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

[스크랩] 십자가 영성을 회복하라(원본)- 제1장 나는 십자가 없는 종교인이었다 1

하나님아들 2012. 7. 31. 22:37

제1장 나는 십자가 없는 종교인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전하려면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자가 필요하다. - 콜터-

너무나 부끄럽게도, 나는 놀라운 십자가의 은총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예수를 믿은지 40여년 만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십자가 없는 종교인으로 살았던 셈입니다. 나는 1965년, 유치부 때 당회장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냥 교회가 좋아서 주일마다 교회 출석에 열을 올렸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열심을 낸 유치부 꼬마에게 동네 사람들은 "목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그후 초등학교 시절에 3년간 교회를 끊었습니다. 소위, 시험에 든 것이지요. 연말에 나보다 결석을 많이 한 집사님 아들은 상을 받는데 나에게는 상을 주지 않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은 겁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추첨에서 미션 스쿨에 배정되는 바람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40여년간 신앙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나의 신앙 여정에서 십자가 없이 살아왔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한 가지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시기가 40살 이후였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바울도 40여년을 율법 종교에 매여 헛된 것을 추구하며 살았다니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됩니다. 나도 40여년을 십자가 없는 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이제야 십자가의 은총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많은 시간들과 긴 세월 동안 십자가 없이 신앙 생활해온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사실 이 글은 십자가를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나 자신을 향해 쓴 글인 셈입니다. 오늘날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성도들이 십자가를 잃어버렸다는 말들은 바로 나 자신에게 던진 고통스럽고 뼈아픈 비평입니다. 잠시, 십자가 없이 살아온 부끄러운 나의 이력을 고백해야겠습니다.

부끄러운 신앙 이력서

나는 1985년 5월 12일 27살의 청년 시절에 교육전도사로 교회 사역을 사작한 지 올해로 25년째입니다. 내 삶의 절반을 교회에서 보낸 셈입니다. 그 깨알같은 시간들을 십자가 없이 살아왔으니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축복의 길에 서 있으면서도 나는 모든 것을 육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더 큰 성공을 향해 줄기차게 뛰어왔습니다. 돌아보면, 목양의 성공에 몰두하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십자가는 내 뒷전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명성을 위해 정신없이 살다보니 십자가는 내 인생의 밑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있었습니다. 나는 십자가와 영광 사이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 불구자 신앙인이었고, 불구자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육의 목회자, 세상적인 목회자였습니다. 목회자라는 이름조차도 과분하여 그냥 종교인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008년 5월 18일, 나는 십자가의 신학보다는 영광의 신학만을 추구하면서 균형을 잃은 채 비틀거리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나는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1997년 유학을 마친 후부터 시작된 담임목사 사역을 11년간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 원래 나는 건강 체질인데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지칠줄 몰랐습니다. 서글프게도, 나는 그 모든 열심과 부지런함을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였습니다. 강의와 집회 때마다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부르짖었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을 탐구해서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내가 쓴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내 능력으로 살았고, 내 지식으로 목회했습니다. 내가 배운 신학을 의지했고, 나의 도전 정신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몸부림을 쳤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나의 방법이었고, 나 외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투성이었습니다.

지난 10여년 간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에게 목양과 저술, 강의와 집회 등에서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항상 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뒷전에 밀려 있었던 셈이지요. 그 이유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텐데, 모든 것이 나의 능력에서 온 것인줄로 착각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천한 나에게 지금까지 남다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분에 넘치는 사랑이요,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채워져도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면서 모든 능력을 발휘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새벽 기도 후 연구실에 들어가서 집필을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여 직원예배를 마친 다음에는 심방 강의 모임 설교 준비 등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루의 일과 마치고나서도 매일 저녁 11시-12시 경까지 집필로 10여년을 보냈습니다. 주일조차도 오후 예배 후 저녁 늦은 시간까지 집필과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마치 조지 휘트필드가 옥스퍼드 대학 시절에 하루를 세등분해서 8시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8시간은 이웃을 위해서, 8시간은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살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처럼, 나 역시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오로지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사는 것은 좋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한 일중독증 환자가 되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성공을 위해서 도전에 도전을 거듭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목욕탕에 가서도 불안하여 단 몇 분을 앉아있지 못할 정도로 일을 하지 않으면 잠시도 견딜 수 없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에 바쁜 목사를 교인들이 그냥 놔둘리 없지요. 교인들은 목사에 대해서 험담하기 일수였고, 서슴없이 덤기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마치 고삐풀어진 망아지처럼 마구잡이로 대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당회원들도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당회나 제직회 때면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혈기 충만하여 싸움에 만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열정적인 설교가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논리적인 설득력, 거침없는 말들, 열정적인 메시지, 남다른 열심과 성실성 등이 특유의 장점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장점들을 무기로 삼아 나는 어려운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늘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였습니다.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바쁜 목사가 좋은 목사인줄로 착각한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어느 사이에 교인들과의 교감이 상실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강한 리더쉽과 늘 분주한 삶의 스타일, 그리고 독선과 아집 등으로 인해 이미 교인들과 소통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그 결과 내가 훈련시켜 세운 권사들, 내가 사력을 다해 기도하고 준비하여 안수해 세운 집사와 장로들도 거침없이 대항하곤 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가정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포기한지 오래였고, 딸과 아들 조차도 이미 아버지를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이 심각하고 무너지고 있었지만 나는 명성과 성공을 위해서 가족들을 버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개척하기 위해서 교회를 사임했다는 폭탄같은 소식을 들었으니 온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마치 천길 아래의 낭떨어지로 떨어져버린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절망, 고통, 아픔, 좌절 등의 강풍이 온 가족들을 혹독한 광야로 몰아내버렸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 살면서 아내도, 자녀들도, 교인들도 버린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던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날마다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살아온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확연하게 나타났습니다.

당당하게 교회개척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개척은 고사하고 가정이 더 일그러져버렸습니다. 참담하고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강단을 떠나고보니 그렇게도 당당하던 내가 순식간에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교만이 가져다준 쓴잔이었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잠11:2)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잠9:12)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교만과 거만입니다(잠6:17, 8: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만에 붙들려 살았습니다. 교만의 노예로 산 겁니다. 더욱이 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반기를 든 것은 왕의 범죄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령, 므낫세왕의 아들 아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그 신복이 반역하여”(대하33:23-24)

나에게 거친 목장은 나를 단련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지팡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적 비밀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교인들이 이리처럼 목사에게 대항한 것은 목사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거지요. 그런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다윗에게 주셨던 말씀에도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4)

그렇습니다!. 영광과 존귀의 자리에 있다가 어느 날 험한 광야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분명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람의 막대기로 징계하신 겁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인한 모든 악행들, 불순종과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 삶, 그리고 교만함 등의 죄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패잔병처럼 초라하게 일그러져버졌지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10여년 동안 지켜왔던 강단을 떠나 있었으나 나에게는 저술이라는 무기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늘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런 자신감으로 곧바로 집을 나와 사무실을 차려놓고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또 다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돌아볼 틈도 없이 다시 일중독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개척의 뜻을 이루지 못한 허망한 꿈을 글쓰기에다 쏟아부은 겁니다. 마치 유학 시절에 공부에 몰두했던 것처럼, 매일 10시간 이상 때로는 18시간씩 저술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밤낮으로 저술에 몰두하던 중 노회 내에서 분쟁 중인 교회의 당회장으로 파송되었습니다. 싸움이 싫어서 교회를 사임했으면서 또다시 싸움판에 뛰어들었던 겁니다. 그 알량한 자신감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4개월 동안 진흑탕 속에서 싸움을 거듭하다가 당회장 사표를 냈습니다. 싸움 중에 각종 음해와 거짓 소문, 비방 등으로 내 명예가 땅에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또다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당회장 사표는 마지막 남은 한 줄기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이끌던 노회측 교회가 세상 법정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교회당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노회로부터 면직을 받은 목사가 불법으로 교회당을 차지하고 있다고해도 싸움을 하면서까지 그 교회당을 차지하려고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당회장직 사표를 내자 하나님의 손길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떠난지 8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는 정신적인 충격과 흥분으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어렵풋이 느꼈지만 그 섭리에 순응하기 보다는 저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글쓰기와 자신감을 무기로 목회보다는 돈벌이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해오던 위한 은사님에게 추천서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개혁주의 신학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자를 향한 애정어린 충고였고,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야 비로소 나혼자 서 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떡을 나눠먹던 가까운 친구까지 자신을 떠나 대적한다고 한 말씀(시41:9)을 뼈져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날 나는 약 30여년간 믿었던 스승조차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 혼자 임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외로움이 몰려오고, 절망감이 봇물처럼 밀려왔습니다. 현실은 너무나 차가왔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고나니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까이 사람들도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선배들, 동역자들, 후배들은 모두 제 길을 가고 있을 뿐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게 된 것입니다.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면서 그때부터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녁 곧바로 죽을 각오를 하고 철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40일의 축복, 내 눈물을 보았노라

그렇게 시작한 40일 철야 기도일지는 <40일의 축복, 내 눈물을 보았노라>는 기록으로 남겨뒀습니다. 첫날부터 통곡과 눈물로 40일을 보내면서 특별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때의 은혜를 지면 관계상 몇 개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2009년 2월 2일 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한결 가벼웠다.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인지 무언가의 짐이 점점 무거워옴을 느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맥체인 성경읽기표》로 말씀을 읽은 후 시편 30편을 묵상했다. 지난 화요일 오전 내내 감격과 눈물을 자아내게 해 준 그 말씀을 다시 펼쳐 들고 다윗을 생각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다윗은 태평성대를 누릴 때 사단이 그 마음을 격동함으로써 인구 조사를 감행했다(대상 21장).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악하게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치셨다(대상21:6). 그때야 다윗은 죄를 회개하고 통회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눈물로 부르짖었으나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 일어났다. 전염병으로 죽은 백성들이 무려 7만명이나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서 떨며 기도할 뿐이었다. 하나님의 노염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회개하며 부르짖었던 말씀이 바로 시편 30편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다윗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천상을 찌를 듯한 교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다윗이 바로 나였다!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다윗에게 투영된 나를 보면서 통곡하며 울었다. 오전 내내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는 말씀이 내 심령을 찔렀고, 영혼 속에 파고들었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교만을 회개하며 다시 눈물로 간구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했다. 강단을 떠난지 8개월만에 주신 놀라운 깨달음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제야 지난 세월 동안 육을 따라 목양했던 교만을 회개했다. 하늘처럼 높아지려 했던 거만을 통회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만을 자복했다. 생명의 말씀없이 설교했던 오만을 생각하며 통곡했다. 십자가 없이 살아온 무지와 십자가 없이 목양해 온 악행을 통회하고 또 통회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노염은 은혜의 출발이요, 진노는 사랑의 채찍이었다. 노염과 은총의 간격을 잇는 다리는 회개 뿐이다. 통회하고 자복하는 길만이 노염을 그치고 은총을 회복하는 길이다. 철야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09년 2월 3일 화

이틀째여서인지 첫째 날보다 더 활짝 기도문이 열렸다. 다시 회개가 터져 나오고, 눈물이 쏟아졌다. 영혼을 무기력하게 하던 죄악들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죄들이 영상처럼 스쳐갔다. 셀 수조차 없지만 생각나는 죄들을 하나씩 고백하며 회개했다. 새벽 시간까지 눈물로 부르짖을 때 영혼의 샘터에서 말씀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상한 마음을 귀히 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눈물이 쏟아졌다.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는 아버지의 품을 묵상하면서 눈물로 부르짖었다. 애굽의 압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그들을 기억하신"(출2:25)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도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통곡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눈물을 보셨다(사38:1-5).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사38:5).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분을 만홀히 여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면서 그냥 울었다. 내 자신을 우상으로 삼고, 내 능력을 탐심으로 삼아 육신을 따라 목양했던 것을 통탄했다. 영적 거장들의 삶을 탐독해 왔지만 정작 내 영혼은 철저하게 세속적이요, 정욕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글들을 집필하면서도 내 심령은 그토록 차겁게 얼어붙어 있는 줄 몰랐다. 가증한 모습, 외식해 온 자신을 보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

히스기야가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구한 것처럼, 지극히 부족하지만 주 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들을 기억해 달라고 구했다. 하지만 주님 앞에 내놓을만한 어떤 선행도 없었다. 주님 앞에서 행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나 자신의 광과 명예와 안락을 위해서만 부지런히 뛰어왔던 것이 아닌가! '그럴 바에 차라리 목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자책으로 울고 또 울었다.

 

2009년 2월 4일 수

기도 중에 묵상한 말씀이 영혼을 헤집어 놓았다. 더 이상 기도를 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웠다. 가슴이 아리고, 심령이 쓰라려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사60:10). 한 시간 내내 말씀 앞에서 신음하며 고개를 흔들며 부르짖었다.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같이 슬피울며 탄식해도 두려움 뿐이었다.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노하심을 거둬 달라고 울며 간구했다. 기도하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자백한 말씀을 다시 묵상했다.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서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사59:12).

하나님의 노하심은 죄 때문이다! 드러난 죄, 은밀한 죄, 감추어진 죄, 숨겨진 죄 등 등!! 어느 사이에 죄에 둔감해져 버린 내 영혼을 움켜쥐고 부르짖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개가 사라졌고, 말씀도 잃어버렸다. 진지한 기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성령 충만한 삶,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도 거리가 멀었다. 하나님께서 감당할만해서 맡겨주셨는데 '거친 목장'이라는 핑계로 육적인 싸움만 이어온 것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결국 나는 영적 전쟁에서 실패한 셈이다. 더 강력한 기도로 영적 질서를 세워야 했으나 무릎이 약해졌음을 회개했다.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했으나 악을 악으로 갚았던 것도 자책하며 통회했다. 나의 능력을 의지하며 목양했던 것을 낱낱이 고백했다. 눈물로 회개했지만 셀 수 없는 죄들 때문에 하나님의 노하심을 자초했으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하나님의 노하심을 생각할 때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이란 말씀이 영혼 위에 임했다. 그 순간 목이 터질 듯한 탄성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눈물이 쏟아졌고, 감격이 넘쳤다.

 

2009년 3월 1일 주일

강단을 떠난지 9개월이 지났다. 그간 재빨리 하나님께 나아가 자비를 구했더라면 더 큰 은혜 안에 거했을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불행하게도 내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깨알같은 시간들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말았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감사할 일들이 셀 수 없다.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날마다 철야기도에 참석할 수 있는 공간까지 주어져서 한없이 고맙다. 더욱이 철야를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영적 실체를 파악하게 되어서 큰 감사를 드린다. 주의 목전에서 죄를 범하고, 죄악 중에 출생한 것도 깨닫게 되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 동안 죄들을 회개하긴 했지만 악행에서 돌아서지는 못했다. 회개란 돌아서는 것인데 입술로만 회개할 뿐이었다. 늘 회개하면서도 교만과 자만을 깨부수지 못하고, 육신의 옷을 벗어리지도 못했다. 차속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아왔던 과거들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그런 부끄러운 모습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강단을 떠난 이후에도 하나님을 대적하듯이 날뛰며 자고하게 살아왔던 나의 모습을 그제야 보게 된 것이다. 밤마다 부르짖는 철야 기도를 통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없이 산 교만이 얼마나 큰 악행인지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은혜가 임했지만 나는 여전히 시련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어 고통스럽다. 다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울먹이며 아내에게 고백했다. "여보, 내가 잘못 살았어. 나를 용서하고 새 출발하게 응." 아내도 용서를 구하는 나의 간청에 쉽게 응했다. "그래요. 이제 다시 시작해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파고들어 큰 위안과 힘이 되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처럼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창18:10)을 기다려야겠다. 멀리 터널 끝에서 비쳐오는 빛줄기를 바라보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면 조만간에 시련의 끝이 오지 않겠는가!

 

2009년 3월 2일. 월

기도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이루어진 영적 전투이다. 마귀를 물리치느냐 아니면 마귀의 밥이 되느냐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력한 기도로 내 영을 살리지 못했다. 어설픈 기도로 매번 마귀에게 틈을 주고 말았던 것같다. 기도가 빈약하니 육은 점점 더 살아났다. 무릎이 약해지니 날이 갈수록 영은 쇠약해졌다. 기도가 목양의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늘 기도는 두 번째 순위였다. 기도보다 더 우선 순위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나를 위한 시간, 각종 일들에 매이다보니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탄이 목장을 지배하게 되었고, 내 마음까지 동요해서 교만해지게 했다. 무릎이 빈약해진 틈을 타서 들어온 마귀는 경건의 탑을 흩어버렸다. 결국 나는 그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패잔병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영적 소명을 외면한 채 육신의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을 때 아내는 수없이 권고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강단을 떠난지 한참 후에도 그런 나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여전히 자고하며, 내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후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처참하게 일그러진 나를 발견하고나서 그제야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가정을 외면하고, 아내와 자녀들까지 방치하면서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것을 고백했다. 아내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격려했다. 주일 저녁 철야 때 들은 말씀을 인용해서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여보, 새롭게 시작해. 하나님이 힘이 되신다고 했으니 믿음을 갖고 나아가게. 그 동안 당신을 실패하게 만든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어."

사무실에서 이 문자를 받고 통곡하며 울었다.

 

2009년 3월 3일 화

기도하면 할수록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깊이 인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가장 싫어하신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천사를 추방하신 것을 보면 교만을 얼마나 미워하신지 알 수 있다. 하와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꾀임에 빠진 것은 교만 때문이었다. 결국 인류의 불행은 교만 때문에 시작되었다. 나도 교만을 이겨내지 못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나님께서 받으셔야할 영광을 가로챘고, 하나님 없이 살았다. 때로는 성령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자리잡힌 교만을 물리치지 못했다. 교만이 가득하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내 능력으로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육은 살아나고, 영은 피혜해졌다. 그런 과거를 생각하니 무섭고 두려워 가슴을 움켜쥐고 부르짖었다.

영적 전쟁에서 실패한 나의 모습이 가련하고 처량해졌다. 교회를 혼란케 한 사탄의 궤계를 깨우치지 못하고 혈과 육으로 싸우다 지쳤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는지~~~! 진즉 영적 전쟁의 실체를 파악했더라면 반복적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더러운 영을 물리칠 수 있었을터인데~~~! 무서운 영적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신만 믿고 영적 전투에 임했다. 영의 세계를 육의 눈으로 보았으니 백전백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마귀를 육으로 대항하려했으니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영적 전쟁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데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거룩한 것을 세속적으로 판단해 왔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언제나 나의 능력을 더 의지했다. 나의 경험, 지식, 그리고 열심으로 목양해 왔다. 기도 시간 내내 사탄의 밥이 되었던 것이 원통해서 울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 설교를 수없이 했지만 정작 나는 마귀에게 참패한 것이 분해서 통곡했다.

 

2009년 3월 6일 금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았으나 그분의 뜻을 묻지 아니하고 살아온 과거들을 생각하니 고통스러웠다. 돌아보면 모든 것들을 나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했다. 무슨 일을 해도 주님께 묻거나 의지하지 못한 것같다. 언제나 내 마음의 왕좌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으로만 자리잡고 있었을 뿐 깊은 인격적인 교통을 갖지 못했다. 영성을 가르치면서 그토록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했지만 정작 나는 거룩한 교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나님 없이 살다보니 나를 통제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가치관도 어느 사이에 세상적으로 변해 있었다. 존 오웬의 지적대로 영적 지도자로 서 있었지만 가르침과 삶은 영적이지 못했다. 나의 목양은 세상적이었고, 삶도 정욕적이었다. 육을 다스리지 못해 쉽게 분노하고, 혈기가 충만하기도 했다.

엄청난 영적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혈과 육의 싸움으로 시간을 소모했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혼란케 하는 사탄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육적인 싸움으로 에너지를 낭비해 버렸다. 그런 육적인 싸움들이 나의 영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같다. 영적으로 어둡게 되니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허탄한데 마음을 두곤 했다. 아~~~!! 사탄의 동요를 이겨내지 못하고 교만해졌던 과거를 생각하니 원통하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아온 순간에도 내 안에 계시면서 겸손하게 당신을 의지하기를 기다리시던 성령 하나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셨을까? 주님께서 얼마나 통곡하셨을까? 그런 주님을 생각하면서 울면서 부르짖었다.

 

2009년 3월 9일 월

출근 길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아들에게도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문자를 받자마자 아들에게 십자가의 보혈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뒷자석에서 아빠의 설명을 귀담아 들을 뿐 별 말이 없었지만 마음 속에 깊숙이 전달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깨우치지는 못해도 기본적인 설명은 가능하기에 몇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십자가 보혈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십자가 보혈은 구원의 뿌리요, 생명의 근원이다. 십자가 보혈은 용서요, 위로다. 십자가 보혈은 능력이다. 십자가 보혈은 축복이다. 십자가 보혈은 신비다. 십자가 보혈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내 마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보혈의 은혜가 아들에게 임하도록 기도해 주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후에는 아내와 만나 지난 과거의 실수와 허물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가정을 멀리하고 마음대로 살아왔던 것들을 사과했다.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아내의 견해를 무시한 채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잘못도 인정했다. 가족들조차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이기적인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남편이 불쌍했던지 아내도 불평을 쏟아내다가 곧바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고 답했다. 고난의 시절에 아내라도 곁에 있어줘서 한없이 고마웠다. 그런 고마움을 느끼면서 딸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사랑하는 딸아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

 

아~~ 생각하면 기적같은 은혜입니다.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강단을 떠난지 8개월만에 시작된 그런 은혜는 신령한 세계에 막 들어가는 입문서에 불과했습니다. 그후 쏟아진 은혜가 얼마나 컸던지 이 지면에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40일 철야기도를 마친 후 나는 집필하던 사무실을 철수한 후 백기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8개월여 전 아내는 내가 교회를 사임하자마자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제발 다락방으로 들어가 기도에 몰두하던지, 기도원에 가서 소나무뿌리라도 뽑아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세요~~~!!!”

당시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은 척도 않했습니다. 모든 것을 내 능력으로 살아왔던 습관 때문이었던지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는 고사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당당하게 집을 나가서 혼자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擔任牧師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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