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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층도 똑같이? 25만원 지원금과 무작정 'N분의 1'의 모순

하나님아들 2024. 9. 11. 00:09

고소득층도 똑같이? 25만원 지원금과 무작정 'N분의 1'의 모순

입력2024.09.09. 
더스쿠프 안창남의 생각
여야 25만원 지원금 갑론을박
25만원 없어도 삶에 지장 없는
사람들에게 지원금 지급해서야
소득 하위층에 더 많은 지급 필요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 가치
여야 모두 신중히 따져봐야 할 때
'25만원 민생지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진영과 이념을 떠나 '여야 주장' 모두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따져볼 게 있다.
25만원을 받지 않아도 삶에 그리 지장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국가가 지원을 하느냐다.
일정 소득 이상인 자에게는 지급을 하지 않되 해당 금액을 소득 하위층에 몰아주는 게 순리일지 모른다.
 
이번 '안창남의 생각'에선 25만원 지원금을 통해 상대적 평등의 가치를 살펴봤다. 

정치권이 25만원 민생지원을 사이에 두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새 학기가 시작하는 9월, 프랑스 학부모들에게는 급식비 청구서가 나온다.
급식비는 학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몇 단계로 구분해 금액을 정하는데,
소득 수준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많은 금액이 적힌다.
외손녀가 받은 통지서를 보니 소득별로 한끼 식사비용이 3유로(약 4500원)에서 3.8유로까지 다양하다.
[※참고: 급식비는 무상교육에 포함하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고 있어 금액이 지역마다 같지는 않다.] 

학생이 학교 점심시간에 먹는 짜장면 한그릇 값이
부모의 소득에 따라 다른 것을 강학講學상 '상대적 평등'이라고 한다.
이는 '같은 것은 같게 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하여야 한다'는 원칙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도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별은 허용하고 있다(헌법재판소 98헌바14 결정). 

따라서 학부모의 소득이 다르다면(합리적 근거), 학교 급식비 역시 소득 차이만큼 다른 금액이 적혀 있어야(다른 것은 다르게) 평등의 원칙에 부합한다.
프랑스의 국가 표어(national motto) 중 하나가 평등(Egalité)임에도, 이같은 상대적 평등이 사회제도 곳곳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상대적 평등과는 결이 약간 다른 '절대적 평등'도 있다.
차별 없이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정 나이에 이른 학생에게는 모두 예외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절대적 평등).
그렇다고 이들 모두에게 명성 있는 대학교에 입학할 기회까지는 부여하지 못한다.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제한적으로 입학생을 결정한다(상대적 평등).
더 나아가 합격하고도 돈이 없어 등록을 못하는 자에게 국가가 장학금을 지급해 학업을 하게 하는 '실질적 평등'까지 보장한다.
프랑스 급식비의 경우 취약계층에게는 국가가 지원을 한다.



지금이야 당연한 권리라고 여겨지는 평등의 원칙이 인류사회에 등장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는다.
1776년 미국 버지니아 권리장전,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 인권선언, 프랑스 헌법(1793년) 등에 평등의 원칙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신神 앞의 평등'이라는 기독교사상과 자연법사상의 발전 및 민주주의의 숙성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바꿔 말하면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인종과 계층이 합법적으로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863년에야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을 봐도 인류에게 평등이라는 선물이 주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법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일체 평등함'이라는 조문에서 시작해 1987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현행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문에 이르고 있다.

상대적 평등 원칙을 세법에서 구체화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소득세 누진세율 제도다.
적게 번 사람은 세금을 적게 내고, 많이 번 사람은 세금도 많이 내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같은 소득금액을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정도의 소득을 국가가 담보한다는 의미다. 

이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사회체제가 복지국가다. 그런데 복지는 세금과 달리 소득이 낮은 계층에 더 많이 지원한다는 점에서 소득이 높으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누진세율과는 반대다. 세법의 대표적인 복지 지원 수단인 근로장려세제(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실질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의 경우 소득이 적은 자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른바 '25만원 민생지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다. 민생회복을 위해서는 지급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재정 부담 때문에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는 건 어렵다는 주장이 맞선다.

[사진=뉴시스]


국가 재정이 튼튼하다면야 고민할 것이 없이 절대적 평등의 잣대로 지급하면 되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재정 사정은 그렇지 않다. 25만원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서민층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다. 

25만원은 프랑스 학생 두달 치 급식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법의 시행 여부는 국회와 행정부의 결단에 달려있지만, 상대적 평등 원칙을 근거로 소득세 누진세율(또는 건강보험료 소득 판정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과 지원 금액을 좀 더 세분화할 필요는 있다.

재정 부담을 줄이고 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되려면 일정 소득 이상인 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대신 해당 금액을 소득 하위층에 몰아주는 방법도 있다. 그냥 N분의 1식으로 하자는 주장은 무책임의 극치이고 상대적 평등원칙에 맞지도 않는다.  

안창남 AnP 세금연구소장  | 더스쿠프 
acnanp@yahoo.co.kr

안창남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