 “내 주”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의 원수인 사탄을 발등상이 되게 하는 날,
곧, 짓 밟아 멸망시키는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을 가리킵니다.
그때가 될 때까지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시겠다고 말합니다.
같은 시편110:2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이 본문은 1절을 보완설명하는 구절입니다.
1절에서 우편에 앉게 한다는 말이,
2절에서는 “권능의 규”를 쥐워주고 “다스리게 하는”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규”는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따라서 1,2절을 연결시켜서 읽어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여,
왕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오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마26:64절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스데반은 순교하기 전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광경을 목격했다고 사도행전 7:56절이 보도합니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특히 에베소서1:20~22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곧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 되시고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세상과 교회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뜻 한다 기 보다는 일종의 의인법 적인 표현으로서, 예수님이 교회와 우주의 왕으로서 통치권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원래 우편이라는 말은 왕의 권능을 뜻합니다.
2. 예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신다
우리는 시편110편2절 말씀과 에베소서1:20~22절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왕으로 통치하심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1:22절은 예수님의 왕권행사에 관하여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 보면 “만물이 예수님의 발 아래 복종 한다”고 말함으로서,
예수님이 우주의 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다음에
“예수님을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는 구절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곧, 만물위에 무엇이 있느냐? 바로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은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3.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적인 연합체로서의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에베소서에서 예수님이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고 말할 때 교회는,
이 세상 안에 있는 어떤 한 지역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에베소서가 말하는 교회는 어느 한 교단을 뜻하는 것도 아니요,
로마 카톨릭교회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베소서에서 말하는 교회는
지상에 있는 어떤 한 지역교회나 교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 우주적인 연합체를 말합니다.
과거에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
현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장차 태어날 성도들이 모두 이 연합체안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가 말하는 교회는 이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어마어마하게 크고 신간과 공간에 메이지 않는 우주적인 연합체를 뜻합니다.
곧,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할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예수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이 회원이 되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교회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교회는 지역교회를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난 어떤 지역교회 또는 지역교회의 어떤 부분은 이 하나님의 나라의 범위 밖에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교회라는 간판은 붙이고 있는데, 참된 신앙고백이 없고, 말씀과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지 않고, 권장이 성실하게 행해지지 않는 교회는 이 우주적인 연합체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그곳에 임재해 있습니다.
그곳은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소속된 직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계일 수도 있고, 경제계일 수도 있고, 예술의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교회는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임재 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하시되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4. 이 세상은 예수님의 왕권과 사탄의 왕권이 동시에 나타나는 곳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 우주적인 보편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서 일어나지 않는 일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세상나라의 왕권이 행사된다는 것을 증거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하여 나타나는 예수님의 왕권도 있지만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사탄이 주도권을 쥔 세상나라의 다스림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세상나라는 이 세상 안에 있는 어떤 한두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나라 곧, 사탄의 나라를 말합니다.
사탄의 나라도 이 세상 어느 곳이나 사탄의 법을 따르는 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통하여 행사되는 예수님의 다스리심과 왕권은 사탄의 법을 통하여 행사되는 사탄의 다스림과 분명히 구별됩니다.
이 두 세력은 적당히 섞일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역사관 또는 세계관 가운데 하나는 어거스틴이 말한 바와 같이 인류역사를 하나님의 도성과 사탄의 도성 간에 벌어지는 투쟁의 역사로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히 사탄의 권능이 행사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실제로 이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사탄의 존재를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해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 마수를 뻗치고 있는 사탄의 통치를 분별해내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5. 현세 안에서는 감추어져 있는 예수님의 왕권행사
이 세상 안에서 행사되는 예수님의 왕권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예수님의 왕권과 통치는 세상나라의 원리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통치 또는 이 세상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재림때까지) 하나님의 나라 또는 예수님의 통치가 세상나라의 원리에 따라서 사는 사람들의 눈에 감추어져 있다는 이 진리는 예수님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가복음4:21절에 있는 등불의 비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어떤 사람이 불을 켜기 위하여 등잔을 방안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등잔은 들고 들어와서는 불을 켜지 않을 때 침대 밑에다가 보관해 둡니다.
그러니 침대 밑에 등잔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방에 들어온 사람들의 눈에는 등잔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또 등불을 켰다가 끄려고 할 때는 등잔불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곡식을 담는 나무통을 그 위에 씌워 놓습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통속에 있던 산소가 다타 없어지고 등잔불은 꺼지게 됩니다.
말을 씌워 놓으면 영문을 모르는 사람은 방에 들어와서 아무리 돌러봐도 등잔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등잔불이 없다고 단언해 버립니다.
이처럼 세상나라의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의 법을 통하여 행사되는 예수님의 왕권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 도대체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살아 가지고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법은 매우 광범위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산상수훈은 그 대표적인 한 예입니다.
산상수훈을 읽고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까지도 갖다대고 속옷을 가지려고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알아서 벗어주는 태도로 살아가지고 어떻게 이 험악한 세상에서 적응해나간단 말인가?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상대방을 우선 눌러놓고 보아도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판에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태도로 어떻게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서 살아가지고는 도대체 이 살벌한 경쟁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서 통치하시는 예수님의 다스리심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아무리 찾아도 예수님의 왕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의 왕권은 고난과 역경중에서도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나타난다.
그러면 정말로 예수님의 왕권은 이 세상나라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약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까요?
도대체 예수님의 다스리심의 능력은 어느 때에 나타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왕권의 능력은 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이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신비로운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그 예를 우리는 순교자 스데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아무런 죄도 없이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아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오직 스데반에게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똑 같이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의 왕권을 본 사람은 스데반 한 사람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왕권이 스데반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을 뚜렷하게 보고 그 왕권의 권능을 힘입고 위로를 받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주께 의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하나님 나라의 법을 끝까지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붙들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저버리지 않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능력-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왕권과 능력과 다스리심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달픈 선교여정을 해나가는 가운데 이와 같은 예수님의 권능을 여러차례 경험하고 난 후, 로마서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의 왕권은 오직 영혼구원의 일념에 사로잡혀 험하고 고달픈 선교여정을 행하는 바울로 하여금 온갖 고난과 핍박을 능히 견뎌내고 주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는 능력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왕권이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님의 왕권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진 모습과 형태로 나타납니다.
세상나라의 불의한 권세와 원리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굴하지 않고,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으로 신앙의 길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고자 하는 성도에게 예수님의 왕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이들이 끝까지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바로 이 왕권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도록,
그리고 이 왕권을 힘입을 우리 성도들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부활하시기 전의 예수의 존재 방식은 '종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섬기며,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십니다.
이미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에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은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부여된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의미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러한 존재 양식으로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암담했을지 모릅니다.
구약 시대 대제사장은 본래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지고 나와 해결을 받고자 할 때 그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신다는 것은 그 분이 우리의 생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문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모신다는 것은 그의 삶이
이 세상에 속한 삶이 아니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늘에 있는 시민권자"로 표현했습니다. (빌3:20)
히브리서 저자는 이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4~16)
부활하신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계시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존재해 가시는 구체적인 존재방식과 사역의 한 형태가 교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존재방식과 사역의 한 형태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교회는 현실에 있지만 영원 가운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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