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를 발견함
그 동안 살펴본 바와 같이 고전적 정신 분석학이나 일반 심리학 이론의 대부분은 모든 인간의 행동은 정신 에너지(psychic energy)와 초기 어린아이 시절의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의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이끌어 내는 그 사람의 의식 혹은 무의식적 갈등과 동기를 유발하는 구체적인 원인들을 발견해야 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적 치유의 첫 번째 단계이다.
Charles Whitfield는 이것을 '각성'(Awakening) 혹은 '갑작스러운 인식'(Emergence Awareness)이라고 불렀는데
그에 의하면 '각성'이란 '사물'이나 '현실'이 우리가 생각해 오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상처가 무엇이든지 그 출발점 혹은 촉발점을 찾아내어 이미 고착되어진 우리의 현실에 대한 과거의 이해나 신념체계,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인생관이나 삶의 태도를 바꾸어 줄만한 획기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의 참자아는 깊이 은폐되어 있고, 우리의 부정적 자아나 상호 의존적 자아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고착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각성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미 프로이드가 말한 합리화(Rationalization), 거부(Denial), 투사(Projection), 퇴행(regression) 등과 같은 방어기재(Defense Mechanism)나, 생존을 위한 자기 나름대로의 대처기술 즉 반항이나 공격 혹은 속임수나 타협 같은 요소들로 이미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인아이가 자기의 문제를 의식하는 것도 힘들지만, 설사 의식했다 하더라도 치유를 시도하려 하면 성인아이 자신은 그것이 저항인줄도 모르는 채 저항 현상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기간 동안에 혼란, 두려움, 슬픔, 분노, 자포자기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에 대처하는, 이미 자기에게 익숙해져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러한 감정을 해결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런 현상을 프로이드는 이미 방어기제와 연관시켜 설명한 바 있지만, 만약 강한 저항현상이 내담자 자신도 모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강하고도 집요한 저항 현상이 무의식적인 저항이라는 것을 본인이 깨닫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내적 치유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2. 아픔(Grieving)을 드러냄
내적 치유의 두 번째 단계는 '슬퍼함' 혹은 '애통'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애통이란 어린 시절의 당한 경험들 가운데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당시에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경험이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상처'나 '상실'들로 인한 슬픔을 다시 한 번 재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슬픔이란 사건자체에 대한 기억이나, 상처의 후유증에서 느껴지는 사실자체에 대한 슬픔의 기억들이 아니다. 말하자면 "당시엔 내가 정말 슬퍼했었다"거나 "너무 힘들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운 과거의 슬픈 기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에 맛보았던 슬픔의 경험을 감정적으로 기억해내어, 과거의 슬퍼하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그 슬픔 속으로 다시 한 번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결정적인 상실과 상처 그리고 슬픔을 당하던 시간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마음껏 슬퍼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의 대부분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격정적인 울음과 몸부림, 혹은 절규가 수반되지만, 마음껏 슬픔을 토해낼 수만 있다면 바로 이 순간에 감정의 정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슬픈 기억을 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과거에 있었던 사실의 기억이나, 감정의 기억들은 우리의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내적 치유의 과정에서 이 슬픔을 다시 느낄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내적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내적 치유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이 과거의 슬픔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과거의 상실이나 상처를 경험할 때, 그러한 심리적인 작용들은 우리 안에서 서러움의 에너지를 발생시키는데 그렇게 발생된 부정적인 에너지는 방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에너지를 충분히 분출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만성적인 고통이 오는데 Kritsberg는 그것을 '만성적 충격'(chronic shock)이라 부르고 Charles Whitfield는 '강박 충동의 반복'(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슬픔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사람들은 만성적 염려, 긴장, 공포, 과민반응, 분노, 원망, 슬픔, 공허함, 혼란, 죄책감, 수치심, 혹은 감정의 마비 등의 증세를 보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내담자가 과거의 슬픔을 분출해야 되는 이유를 충분히 인식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사실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은 이성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슬픈 감정은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내적치유 특강<2> - 자기 인식의 요소들(1)
1. 자기인식의 근원들
1) 외부세계
그 동안 살펴본 것처럼 어린 시절의 환경적 요인이 외부세계로부터 오는 정보의 통로가 된다. 특히 역기능가정에서 자란 경우, 언어적인 폭력과 체벌에 의한 고통의 체험들 특히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거절감이나 거부감 등은 우리의 자기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과거의 이러한 경험이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관념을 결정지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2) 우리의 내면의 세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지문도 모두 다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성격이나 적성 혹은 능력이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심지어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형제라 해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는 차별성을 자신으로부터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도 자기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신체적인 조건들 예를 들면 키가 크거나 작다든지, 아니면 건강하거나 약하든지, 혹은 신체적인 결점, 기형, 장애 등도 사람들의 자기인식에 결정적 통로가 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에 열등감과 함께 자신감의 상실을 가지고 올 수 있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낄 때에 교만한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기준치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3) 사탄
성경은 사탄의 정체를 속이는 자 혹은 거짓말쟁이(요8:44)라고 경고한다. 또한 그는 우리를 혼미케 해서 우리의 분별력에 혼란을 준다고 말한다(고후4:4). 사탄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불행해지고 고통을 당하며 파멸을 당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바로 우리의 인식가운데 우리가 열등한 존재로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등감은 자신이나 삶에 대한 불만감 혹은 낮은 자존감, 자신감의 결여, 자기 경멸감, 소외감, 고독함, 고립된 감정을 갖게 하고 그것을 사실로 믿게 하여 그의 평생에 부정적인 삶의 모습이나 비난하는 성격 혹은 비관적인 생각 등으로 고착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러한 사탄이 주는 거짓말의 통로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비판 없이 받아 들여 그것이 무의식적 자기인식이 되었다면 사탄의 전략은 성공한 것이고 그는 불행에 빠질 것이다.
4)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인식의 통로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근본적이며 사실적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인간의 정확한 실체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전혀 귀하지 않은 존재라고 속삭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면 먼저 자신을 진실로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 혹은 주변 상황에 대해 불만족을 갖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학력이 높다거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다거나, 사업의 성공을 해서 돈이 많은 부자가 됐다고 해서 그를 특별히 사랑하거나 우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을 배설물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사탄은 성경이 말하는 배설물들이 자기인식의 유일한 통로인 것처럼 유혹하여 믿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열등감에 빠지거나 혹은 교만케 만들어 자기 스스로를 우월한 인간 혹은 열등한 인간이라고 믿게 해서 교만한 사람이 되게 하거나 아니면 열등감에 쌓인 부정적 자기인식을 갖게 한다.
2. 긍정적 자기인식의 3 요소
상담학자 모리스 와그너(Maurice Wagner) 박사는 그의 책 에서 누군가가 자기의 긍정적인 자존감을 형성하기 위한 세 가지 기본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소속감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과 나의 주변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공동체가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며, 중요한 구성 요원으로 인정해준다는 느낌을 말한다.
이 소속감 없으면 Outsider가 되고 방랑객이 되며 버린 받은 느낌과 함께 자기에 대한 부정적 자기인식이 생길 수 있는데, 특히 어렸을 때의 가정이나 남들로부터 배척을 받아온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정상적인 공동체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2) 가치관
가치관이란 나는 중요한 존재이며 나는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나는 내 스스로 괜찮은 인격과 능력을 지녔으며, 나의 생명은 가치가 있고,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내적인 느낌을 말한다. 이러한 정상적인 자기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자포자기 혹은 자기 학대 속에서 힘들게 삶을 방치하게 된다.
3) 자신감
자신감이란 나는 무엇이건 완벽하진 않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해 낼 수 있다는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을 말한다. 말하자면 나는 나의 인생을 헤쳐 나갈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인데 이러한 정상적인 자신감이 결여될 때 많은 삶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우선 낮은 자존감으로 인하여 상대적 열등감에 빠질 수 있고, 따라서 그의 비상한 잠재력과 능력이 전혀 개발되거나 꽃피지 못한 채로 안개처럼 사라질 수가 있다. 또한 건전한 자신감의 결여는 우리의 꿈을 약화시키거나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결정적 방해를 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도 없고,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리화 할 수도 있고 자포자기에 빠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건전한 자신감의 결여는 건전한 대인관계에도 악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를 열등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고립되게 될 것이고, 사람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게 만들 것이며, 따라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외된 방관자가 될 것이다.
또한 지나친 자신감의 부재는 건전한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봉사의 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교사나 성가대, 전도 혹은 간증 등등의 사역에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건전한 봉사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
마치는 말
가장 건전한 자기 인식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 즉 소속감과 가치관 그리고 자신감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예를 들면 자신감은 많은데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든지, 소속감과 가치관은 분명한데 자신감이 너무 부족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부조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적치유 특강<3> -Johari의 마음의 창(1)
들어가는 말
인생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누구인가를 다루는 존재론과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목적론, 그리고 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루는 가치론과 나는 어떤 방법으로 인생을 살 것인가를 다루는 방법론 등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의 향방을 결정짓는 자아인식의 과정이 어떤 정보에 의해서 그리고 어떤 경로를 통하여 내게 형성되었는지를 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성경은 심리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heart)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J. D Douglas가 편집한 New Bible Dictionary에 보면 성경에는 마음(heart)과 관계있는 'leb'나 'lebab'와 같은 단어들이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마음이나 정신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mind'가 약204회, 주관과 의지를 상징하는 'will'이라는 단어가 195회, 감정이나 정서를 설명하는 'emotions'의 의미가 166회, 그리고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인격이나 개성이라는 말의 'Personality'가 쓰인 곳은 모두 257회나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며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물론 여기에 대한 완전하고도 완벽한 대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통해 우리 마음을 부분적으로라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단계는 Johari(Joe Luft, Harry Ingham)가 마음의 창이라고 부르는 네 개의 창(four window)을 이용하여 우리 마음속에 있는 네 개의 영역(four area)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 도표는 인간의 마음을 4개의 창으로 비유한 Johari의 이론을 내적 치유적인 관점에서 마음의 영역으로 재해석 한 것이다.
자신 타인 |
알려진 영역 |
숨겨진 영역 |
알
려
진
영
역 |
<1> 알려진 마음
shared area
|
<2> 소경의 마음
blind area |
숨
겨
진
영
역 |
<3> 숨겨진 마음
hidden area |
<4> 알려지지 못한 마음
unknown area |
1. 열려진 마음(공개된 영역 - 우리의 눈이 열릴 때)
우리가 처음으로 살펴볼 마음의 영역은 열린 부분(open area)이다. 이것은 나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아는 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적인 특성이나, 삶의 위치에 대해 스스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공감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감(emphathy)이지 동정(symphathy)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창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또한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의 상태이다. 실지로 우리는 이웃사람들의 이름, 직장, 나이, 고향, 취미, 얼굴, 모습, 성격, 가족 사항, 종교 등에 대해서 서로 간에 많이 알고 있다. 이렇게 전혀 감추어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마음이 첫 번째 마음이다.
2. 소경의 마음(맹목의 영역)
두 번째의 마음의 영역을 우리는 소경(blind area)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본인은 깨닫지 못하지만 타인에게는 잘 보이는 마음이다. 실지로 공동체 속에서 이러한 현상을 자주 보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단점이나, 결함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격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이기적, 개인적, 그리고 비인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불편을 느끼고 있지만 본인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성경적인 용어로 하면 자기 눈에 들보를 가진 사람인데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전혀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있는 조그만 허물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얼마나 교만한지, 까다로운지, 때론 변덕이 심한지, 그리고 그와 유사한 문제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모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겐 상당히 호의적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타인의 입장에 서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소경의 마음을 작게 조절할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시각이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은 또 다른 성격적인 문제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3. 감추어진 마음 (숨겨진 영역)
세 번째 마음의 영역은 감추어진 마음(hidden area)이다. 이것은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신만이 갖고 있는 비밀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감추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끄러운 과거라든지, 숨기고 싶은 사실, 수치스러웠던 사건들, 그리고 숨겨져 있는 죄의 문제, 자존심이나 열등감의 상처 등과 같은 경우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하면 사랑이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사랑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자기 아내를 속이고 또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경우이다. 물론 이 경우에 자신은 알지만 자기 아내는 모르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감추어진 마음의 표현은 숨겨진 의도 즉 '속셈'(hidden inner thoughts)이다. 감추어진 의도(hidden intention)란 사람들은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가 세운 목표에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속셈의 대표적인 경우는 감추어져 있는 일정(hidden window)이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회의의 관계자가 자기가 의도한 대로 결정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자료나, 사람들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회의를 주재함으로서 자기가 세운 결론으로 사람들을 교묘하게 유도해 가는 것이다.
4. 어둠의 영역 (미지의 영역)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볼 마음의 영역은 어두움의 영역(dark area)으로서 이것은 자신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의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려지지 않은 마음'(unknown area)이라고도 부른다. 내적 치유에서 다루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감추어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이며 나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만 아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오늘의 나의 자아를 만들었던 여러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나의 무의식적 반응이 나의 자아와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의식하지 못하던 가운데 내 삶을 지배하던 나의 성격까지라도 그 뿌리를 파악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마음의 영역을 밝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어둠을 이기는 것은 결국 빛의 능력이다. 그것은 빛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 곧 새로운 지식을 통하여 마음의 전체 구석을 비춰보는 것이며 그런 일들 중의 하나가 곧 내적 치유이다.
내적치유 특강<4> -Johari의 마음의 창(3)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바람직한 마음의 구조는 어떤 상태일까? 다음의 도표를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자신 타인 |
알려진 영역 |
숨겨진 영역 |
알
려
진
영
역 |
< 1 >
삶을 진실하게 나누는 상태
교회
부모
부부
사회
자아
직장
친구 |
<2> 소경의 마음 |
숨겨진 영역 |
<3> 숨겨진 마음 |
<4>알려지지 못한 마음 |
바람직한 마음의 구조
이 그림에서 보듯이 삶을 함께 나누는 알려진 영역이 자기 마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차지할수록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우선 자기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소경의 부분(blind area)이 적다. 이것은 그가 공동체 속에서 자기의 역할과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여, 적어도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삶을 살지 않는 객관적인 통찰력을 지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감추어진 마음(hidden area)도 적다. 이것은 그가 정직하며 자신의 비밀스러운 죄나 거짓말,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숨겨진 의도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들어 내놓기 힘든 자신의 부끄러움이나, 자존심, 열등감까지 모두 들어내 놓을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내면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영향력에 지배된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인격적인 판단에 따라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은 물론이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 예를 들면 부부, 부모, 자녀, 친구, 교회, 직장, 가정, 그리고 사회의 모든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없을 것이다.
위의 도표를 이용해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그려보자. 그리고 자기 마음의 상태에서 어느 부분의 영역이 많은가를 확인한 후,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 각자가 설명해 보는 것도 자기이해에 도움이 된다.
내적치유 특강<5> - 사랑과 삶의 기초
이미 앞에서 살펴 본대로 정신 분석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교육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람에게 삶의 기초가 되는 성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아기의 시절에 그 형성이 끝난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이 기간 동안에 형성되는 그 사람의 성격 내지 인격이 그 사람의 삶에 기초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때 형성된 성격으로 그들은 평생을 살아간다.
한국 속담중의 하나인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참으로 통찰력 있는 속담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누구든지 그들의 어린 시절을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상태에서 보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부모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자식은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아버지의 존재는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자리는, 어린이가 인식하는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최고의 권위자이며 동시에 절대적인 존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단계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권위자로서의 아버지의 사랑이 어린아이에게 끼치는 영향과 그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미국 육군 연구소는 군인들의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들에게 의뢰하여 군인 가정의 자녀들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그중 탈선 자녀들의 문제는 훈련이나 출장 등의 이유로 자주 집을 비우는 아버지 때문에 야기되는 '아버지의 사랑결핍' 때문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연구팀은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문제를 가지고 있는 3세에서 18세에 이르는 200명의 어린이들을 집중 조사한 결과 '아버지 사랑의 결핍'이 그 중요한 원인임을 밝혀내고 그 문제 어린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를 7가지로 작성하여 보고하였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증세가 치료되지 않을 경우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원만하지 못한 성격으로 발전하게 되어 그들을 괴롭힐 수 있고, 또한 이것이 지나칠 경우 사회적인 증세로 전환되어 각종 범죄와 불미스러운 일들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번 단계에서는 미국 육군 연구소의 자료를 토대로 해서 어린 시절에 충분히 체험하지 못했던 사랑의 결핍이 어떤 증세를 보이며, 그 증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해 봄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1. 분노, 격노 (Rage)
우선 이 보고서가 보여주는 첫 번째 반응은 분노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미 육군 병사가 출장을 갈 경우 출장 한 번에 평균 6개월 정도 임무를 띠고 출타하게 되는데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출장을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떠나간 것이고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이 떠난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인식한 최초의 권위자가 자기를 보호하거나 사랑해 주지 않고, 멀리 떠나간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동시에 다른 가정의 아빠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서서히 분노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치료되지 않고 반복해서 경험되어질 때 이 분노는 자기 나름대로의 표현 방식을 갖추고 마음속에 남아서 자리를 잡는다.
일반적으로, 분노란 외부에서 들어온 도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어떤 특정 부분이, 감정의 도움을 받아 어느 한 순간에 폭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분노의 감정에 시달려온 사람들은 작은 자극에도 분노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분노란 첫 번째 감정이 아닐 수 있다. 진짜 분노의 이유는 내면적인 과거의 상처, 예를 들면 배신, 거절, 실망, 고통, 열등감, 약점 등의 과거의 상처가 이미 있는데 다른 감정적인 도전이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의 뿌리를 건드려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때때로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점에선 '의분'처럼 필요한 분노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분노는 상습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나 작은 일에도 금방 흥분하는 사람들, 얼굴이 변하고, 소리를 지르며, 특별히 분노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보여 지는 감정의 표현을 말한다. 이러한 분노의 감정이 치료되지 않고 발전할 경우, 그리고 방치될 경우 이러한 감정은 범죄의 충동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실지로 자신의 삶에 불만족하고, 그 마음에 언제나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은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도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이러한 경우 쉽게 범죄 행각에 빠져들게 된다.
2. 부인하는 태도와 아빠에 대한 환상 (Denial and Fantasy)
아버지가 멀리 출장 간 아이들이 보여주는 두 번째 반응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멀리 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혹시 와줄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에게 아빠가 언제 오는가를 자주 묻게 되고 아이는 계속해서 아빠를 기다리지만 아빠는 돌아오지 않고,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고 점점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학교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혼이 났을 때, 그리고 친구들과 싸움을 했을 때, 그리고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됐을 때 집에서도 그 아이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아이는 할 수 없이 자기 스스로 위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디오, 책, 컴퓨터, 라디오, 친구, 공상, 술, 담배, 마약, 이성 등에서 자기를 위로해주는 다른 요소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상한 아이들은 때론 방문을 걸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아무도 채워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우리는 이것을 자기연민이라고 부른다. 이때쯤에서 아이들은 자위행위를 하기도 하고 자기 연민의 방법으로 반항을 선택한 아이들은 이때부터 비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기 연민의 방법으로 중독성이 강한 담배나 술에 손을 대서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리면, 후에는 조금만 감정의 기복이 와도 자극의 종류에 관계없이 술과 담배를 찾는다. 그리고 술과 담배는 모든 종류의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내는 도구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이 경우에 근본적인 마음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의지로는 술과 담배를 끊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 신부나 목사들 가운데서도 본인들이 이미 성직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되고 가끔은 이성적인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을 수 있다.
3. 재회의 시도 (Reunion Attempts)
아버지가 멀리 떠나 오랫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느끼는 다음의 감정은 빨리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그래서 "아빠가 빨리 돌아오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도 해보고 엄마에게 보채도 보지만 현실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때의 어린이는 아버지가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며, 아버지에게 자기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래서 아버지가 자기를 두고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없을 때에 저질렀던 자기의 잘못된 행실, 즉 자기위로의 방법으로 발전시킨 죄에 대한 죄의식 속에서 아버지가 떠난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동시에 엄마까지 떠날까봐 지나치게 엄마 주변을 맴돌게 된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부재로 인해 겪은 아픔이 어머니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강박관념으로 자라게 되어, 어머니를 비롯한 그 외의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예를 들면 돈, 친구, 쾌락 등을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소유 지향적 성격으로 자랄 수도 있고, 때때로 성인이 되어서도 지나친 소유욕을 갖게 되는 배경에는 이런 원인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베이비시터에게 맡겨지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자기의 부모에게 집착하고, 애착을 갖는 것을 종종 목격하는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아이들은 강렬한 재결합을 시도하고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지나친 소유욕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인에게 나타나는 지나친 탐욕이나 소유욕은 어떤 면에서 사랑의 결핍에서 올 수도 있다.
4. 죄의식 (Guilt)
네 번째의 감정은 죄의식의 감정이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분노의 감정이나 자기 연민의 방법이 제대로 해소되지 아니할 때에 계속되는 비행, 예를 들면 범죄, 거짓말, 도둑질, 싸움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 경우에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죄의식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린아이나 청소년이 자기의 죄의식을 처리하는 방식이 지극히 자학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무도 자기의 비행을 잡아주지 않을 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학대하게 되어 더욱 나쁜 차원의 범죄나 더 큰 비행을 저지름으로서 아예 비행 청소년으로 급히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행의 초기 단계에 있는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기들을 잡아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스스로가 이미 자기 정죄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특히 권위자가 자기를 책망해 줄 때 차라리 해결해야 할 빚을 갚은 것처럼 평안한 상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 혹은 자아연민으로 인한 비행이나 그로 인한 죄의식이 적당한 책망을 통해 해결되거나 다스려지지 않을 때 점점 더 반항적이 되고 혹은 의기소침, 우울 등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범죄나 비행은 초기에 막아야 하고 지나친 체벌은 또 다른 상처를 야기함으로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죄의식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5. 두려움 (Fear)
그 다음에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장기적으로 집을 비운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아빠가 떠났는데 엄마까지 떠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감정적인 억압이 스트레스, 노이로제 혹은 열등감 등으로 나타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의 아빠를 자랑스럽게 갖고 있지만 자기는 없으며, 이제 마지막 남은 나의 보호자인 엄마까지 떠난다면 정말 큰일인 것이다.
결국 이 두려움 때문에 엄마를 지나치게 따라다니며 소유하고자 시도하는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엄마대로 자기를 성가시게 하는 아이가 귀찮기 때문에 "귀찮게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게 되고, 이 아이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점점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후에라도 사랑으로 녹아지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면 가면 다행한 일이지만 만약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자기도 원인을 모르는 채 불안한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성격으로 고착이 되면 또 다른 행복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 혹은 자신의 삶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지나친 통제와 억압 혹은 간섭이 심해 질 수도 있고 삶의 모습이 낙천적이기 보다 지나친 염려 즉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확률도 별로 없는 여러 종류의 불미스러운 결과들을 지나치게 걱정해서 소극적인 성격으로 고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험적으로 인생을 살기보다 무사안일주의의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아빠가 일찍 죽었거나 이혼 혹은 별거로 인해 마지막까지 권위자의 사랑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자신도 실패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동거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실패할 필요가 없는 독신으로 살아 갈 수도 있고 지나치게 배우자를 보호하고자하는 과잉보호가 이루어 질 수도 있으며, 이것이 병적으로 집착되면 의부증이나 의처증과 같은 신경성 노이로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귀찮아서 거절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엄마가 원하는 수준 즉 얌전히 있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는 것과 같은 엄마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고 이런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신자들은 좋은 믿음을 가져야만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집 나간 탕자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머리로는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그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6. 충동과 폭발에 대한 욕구 (Impulse Changes)
그 다음에 느끼는 감정은 순간적 충동, 혹은 폭발에 대한 충동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억압의 마음이 육체로 나타나게 되어 육체적 충동, 무절제, 통제 불능의 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음식을 빨리 먹거나 많이 먹을 수도 있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거나, 자위행위를 비롯한 성도착증세를 보일 수도 있고, 오줌을 싸기도 한다. 특히 오줌을 싸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오줌을 참으려 하는 절제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에라 싸버리자!" 라고 하는 무의식적인 충동으로 인해 오줌을 싸는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이미 소변과 대변을 가렸던 아이들이 다시 오줌을 싸는 아이들에게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스트레스를 발견할 수 있었고 깊이 잠이 들어서 자신의 이성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곧 잠을 자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억눌려있던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폭발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채우지 못한 것을 육체적으로 채우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계속 발전할 때 스스로를 절제할 수 없게 되고, 디스코 장에서 현란한 불빛과 귀가 터질 것 같은 음악을 들으며 소리를 지르고 몸을 광란적으로 비틀고 흔드는 일은 처리되지 못한 감정을 육체적인 방법으로 채우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행동이 무절제하거나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거나, 이미 치유를 받아야할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아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7. 퇴행 혹은 미성숙 (Regression)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는 역행 혹은 퇴보의 증세를 보고하며 이것이 해결되지 못하면 정신이상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팀들은 권위자와의 별거로 인한 상처가 너무 큰 나머지 정상적 생활 즉 먹고, 놀고, 사귀는 일 등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회피하는 아이들에게서 자궁 속의 태아처럼 비교적 안전한 느낌을 주는 상태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발견해 냈다. 이것이 지나칠 경우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오히려 도피하여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환상적인 공상에 빠지게 되고 이것이 고착되면 혼자만의 세계에서 사는 정신병으로도 발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는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치료되지 못한 내적 상처로 인해 성인이면서도 미성숙한 어린이 같은 행위 속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이것이 이미 위에서 살펴본 Adult child의 전형적인 실례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충분한 사랑이 결여되었던 사랑의 결핍에 대한 어린 시절의 미숙한 반응들이 치료되지 않고 성인이 되면 아래의 도표와 같은 성인아이의 사회적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노 ☞ 살인, 자살, 범죄, 갱,
부인하는 태도와 아빠에 대한 지나친 환상 ☞ 자기 연민, 나쁜 습관
재회의 시도 ☞ 지나친 소유욕, 탐욕,
죄의식 ☞ 반항, 자학, 범죄
두려움 ☞ 소극적, 부정적, 지나친 염려와 통제, 노이로제
충동과 폭발에 대한 욕구 ☞ 무절제, 통제 불능, 정신 분열, 대형 사고
퇴행 혹은 미성숙 ☞ 전형적인 성인아이, 정신 이상,
사랑과 삶의 기초
미국 육군 연구소는 종교기관은 아니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본다면 모든 인간의 삶의 기초는 결국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격이나 성격의 기초는 그들이 지극히 어렸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이 권위자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질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위자로부터 물려받거나 혹은 반응을 보임으로 고착되어 가는 것이 그의 성격이 되고 이것이 그의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권위자가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영향력은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정상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이 지나쳐서 과잉보호가 된다던가 아니면 충분하게 충족되어지지 못하면 우리의 삶의 기초는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살펴본 미 육군 연구소 팀의 보고내용은 연구의 대상자가 단순한 군인으로서 장기적인 출장을 가는 가정에 국한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이거나, 상습적 도박꾼, 가정학대자, 마약 중독자, 거기에다 무능하거나, 병약하고, 노골적으로 부도덕하고 음란한자, 근친상간을 행하는 아버지, 혹은 아예 부모가 없이 고아로 자란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의 기초를 세우는데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내적치유 특강<6> -거절에 기초한 마음의 벽 - 수동적 태도(1)
Introduction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Dr. Brace Thompson도 권위자에 대한 반응을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수동적인 태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능동적인 태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동적 태도란 권위자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권위자로부터 오는 충고, 권면, 책망, 비판 등을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태도이다. 이런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나를 좋아하도록 나의 태도를 바꾸겠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권위자로부터 거절당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이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기초는 거절이다.
방어의 벽의 또 다른 형태는 능동적 태도이다. 이것은 공격적이고, 반항적이며, 이런 사람들은 "당신이 나를 아프게 하면 나도 당신을 아프게 하고, 당신이 나를 아프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을 아프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동적 태도와 능동적 태도로 이루어지는 방어의 벽은 그 기초가 거절과 반항이라는 양극단으로 나뉘게 되어 인간에게 있는 이성, 감정, 의지, 마음, 태도, 개성, 그리고 영혼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이것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슬픔
이 도표를 간단히 설명해 보자. 우선 '거절'에 삶의 기초를 둔 수동적인 방어의 태도를 살펴본다면, 일단 이것은 수비적인 태도로서, 권위자에게 대항할 힘도, 용기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서러운 슬픔에 쌓이게 된다.
예를 들면 난폭한 아버지에게 대항하여 싸울 수도 없고, 가출할 용기도 없으며, 전혀 반항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외부로 표현하려고 하기보다 내면적으로 감추기 시작하며, 동시에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거절함으로서 자기를 보호하기 시작한다. 이 경우에 거절에 대한 양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권위자로부터 거절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권위자의 뜻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며, 동시에 권위자의 요구나 행위가 부당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따르긴 하지만 내 마음에서는 당신을 거절한다는 것이다.
2. 자기연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느 쪽이든 대항할 힘이 없어서 강제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사람은 그 마음에 슬픔이 쌓이게 되고, 이러한 자기만의 슬픔을 경험하게 될 때, 이미 위에서 언급한 자기 연민의 감정에 빠지게 되어 역시 자기만의 방법으로 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행은 공격적인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비행이란 원인에 관계없이 마음이 상한 사람이 자기의 상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의 상한 마음을 드러 내는 표현이며, 나를 상하게 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복수도 되는 것이다. 한국 속담에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은 바로 이 경우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3. 자기증오(혐오감)
또한 어린아이가 타인에 의해 거절을 당할 때, 예를 들면 권위자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문제는 심각해진다. 예를 들면 근친상간을 당했거나, 지나친 폭행, 혹은 감정적인 무시나 멸시 그리고 거절을 권위자로부터 경험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자는 권위자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음을 안다. 그리고 들어낼 수 없는 죄의식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며, 더 나아가 그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는 본인 자신이지만 오히려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고 그 결과 기가 죽으며 자연히 활기, 원기, 의욕 등이 상실되고 실의에 빠질 수 있다
4. 실의와 무관심
이것은 피해자가 결정적 사건이 없었더라도 권위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고 이 경우에 자연히 모든 의욕이 저하되고, 자신감의 상실과 아울러 모든 것이 귀찮아 무관심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실의에 빠져 있는 여인이라면 밥도, 청소도, 설거지도, 아이를 돌보는 것도 모두 귀찮을 것이다.
5. 열등의식
또한 권위자로부터 체벌이나 책망을 통해 거절감을 너무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열등의식을 느끼거나 실패의식을 갖기 쉽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 쉽다. 특히 어린 시절에 비판적인 말을 많이 듣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특히 자신감의 상실과 열등의식을 갖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너는 머리가 나쁘다", "너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다", "너는 잘 못 생겼다", 혹은 너는 나쁜 애다", "너는 너무 멍청하다", "네 형을 봐라", "옆집의 아이를 봐라" 등의 비판적인 말이나, 비교하는 말을 듣고 자라게 되면 자동적으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생기게 될 것이다.
6. 불안정
어린아이들의 특성중의 하나는 미성숙이다. 그런데 성숙한 판단과 생각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권위자로부터 받았다면 어린아이는 자기 통제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더욱이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도 부모의 기분에 따라 부모의 태도가 달라진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지 혼돈스럽게 될 것이며, 이런 일이 반복될 때 아이들의 성품은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7. 실패자 의식
만약, "너는 매사가 도움이 안 된다"거나, "너는 쓸데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정말 쓸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또한 꼭 그런 말을 듣지는 않았더라도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당하는 느낌으로 자라게 되거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감정을 갖게 될 때도 자신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비판적인 분위기 속에서의 목사는 의욕상실, 자신감 상실, 기쁨상실, 보람상실, 목회상실, 부흥상실, 은혜상실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8. 죄의식
거절 당하고 있다는 아픔과 더 큰 아픔을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거절하겠다는 무의식 속에서 삶의 기초가 생성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이며, 따라서 이제부터 자기혼자 자신을 위로하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주의적인 태도나 이기적인 태도 그리고 비행 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양심의 경고 즉 죄의식이 생기게 될 것이다. 문제는 죄의식이 생길 때 많은 경우의 사람들은 오히려 이 죄의식을 무시하고, 양심의 경고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발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바로잡지 못하면 비행 청소년이나 범죄자로 발전되어 갈 것이다.
거절에 기초한 마음의 벽- 수동적 태도(3)
9. 침침함
그가 누구든지 자신이 거절되었다는 강한 아픔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 거절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자신은 거절을 받을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는 생각 속에 진정한 삶의 희망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살아야 할 이유, 특히 바로 살아야할 특별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가운데 삶에 대한 그의 희망은 서서히 소멸되어 갈 것이다.
10. 낙심
여기서 말하는 낙심이란 단순한 작은 실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희망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한다. 삶에 대한 총체적인 낙심을 의미하며 그 마음을 실패감과 허무감에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긍정적인 영향력이 없이는 스스로 일어나기 힘든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11. 자살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릴 만큼 거절감이나 아픔을 당한 사람의 마지막 길은 자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자기의 인생을 마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자살이란 육체적인 자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살의 세 가지 차원을 생각해 봐야한다.
첫째는 영의 자살이다.
거절로서 삶의 기초를 쌓고 극단적인 낙심과 배신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실망을 삶 속에서 경험해야 했다면 그 아픔의 강도로 봐서 영의 자살이란 자연스러운 결과일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살아남아야 할 이유도 없고, 삶을 지탱할 힘도 없는데 자기 스스로 영적인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양심의 포기를 의미하며 따라서 죄의식의 상실을 의미한다.
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며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선악의 판단자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적인 본능과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으로 자기의 길을 삼고, 죄, 양심, 타락과 같은 영적인 주제들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닐 수 있다.
두 번째는 감정적 자살로서 이 경우 마음의 문을 닫고,
감정의 역할을 마비시키게 된다.
흔히 말하는 "바늘로 찔러봐야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란 말은 어떤 점에서 보면 이미 그 마음에서 감정의 역할이 마비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정의 자살이란 '무감동' 혹은 '무관심' '무흥미'의 옷을 입고 우리의 삶에 기초석으로 서 있을 수도 있다. 갱단이나 살인 청부업자 혹은 매춘부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하는 교인들 가운데의 일부는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도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말 그대로 자살을 하는 것으로써 육신의 자살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절망과 함께 완벽한 희망의 상실, 완벽한 감정의 차단 속에 냉정하고 비정한 아픔 속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