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는 모든 종교를 동가(同價)로 본다. 하나님은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모든 역사적인 종교인들을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한다. 모든 종교인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형제 자매이다. 함께 순례하는 사람이며,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소유하는 분이며 편애하는 분이 아니다. WCC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타종교와 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왔다.
WCC에 따르면, 기독교와 타종교들과 세상의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 타종교인은 개종의 대상이 아니다.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동료이며 영적인 순례자이다. 하나님은 종교가 다르다고 하여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기독교를 초월한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제한하는 성경의 배타적인 진술은 기독교인의 ‘자기이해’, 곧 다른 종교를 모르는 기독교의 ‘신앙의 증언’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WCC의 종교 간의 대화 신학의 핵심이다.
WCC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신에 대한 봉헌과 예배, 자기 부정의 진리와 실천을 지니고 있다. 타종교인과의 대화의 목적은 회심, 개종, 복음전도가 아니다. 모든 종교가 계시, 경전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계시와 성경을 절대화하는 것은 독선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경전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다.
1. 종교 간의 대화
WCC는 기독교의 사명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대화 파트너인 타 종교인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상대방을 회심시키려고도 하지 않아야 한다. “대화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증거”하는 일이다.
이 경우, 기독교의 증거(witness)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나 성경적 진리 제시가 아니다. 증거는 기독교 서클 안에서 경험한 개인의 주관적인 종교 이야기를 타 종교인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WCC가 작성한 “살아 있는 신앙들과 이데올로기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안내서”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선교차원의 만남이 아니다. 상호 이해와 협력 또는 접촉점을 모색하는 의사소통이 아니다. 정치, 문화, 사회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담론도 아니다. 평화공존, 박애활동, 인권신장, 민족통일을 모색하는 활동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소개하는 복음전도 활동이 아니다.
WCC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구원의 길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기독교를 상대화하여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여긴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고, 대화 가운데서 참 진리를 찾고자 한다.
WCC의 초기 지도자들은 복음에 기초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염두에 두었다. 십자가 없는 선교, 중추 없는 선교(mission without backbone)를 옳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상대주의와 혼합주의를 거부하는 선교신학을 유지했다. 기독교 복음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일반 종교 체계와 아우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기독교는 모든 가치와 진실의 기준이며,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종교를 얕잡아 보거나 타종교인들의 영적인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WCC는 세계교회들의 일치를 희망할 뿐, 규제와 권징 기능이 없다. 울타리가 없는 협의회적 교제체이다. 맹수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출범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달라졌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 제4차 총회(1968)는 ‘대화’를 규정하기를 상대편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접근하고 자신의 견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태도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는 여러 종교들의 대표자들을 좀 더 깊은 단계에서 만나는 모임을 주선했다. 자기 자신의 ‘진리’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태도로 임했다. 기존 신념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WCC는 ‘대화’와 관련하여, 기독교인은 타종교인들을 개종, 회심시키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 신앙에 더욱 돈독해지도록 돕고, 자기의 종교 경험을 들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가 동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등한 자세로 임하며, ‘대화’에서 ‘참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인간화와 해방투쟁 활동에 연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드러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알려진다고 한다. WCC의 ‘종교대화의 신학’의 핵심은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상대화이며,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도 타종교인과 더불어 ‘세상만사’에 대하여 대화하고, 인간화를 위해 연대하고, 타종교인의 장점을 배우려는 ‘대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진정성, 겸손, 민감성을 가지고 타종교인에게 상냥하게 말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접근하는 ‘대화’는 기독교인들의 품위를 보여주는 일이다. 타종교인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선교의 접촉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과 예수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거나 상대화 하지 않는다.
2.사마르타의 계시 상대주의
스탠리 사마르타는 1968년부터 1982년까지 13년 동안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안의 “살아 있는 신앙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분과” 책임자였다. 제네바에 있는 WCC 본부에서 근무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사마르타의 사상의 핵심은 계시의 상대성이다. 기독교를 포함하는 모든 종교들은 ‘계시’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상대적인 가치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WCC의 신학으로 흡수된 사마르타의 종교대화 신학의 핵심은 상대주의 진리관이다. 모든 종교가 동가이며,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는 하나님뿐이며, 종교들은 같은 신의 다양한 표현들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신은 여호와, 알라, 하늘님, 가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나타나는 궁극적인 신적 실재(Ultimate Divine Reality)이다.
사마르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들어가게 하여 타 신앙과 타 이데올로기의 사람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시며 국가와 종교의 경계선마저도 거두게 하여 참으로 보편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부르신다”라고 말한다.
사마르타의 계시 상대주의는 역사적 상대성, 곧 모든 것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확신과 신비적 타자(他者)라는 것에 초점이 있다. 신비적 타자는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킨다. 이러한 상대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타자, 곧 궁극적 실재와 만나게 되는 유일한 참된 길이라고 한다. 사마르타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 간의 만남을 강조한다.
사마르타는 상대주의 진리관이라는 인식론을 근거로 종교 간의 대화의 걸림돌인 기독교 계시의 유일성, 예수 그리스도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고 제거해야 모든 종교와 만남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사마르타의 주장은 나중에 ‘바아르선언문’과 기타 WCC 문서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처럼 WCC의 에큐메니칼 신학을 통제하는 것은 상대주의 진리관-인식방법이다.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 진리의 말씀이라는 전통적 기독교의 확신을 져버렸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고백하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WCC는 기독교의 서고 넘어짐이 달려있는 진리 이해를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 내동댕이쳤다.
3. 아리아라자의 진리
상대주의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사마르타가 맡았던 WCC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의 ‘살아 있는 종교 간의 대화 분과’ 위원장직을 승계했다. 사마르타와 마찬가지로 제네바 본부에 유급 신학자로 근무하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WCC의 타종교와의 대화와 그것을 위한 신학이론 계발을 주도했다.
제네바의 WCC 출판부가 출간한 ‘성서와 타종교와 대화’(1985)는 “바아르선언문”(1990)의 신학 배경인 종교 간의 ‘대화’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리아라자의 종교대화 신학의 핵심은 상대주의 진리관에 근거한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이다. 그는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로 선포하고 타종교를 오류투성이며 ‘악마의 자식’으로 간주하는 차별적인 태도를 지탄한다.
아리아라자는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과연 복음전파의 단초(端初)가 반드시 타종교를 거절하는 데 있는가? 기독교 신앙을 증거하려고 이웃 종교인의 삶 속에 하나님이 부재(不在)함을 구태여 가정해야 하는가? 종교의 다원성을 용인하는 것과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아리아라자에 따르면, 성경은 타종교에 관한 책이 아니며, 타종교인과의 대화를 취급한 책도 아니다. 타종교와 ‘대화’를 반대하는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 타종교에 대한 충분한 가르침이 담겨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성경은 저자가 그 내용을 자기의 관점으로 채색한 것일 수 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초점을 가지면 타종교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 근거한 유태인의 주장은 ‘자기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신앙은 유태인 공동체에서는 가치가 있지만 그 밖의 세계에서는 거의 가치가 없다. 수억 명의 인구를 가진 힌두교와 불교와 이슬람교는 이러한 사상을 배척한다.
아리아라자는 “기독교의 하나님, 힌두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 힌두교의 이해, 이슬람교의 이해가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아리아라자는 강력하게 “힌두교도는 개종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들의 삶에 준 결정적인 감화(impact)를 나누어 주어야 할 동료 순례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행 10:34,35). 성경이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의 ‘자기이해’와 제한된 ‘신앙의 증언’이다. 성경은 ‘신앙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종교를 알지 못하는 순진한 기독교인들이 자기 신앙의 관점에서 고백한 ‘사랑의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리아라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전도’에 가장 큰 방해거리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에 가장 큰 방해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요인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절대적 신앙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리아라자와 WCC에게 ‘전도’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은 아니다.
결론: 구원 보편주의
WCC는 타종교인과의 대화가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쌍방통행로’라고 한다. 이러한 신학을 제시하는 WCC의 “일치를 통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2000)는 기독교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의 중요성을 말한다. 기독교의 복음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겼다.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종교 간의 대화 분과를 이끌어 온 두 신학자들의 주장에는 인류 구원 보편주의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여러 가지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 예수도 구원의 길이지만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인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종교대화주의자들이 말하는 ‘신 중심적 그리스도론’을 거부한다. 모든 종교들이 섬기는 신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라고 보지 않는다. 타종교들의 신은 ‘우상’이며, 이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고전 8:4)라고 한다.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많지만 “한 하나님 곧 아버지”, 만물의 창조자, 피조물들이 마땅히 섬겨야 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라고 선언한다(고전 8:5,6).
타종교들도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 WCC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기독교의 생명력을 위협한다. 복음전도, 구령의 열정, 교회 건설의 의욕을 약화시킨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도록 만든다. 예수를 믿어야 할 당위성이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WCC는 모든 종교를 동가(同價)로 본다. 하나님은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모든 역사적인 종교인들을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한다. 모든 종교인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형제 자매이다. 함께 순례하는 사람이며,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소유하는 분이며 편애하는 분이 아니다. WCC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타종교와 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왔다.
WCC에 따르면, 기독교와 타종교들과 세상의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 타종교인은 개종의 대상이 아니다.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동료이며 영적인 순례자이다. 하나님은 종교가 다르다고 하여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기독교를 초월한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제한하는 성경의 배타적인 진술은 기독교인의 ‘자기이해’, 곧 다른 종교를 모르는 기독교의 ‘신앙의 증언’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WCC의 종교 간의 대화 신학의 핵심이다.
WCC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신에 대한 봉헌과 예배, 자기 부정의 진리와 실천을 지니고 있다. 타종교인과의 대화의 목적은 회심, 개종, 복음전도가 아니다. 모든 종교가 계시, 경전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계시와 성경을 절대화하는 것은 독선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경전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다.
1. 종교 간의 대화
WCC는 기독교의 사명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대화 파트너인 타 종교인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상대방을 회심시키려고도 하지 않아야 한다. “대화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증거”하는 일이다.
이 경우, 기독교의 증거(witness)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나 성경적 진리 제시가 아니다. 증거는 기독교 서클 안에서 경험한 개인의 주관적인 종교 이야기를 타 종교인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WCC가 작성한 “살아 있는 신앙들과 이데올로기들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안내서”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선교차원의 만남이 아니다. 상호 이해와 협력 또는 접촉점을 모색하는 의사소통이 아니다. 정치, 문화, 사회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담론도 아니다. 평화공존, 박애활동, 인권신장, 민족통일을 모색하는 활동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소개하는 복음전도 활동이 아니다.
WCC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구원의 길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기독교를 상대화하여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여긴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고, 대화 가운데서 참 진리를 찾고자 한다.
WCC의 초기 지도자들은 복음에 기초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염두에 두었다. 십자가 없는 선교, 중추 없는 선교(mission without backbone)를 옳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상대주의와 혼합주의를 거부하는 선교신학을 유지했다. 기독교 복음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일반 종교 체계와 아우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기독교는 모든 가치와 진실의 기준이며,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종교를 얕잡아 보거나 타종교인들의 영적인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WCC는 세계교회들의 일치를 희망할 뿐, 규제와 권징 기능이 없다. 울타리가 없는 협의회적 교제체이다. 맹수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출범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달라졌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 제4차 총회(1968)는 ‘대화’를 규정하기를 상대편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접근하고 자신의 견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태도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는 여러 종교들의 대표자들을 좀 더 깊은 단계에서 만나는 모임을 주선했다. 자기 자신의 ‘진리’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태도로 임했다. 기존 신념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WCC는 ‘대화’와 관련하여, 기독교인은 타종교인들을 개종, 회심시키려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 신앙에 더욱 돈독해지도록 돕고, 자기의 종교 경험을 들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가 동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등한 자세로 임하며, ‘대화’에서 ‘참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인간화와 해방투쟁 활동에 연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드러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알려진다고 한다. WCC의 ‘종교대화의 신학’의 핵심은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상대화이며,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도 타종교인과 더불어 ‘세상만사’에 대하여 대화하고, 인간화를 위해 연대하고, 타종교인의 장점을 배우려는 ‘대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진정성, 겸손, 민감성을 가지고 타종교인에게 상냥하게 말하고, 존중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접근하는 ‘대화’는 기독교인들의 품위를 보여주는 일이다. 타종교인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선교의 접촉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과 예수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거나 상대화 하지 않는다.
2.사마르타의 계시 상대주의
스탠리 사마르타는 1968년부터 1982년까지 13년 동안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안의 “살아 있는 신앙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분과” 책임자였다. 제네바에 있는 WCC 본부에서 근무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사마르타의 사상의 핵심은 계시의 상대성이다. 기독교를 포함하는 모든 종교들은 ‘계시’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상대적인 가치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WCC의 신학으로 흡수된 사마르타의 종교대화 신학의 핵심은 상대주의 진리관이다. 모든 종교가 동가이며,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는 하나님뿐이며, 종교들은 같은 신의 다양한 표현들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신은 여호와, 알라, 하늘님, 가미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나타나는 궁극적인 신적 실재(Ultimate Divine Reality)이다.
사마르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들어가게 하여 타 신앙과 타 이데올로기의 사람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시며 국가와 종교의 경계선마저도 거두게 하여 참으로 보편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부르신다”라고 말한다.
사마르타의 계시 상대주의는 역사적 상대성, 곧 모든 것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확신과 신비적 타자(他者)라는 것에 초점이 있다. 신비적 타자는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킨다. 이러한 상대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타자, 곧 궁극적 실재와 만나게 되는 유일한 참된 길이라고 한다. 사마르타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 간의 만남을 강조한다.
사마르타는 상대주의 진리관이라는 인식론을 근거로 종교 간의 대화의 걸림돌인 기독교 계시의 유일성, 예수 그리스도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고 제거해야 모든 종교와 만남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사마르타의 주장은 나중에 ‘바아르선언문’과 기타 WCC 문서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처럼 WCC의 에큐메니칼 신학을 통제하는 것은 상대주의 진리관-인식방법이다.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 진리의 말씀이라는 전통적 기독교의 확신을 져버렸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고백하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WCC는 기독교의 서고 넘어짐이 달려있는 진리 이해를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 내동댕이쳤다.
3. 아리아라자의 진리
상대주의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사마르타가 맡았던 WCC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의 ‘살아 있는 종교 간의 대화 분과’ 위원장직을 승계했다. 사마르타와 마찬가지로 제네바 본부에 유급 신학자로 근무하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WCC의 타종교와의 대화와 그것을 위한 신학이론 계발을 주도했다.
제네바의 WCC 출판부가 출간한 ‘성서와 타종교와 대화’(1985)는 “바아르선언문”(1990)의 신학 배경인 종교 간의 ‘대화’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리아라자의 종교대화 신학의 핵심은 상대주의 진리관에 근거한 종교다원주의 그 자체이다. 그는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로 선포하고 타종교를 오류투성이며 ‘악마의 자식’으로 간주하는 차별적인 태도를 지탄한다.
아리아라자는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과연 복음전파의 단초(端初)가 반드시 타종교를 거절하는 데 있는가? 기독교 신앙을 증거하려고 이웃 종교인의 삶 속에 하나님이 부재(不在)함을 구태여 가정해야 하는가? 종교의 다원성을 용인하는 것과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아리아라자에 따르면, 성경은 타종교에 관한 책이 아니며, 타종교인과의 대화를 취급한 책도 아니다. 타종교와 ‘대화’를 반대하는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 타종교에 대한 충분한 가르침이 담겨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성경은 저자가 그 내용을 자기의 관점으로 채색한 것일 수 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초점을 가지면 타종교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 근거한 유태인의 주장은 ‘자기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신앙은 유태인 공동체에서는 가치가 있지만 그 밖의 세계에서는 거의 가치가 없다. 수억 명의 인구를 가진 힌두교와 불교와 이슬람교는 이러한 사상을 배척한다.
아리아라자는 “기독교의 하나님, 힌두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 힌두교의 이해, 이슬람교의 이해가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아리아라자는 강력하게 “힌두교도는 개종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자신들의 삶에 준 결정적인 감화(impact)를 나누어 주어야 할 동료 순례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행 10:34,35). 성경이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의 ‘자기이해’와 제한된 ‘신앙의 증언’이다. 성경은 ‘신앙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종교를 알지 못하는 순진한 기독교인들이 자기 신앙의 관점에서 고백한 ‘사랑의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리아라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전도’에 가장 큰 방해거리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에 가장 큰 방해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요인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절대적 신앙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리아라자와 WCC에게 ‘전도’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은 아니다.
결론: 구원 보편주의
WCC는 타종교인과의 대화가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쌍방통행로’라고 한다. 이러한 신학을 제시하는 WCC의 “일치를 통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2000)는 기독교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의 중요성을 말한다. 기독교의 복음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겼다.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종교 간의 대화 분과를 이끌어 온 두 신학자들의 주장에는 인류 구원 보편주의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여러 가지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 예수도 구원의 길이지만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인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종교대화주의자들이 말하는 ‘신 중심적 그리스도론’을 거부한다. 모든 종교들이 섬기는 신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라고 보지 않는다. 타종교들의 신은 ‘우상’이며, 이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고전 8:4)라고 한다.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많지만 “한 하나님 곧 아버지”, 만물의 창조자, 피조물들이 마땅히 섬겨야 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라고 선언한다(고전 8:5,6).
타종교들도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 WCC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기독교의 생명력을 위협한다. 복음전도, 구령의 열정, 교회 건설의 의욕을 약화시킨다.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도록 만든다. 예수를 믿어야 할 당위성이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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