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
1, 삶을 괴롭히는 마음의 상처
나이 서른 다섯 살인 김 집사는 오랫동안 열등감과 좌절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필자가 김 집사를 만났을 때 그는 자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외가의 도움으로 좋은 직장을 세 곳이나 들어갔었지만 한 달을 못 채우고 나와야 했습니다. 이유는 직장 상사와의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직장 상사의 가벼운 꾸중에도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김 집사를 용납해 줄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의 과격한 분노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건강한 사람과 병적인 사람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화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병적인 사람은 자신의 화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병적인 사람은 화가 일단 발동하면 화에 끌려 다니면서 시달림을 받습니다.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이 김 집사는 병적인 사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미움의 원인과 치유
무엇이 김 집사로 하여금 그렇게 발작적으로 화를 내게 하고 그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하게 하는가? 그 원인은 김 집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성적통지표를 받아오는 날이면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아야 했고 저녁을 굶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구타와 욕설은 어린 아들의 성적을 더욱 떨어뜨렸고 이를 본 아버지는 미친 듯이 아들을 괴롭혔습니다. 초등학교 3년 반 동안 아버지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른 다섯의 나이로 접어들었는데도 김 집사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김집사에게 몇 가지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첫째, 어른들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깊이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는 극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히게 했습니다.
필자가 내적 치유 그룹에서 김 집사에게 시도했던 방법은 먼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지만 김집사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감정을 상당히 밖으로 내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어린시절로 돌아가 아버지로부터 고통 당하고 있는 자신과 예수님이 함께 만나도록 도왔습니다. 그 다음 김집사로 하여금 돌아가신 아버지를 상상 속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도록 했습니다. 물론 김집사가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십 오명의 형제 자매들이 함께 아파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찬양했던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김집사는 자신의 아픔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변화의 삶이 싹을 트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 설교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확신이 없는 자는 불안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며 불안은 만병의 근원임을 내다 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절망을 느낄 때 위의 소화 활동을 돕는 염산과 펩신을 분비시키지 못 한다고 합니다. 염산과 펩신의 적당한 활동은 위 속의 음식물들을 부패되지 않게 하는 작용을 하는데, 절망과 불안이 있는 사람의 위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둔화된다고 합니다. 이럴 때 위에 있는 내용물이 부패를 일으키게 되어 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반면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위장은 붉게 변한다고 합니다. 절망의 감정일 때 염산과 펩신이 잘 나오지 않는 반면,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게 되면 염산과 펩신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위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때 위 속의 염산을 빼어내서 여러 겹 쌓은 천 위에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구멍을 뚫어버릴 정도로 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들은 위에 관계된 질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화해와 용서
필자가 켄터키 루이빌 의과대학에서 상담공부 할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부부가 이혼을 하면서 하나 있는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헤어졌습니다. 아이는 6살 때 부터 양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불행히도 양부모가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에게 매를 때리고 심지어는 가두어 놓고 하루 이틀씩이나 팽개쳐 둔 채 나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는 날이면 자기를 버리고 떠난 부모가 더욱 더 원망스러워 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는 그 집을 뛰쳐나왔고 12살부터는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슴 깊이 사무친 원한은 드디어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위병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급기야는 위를 절단하게 되었고 수술결과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퇴원을 한 후 8개월 만에 청년은 다시 위 통증으로 입원하게 됩니다. 그나마 남은 위가 만신창이가 되어 남은 위의 절반마저 다시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청년의 수술을 앞두고 몇 명의 의사들이 의논한 결과 또 한번의 수술로 이 청년의 위병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청년의 위병은 이제 수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정신과적 치료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원목실에서 치료를 담당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통한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담한 결과 이 청년의 병은 자신을 져버린 부모에 대한 원한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완치를 위해서는 이 청년이 친부모에게 가지고 있는 분노를 없애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수소문 끝에 찾고 보니 아버지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와 아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져는데 처음 며칠간은 이 아들이 어머니를 쳐다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울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냉랭하게 어머니를 대하던 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약간씩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용서하면서 화해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지난 후 이 청년의 위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위 벽을 손상시키던 강한 산성의 소화액이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위는 스스로 치유의 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일 또 한번의 절단 수술을 했다면 음식물을 소화시킬 위가 없어서 얼마 살지 못했겠지만, 어머니와의 화해를 통해 내적치유가 이루어진 이 청년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만남이 한 청년에게 삶의 의미를 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믿음, 소망, 사랑이라 보았고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적치유의 보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의 보약으로 사람들을 치유하셨고 지금도 치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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