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예수님이 오신 목적

하나님아들 2024. 5. 1. 17:14

예수님이 오신 목적

 

 

 

   이사야 53장 1절 -12절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는 주님이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실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언을 하였고 이 예언대로 주님은 모두 성경대로 일을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었습니다.

요한 복음 16정 13절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 말씀은 성령께서는 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는 미리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을 하시고 후에 예언하신 대로 모든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예언은 얼마나 정확한지 마치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과 같이 상세하고 정확합니다.

우리 나라의 삼국 시대에 고종 황제가 일본에게 당할 수모를 기록하여 놓았고, 700년 후에 그 기록대로 정확하게 이루어 진 것과 같이 이사야의 예언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이사야 53장 1절- 3절은 주님의 모습을 말하였습니다.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얼굴의 모습이 아름답거나 잘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건강한 육체를 가지지도 않아서 잔병을 많이 치른 사람입니다. 연한 순과 같이 약하고 약한 육신을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마른 줄기와 같이 깡마른 몸집을 가지신 연약한 주님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옷을 벗고 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때에 뚱뚱한 주님의 사진은 하나도 없고 깡마른 주님의 육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풍채도 없습니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멀리서 볼 때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풍채입니다.

풍채의 의젓함도 없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우리가 흠모 할 만한 육신적인 아름다움이 하나도 없으신 주님의 육체의 모습입니다.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는 멸시 천대를 공생애 시작하기 전부터 받았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하며 연약한 육신을 소유한 주님은 모든 가난의 고통을 당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가 되고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도 없는 외로운 인생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이십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간고는 가난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입니다. 끼니를 걱정하는 고생, 연약한 육신으로 노동을 하여 한끼 한끼를 넘어가는 고생을 주님은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가난하다 하여도 예수와 같이 가난의 고생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질고를 아는 자라”

질고는 질병의 고통으로 안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뜻으로 많은 병고를 치르신 주님이심을 정거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질고를 당하셨거든 하물며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당하는 질병의 고통을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병을 앓아 본 자는 의사보다도 더 질병의 고통을 이해하고 의사보다도 더 낫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 주님은 멸시받는 고통, 가난의 고통, 질병의 고통을 다 경험하시었음으로 우리의 모든 육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을 이해하십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대로 문둥병자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며 소리를 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문둥이와 같은 대접을 받으며 세상의 30년간 공생애 전을 살아 왔음으로 우리가 당하는 모든 멸시 천대를 경험하신 주님이십니다.

만 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다들이 왜 우리 인간의 맨 밑바닥의 생활을 경험 하였을까를 의미 있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출생 할 때에도 자기 집도 아닌 여관도 아닌 마구간에서 출생하시고 고운 얼굴도, 풍채도 없으시고 육신이 약하여 질병, 가난의 고통 속에 살고 친구도 없이 외톨박이로 문둥이 대접을 받으면서 살은 주님, 인간 차별을 다 당하신 주님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가난, 질병, 멸시, 외로움의 고통을 당할 때에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치료를 주시기 위하여, 높임을 받게 하기 위하여 몸소 인간의 모든 고통을 담당하시려고 연약함을 친히 맛보신 것입니다.

     마가 복음 9장 12절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예수님은 이사야가 기록한 이 가난의 고통을 질병의 고통, 따돌림의 고통 등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시었습니다.

마태 복음 8장 2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기독교는 대속의 종교입니다. 구약에서는 죄를 지으면 소나 양을 대신 죽여서 죄를 속함 받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대신 모든 일을 당함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주셨습니다.

 

1. 예수님이 왜 고운 모양도 없으시고 풍채도 없었습니까?

  이사야서 52장 1절 -2절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하나님의 아들로써 아름다운 자가 되기 위하여서입니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하여 고운 모양,

아름다운 모양이 없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왜 멸시를 받았습니까?

  이사야 49장 5절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나를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대신 세상에서 멸시를 받으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왜 가난의 고통을 겪었습니까?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대신 가난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로마서 15장 29절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간고를 겪으신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왜 질병의 고통을 당하였습니까?

우리를 강건하게 하기 위하여 질병의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아담이 받은 세 가지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 영혼의 죽음, 환경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모두 세 가지의 죽음은 저주로 질병으로 인하여 오는 것입니다.

영혼이 병들면 영이 죽고 육신이 죽으면 육신이 죽고 환경이 병들면 환경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소 아담으로 인하여 온 모든 저주의 죽음을 담당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이 모든 질병으로 인하여 오는 죽음을 당할 수 없는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기묘하신 하나님이심으로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예수님께 이미 담당하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 가운데서 살아가는 참으로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5大 축복을 상고하겠습니다.

 

1. 기쁨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슬픔을 거두어 가시고 기쁨을 주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아담으로 인하여 온 모든 저주를 거두어 가시려고 세상에 오시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온 저주와 사망과 수고를 예수님이 다 거두어 가심으로 우리는 이제 기쁨을 회복하고 슬픔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질병도 우리에게 사망과 고통을 가져다 주는 슬픔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 이름으로 이 모든 질병을 물리치고 치료받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가난에서 오는 슬픔이 있습니다. 먹지 못하고 굶고 있는 사람의 가난의 고통의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자기 가치관에 달려 있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가난하여도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산곡 오막살이에서도 찬송과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예비군 훈련을 받다가 인상 깊게 듣고 깨달은 것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거두어 가시고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러함으로 항상 기뻐하라 하시었고 도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2. 우리의 허물을 다 거두어 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허물은 알지 못하고 고의성이 없이 저지른 죄입니다. 허물도 역시 죄임으로 죽을죄입니다.

세상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듯이 모든 사람은 허물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산 속에 살고 있는 도승일지라도 허물은 있습니다. 목사나 거룩한 성직자도 허물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의 허물을 가져가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이 허물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의성이 없이 모르고 지은 죄까지도 다 담당하시고 가져갔습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의 허물까지 들춰내며 참소를 하지만 예수를 믿은 사람은 허물이 이제는 없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죄악을 가져갔습니다.

죄악은 알고도 지은 고범죄가 죄악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 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한 것을 알고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마귀의 꾐에 속아서 선악과를 먹은 것과 같이 알면서도 지은 죄가 죄악입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죄, 인륜 도덕, 윤리에 어긋나는 죄, 양심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지은 죄가 죄악입니다.

이 모든 우리가 지은 악한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손과 발에 십자가에 못박이시며 피를 흘리며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내 죄악으로 상하여 피흘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할 때에 이런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요 이 예수를 믿음으로 죄악이 사하여짐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방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여도 대법원에서 무죄라고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가 네 죄악을 대신하여 죽었으니 너는 무죄라고 하나님이 선고하면 내가 아무리 죄가 많은 악한 사람이라고 무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주님이십니다.

 

4. 평화를 주시려 오셨습니다.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징계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징계 할 때에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아들을 징계하듯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인의 대표자로 징계하여 버리셨습니다.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아버지가 예수님을 징계하시고 버리심으로 우리는 대신 아버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가까이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누가 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된 것을 천사가 노래한 것입니다. 국가간, 민족간의 평화가 아니요 하나님과 예수 믿는 사람간의 평화를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 - 2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는 이제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아버지라 부르면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5. 우리에게 나음을 주려고 오시였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의 못된 행실을 고치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하기 위하여 주님이 내가 맞을 채찍을 맞고 대신 피를 흘리시며 육신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맞으신 채찍을 결코 헛되게 하지 말고 나음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다 당하시고 맞았으니 또 내가 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리: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오늘 분명히 알 것은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신 사실만 알고 그대로 이 사실을 주장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대신 담당한 자가 이미 있는데 또 내가 담당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1억 딸라를 대신 갚아 주어서 빚이 없는데 또 1억 딸라를 내가 벌어서 갚겠다는 사람이 없듯이 우리는 죽을 죄악,

허물, 저주, 질고 등에서 이미 주님이 대신 담당하시었음을 확실히 알고 이제는 나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성경에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하신 말씀은 이런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잠언 3장 18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생명나무를 가진자로 복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 - 6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충만한 복을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기쁨, 용서, 구원, 평화, 나음을 주시려고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