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제사장의 축복 기도.

하나님아들 2024. 12. 22. 21:52

제사장의 축복 기도.

민수기 6장 22절~27절 2004년 06월 27일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복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복과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세상적인 복과 하나님이 주신 복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사회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복은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는 복입니다. 둘째, 윤리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복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 내가 많이 소유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바르고 깨끗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면서 받는 복입니다. 셋째, 과정성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복은 과정이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이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수고와 노력과 땀이 있습니다. 넷째, 지속성의 차이입니다. 세상적인 복은 풀과 같습니다. 급속히 자라지만 잠시 후에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백향목이 자라는 것처럼 더딘 것 같으나 백향목처럼 지속적입니다.
오늘 말씀은 제사장의 축복을 통해서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살펴보겠습니다.
1.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24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24에 ‘원하며’, 25절에 ‘원하며’, 26절에 ‘원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신28:1에 보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면 분야는 다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서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인생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들의 미움을 받아 상인들에게 팔려서 종으로 애굽에 가게 되었습니다. 종살이를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종살이를 하면서도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고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있는 요셉을 꺼내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7년 풍년에 7년 흉년을 준비하게하셔서 세계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모셔드리면 구원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구원 이외의 모든 복도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모든 복을 준비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면 예비 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11:26-28에 보면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2.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24절)
여기서 "지키다"라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친다"라는 뜻입니다. 가시로 담장을 친다는 말은 어떤 대적도 막아주신다는 철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원수마귀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은 성도를 멸망시키려고 갖은 수법을 다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신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음악 소리가 나면 우상 앞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절을 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단은 그들의 정적들을 통하여 왕에게 고소하게 했으며, 결국 그들은 7배나 되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불속에 나타나셔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사를 통해서 지켜 주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능력의 천사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있던 도단성을 아람 군대가 포위했을 때 두려워하던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엘리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도단성을 포위하고 있던 아람 군대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유월절에 죽음의 천사들이 애굽 전역의 장자들을 죽일 때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피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것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해 줍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안팎으로 역청을 발랐습니다. 홍수가나서 물이 범람하지만 노아의 홍수는 물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역청이 예수님의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나 자신이나 가족들 그리고 교회를 주의 보혈로 덮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역사하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지켜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사막의 추위로부터 지켜주셨던 것처럼 지금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에이 엘 길 박사님은 살인자로부터 보호 받은 간증을 합니다. 길 박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산장에서 내려올 때 성령께서 사모님에게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을 통하여 앞에 위험이 있음을 말씀하셨고 살인강도가 나타났을 때 도망칠 것을 말씀하셔서 해를 받지 않았던 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제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교회를 왔다가 화재로부터 보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3.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5절)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왜냐하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개인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나에게 비취신다고 말하는데 살후1:9에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떠나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생각해봐도 은혜를 입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매로 다스릴 것인가 사랑으로 다스릴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합니다. 매 없이 사랑만으로 다스리는 것은 자녀를 망치는 일이 됩니다. 잘못에 대해서 반드시 징계를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눈물이 쏙 나도록 징계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혹한 징계는 아이를 망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탈옥수 신창원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창원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가 키웠습니다. 신창원이 남의 밭에서 수박 하나 훔쳐 먹었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소년원에다 집어넣었습니다. 소년원에 가서 오히려 아이의 성격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많은 범죄를 배워서 그 후 계속 범죄를 하다가 그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조금만 더 은혜로 자식을 키웠다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정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을 명문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아들 이삭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손자 야곱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대를 이어 입은 아브라함의 가문은 명문가가 된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국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단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은혜를 입는 것은 논에 물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물 없는 논은 모내기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종을 심어도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듯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리는 은혜로 생명이 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진리를 들을 때 은혜가 임하여 그 진리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듣고도 강퍅하여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이 강퍅했던 이유는 은혜를 받지 못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유럽의 격언 가운데 “젖소는 물을 마신 후에 그 물로 아름다운 젖을 만든다. 그러나 뱀은 물을 마신 후 그 물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중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은 샬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나 평화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환경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도 고물을 베개하고 주무셨다. 주님에게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평안이 있었습니다. 하바국 선지자는 합3:16절에서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고 환난의 소식이 들리므로 창자와 입술이 떨리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창고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평강은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롬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안에서 평강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참된 평화를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빌4:6,7에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사람 때문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의 평화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사람 앞에 말하는 것은 당장은 위로가 되지만 참된 평강을 주지는 않습니다. 인디언들에게는 재미있는 풍습이 하나 있습니다. 화, 분노로 소리 지르고 싶을 때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가서 구멍을 파고 엎드려 소리를 지르고 실컷 욕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구멍을 흙으로 덮고 돌아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나아가서소리지르고 울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에 평강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수록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5병2어의 축복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는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5.그들은 축복할지니(27절).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축복할 것을 말씀하신 후에 제사장들이 축복해야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옛 히브리 학자들은 "복을 주시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있고 제사장은 그 입을 대신하여 전달하는 것이라 하여 제사장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경시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예배의 순서 가운데 축도가 있습니다. 축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목사가 주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복을 빌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면 목사와 성도들의 관계와 교회생활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보면 정말 우러나와서 복을 빌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은 복된 성도라고 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복을 빌어주고 싶어도 도저히 복을 빌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복보다 매가 유익인 경우도 있습니다. 목사가마음껏 복을 빌 수 있는 성도는 복 있습니다.


마경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