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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WCC란 무엇인가?` - 제5장 용공주의

하나님아들 2012. 7. 31. 11:07

WCC는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해방신학과 '하나님의 선교'라는 선교신학 패러다임을 따라 선교를 인간화와 해방투쟁과 동일시하고, 인종차별주의 철폐에 많은 인력과 재원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철폐운동과 인민해방운동을 하는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에 여러 차례 거액을 지원했다.

 

WCC 한국지부 격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KNCC)는 이러한 움직임에 걸맞게 산업선교,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앞장섰고, 한국교회의 반공태도를 비판했다. 공산주의 위협에 대응하여 자유를 지키는데 이바지한 한국기독교의 반공 노력을 냉전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고, 반공의 '죄'를 회개한다고 고백했다.

 

한국기독교인들은 북한의 남침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반공을 회개한다."는 KNCC의 발상과 그런 말을 하는 진보주의 신학 계열 교회들의 급진주의 성향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월남한 반공주의자 한경직 목사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단체를 태동시켰다. 현재 66개 개신교단과 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WCC의 한국지부 격 단체인 KNCC는 8개의 회원교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이하게도 장로교 통합교단과 하나님의 성회(여의도측, 서대문측)는 두 단체에 모두 가입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WCC 가입 찬반 문제와 더불어 발생한 1959년의 한국 장로교회 분열이 있기 이전에도 용공논란은 한국교회의 화두였다. 저명한 한국교회사가들과 KNCC 관계자들은 WCC의 용공 활동을 지적하는 일부 보수계 기독교인들의 비판에 경악된 유감을 표하며 혹독하게 질타했다. WCC가 용공 활동과 무관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 호도한 것이었다.

 

1.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
구티에레츠의 해방신학은 WCC와 마르크스주의의 교량 역할을 했다.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를 기독교 용어로 설명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립으로 간주한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며,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와 싸워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것이 선교와 전도의 주된 목적이며 과업으로 여겼다. 교회의 최대의 과제는 사회구원을 위한 혁명대열에 앞장서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점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 직접 참여하여 인간화와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투신해야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모인 WCC 제1차 총회(1948)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분쟁 요점을 살피고 모두를 경계하면서 양편 모두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WCC는 사회복음주의 신학의 영향 아래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패러다임을 따랐다. 인간화, 해방투쟁, 구조악 철폐를 '구원'이라고 보는 해방신학을 수용했다. WCC는 점차 그 활동의 폭을 넓히고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워졌다. 가난하고,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을 '하나님의 선교'의 핵심과제로 여겼다. 해방투쟁과 그러한 운동과 연대하는 것을 기독교 구원과 동일시했다.

 

WCC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과 언약의 하나님, 세계와 교회, 구원의 보통은총과 특별은총, 정의와 칭의, 사회개혁과 인간의 중생, 해방과 구원을 뒤섞어 놓는다. 하나님의 성육(成肉)과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며 이루신 구속사역은 정치적, 경제적 압제에서 해방이 아니라 영원한 저주와 죄의 멍에에서 구출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콕에서 열린 WCC 세계선교대회는 모택동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할 정도였다. 구원을 사회주의적으로, 세속주의적으로, 인본주의적으로 이해했다.

 

2. WCC의 용공활동
미국 에반스톤에서 모인 WCC 제2차 총회(1954)는 괄목할 정도로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정죄하고 '인종차별투쟁사업(PCR)'을 선교의 주 과제로 삼았다. 인종, 피부색, 종족 기원 등에 기초한 어떤 형태의 분리도 복음에 위배된다는 확신을 표했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 제4차 총회(1968)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해방신학의 논리를 공식화했다. "새로운 인간성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과 "인간의 필요가 있는 곳, 인구팽창, 긴장관계, 움직이고 있는 힘들, 제도적 경직성, 권력의 우선순위와 사용에 대한 의사결정, 공공연한 인간 갈등이 있는 곳"을 선교지로 규정했다.

 

WCC는 '하나님의 선교' 원리에 따라 세계의 수많은 혁명운동과 해방투쟁 사업을 지원했다. 1970년에서 1978년까지 산하의 '인종차별투쟁사업(PCR)'에 미화 3백 6만여 불을 제공했다. 외세의 간섭을 거부하면서 "자기 나라의 일에 대하여 발언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우는 인종적 피압박 단체들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원조"했다. WCC는 1978년 가을에 인종차별투쟁사업의 일환으로 로디지아 애국전선 게릴라들에게 8만 5천 불을 원조한다고 발표했다.

 

WCC가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는 민족단체들에게 지급한 돈은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는 게릴라들의 식량, 보건, 농업, 난민구호, 그 밖의 인도주의 목적에 사용하라고 준 것이다. 그러나 WCC는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감독할 기관을 설치하지 않았다. 쿠바에서 훈련을 받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게릴라 군대에 재정을 지원하고 정치적 지지를 보낸 것은 용공주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모잠비크와 잠비아를 거점으로 삼은 테러전술주의자들은 그 돈을 납치, 살인, 정부 전복,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을 살해하고 민간비행기를 격추시키는 활동 등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WCC는 나미비아 게릴라 부대인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SWAPO)에 미화 12만 5천 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인종차별투쟁사업은 1970년 이후에도 약 12개국 1백여 기구에 '인도주의' 명목으로 거액을 원조했다. 그 가운데 상당액은 남아프리카의 백인정권 전복과 로디지아와 남서아프리카의 두 흑백혼합 과도정부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게릴라 단체와 기타 기구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정치혁명 단체들에게 들어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는 '만델라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2006)에서, 자신도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서로서로를 이용하며 단합하고 있었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의 어둠 속을 헤매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변증법적 유물론은 등불과 같았으며, 나아가 인종차별을 종식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역사는 투쟁과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진보한다는 주장 역시 호소력이 있었다."라고 한다.

 

WCC는 공산주의와 관련 있는 아프리카 민족주의와 애국투쟁 단체에 거액을 지원한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WCC 40년사'는 WCC의 나이로비 총회와 밴쿠버 총회 사이에 가장 많은 대중적 관심이 WCC의 인종차별투쟁사업 특별기금 사용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미화 5만 5천 불의 원조금을 짐바브웨/로디지아 애국전선 활동에 지원했을 때는 항의의 물결이 출렁댔다고 한다.

 

WCC는 지원금이 폭력에 사용되는 것을 문제시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불만을 제거함으로써 새롭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향하는) 길을 열기 위한 유일한 마지막 수단으로 폭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 인종차별 희생자들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무기를 사용하는 자들에게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며, 폭력 사용을 사실상 용인했다.

 

WCC에 가입한 소련정교회, 루마니아정교회, 불가리아정교회, 폴란드정교회 등 공산권 교회들의 발언권과 역할이 강화되었다. 공산권 국가 교회지도자들은 WCC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중국교회 대표자 차오(T. Chao)와 체코의 '공산주의 신학자' 조셉 흐로마드카는 첫 총회 때부터 WCC 중앙위원회 위원이었다. 그는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체코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모인 WCC 제5차 총회(1975)의 의장으로 선출된 러시아정교회의 메트로폴리탄 니코팀은 러시아첩보기관(KGB)의 첩자였다.

 

소련은 러시아정교회를 이용하여 WCC에 접근했다. 러시아정교회는 교육부에 직원 10여 명을 두고 있을 때 국제관계부에 1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러시아비밀경찰((KGB) 직원들이었다. 1992년 미국 하원에 제출된 보고서는 소련이 자신들의 정책과 이념을 세계에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WCC를 이용했다고 한다. 소련은 배후에서 WCC를 움직였다. WCC가 단순히 공산주의 활동을 용인하고 인간화와 인종차별정책 프로그램이라는 이름하에 거액을 혁명투쟁 게릴라 집단에게 준 정도가 아니라 공산정권이 통치하는 소련의 지휘를 받는 정교회 대표자들을 통해 친소 용공주의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WCC는 공산주의 정권 아래서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인권 문제는 차제에 부치더라도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무신론 정권과 야합한 변절한 기독교회는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하나의 거룩하고 공교회적이며 사도적인 신앙'을 가진 신앙고백공동체의 처절한 고통과 신음에는 외면했다.

 

3. 한국교회의 WCC 용공 논쟁 용공
이데올로기 정책을 지향하는 WCC 가입 문제로 1959년 한국장로교는 분열했다. 미국 선교사들은 그들이 속한 본국 교회가 지향하는 노선에 따라 WCC에 가입하고자 하는 편을 지지하고 막대한 재정을 지원했다. 그러나 상당수 한국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WCC 가입을 반대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목사들 가운데는 WCC의 신학과 선교 방향을 내심 걱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KNCC는 1959년에 "한국기독교연합회 성명서'를 발표했다. "비복음적인 어떤 세속적 사상이나 운동과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 교회들이 교회의 머리되시는 한 주님 안에서 피차에 하나 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무조건 교회를 합동시키는 단일교회 운동이나 비성서적인 신학사조를 주장하거나 용공운동을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공산주의와 로마카톨릭주의, 그리고 신앙사상의 혼합주의 등을 절대 배척하고 있다."라고 성명했다. 그런데도 걱정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WCC 관련 단체들은 독재 권력에 대한 한국 민주화 운동, 산업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지원했다. 그러자 KNCC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1988)이라는 고백문에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북한)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과 민족 앞에 고백한다."라고 했다. "특히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의 이데올로기를 종교적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 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라고 했다. '반공' 태도를 유지해 온 것이 '죄'라는 것이었다.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이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반공을 기독교 신앙과 거의 동일하게 생각하던 한국기독교인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산주의 정권의 종교탄압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군 주둔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출범했다.

 

결론: 사실호도와 역사 재평가의 과제
한국교회 지식인들이 WCC의 용공주의를 지적한 보수계 기독교인들에게 경악된 유감을 드러내고 질타한 것은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역사를 힘의 논리로 기술한 하나의 예이다. 교회사가들의 반성과 한국교회 역사 바로쓰기를 재촉한다.

 

기독교 신앙을 특정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면 성급한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바로 공산주의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친미가 반공을 뜻하지 않으며, 반미가 친공을 뜻하지도 않는다.

 

WCC는 공산주의에는 관대했고, 자본주의에 냉혹했다. 친사회주의, 반미 성향의 용공주의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백인우월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인권투쟁 단체들에게, 인민을 쉽사리 죽이고 굶주리게 하고 괴롭힌 이데올로기 집단에,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 무장 정치단체에 오랫동안 거액을 지원한 것은 역사 평가의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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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수 총회 신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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