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강하고 힘있는 교회(계 3:7-13)

하나님아들 2013. 3. 22. 12:10

강하고 힘있는 교회(계 3:7-13)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가 있으면서 성령의 감동함을 받고 당시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향하여 칭찬과 책망을 하신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에베소 ,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렇게 일곱 교회 중에 다섯 교회는 책망했으며,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책망하지 아니하고 칭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빌라델피아 도시이름 유래는 본래 버가모 왕국시대 이 지역의 통치자였던 유메네스 2세(Eumenes)는 전장에 나갈 때마다 정치와 군사 지식이 탁월했던 동생 앗탈로스 2세(Attalos 11,BC159-138)에게 내정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고 인기가 많았던 그를 로마정부가 이용할 목적으로 그에게 왕위에 오르도록 충동했지만 앗탈로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형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앗탈로스의 형제애“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빌라델피아라는 말의 유래였던 것입니다.

 

빌라델피아는 두 낱말이 합쳐서 이루어졌습니다. 필로스(사랑, Φίλος) 아델포스(형제, άδελφόϚ) 를 합쳐서 필라델피아(형제사랑, φιλαδελφεία)인데 이 말은 “형제의 사랑”“형제의 우애”란 뜻입니다.

교회 이름 참 예쁘죠?

 

요즘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키가 큰지 저는 아직도 자주 놀라게 됩니다.

'중학생쯤은 되겠구나.'하고 짐작을 하면서 인사를 해보면 초등학생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옛날보다는 식생활이 좋아졌으니까 아이들 성장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청소년들의 체질은 오히려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체격은 분명히 월등히 나아졌는데 잔병에 대한 저항력이라든지 체력 등은 옛날 사람들보다 더 약해진 것입니다.

아마도 컴퓨터 앞에 많이 앉아있게 되는 생활습관이나 공해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들이 그런 결과를 낳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덩치는 작아도 소위 '작은 고추가 맵다.'는 기개를 발휘했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큰 고추가 싱겁다.'는 신조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겉모습이 크냐 작으냐 하는 것보다는 그 내면의 영적 체질이 강한가 약한가 하는 문제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다른 초대교회들에 비추어 비교적 미약했던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는 매우 알차고 튼튼한 모습을 갖춘 교회로서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작은 교회였다는 사실은 본문 8절의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라는 말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교회가 교인 수자나 재정적 능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뜻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은 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였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빌라델비아교회는 비록 크기는 작았을지라도 그 체질적으로는 결코 약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판단하시기에는 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다른 다섯 교회들보다는 오히려 더 능력 있는 교회로 나타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강하고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이 지상교회가 그 받은 복음전파의 사명과 전투에서 늘 그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교회가 될 수 있는 비결들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1. 적은 능력으로도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는 교회(8절)

"보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이말은 헬라어로 '미크로스 에케이스 뒤나민'이라는 단어로 '능력이 거의 없다' 는 의미입니다. (마이크로 : 어떤 단위의 백만분의 일)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신분이나 지위가 변변치 못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는 크냐, 작냐, 많냐 적냐에 관심이 있지 않고, 최선을 다 했느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른 것보다도 우리의 충성을 중요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연약하고 부족하며, 능력이 없어 드릴 것도 드리지 못하였지만 적은 물질로 주님께 드리며 주님의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즐거움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소수지만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축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순종하며 신앙의 정절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했습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내 말을 지켰다"는 것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했고 그 말씀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8절에서 "내 말을 지켰다"고 칭찬했고, 10절에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께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우둔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세상에서 부적응의 사람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께 인정받고 그 사람이 명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에게는 이미 능력이 충분하게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비록 능력은 적을지라도 주의 말씀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진실하신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조선시대에 보면 나라를 위하여 왕을 위하여 충성했던 사람들이 간신배들의 모함에 의하여 죄를 뒤집어쓰고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륙 지역 보다는 섬으로 유배시키는 것이 효율 적이어서 같은 섬이라도 한양에서 가까운 강화도나 백령도는 왕족등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 되었고, 제주도는 흑산도, 진도, 완도 등의 여러 전라도 섬들과 함께 그외의 유배지도 쓰였습니다.

죄가 많을수록 한양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합니다. 충신도 유배를 당할 때 억울하다고 느끼니까 측근들과 연락을 하면서 복수의 칼을 갑니다.

이것을 안 간신배들은 다시 왕에게 아룁니다.

그 사실을 안 왕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사약을 내립니다. 사약을 받은 신하는 임금이 사는 궁궐을 향해 절을 하고 사약을 받습니다.

요즈음 같은 시절에 사약을 내린다고 하면 절하면서 받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선시대에 왕을 사랑하는 충신들은 사약을 받으면서 절하였습니다. 그만큼 임금님을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사랑하십니까? 죽도록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약을 내리면 받으시겠습니까?

빌라델피아 성도들은 어려운 중에도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 말씀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라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충신들은 임금이 주신 것은 사약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약같은 원치 않는 말씀을 주신다고 해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약처럼 순종하기 힘든 원수를 사랑한다든지, 용서하라고 하든지, 화목하라고 하든지하는 말씀이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약도 충신에게는 귀하듯이 충성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도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외부적인 박해가 심했습니다. 소아시아는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황제 숭배를 내세워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했습니다.

장장 300여년이나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박해가 계속되자 박해를 두려워하며 다른 종교와 타협하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를 등진 채 주님을 떠나가는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아예 타락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힘이나, 재산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들을 소유하지 않은 적은 능력 상태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내부적 박해가 심했습니다.

본문 9절에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대인임을 내세우며 은근히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단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일어났음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은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지도자를 무너트리며, 성도들을 성장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내외로부터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필라델피아교회는 하나님이 문을 여는 교회입니다.

특히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신 말씀 가운데는 7절에 보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는 말씀이 복이 되는 말씀입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사람이 없는 주님이 우리들 앞에 열린문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닫게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열게 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이 있으니까 한번 해봐야지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마음 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적은 물질,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전도문을 여시는 분, 교회 문을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 이시므로 문을 여실 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을 닫기 전에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을 여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구제하며 양육하는 것도 예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섬기게 하여주신 예수님께 감사합시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문이 닫히기 전에 적은 능력을 가졌다고 핑계하거나 나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렸을 때 일하십시오. 열렸을 때에 섬기시기 바랍니다.

 

2. 적은 능력으로도 면류관을 붙잡는 교회(11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네 면류관을 빼앗기지 못하게 하기 위한”것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10절)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면하게 하리니’는 원문에 ‘~으로부터 지키리니(테레오 에크(τηρησω εκ)'로서 ‘환난의 면제’보다는 오히려 ‘환난 중에서도 보호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키셔서 대환란의 때에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바라는 것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게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을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왕관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을 다 쓰는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을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나름대로 지금까지 영광의 면류관, 자랑의 면류관, 썪지 않는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면류관을 얻기위해 수고해 왔는데, 이제 와서 사역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면류관을 빼앗기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적은 지식, 적은 재산, 적은 능력 때문에 열등감에 빠지거나 아예 자포 자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그들의 적은 숫자로도 결코 기죽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능력으로 막강한 사탄의 세력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초보적 수준으로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어떤 고난도 견뎌내며 이겨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단순한 신앙의 연조나 성경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약시대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소수의 믿음으로도 바빌로니아 왕권을 거뜬히 이겨냈습니다(단 1:8-15).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실력이나 재력에 있지 않고, 믿음의 위력에 있습니다.

"우리가 겨자씨 만한 믿음만 가져도 태산을 옮길 수 있느니라"(마 17:20).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적은 힘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는 언제든지 작은 것을 활용하십니다.

모세의 나무 지팡이 하나로도 이집트의 철장 권세를 쉽게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의 물 맷돌 한 개로도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거뜬히 쓰러뜨렸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 한 개를 가지고도 오 천 명이 먹고도 남는 큰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사람이 볼 때는 작고 미미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얼마든지 능력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시험할 때입니다.

 

시험받는 사람들은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적은 것이라도 굳게 지키는 자들은 ‘시험의 때를 면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여건이나 환경이나 대인관계들이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을 머물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시험을 받을 때라고 했습니다.

혹시 지금 마음에 시험이 든 사람 있습니까?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시험에 들려고 하는 사람 있습니까? “네” 라고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이며, 헌신된 사람들이 왜 시험을 받습니까?

지금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험으로부터 이길 수 있나요?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긴 말씀을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있는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적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당면하는 시험에서 면하게 하시며,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3. 적은 능력으로도 세상을 이기는 교회(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적은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12절)

여기서 ‘기둥’은 안전성과 영구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둥이 되게 한다는 말씀은 하늘나라에서나 세상의 교회에서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요긴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성전의 중요한 기둥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확고부동한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귀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은 빌라델피아 교회 성도들이 이 상급을 잃지 않도록 면류관을 받도록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아야 하리라고 권면합니다.

 

2) 다시는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신앙을 붙잡는 인생은 그 성전에서 머물러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렇게 이기는 자들을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둥이 나가버리면 어떻겠습니까? 무너지죠. 그러니 나가서도 안되고 나가게도 하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담겨져 있지요.

 

3) 새 이름을 기둥에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신실한 자들에게 주는 영원한 명예를 뜻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충성되고 신실한 자의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했습니다.

 

각 기둥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새 이름’으로 아로 새긴다고 했습니다.

작은 것을 충성되고 헌신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기는 자 위에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이름이 새겨지며 그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를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가 당하는 핍박과 고통과 고난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위로하시며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925년경, 소련에서는 전 국가적으로 기독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자행했습니다.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던 기관의 책임을 맡았던 부르실바라는 사령관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며느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체포되게 되었습니다. 그 부하들은 상관의 며느리를 어떻게 하든지 살려 보려고 달랩니다.

“부인, 딱 한번만 이라도 예수를 부인하면 당신을 내 보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완강하게 부인하기를 “나로 인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셨는데 내가 어찌 죽음이 두려워 그 분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사형장에 끌려가기 전에 브르실바 사령관은 마지막으로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제라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끝까지 거절하고 오히려 기쁨과 찬송을 부르며 얼굴에는 평화의 빛까지 가득 넘쳤습니다. 사령관은 화가 나서 “네 얼굴에 웃음을 멈춰라.”고 호통을 쳤지만 며느리는 조용한 소리로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내 육신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마음에 솟아나는 이 끝없는 기쁨과 감사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며 섬기겠다.”는 단호한 자세를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 작지만 강한 교회! 빌라델교회에대해서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외적인 힘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안양교회가 그런 교회이길 원합니다.

덩치큰 병든 교회가 아니라

작지만 알차고 강한 교회가 되어서

어떤 세상의 풍파와 내적 시험에도

강하게 일어나 승리할 수 있는 교회되게 하시고,

 

주님!

우리 성도님들 안식일이 지나고

또 다시 일주일을 세상에서 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강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께서 붙들어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음 안식일에는 더욱 소중하고 준비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주님의 귀중한 자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출처 : 하나님의 종 바나바의 자료
글쓴이 : 끝장보는 신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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