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는 선교와 인간화, 해방투쟁을 동일시하고 사회구원 지상주의를 지향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사회-정치 참여 활동에 막대한 인력과 재정을 투입했다. 혁명투쟁, 빈곤퇴치, 정치혁명, 질병퇴치, 해방투쟁, 세상의 정치?사회?문화?환경?평화?이데올로기 극복, 구조악 철폐, 이웃종교와 대화를 선교의 핵심 과업으로 삼았다. 교회가 창조자 하나님의 세상 돌보시는 일, 곧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부름을 받았다는 선교신학 이론에 따른 것이다. 복음전도와 사회봉사는 모두 다 중요한 선교 과제이다. 그러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복음전도는 사회참여, 사회복음, 선행(善行)에 앞선다. 영적인 구원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하나님의 특별은총 사역, 대속제물의 중보 사역을 통한 구원과 일반은총 사역, 세상과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에 동참하는 것 사이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WCC와 합병한 빌링겐선교대회는 이와같은 구분을 허물어버리고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사회구원을 선교의 지상과제로 여겼다. 이로써 종교다원주의에 길을 열어 주었고, 교회가 세속화되게 했고, 세속주의를 우러러보게 했다. 복음전도는 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선교'에 매진하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복음전도의 긴박성과 구령사업의 적극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0년대 초, WCC는 '좌파적 혁명투쟁'에 초점을 둔 선교가 지나치다는 복음주의자들의 비판과 일부 복음주의적인 회원 교회들의 목소리를 담아 선교와 전도에 대한 견해를 다시 정리했다. 두 개의 선교와 전도 관련 문서,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1982)과 "일치를 향한 선교와 전도"(2000)는 역사적 기독교 용어를 동원하고 상당부분을 복음전도 설명에 할애한다. 그리스도와의 만남, 회심, 회개, 하나님의 은혜, 용서 등을 언급한다. 복음주의가 말하는 복음 진리의 핵심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과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1. 하나님의 선교: 인간화와 혁명투쟁
독일 빌링겐에서 열린 국제선교대회(IMC)는 '하나님의 선교'의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리라 대망한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선교는 바로 이 땅에 평화(shalom)를 건설하려고,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이다"라고 했다. 호켄다이크는 평화, 온전함, 조화, 정의 활동을 선교 과제라고 주장했다.
"선교란 구원받은 전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지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한 지체로서 참여하게 되는 선교운동의 원천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선교' 이론에 따르면, 선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성부가 성자를 세상에 보냈고 성부와 성자는 함께 성령을 이 세상에 보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다스리고 주관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어 하나님이 수행하고 있는 사역-선교에 동참하라고 요청한다. 선교의 초점은 하나님이 세상을 돌보는 활동, 하나님의 역사, 세상사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구원활동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빌링겐에서 시작하여 점차 투쟁적인 선교 모델로 진화했다. 세속적인 활동을 선교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인도 뉴델리에서 모인 WCC 제3차 총회(1961)가 국제선교위원회(IMC)를 흡수 통합한 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모인 세계선교대회(1963)에 이르러 WCC 활동의 전면에 부상했다. WCC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 사회 안에서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에 동참해야 할 당위성을 강조했다. 세상 전 영역을 선교의 구체적인 터전으로 보았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인간을 돌보고 사랑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교회 밖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역사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기독교의 순종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멕시코시티 세계선교대회는 하나님은 교회 밖에서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신자의 증거, 세속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증거, 이웃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증거, 국경과 신앙고백의 경계선을 초월하는 기독교회의 증거를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는 정의투쟁, 인간해방 활동을 의미한다. 이 대회도 뉴델리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된 타 종교와의 대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개최된 WCC 제4차 총회(1968)는 인간성 회복을 선교로 규정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기독교 신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했으나 선교의 목표는 인간화, 곧 새로운 인간성 회복이라고 보았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WCC 세계선교대회(1973)는 "오늘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모여 선교를 세상의 모든 형태의 불의와 압제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에 동참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 삼았다. '인간화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구원은 비싼 값을 치러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방콕대회가 말하는 구원은 정치와 사회 개념의 해방과 투쟁이다. 불의가 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불법적인 행동조차 마다할 까닭이 없다고 보았다. 방콕보고서에 따르면 WCC는 독재자의 폭력에 항거하는 구원활동, 해방투쟁에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용인한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열린 WCC 제5차 총회(1975)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교회의 순종과 응답을 모색하면서 "전 교회가 전 복음을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했다. '전 복음'은 역사적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그의 사랑과 은혜, 죄의 용서와 회개의 부름, 성도의 교제와 전도의 사명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려고 투쟁에 동참하는 책임에 초점을 둔 아주 폭넓은 개념이다. 불의한 구조들과 해방투쟁이 오늘의 교회에 주어진 선교 과제라는데 초점이 있다.
미국 산안토니아에서 모인 WCC 세계선교대회(1989)는 교회의 창조세계 보전(保全) 책임을 '하나님의 선교'에 포함시켰다. 빌링겐선교대회가 제시한 '하나님의 선교'를 한 단계 승격시킨 것이다.
2. 복음: 연대투쟁
WCC는 선교와 함께 전도, 복음전도라는 단어를 병용한다. 그러나 실상 '전도'보다는 '선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전도'는 종교 간의 대화에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WCC가 말하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은 무엇이며, 전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교' 패러다임을 제시한 세계선교위원회(IMC)를 흡수 병합(1961)한 후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 제4차 총회(1968)는 선교를 가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했다. 인간화, 새로운 인간성, 교회가 가난한 자들, 학대받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자들 편에 서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WCC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수억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마땅히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WCC의 변질된 선교 개념은 복음주의자들의 단합을 자극했다.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복음주의 선교대회는 진리전파가 사회구원보다 우선된다는 내용의 '로잔언약'(1974)을 발표했다.
이에 WCC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문서상으로나마 복음주의계의 비판을 일부 수용했다.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1982)은 복음전도의 필요성과 회개, 죄의 용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하나님의 은혜, 사죄의 은혜,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남,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간헐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과 표현들은 해방신학과 '하나님의 선교'로 일관하는 서술의 들러리처럼 일부 언급되고 있다.
WCC의 선교와 복음전도에서 가난한 사람은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 가난한 자는 '불의한 정치적 분배의 희생자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그들에게 주어진 정의를 돌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으로 이 땅에 왔고,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살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한 주님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는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공감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죄의 희생자로 인식했다."라고 한다.
WCC는 교회의 본질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 '기쁜 소식'을 정의, 자유, 해방을 향한 노력이 열매 맺지 못하는 현실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투쟁'하고, 그 투쟁에 연대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복음전도)은 빈부격차의 문제,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만큼의 물질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가, 인종차별, 무력함, 고독, 가족과 공동체 결속의 파괴 등 가난한 구조가 가져온 주변화(maginalization)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직도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이 비극적인 상황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힘을 가진 사람들의 억압과 불의한 정치적 분배의 희생자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역은 그들에게 정의를 돌려주는 것이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죄의 희생자로 인식했다."라고 한다.
여기서 '기쁜 소식', 곧 복음의 선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WCC는 "예수는 유린당하고, 무시당한 모든 사람들과 연대했음을 선포한다. …매일매일 예수와 더불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들과 연대하도록 초청받는다."라고 답한다. 가난 극복을 위한 투쟁에 초청하고 응하는 것이 복음전도이며, 복음선포이며, 복음증거라는 것이다.
결론: 선교 과업의 우선순위
기독교 단체나 기구의 역사는 말이나 문서가 아니라 실제로 수행해 온 활동으로 평가된다. WCC의 인력구조, 예산활용, 각종 프로그램을 분석하면 이 단체가 과연 전도에 어느 정도 열성을 다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전도, 복음선포, 구령사업, 교회건설, 영혼의 문제에 과연 어느 정도의 인력과 재원을 지원했는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WCC의 선교와 전도 역사는 '하나님의 선교'에 근거한 인간화, 해방투쟁 일변도였다. 사회구원 지상주의로 일관했다.
WCC의 사업계획, 특히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개인적인 구세주로 받아들이도록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분명한 말로써 선포해야 하는 일을 실제로 최소화하거나 무시했다. WCC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가 발전시킨 '종교간의 대화 신학'은 기독교의 복음 증거를 무디게 하거나 복음전도를 '선교'의 장애물로 여기게 했다. 결국 WCC로 하여금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에 빠져들게 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고귀하고 순결하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인 가난과 영적인 가난은 모두 기독교회의 관심사이다.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는 다 중요하다. WCC도 문서에는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음주의는 이 두 가지 사이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본다.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분부했다.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지상명령의 핵심이며 우선 과제이다.
WCC는 '통전적 선교'를 말한다.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 영혼에 대한 봉사와 육체에 대한 봉사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복음주의 교회가 수직적이고 영혼에 대한 봉사에 기울어져 통전적 선교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과연 WCC 에큐메니칼 신학과 실천에서 '통전적 선교', 종합적인 선교가 실제로 가능할까? 십자가와 이신칭의의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선교와 전도 활동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그들에게 '복음전도'는 에큐메니칼 신학이 표방하는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 지향하는 종교혼합주의, 그리고 이것들을 떠받들고 있는 구원 보편주의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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