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사 론
1.은사를 주신목적
2.은사의 종류
■ 이끄는글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
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
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
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
눠주시느니라](고전12:4-11)
은사는 성령께서 각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는 많은 서로 다른 견해들이 교회 중에 함
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은사구분에 대한 기준도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그
리고 은사의 무분별한 사용과 잘못된 은사때문에 교회가 큰피해를 당하기
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과에서는 성령을 따라 나타나는 은사론을 다루되, 은사
의 종류 구분보다는 은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사를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은사를 성도들에게 주신 것은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올바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개인의 사생활에
유익을 위함이 아니며 절대적으로 은사받은 자가 교회의 지체로서 유익되
게 쓰임받도록 하심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를 이루는 회중은 몸된 교회의 지체
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각부분에서 합당한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바로 몸된 교회를 이
루는 지체들에게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는 몇가지의 은사를 말씀하면서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각자에게 서로 다르게 주어지는 각양 은사는 집을 지을 때의 벽돌처럼
함께 연합하여 몸된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에서는 은사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인 교회를 완전케 한다고 하셨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못 사용하여 사사로이 개
인의 유익을 구하려한다면 사도들에게 능력을 돈으로 사려다가 책망 받았
던 시몬처럼(행전 8:20)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은사의 종류
(1) 성령으로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성령은 지혜의 신이시며, 지식의 신이십니다. 성령만큼 지식이 넘치는
이가 없고 성령만큼 지혜로 가득찬 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
씀]과 [지식의 말씀]은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선물입니
다.
사람은 원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
물 가운데 사람과 다른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인간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지혜와 생각한 것을 간수 할 수 있는 지식이 있다는 것입
니다. 그것은 동물에게 있는 본능과 같은 것이 아니며, 창조적으로 현실
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동물의 생활은 수 천년이 지나도 변하
지 않습니다. 동물에게는 문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문화의 발전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을 낳게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인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원래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지식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되고 있습
니다. 성령의 은사로서의 지혜와 지식은 문명과 문화에 유익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지식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와 예의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합니다. 인간이 가진
본래의 지혜와 지식은 과학과 문명이 가져다 주는 은택을 입게 하지만 성
령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성도는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이 충만하도록 구해야 할것입니다.
한편 은사로서의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길이라면, [지혜의 말
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치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시대
의 율법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잘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충
만하도록 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성령으로 믿음을
우리는 보통 믿음을 세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를 다니
면서도 이성으로 믿는 믿음을 갖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자
들은 자기의 생각 속에 믿음이 있습니다. 즉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는 것이나 예수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지식으로 생각이 받아
들이듯 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은 행함
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약 2:20). 그 결과 그런 자들은 환란이나 유혹
이 다가왔을 때에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믿음입니다.
한편 두번째의 믿음은 스스로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감동을 스스로 경험하지는 못하지만 타자에게 일어난 이적과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나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눈
으로 본 바와 귀로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환란이 다가오면 거기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스스로의 절제생활로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성령을 따라서 믿는 믿음
을 가리킴입니다. 성령이 각자의 영혼에 깊이 임하셔서 감동하시는 믿음
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혼 깊이 경험하게 하며, 환란날에도 능히 견뎌내
게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로서의 믿음은 바로 세번째의 믿음을 말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의 자기 이성으로 믿는 믿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두번째의 믿
음과 확신은 자기 자신은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 곧 예수의 증인이 되는 믿음의 은사는 성령으로 믿는 믿음인 것입
니다.
(3)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사를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1절까지의 9가지 은사 중 유일하게 병고치
는 것만 [은사]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은사들은 굳이 [은사]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고 있는데 병고침에만 [은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
다.
[병 고침의 은사]는 다른 은사들과 성격을 조금 달리하고 있습니다. 성
령을 따라 [지혜, 지식, 믿음]과 같은 것들은 한번 주어지면 지속성을 가
집니다. 우리의 형편에 따라 더함과 덜함이 있게 되겠지만 완전히 없어지
거나 떠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병고치는 것 만은 현재적이어서 그때 그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이미 권리가 양도되었지만 병고침의
은사만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
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성령으로 능력 행함을
하나님의 능력에는 병고치는 것도 포함되지만 은사로서의 [능력 행함]
은 병고침과는 조금 다릅니다. [능력행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
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적과 이적을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
과 이적은 판이하게 구별됩니다. 기적은 요행이며, 우연한 것이어서 보편
성과 지속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적은 우연이 아니며 하나님의 수준에
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는 보편적입니다. 이적이란 곧
기이한 일이 아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다른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
러므로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막 16:17)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
한편 [능력행함] 중에는 [이적]과 [기사]로 구분되는데, 이적은 믿는
자들에게 보편적이며, 그 나타남의 범위가 좁지만 기사는 하나님 안에서
특이한 사건이며,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예를 들면 홍해가 갈라진 것은
기사입니다. 엘리야가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못하도록 하늘을 닫아버리
는 것과 기도해서 비가 내리게 하는 것들은 기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에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이적뿐만 아니라 절대 필요에 따른 하나님
의 기사도 행할 수 있는 뛰어난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5) 성령으로 예언함을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언은 기독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용
어입니다. 예언 없이는 우리의 믿음이 없으며, 예언 없이는 기독교 자체
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 전에 작정하신
뜻을 세상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언을 천사들을 통하여 예
언자들에게 알려 주시기도 하고, 또 성령이 직접 예언하는 자들을 통해서
알려 주시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가라사대]라는 말씀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천사들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
안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과 예언과 복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가 영감을
받아서 과거를 본 것인데, 그는 하나님과 영원한 계약을 맺은 인간이 에
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는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사람을 다시 거룩하게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점점 멀어
져가는 인간들을 견인하여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선지자들이 환상 중에 미래를 보
니 인간에게는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고, 멀리에서 절망한 인간을 기다리
는 희망인 그리스도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절망 중에서
율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에게 소망을 선언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들이 본 장래의 소망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복된 소식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서 선지자들의 예
언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율법과 예언과 복음의 되어진 예언
의 말씀들이 성도들을 통하여 교회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는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
을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은 교회의 회중 전체에게 동일하게 알
려지는 것이 예언입니다. 그런데 예언에 관하여 우리가 잘 알아야 될 것
들이 있습니다. 오늘 신령하다는 사람들 중에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예언이
아닌 사사로운 개인의 사정을 점하는 것과 같이 예언하는 자들이 많이 있
습니다. 우리는 예언을 점하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은사인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장래에 되어져야 할 일을, 즉 작정된 일을 선
언하는 말씀이고(요16:13), 점이란 자기의 심령을 따라서 남의 운수를
알아내는 것을 말합니다(겔 13:1-7).
점은 알아맞히는 것이지만, 예언은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우주적
이며, 이미 작정된 불변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언을 알고, 성
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우후죽순처럼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
다. 언제, 몇날 몇시에 예수께서 오신다는 예언이 난무해서 국내외적으로
대단히 소란스럽습니다. 사실 그러한 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의 잠
에서 깨어나게 하는 정신을 불러일으키게는 하지만 오히려 부작용이 많습
니다. 예수께서 언제 오시리라 하시는 예언의 말들은 예수님 때부터 지금
까지 한세대도 그치지 않고 있어왔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
께서 속히 오신다는 사실이지 새롭게 예언자들에게 계시되는 몇년, 몇월
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교사와 선지자(설교자)가 있습니다. 교사는 과거 예
언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성취된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
고, 그것을 가르쳐 믿음을 성장시키는 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설교자는
예언자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성도의 심령에 오셔서 과거의
일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깨달아 장래의 일을 알게 하신 분이십니
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은 기록된 말씀을 초월하지 않다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깊이 감동된 설교자는 예언자와 같습니다.
설교자는 교회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자적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
다.
(6) 성령으로 영들 분별함을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진리에 속한 것과 거짓을 분
별하십니다. 성령에 깊이 감동된 자들에게 하나님은 진리를 분별할 능력
을 주시는데, 신앙생활 중에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영분별의 은
사입니다.
그런데 영분별에는 대분별과 보통분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분별이
란 자기의 신앙을 분별하는 것을 말하고 보통분별이란 자기의 신앙생활을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더 설명하면 자기의 신앙의 분별이란 스스
로의 신앙이 천당갈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자신이 분별하는 것이
며, 보통분별은 성도의 현재 신앙생활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됩니
다. 보통분별의 예를 든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분별한 베드로의 경우
를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분별의 은사를 받은 자는 순간에 상대방의 영
적상태를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마리아의 무당 시몬에게 [내가
보니 네 속에 악독이 가득하다]하면서 시몬의 영을 분별해 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영분별하는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은 가릴 수 있지만 성령께서 주신 영분별의 은사 받은 자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영분별의 은사를 구하되 먼저는 자기
영혼을 위해 대분별의 은사를 구하고, 교회를 위해서 보통분별의 은사도
구해야 하겠습니다.
(7) 성령으로 각종 방언 말함과 통역함을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가지 능력이 나타나지만 특별히 방언을 말하기 시
작합니다. 그런데 방언이란 세상사람들이 듣기에는 새삼스로운 말입니
다. 사도행전 2장 4절에는 [다른 방언]으로 언급되었는데 [다른 방언]이
란 이 세상의 어느 지역에 속해있지 않는 [다른 언어]라는 뜻입니다. 그
러므로 방언이란 세상에 속한 언어의 방편이 아니고, 세상에는 없는 전혀
새로운 언어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인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자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방언은 성령의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을 성령으로 인
한 계시의 말씀, 성령의 메시지로 잘못 생각하는데 방언은 절대로 성령께
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만일 방언이 계시의 말씀이라면 성경에는 방
언을 통역하여 기록된 성령의 말씀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
14: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
이지 인간들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방언을 외국어와 관련지
어서 전도의 수단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방언은 전도의 수단도 아
닙니다. 방언은 영의 깊은 간구일 뿐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방언말함과 함께 받기에 합당한 자에게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은사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방언통역과 관련되어서 잘 알
아야 될 것은 먼저 통역하는 자의 통역은 언제나 하나님께 구하는 기구적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종종 예언과 혼동되어서 방
언의 통역이 예언의 형식이 되기도 하는데, 방언하는 주체가 성령에 감동
된 성도의 영혼인 것을 생각한다면 통역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구함이
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언과 계시의 주체는 성령이시나 방언의 주체
는 인간의 영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되겠습니다.
또한 통역의 은사중 잘못되기 쉬운 것은 귀에 들리지 않고, 마음의 순
간적인 생각을 좇아 통역을 하는 것인데 사도행전 2장에는 아주 실제적으
로 각나라의 경건한 자들이 그들의 말로 제자들의 방언을 들었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사건은 오순절을 예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령의 강림으로 제자들의 방언 말함과 함께
순간적으로 집단 통역의 은사가 임했는데, 그것은 경건하지 못한 예루살
렘 사람들이 제자들의 방언말함을 알아듣지 못하고, 술취했다고 하는 부
분을 잘 이해한다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곧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통
역의 은사는 실재로 자기의 언어로 귀에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성령의 은사인 통역 중에 예언의 형태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한
듣지 못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것들도 주의해야될 부분으로 취급합
니다.
(8) 그밖의 은사들
바울은 고린도전서 외에도 로마서와 에베소서에서 몇가지의 은사를 더
말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와 약간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1) 로마서에 나타난 은사들(12:6-8)
■ 예언의 은사
■ 섬기는 은사
■ 가르치는 은사
■ 권위하는 은사
■ 구제의 은사
■ 다스리는 은사
■ 긍휼을 베푸는 은사
2) 에베소서에 나타난 은사(4:11)
■ 사도직의 은사
■ 선지자직의 은사
■ 복음 전하는 은사
■ 목사직의 은사
■ 교사직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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