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엡2:11-22
I. 들어가는 말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얻은 자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될 때 교회공동체는 하나가 되어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구원을 받은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동일하게 선물로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갈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성도를 구원해주시고, 성도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신바 되었다고 선언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서로가 구원을 선물로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안에서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어감을 말씀합니다.
II. 그리스도와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1.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워진 우리(11-13절)
(1)그리스도밖에 있던 자들(11-12절)
1)이방인이었던 자들(11절)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는 본절을 1-10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상태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본절은 유대인의 관점에서 진술한 것입니다. '육체'에 대해서 혹자는 신체적인 혈통과 중생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Bruce). 그러나 본절의 '육체'는 신체적 혈통이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에베소 교인들이 과거에 유대인이 아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방인'('타 에드네')이라는 말에서 관사 '타'는 경멸과 무시조의 어투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을 소유하지 못한 자임을 시사합니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할례'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식입니다(창 17:8-14).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무할례당'이라고 불렀으며 반면에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 '할례당'이라고 불렀습니다. 본절의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테스 레고 메네스 페리토 메스')는 문자적으로 ‘소위 할례당이라 불리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이 이방인을 무할례당이라고 무시한 유대인들의 태도에 찬성하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할례는 외적 표식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빌 3:2; 골 2:11).
2)그리스도밖에 있던 자들(12절)
사도는 에베소교인들이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알지 못했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는 그리스도인이 되지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메시야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인들은 그때에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은 국가적 출생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特權)을 갖지 못하였습니다(롬 9:4, 5).
또한 그들은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습니다. '언약들'('톤 디아테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창 15:7-21;17:1-21), 야곱(창 28:13-15), 이스라엘(출 24:1-8), 다윗(삼하 7장)에게 하신 언약들을 가리킵니다. 이 언약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방인이었던 에베소교인들은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없는'('아데오이')이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2)그리스도안에서 가까워짐(13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의 원어는 구약에서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을 묘사하는 '라호크'(신 28:49;29:22; 왕상 8:41; 사 5:26; 렘 5:15)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을 묘사하는 '카로브'(시 148:14)에서 유래합니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상태에 대한 이런 반전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히 10:19-22).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의 피입니다(1:7; 롬 5:10; 골 1:20-22). 그리스도의 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화해된 상태로 바뀐 것은 구약에서 유대교로의 개종으로 인해 생긴 반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롭게 창조된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누리던 것보다 더 큰 특권(特權)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를 화평케 하신 그리스도(14-18절)
(1)막힌 담을 허신 그리스도(14절)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지위의 반전에 대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에베소교인들의 어떤 수고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화평케 하신 사역의 결과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화평'('에이레네') 는 구약의 '샬롬'('평화')에서 유래합니다. '샬롬'은 전쟁이나 적대 감정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행복과 평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절의 '화평'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 감정의 중지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의 왕으로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담당하셔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었습니다.” '중간에 막힌 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Court of Gentiles) 사이를 분리하는 성전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혹자는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본 구절을 기록할 때 첫번째 견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며, 또한 유대인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사이에 막힌 담은 영적으로 율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견해와 두번째 견해는 모두 본절의 역사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적절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새사람을 지어 화평케 하심(15절)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원수된 것'을 수식하는 것으로 십계명과 같은 커다란 계명과 수많은 세세한 규정들로 구성된 모세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육체 즉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하셨으며(롬 7:4; 갈 3:13), 율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던 옛 질서를 폐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폐지하셨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롬 7:6) 율법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롬 3:31-4:25). 왜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이신 득의의 복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본절의 '히나' ('...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지하신 목적을 명시합니다. 그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어 화평하게 만드는(14절) 새 창조입니다. '새 창조'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
(3)원수된 것을 소멸하시고(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희생이 목적하는 바는 죄로 인해 생긴 원수된 것을 제거(除去)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라고 진술합니다(롬 5:10; 고후 5:18-20; 골 1:20).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각각이 하나님과 이루는 화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창조로 이룬 한 인류,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몸'은 '교회'를 의미합니다(4:4; 골 1:18).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몸의 각 지체로 이루어진 유기체입니다(고전 10:17;12:13; 골 3:15).
(4)평안을 전하심(17-18절)
1)평안을 전하심(17절)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먼 데'와 '가까운 데'는 13절의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와 상관성을 갖는 것으로 본절은 70인역의 사 52:7과 57:19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유대인과 이방인 각각의 그룹 에 선포(宣布)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평안에 대한 선포는 '하나님과 각 그룹간의 화해'를 전제로 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해'를 시사합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언제 전하셨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동안 계속적으로 전한 선포라고 주장합니다(Stuhlmacher, Lindemann). 둘째, 혹자는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예수의 선포라고 주장합니다(Abbott, Gnilka, Caird, Wood). 셋째, 혹자는 화해의 죽음인 십자가 사건의 성취를 통해서 선포하셨다고 주장합니다(Lincoln). 세 가지 견해 중 둘째와 셋째 견해가 타당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멀리 있던 이방인들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동시에 사도와 교회를 통해서 현재도 계속적으로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행 10:36; 고후 5:18-20).
2)한 성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감(18절)
“저로 말미맘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나아감'('프로사고겐')은 구약에서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표현으로 70인역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제사드리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레 1:3;3:3;4:14).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요 10:7, 9;14:6)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였던 옛 범주(範疇)는 폐지되었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한 성령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감을 나타냅니다(롬 8:15, 16; 갈 4:6).
3. 그리스도와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교회(19-22절)
(1)하나님의 권속이 됨(19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허시고 화평을 이루시어서 성령안에서 하나님게 나아가게 하신 결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외인'('크세노이')이라는 말은 ‘외국인’을 의미하며, ‘손’('파로이코이')이라는 말은 '자원해서 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권리가 없는 자'를 뜻합니다. 본절의 '크세노이' 와 '파로이코이'는 이방인의 유대인과의 관계를 전제한 표현입니다(12절).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성도'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1:1). 이제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의 소외된 이방인의 신분에서 벗어나 나머지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1:18).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권속(眷屬) 즉 가족입니다(요 1:13; 갈 4:7).
(2)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20-22절)
1)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운 교회(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바울은 본절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라고 진술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에서의 속격에 대해 혹자는 주격적 속격으로 해석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놓여진 터'라고 주장합니다(Meyer, NEB). 그러나 그것은 동격적 속격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구성된 터'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Lincoln, Bruce). 이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교회를 설립함에 있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함으로 교회의 기초가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혹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하나의 관사로 수식되고 있기 때문에 동일 인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D. Hill). 그러나 4:11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각각의 관사를 사용하고 있기에 이들은 서로 다른 직분으로 다른 인물들을 지칭한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즉 '사도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에 의해서 위임(委任)받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며, '선지자들'은 특별한 예언의 은사를 받은 남녀들을 가리킵니다(행 11:27;13:1, 2;15:32;19:6; 롬 12:6; 고전 14장; 살전 5:20; 계 1:3;10:11;16:6;18:20, 24).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이며 선포하는 자로서 교회 설립의 터가 되었습니다.
2)교회의 모퉁이 돌 되신 그리스도(20절)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모퉁이 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혹자는 건물의 기초석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Mitton, Merklein, Percy). 이 경우는 70인역의 사 28:16에서 발견됩니다. 둘째, 혹자는 건물의 꼭대기에 얹는 돌이라고 주장합니다(Barth, Caird, Hanson). 이 경우는 시 118:22에서 발견됩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닙니다. 결국 교회는 건물의 꼭대기에 있는 돌로서의 그리스도와 함께 완성된 구조이며, 또한 기초석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건물입니다.
3)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어가는 교회(21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건물마다'('파사 오이코도메')는 각각의 건물이라기보다는, 전체 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교회는 현재 건설되어 가고 있습니다. '연결하여'('쉬나르몰로구메네')는 현재 분사로 교회가 현재에도 계속 연결되어 이루어져 가는 것을 시사하며, '되어가고'('아워세이')는 현재형으로 교회가 유기체적으로 성장하여 가는 것을 시사합니다.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일반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히에론'이 아니라 성전 내부를 가리키는 '나오스'로서 하나님께서 거주하시고 만나시며 교제하시는 장소를 나타냅니다.
4)하나님 거하실 처소가 되는 교회(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나”
본절의 '처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하늘 처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전체 교회'를 가리킵니다.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쉬노이코도메이스데') 또한 현재 시상으로 처소가 계속 지어져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한편 하나님이 교회에 거하시는 수단은 '성령'이며(고전 3:16) 교회는 성령의 작용으로 지어집니다.
III.적용: 하나의 교회 공동체를 추구하며
교회공동체가 하나로 지어져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모퉁이돌이 되고 그리스도안에서 연결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중심되시고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께 연결되어가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지면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지어져갑니다. 그 때 성령께서 교회공동체를 하나로 지어가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갑니다.
우리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지어져가기 위하여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체험이 있어야합니다. 이것은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자신의 옛자아가 죽었다는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가 내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옛사람, 즉 죄인된 나의 옛 모습이 죽었다는 인식과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아직도 그런 확신이 없다면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의 옛자아가 죽었다는 확신이 들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으로 부활한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안에 들어와 계시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부어주셨다는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확신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가 하나 됨을 확신합니다. 각자안에 계신 성령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해갈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교회공동체는 비로소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서 지어져갈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가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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