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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서술에 대한 방법론적 시도

하나님아들 2024. 4. 30. 20:37

교회사 서술에 대한 방법론적 시도

 

 

1. 시작하면서

 

교회사를 서술하는 작업에 대하여 두가지의 중요한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고 교회사 서술에서는 이 두가지 기둥과 함께 신학적 입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서술방식으로 나타난다.1)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역사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역사학에서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며, 동시에 역사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형적인 질문방식이다. 2500여년의 역사학의 흐름2) 속에서 이 물음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답을 내어놓았으나, 21세기의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속에서도 여전히 질문되고 또한 대답되는 내용이다. 결국 역사를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따라서 그 방법론과 그 분석 그리고 설명의 방식들이 달리 적용되고 채택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이해에 있어서 가장 대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역사를 정의함에 있어서 인간의 역사를 다룰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으나 자신의 계획대로 역사를 이끌어가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역사를 다룰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방법에서부터 그 전개와 이해는 분명하게 달라진다.

 

다음으로 다루어질 내용으로 교회나 기독교에 관한 입장이다. 기독교의 정체성과 아울러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그 전개되는 내용이나 다루어지는 것들이 분명하게 차이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전개를 살피고 분석하기 이전에 그 입장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3)

 

교회사 서술과 역사신학적 이해에 관하여 대표적인 예로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Karl Gustav von Harnack, 1851.5.7~1930.6.10)의 작품을 통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20세기를 시작하면서 대표적인 교회사가로 인정받는 하르낙의 교회사 서술에 관한 방법론적으로 분석하게 될 것이다.4) 그는 스승인 리츨의 신학과 리츨 신학이 담고 있는 역사이해의 중요한 틀을 수용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정리하고 더 나아가 기독교의 역사를 요약하였다.5) 그렇기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기독교 혹은 교회에 관한 역사신학적 입장에 관한 정리에 있어서도 적절한 자료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2. 역사에 대한 정의

 

역사의 본질과 그 의미를 살핌에 있어서 먼저 역사에 대한 정의와 그 내용을 분석해 본다. 역사에 대한 비슷한 표현은 성경6)을 비롯하여 많은 고대 문헌에도 등장하지만, 일반적 으로 인정되는 것은 헬라어로 ‘ἱδτορία’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7) 이 단어의 의미는 질문(inquiry)이나 조사(investigation)라는 뜻으로, 가장 대표적인 그리스 학자로 헤로도토스(Herodotos, B.C.484~425경)와 투키디데스(Thucydides, B.C.456~395경)의 역사서술 방법을 통하여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8)

 

먼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사를 다룬9)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이 작품은 역사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0) 그는 서문에서 ‘탐구한 바’를 잊지 않기 위하여 기록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것을 ‘역사’라고 명명(命名)하였다.11) 헤르도투스의 다음 세대에 등장한 역사가로 투키디데스(Thucydides, B.C.456~395경)를 언급할 수 있는데,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사를 정리하였다.12)

 

헤르도토스가 정리한 내용에는 구전이나 전승 등의 많은 자료와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데 반하여, 투키디데스의 서술에서는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인간주의적이며 과학적인 면이 강조되었다.13)

 

그 외의 많은 역사가들의 역사기록 방법들을 볼 때, 역사는 과거 사건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와 정리라는 의미, 다시 말하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중세시대까지는 과거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의미로 역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구체적으로 역사서술의 방법론을 살펴보면,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던 연보(annals)나 연대기(chronicles) 형태의 서술방식으로 역사가 서술되거나,14) 위인들의 업적을 서술하던 전기(vitae)와 업적록(gesta)의 방식으로 정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의미와 과거 사건의 재구성이란 의미로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15) 즉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역사와 역사가의 손에 의하여 정리된 역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역사학에서는 두 분야의 재구성과 서술에 관하여 고민하였고, 많은 역사가들이 방법론에 관하여 고민하며 나름대로의 서술 방법이나 자세에 관하여 정리하였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역사가인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16)는 역사서술에 있어서 원사료에 충실하면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die Geschichte zeige nur, wie es gewesen ist).17) 그럼에도 자신이 전개한 방법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8) 그 대표적인 예로 로마의 멸망을 다루면서 다양한 원인들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인과적인 관계를 분명히 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로마에게 멸망을 허락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랑케가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는 의미에로 사용한 표현이다.19)

 

역사 서술에 있어서 객관적인 과거의 사실에 중점을 둔 분석과 달리, 그 사건을 대하는 역사가에 중점을 두고 역사를 정리한 학자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20)나 콜링우드(R. G. Collingwood, 1889~1943)21)는 객관적이고 완전한 법칙이나 질서를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역사가로서 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기술 방법론에 있어서 주관적이라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객관적 기술의 한계와 역사의 의미를 고려할때 이 방법론이 가장 타당하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료중심의 객관적인 서술과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의 주관적 이해를 함께 조화하려는 자세의 대표적인 예로 카(E. H. Carr, 1892~1982)를 다루거나 그 외의 많은 학자들의 입장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22)

 

역사를 분석함에 있어서 주관적인 방법 혹은 객관적인 방법 외에도 포괄적인 방법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지리, 사회와 경제 등을 함께 고려하면서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정리하는 것이다.23)

즉 학문이 가지는 논리적 성격과 인과론적으로 전개하는 방법으로 여기며 역사학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많은 노력들을 통하여 역사학자들은 자신의 방법이객관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전제에 입각한 역사철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24)

 

역사서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을 헤르만 바빙크를 통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는 계시철학(The Philosophy of Revelation)에서 19세기 까지 소개된 다양한 역사학의 방법론을 분석하고 있다.25) 역사학에서 도입하는 다양한 방법들과 노력들은 역사속에서 나타난 법칙이나 원인과 결과의 관련성 혹은 어떠한 질서를 탐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그 어떠한 법칙이나 원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임을 바빙크는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역사를 인간과 관련된 의미있는 활동으로만 제한하기 때문이며, 눈에 보이는 역사적 사건이나 현상으로만 그 모든 것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이 완전하지 않음에도,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정신에서는 그것을 기초로 모든 것을 전개하기 때문이다.26) 하지만 역사의 주관자되시며, 보이는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때 그 모든 역사는 더 분명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헤르만 바빙크는 역사에 있어서 계시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다.27)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 일반역사의 방법론으로 교회의 역사와 현상들을 정리하면, 한계에 이르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들도 계시를 전제하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28)

 

3. 성경과 역사이해

 

교회의 역사를 살필 경우에 있어서도 역사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안목이나 원리를 성경에서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은 율법(Torah), 선지서(Prophets) 그리고 성문서(Ketubim)라는 세부분으로 구분된다.29) 이 분류에 의하면 여호수아부터 열왕기상하까지 를 역사서라고 하지 않고 '전기 선지서(Former prophets)'라고 표현하고,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를 '후기 선지서(Latter prophets)'라고 표현한다. 사실 앞부분은 일반적인 역사이해의 방법에 따르면 역사서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를 역사서가 아니라 선지서에 포함시키는 것은 역사신학적인 안목이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다.30)

 

성경에서 ‘선지자' 혹은 '예언자'는 미래의 사건에 대한 예언을 담당하는 것이 그들의 본래적인 임무가 아니다. 그들의 가장 주된 임무는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전하는 것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에 강조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는 것, 즉 선지자의 사역이란 미래의 사건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 현재, 미래에 연관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것이다.31) 선지자들의 핵심되는 역할은 과거의 역사와 그 본질을 정확하게 알아서, 현재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며, 동시에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역사적 사건 속에서의 활약을 넘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의지를 분명하게 전하여야 한다.

 

신약성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도행전은 신약 성경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로 분류된다.32) 여기에는 특별히 성령의 임재와 함께 이적과 능력들이 기록되면서 교회의 확장이 소개되고 있다. 위인전이나 다른 역사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사도행전에 나타난 역사기록은 일반적인 역사기록과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사도행전의 앞부분에는 성령이 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셨다. 그 약속의 성취는 2장에서 나타나는데,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여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방언하며 더 나아가 성도들의 살아있는 교제가 나타나는 대단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사도행전의 마지막인 28장에서는 그보다 더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성경의 기록은 일반적인 기대와 다르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0~31) 라고 그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서술의 한 방법인 위인전이나 영웅전의 기술방식으로 비교해볼 때, 마치 용두사미(龍頭蛇尾)처럼 이상한 결론으로 정리되는 듯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역사와 사건을 강조할 경우에는 이러한 기록이 영웅전과 달리 이상하게 끝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영적인 세계의 안목 혹은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역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2장이나 28장에 나타난 표현들 모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교회가 든든히 서나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적으로 큰 부흥이나 각성운동이 나타나거나 혹은 고생, 죽음의 위협, 풍랑, 박해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역사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에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고 정리하는 것이다.33)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역사이해의 안목을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신약과 구약의 기록을 볼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역사의 진정한 주체이며 근본적 원인이 되시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근본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하여 작정하신 뜻대로 역사를 진행시키며 그것을 이해하게 하는 일에 인간의 이성이나 물질이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역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이미 정해 놓으신 끝날을 향해 진행되어 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간단하게 도식화시키면 그 이해가 분명해 질 것이다.34)

 

영원한 작정 -> 창조 -> 타락 -> 구속 -> 완성

 

하나님께서 전세계와 역사를 경영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예를 앗수르 제국35)의 몰락을 정리하는 역사이해를 통하여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7-8세기에 세계의 최강자였던 앗수르 제국의 몰락에 관하여 많은 역사가들이 의견들을 제시할 수 있다.36)

 

Paul Johnson은 이 사건에 대하여 성경보다는 헤르도토스의 책을 인용하면서 앗수르 군대의 속한 군인 185,000명이 죽은 사건을 쥐들이 옮긴 페스트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이러한 기록은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이며 인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대안으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평가는 Paul Johnson에게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 요세푸스에게서도 나타났다.37)

 

이러한 설명이나 분석과 달리 이 사건은 세계의 역사를 정리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성경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14:24)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먼저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의 핵심이 당대 최강국이었던 앗수르를 치는 사건으로 들고 있다.38)

 

이 말씀이 이사야에 의하여 선포되었으나, 역사적 현실로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당시에 앗수르가 쇠퇴하거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어떤 지식인도 생각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예언을 역사 속에서 그렇게 실현하셨다.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분명하며 본질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선포된 하나님의 계획은 히스기야왕 때 세상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성취되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이사야를 통하여 여러 차례 선포하였듯이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징벌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온 세계의 주관자이며 섭리자라는 사실을 열방에 분명하게 알리신 사건으로 성경은 확인시켜준다.39)

 

그 외에도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역사의 주관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시고 이어서 여호수아를 세우시며 사사들과 왕들을 세우시는데, 역사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작정아래 계획과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장(場)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40) 즉 역사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과 뜻이 완성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의나 표현에 관하여 학문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완전하게 수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역사의 전기간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약속이 성취되는 기간도 채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그 가운데 어느 한 시점 혹은 짧은 시간 동안을 살아가며, 또한 우리가 살지 않았던 그 옛날부터 최소한 지금까지만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를 우연의 연속이라든가 알 수 없는 원인과 결과의 집합으로 정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약속의 진실됨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해석의 중요한 틀을 사도바울의 정의를 통하여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롬 8:28-30).41)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touvtou" kai; ejdovxasen)

 

 

로마서의 이 본문은 일명 황금고리라고 표현되는 유명한 구절이다.42) 이것은 분명히 구원에 관한 설명이지만 동시에 역사에 관한 설명이기도 하다. 구원에 관하여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임을 약속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것을 역사적인 설명으로 이해한다면 성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를 주관해 오셨고 또한 그렇게 역사를 완성하실것이라는 약속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28절에 나타나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에서 모든 것은 한마디로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실패와 신실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 현재 성도들의 미련함과 게으름까지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또한 역사적 정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성도들의 실패나 성공 혹은 순종이나 좌절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되어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미래의 약속이지만 동시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기에 완료형(ejdovxasen)을 사용하는 것이다.43)

 

이러한 역사적인 전망을 고려해볼 때, 현재 그리고 이땅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약속의 성취 혹은 하나님의 은혜에 늘 만족하게 이뤄지는 삶을 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모습이고, 모든 시대속의 성도들 역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성도나 사역자들이 어느 시대에도 하나님의 나라 곧 천

국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확신한 적은 없었으며, 신앙의 참다운 보상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고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역사적인 안목과 이해를 가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신자된 자랑을 확인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여기서 믿음이란, 약속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펼쳐나가실 역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 가운데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44)

 

4. 하르낙의 방법론적 시도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교회사 정리가 종합적이며 구체적으로 다루어져 있는 대표적인 예로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830)의 작품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45)

 

그는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학파의 신학적 입장을 토대로 교회사와 교리사를 정리하고 있다.46) 하르낙의 많은 저술과 책들 가운데 기독교 교리사(Lehrbuch der Dogmengeschichte)는 교리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여년 동안 교리사를 증보하고 보완하는 가운데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47)은 20세기를 열어나가는 신학적 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당시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베를린대학에서 1899-1900겨울학기에 600여명의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하르낙이 행한 16번의 강의를 크게 두가지로 구분한다면, 기독교 본질에 관한 정리와 그 적용으로 교회의 역사를 요약하는 것이다.48) 그는 기독교에 관하여 탐구하면서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절대적인 판단(absolute Urteile)은 역사학에 적용할 수가 없다는 전제를 밝힌다.49) 이러한 전제는 교회의 역사를 언급할 때, 역사학적 방법론을 이미 고려한 것으로 랑케식의 순전히 객관적인 역사적 관찰이란 것도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50) 즉 역사학에서는 언제나 관찰자 곧 역사가의 영향이 포함된다는 것인데,역사학에서 절대적인 판단은 거부한다고 분명히 밝히면서도 역사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주관적인 행위(subjektive Tat)가 아닌 가치판단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인간의 의지와 감정은 언제나 판단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과 자세는 그의 스승인 리츨이 조직신학자로서 20년 이상 고민한 결론을 수용한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을 정리함에 있어서 변증학적 방법과 종교철학적 방법51)이 당시에 중요한 연구 방법임에도 이를 거부하고 오직 역사적인 방법을 통하여 객관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였다.52) 이러한 방법들을 정리하면서 하르낙은 역사가로 역사에 대한 분석을 다음과 같이 시도하였다.53) 기독교에 대한 내용을 구약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제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라고 그 범위를 정한다.54)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예수의 행적과 말씀들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끼친 영향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함께 동행하며 먹고 마신 제자들이 받고 느낀인상과 영향에 관한 것도 역사와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할 것이며, 더 나아가 현재 역사자의 관점까지도 동시에 강조한다.

 

하르낙이 전개하는 역사의 구조를 분석하면, 역사에 있어서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사실 (Geschichte)을 일차적인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것과 동시에 그 역사적 사건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역사 곧 영향사(Nachgeschichte)도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5) 그리고 더 나아가 현재의 상황속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역사가 혹은 현재의 관찰자(heutige Betrachter)의 입장까지 고려해야 진정한 역사의 의미와 본질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56) 하르낙의 논리적 전개는 세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지만, 실제적인 이해는 역사적 사실(Geschichte)이나 영향사(Nachgeschichte)보다 현재의 관찰자(heutige Betrachter)가 더 강조된 입장을 취하게된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 표현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이 역사가 우리에게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1900여년 경 전에 살았던 사람이 우리와 무슨 관계를 가지는가? (Was geht uns eine Geschichte, was geht uns eine Person an, die vor neunzehnhundert Jahren gelebt hat?)57)

 

우리의 이상과 능력은 반드시 현재적인 것이어야 한다. (Unsere Ideale und Kräfte müssen präsent sein.)58)

 

이러한 내용들을 담아서 제일 먼저 시도하는 구체적인 작업은 기독교의 핵심과 껍데기 (Kern und Schale)를 구분하여 예수와 그의 복음을 교리와 현대적인 오해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59) 그 결과 유대교의 경전으로 여겨지는 구약을 거부한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를 정리함에 있어서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나왔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관복음과 사도바울의 두세 가지 편지외의 다른 성경들을 역사적 자료로 인정하지 않는다.60) 그리고 그의 스승인 리츨의 신학적 입장을 수용하여 대부분의 바울 서신을 기독교의 본질과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 근거에서 제외한다. 또한 로고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요한복음도 당연히 거부하였다.

 

그렇다고 공관복음의 경우, 그 내용 전부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관복음 가운데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논하는데, 이것을 하르낙은 스스로 철저한 역사적인 방법이라고 정리하고 있다.61)

 

하르낙이 주장하는 기독교의 역사와 기독교의 본질은 산상수훈과 복음서에 나타난 몇가지 예수님의 담화와 인격과 행동에 관한 묘사로 국한되며, 특별히 예수님의 기적에 대하여 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정리한다. 그는 기적을 실제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만 영향력있는 인격 곧 감화력 있는 인격의 일면으로 수용하는 듯이 보이게 한다.62) 하지만 이것 역시 현재적 관찰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는 하르낙의 전형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5. 하르낙의 전제

 

역사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위하여 하르낙이 기독교의 본질을 도출하는 과정에 담겨있는 그의 신학과 자세에 관하여 또한 신학적인 전제에 관하여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가 흘러온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먼저 기독교를 가장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개념들을 크게 세가지로 정리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도래’,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영혼의 무한한 가치’ 그리고 ‘더 나은 의와 사랑의 계명’이다. 기독교를 설명함에 있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교리나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판단하여 제거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르낙은 교회사에서 바울 사도의 역할을 평가함에 있어서 바울이 기독교의 본질을 바꾸었다고 평가하고 있다.63)

 

바울에 의해 특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형되었다. 그

러므로 복음은 더 이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

취되는 예언의 현실이다. 그에 대응하여 미래의 어떤 것으로부터의 구속 역시 이미

성취되었으며 현재적인 것이 되었다.

 

 

하르낙은 기독교를 단순하게 예수의 인격과 실천에 관계된 것으로 규정하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으로 강조하였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을 변질시켰다고 평가한다.64) 하르낙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어야 하는데, 그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강조하였기에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며, 그 결과 기독교가 잘못 흘러왔다는 역사이해를 전제하는 것이다.

 

교리와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에 관하여 가장 집약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아들이 아니라, 예수가 선포한 바와 같이 오직 아버지만이 그 복음 안에 속해있는 것이다”65)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을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교리사의 초판에서부터 쓴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강의하는 중에 표현한 것으로 교리사를 증보하면서 더 보강한 내용이다.

 

하르낙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의 역사를 분석하고 정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그의 스승인 리츨의 신학적 영향이며 또 하나는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방법론적 전제이다. 리츨의 신학적 영향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교리의 구상과 형성에 있어서 교의적 기독교(교리)는 복음의 토대 위에 있는 그리스정

 

신의 한 산물이다”(“Das dogmatische Christentum (die Dogmen) ist in seiner Konzeption und seinem Ausbau ein Werk des griechischen Geistes auf dem Boden des Evangeliums”)66) 라는 신학적 입장이다. 하르낙이 예수와 그의 복음이 기독교 본질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신이 정한 몇가지 요소를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규정하며, 순수한 기독교 복음이 사변과 철학의 그리스 정신과 만나면서 그 본질이 변형되어 흘러온 것이라고 한다. 즉 교의란 기독교의 헬레니즘화의 산물이라는 리츨의 전제 위에 전개된 역사이해이며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규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전제는 역사의 판단 근거는 현재적 관찰자의 경험의 역사 혹은 체험의 역사를 통하여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67) 이것은 전형적인 실존주의적인 학문적 방법일 것이다.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이 출판된 지 50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이 서문을 쓰며 책임편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불트만의 신학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신학적으로 하르낙의 영향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정할 수 없고, 기독교의 역사는 잘못 흘러온 역사로 평가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신학적 교리적인 논의와 제도적인 기독교는 사도바울이 기독교의 복음을 변질한 이후에 더 깊고 나

쁘게 흘러간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6. 교회사적 정리

 

역사신학의 방법론에 있어서 다양한 서술들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론을 역사에 초점을 둘 것인가 신학에 초점을 둘 것인가 하는 선택이 먼저 요구된다. 더구나 역사를 정리하거나 서술함에 있어서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과학적 혹은 논리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하여 따를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되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함께 다루며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택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19-20세기 교회의 역사를 볼 때, 기독교의 본질과 기독교의 역사를 정리하는 리츨학파의 신학적 흐름이 문화개신교운동(Kulturprotestantismus)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표현되었다. 이들은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을 언급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외면하고 하나님 나라와 인간의 가치 그리고 사랑을 강조하며, 이 맥락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언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구속을 거의 간과하고 인간의 가치에 중점을 두면서 종교간의 통합논의를 성숙한 인간의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68)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거나 기독교의 본질을 정리하는 흐름은 19-20세기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시작과 아울러 계속되어오는 작업이다. 그 실질적인 내용은 민족적, 사회적, 언어적, 문화적 결합에 따라 각기 다르면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복음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더 나아가 구약에서도 자주 등장한다.69) 예를 들면 역사의 의미나 율법에 관한 정의 혹은 종교적 행위의 본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증방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70) 제사의 본질이 무엇이며, 율법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종교적 행위를 넘어서 그 본질적인 요소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언급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은 기독교의 본질 혹은 복음의 본질에 관한 논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논의의 중요한 점을 놓치고, 마치 초대교회 이후에 교의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논의가 시작된 듯이 언급하거나 마치 19세기에 새롭게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71)

 

20세기의 중대한 역사적 사건으로는 무엇보다 1,2차 세계 대전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그 아픔을 겪으면서, 그 전쟁에 대한 분석과 치유에 관하여 많은 학자들이 글을 쓰고 있다.72)

 

그 가운데 특별한 역사적 이해를 제시하는 한 예를 로이드 존스(Lloyd-Jones)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에 계속되는 독일군의 폭격으로 몸과 정신도 피폐해버린 영국국민들과 그 가운데 살아가는 영국의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특별한 강연을 하였다. 전쟁과 그 속의 현실 그리고 고통과 모든 혼란의 모든 본질은 전쟁에 궁극적인 원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가지는 죄악됨이라는 사실을 로마서를 통하여 분명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그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의 하였는데, 당시의 사람들에게 큰 반향이 있었다.73) 그와 더불어 2차세계 대전 후의 혼란의 상황 가운데 있던 영국의 상황에 관하여서도 로이드 존스는 복음의 핵심이라는 주제로 마태복음 11장을 정리하고 있다.74) 전후의 사회적 고통과 혼란 문화적 피폐함, 그리고 인간의 심리적 괴로움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일은 경제적 성장이나 사회적 안정이 핵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답인 것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역사이해와 본질적인 분석과 제안들은 전쟁의 상황을 극복한 현재에도 많은 기독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7. 결론

 

교회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가 지나온 사건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살피거나 어떤 특정한 사건을 재고하는 정도나 그 역사에 대한 서술을 넘어선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현재와 과거에 대한 대화라는 일반적인 역사의 정의를 넘어, 역사에 대한 연구는 바로 그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에 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여 어떤 대단한 일을 행한 사실이나 특정한 역사적 상황 가운데 탁월한 역할을 감당한 자를 영웅으로 높이기보다는 먼저 ‘하나님께서 그 당시 교회에 어떻게 개입하셨으며, 또한 이 시대에는 어떻게 역사하시기를 원하시는가?’ 에 대한 분석은 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로서 각자에게 맡겨진 현실 속에 개인이나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며 그 일에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역사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가

는 인간이다. 누구라도 인정하는 객관적인 역사서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사관 혹은 실존적인 역사를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과거, 현재, 미래의 전체 역사만이 아니라 온 우주에 관한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모든 영역을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마음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는 분인 하나님께서 역사의 진정한 주인인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역사와 사건의 진행에 관하여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입장에서 역사란 온 우주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실현이기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있다고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이 역사의 의미일 것이다.75)

 

인간의 한계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계획대로 그 역사와 세계와 온 우주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더 분명하게는 인간의 절망과 무능을 역사 속에서 확인하지만, 그 역사가 실패로 결과되도록 두지 않으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는 것이 역사의 진정한 의미가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우주와 세계 간운데 일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며 서술하는 것도 역사신학적으로 충분히 학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스승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Confessio)과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을 통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고 정리하고 있다.76) 눈에 보이는 역사와 현실들에만 모든 관심과 분석이 집중되지 말고,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함께 고려되고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의 인정받는 것에 치우쳐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사서술에 있어서 진정한 진실을 잘정리하는 방법론이 마련되고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위로하며 선포하고 있다.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사 14:26-27) SOLI DEO GLORIA!

 

   

각 주

 

1)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다음의 자료들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K. Blaser,Geschichte, Kirchengeschichte, Dogmengeschichte in Adolf von Harnacks Denken, Mainz 1964. Bornkamm, H., Grundriß zum Studium der Kirchengeschichte, Gütersloh 1949. H. Bornkamm,, Theologie und Historismus, in: Zeitwende 23 (1951/52). Mariano Delgado(편집), Das Christentum der Theologen im 20. Jahrhundert : Vom 'Wesen des Christentums' zu den 'Kurzformeln des Glaubens', Stuttgart – Berlin – Köln 2000. William H. Dray, Philosophie der Geschichte, Toronto 1964. G. Ebeling, , Kirchengeschichte als der Geschichte der Auslegung der Heiligen Schrift, Tübingen 1947. Jonathan Edwards,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 김귀탁 옮김, 구속사,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7. E. Fülling, Geschichte als Offenbarung. Studien zur Frage Historismus und Glaube von Herder bis Troeltsch, Berlin 1956. J.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Neuzeit und Gegenwart, Freiburg / Basel / Wien 1963. B. Jaspert., Theologie und Geschichte, Bd.1. Frankfurt 1989. Wolfgang J. Mommsen(편집), Leopold von Ranke und die moderne Geschichtswissenschaft, Stuttgart, 1988. Wolfhart Pannenberg, Offenbarung als Geschichte, 전경연 역, 역사로서 나타난 계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 Apostolic Christianity vol. 1, Michigan: W.M.B Eerdmans Pub. Co. 1978. E. Troeltsch, Was heißt 'Wesen des Christentums?, Tübingen 1913.H. Wagenhammer, Das Wesen des Christentums : Eine begriffsgeschichtliche Untersuchung, Mainz 1973. W. H. Walsch, Philosophy of History, London 1967.

 

2) 이상신, 개정 서양사학사, (서울: 신서원, 1993). 15. B.C.9-8세기의 호머의 작품이나 좀 더 오래된 성경의 역사도 언급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헤로도토스에게서 역사학을 시작한다.

 

3) K. Löwith. Weltgeschichte und Heilsgeschichte: Die theologischen Voraussetzungen der Geschichtsphilosophie, Stuttgart 1954. 김영재, 한국교회사, (서울: 이레서원 2004), 김영재, 기독교교회사, (서울: 이레서원 2004). 김영재 교수의 글 제 1장을 참고하라.

 

4) K. Aland, Adolf von Harnack, in: ThLZ 76 (1951); K. Aland, “Adolf Harnack als wissenschaftlicher Organisator”, in: Adolf Harnack in memoriam, Berlin 1951.

 

5) Harnack,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Bd.1-3, Freiburg 1931. 하르낙의 교리사는 1885년부터 1931년까지 5판이나 증보되었다. 하르낙이 계속적으로 개정하고 증보하였는데, 하르낙의 역사이해를 살피기 위하여 1-5판를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리사와 함께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 그리고 교리의 발전에 관한 연구(Die Entstehung der christlichen Theologie und des kirchlichen Dogmas)를 동시에 살펴야 할 것이다.

 

6) 신 32:7-8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땅 위에 나타나기 전부터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섭리하신 바 있었다. 그것은 상고시대에 모든 나라에게 땅을 분배하실 때에(창 10:21-24, 11:10-26, 12;1-5, 15:12-21) 즉 그 당시에는 전혀 근거도 없고, 역사에 나타나지 않은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시고 민족들의 국경을 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의 주시려는 땅에 친히 인도하셨다. 그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여 신앙 훈련을 주시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신 사실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의 기업과 같이 귀중히 여기셨고, 눈동자같이 지키셨고, 또한 독수리가 그 새끼를 훈련시키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영적(靈的)으로 연단시키셨다.

 

7) 프랑스어로는 histoire, 이탈리아어로는 storia, 영어로는 history인데, 독일어의 경우 Historie 와 Geschichte 라는 두 단어로 표현하며, 한국어로는 역사(歷史)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8) 이들 외에도 호머(Homer)나 헤시오두스(Hesiodus), 헤카티이오스(Hekataios von Miletus) 그리고 더 나아가 크세노폰(Xenophon), 폴리비오스(Polybios) 등 많은 학자들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9) Herodotos, Histories Apodexis, 천병희 역 역사, (서울: 도서출판 숲, 2011). B.C.492-448년까지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하려고 전쟁을 벌였는데,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 페르시아 제국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리한 역사를 정리하였다.

 

10) 로마의 역사가인 키케로(Cicero, 106-34 B.C.)가 헤로도토스를 역사학의 아버지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1) Herodotos, Histories Apodexis, 천병희 역 역사, 24.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非)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데 있다.” 참고 Fritz Wagner, Geschichtswissenschaft, (Freiburg, 1951). 9.

 

12)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한 후에 B.C.431∼404년까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자기 편의 동맹시(同盟市)들을 거느리고 서로 간에 싸운 전쟁이다. 과두정치(寡頭政治)를 지지하는 폴리스들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연합하였고, 민주정치를 지지한 폴리스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쳤다. 각 폴리스 내부에서도 두 정치체제의 싸움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 전쟁을 두 정치체제의 싸움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 전쟁은 결국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동시에 고대 그리스 쇠망의 원인(遠因)이 되기도 하였다.

 

13) J. W. Thomson, A History of Historical Writing, 1959. Vol I. 29.

14) 이런 방법으로 서술한 대표적인 예는 헤시오두스(Hesiodus)의 신통기(神統記)나 헤카티이오스(Hekataios von Miletus)의 족보(族譜, Genealogie) 이다,

 

15) W. H. Walsh, Philosophy of History, 김정선 역, 역사철학, (서울: 서광사, 1989). 차하순 편,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 (서울: 청람, 1990).

 

16) Wolfgang J. Mommsen (Hrsg.), Leopold von Ranke und die moderne Geschichtswissenschaft, (Stuttgart, 1988), 7.

 

17) L. von Ranke, Geschichte der romanischen und germanischen Völker 1494–1524. Sämtliche Werke Bd. 33–34. (Leipzig, 1824), VII, Vorrede zur ersten Ausgabe: 'Man hat der Historie das Amt, die Vergangenheit zu richten, die Mitwelt zum Nutzen zukünftiger Jahre zu belehren, beigemessen: so hoher Ämter unterwindet sich gegenwärtiger Versuch nicht: er will blos zeigen, wie es eigentliche gewesen. ... Man kann von einer Historie nicht die freie Entfaltung fordern, welche wenigstens die Theorie in einem poetischen Werk sucht. ... Strenge Darstellung der Thatsache, wie bedingt und unschön sie auch sei, ist ohne Zweifel das oberste Gesetz."

 

18) L. von Ranke, Sämtliche Werke, Bd. 12. 5이하. Vgl. Wolfgang J. Mommsen, Leopold von Ranke und die moderne Geschichtswissenschaft, 8–11

 

 

19) John Bagnell Bury(1861–1927)의 책을 참고하라, J. B. Bury, The Ancient Greek Historians, 125. 헤르도토스가 밝히듯이 “우연”은 역사에 있어서 혹은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 어떤 외부적인 힘의 개입으로 이해하지 않고 미리 계산될 수 없는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20) H. Stuart Hughes, Consciousness and Society - The Reorientation of European Social Thought, 1890-1930, 황문수 역 의식과 사회, (서울: 홍성사, 1979). Stuart Hughes는 제6장의 신관념론의 역사관에서 Croce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21)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1889-1943)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이다. 그는 관념론적인 입장을 취하며, 크로체의 사상과 많은 면에서 일치된다. 두 학자의 대표적인 입장은 '모든 역사(歷史)는 현재사(現在史)'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크로체의 입장에서 현재사라고 하는 것은 역사가 자신의 현재가 강조된다. 이에 비하여 콜링우드는 역사자의 현재와 아울러 행위자의 현재도 함께 강조되는 입장이다.

 

22) Edward Hallet Carr, What Is History? E.H.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present)” 라고 정리하고 있다.

 

23) 이만열, 한국 근대 역사학의 이해,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83), 70-71. 이만열은 이런 의미에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24) Herman Bavinck, The Philosophy of Revelation, (Michigan, 1979). 이 책의 제5장 시와 역사 (Revelation and History)에서 이 주제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25) Herman Bavinck, The Philosophy of Revelation, 126.

 

26) 배덕만 "신학과 인문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소고" 한국개혁신학회 제93차 논문 발표회, 2011.09.03. 배덕만은 인문학의 모든 영역에서 신, 영, 신비, 초월, 초자연 등의 개념을 사용할 수 없는 용어로 정리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였다. 만약 이런 요소를 외면하고 인간에 대하여 논의한다면, 그것이 과연 인문학이 과연 정당하고 온전한 것인가를 묻는다. 설령 불신자들의 경우를 차치하고라도 신자들의 경우 이 주제를 외면한다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를 망각한 것임을 주장하였다.

 

27) Herman Bavinck, The Philosophy of Revelation, 141.

28) 참고 조병호 성경과 5대제국, (서울: 통독원, 2011).

29) 율법, 선지서 그리고 성문서를 נ 묶어서 '타나크'(Tanak, ךנת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토라의 ת, 느비임의 , 케투빔의 כ호 히브리어 첫 글자만을 따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30) Edward J. Young,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홍반식·오병세 옮김, 구약총론,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0), 167.

 

31) 김영재, 기독교교회사, 17.

32) Robert, H, Gundry, A Survey of New Testament 신약개론, 김일우 옮김, (서울: 엠마오, 1993), 18-19. Donald Guthrie, New Testament Introduction 신약개론, 나용화,박영호 공역, (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 1988), 339-340.

33) F. F. Bruce, 사도해전 하, 김재영,장동민 옮김,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6), 352-353. 브루스는 벵겔 (J.A. Bengel)의 주석을 인용하면서 사도행전을 정리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승리였다. 로마의 바울은 복음의 절정이고 사도행전의 결론이다. ...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로마에서 끝난다. 오 교회여, 이것이 바로 교회의 귀감(龜鑑)이다. 이제 이를 지키고 그대에게 맡겨진 것을 수호하는 것이 그대의 임무이다”

 

34) 김성욱, 리츨(Albrecht Ritschl)의 신학적 고민, (경기: 웨스트민스터출판부, 2009). 226. 예전에는 이 도표를 “예정 -> 창조 -> 타락 -> 구속 -> 완성”으로 표시하였는데, 연구를 통하여 위와 같이 수정하였다.

 

35)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티그리스강 상류를 중심으로 번성한 고대 국가이다. 국가의 이름은 국가의 중심도시였던 앗수르(Assur) 시(市)에서 유래했다. 앗시리아의 역사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세 시기로 구분한다:

 

B.C. 20C~15C, B.C. 15C~10C, B.C. 911년~B.C. 612년. 그 가운데 특별히 마지막 단계를 신 앗시리아 제국 시대으로 일컫는데, 이 시기는 아슈르 단 2세(Ashur-dan II, B.C. 934~912 재위)가 아람인과 산악에 거하는 민족들을 진압하면서 통일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아다드 니라리 2세(Adad-Nirari II, B.C. 911~891 재위)는 정복 사업을 재개했으며, 전술, 농업 등의 개혁에 성공하면서 큰 힘을 비축하였다.

 

또한 아슈르 나시르 팔 2세(Ashur-nasir-pal II, B.C. 883~859 재위) 때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지역까지 정복활동을 벌였다. 특별히 티글랏 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 BC 745–727 재위) 때에 이르러, 아시리아는 대제국을 이루면서 이집트의 제 25왕조를 위협할 정도였다.

 

성경의 역사와 관련하여 정리하면, 북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B.C. 732-721년)는 9년 동안 앗수르왕 살만에셀의 공격을 받고 그에게 굴복하여 조공을 드렸다. 하지만 그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애굽과 연합하였다가 호세아 9 년에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었다(B.C. 722년).

 

앗시리아의 광대한 영토는 잘 훈련된 강력한 군대, 조직화된 관료군(官僚群), 완비된 역전제도(驛傳制度) 등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특히 기병과 전차(戰車)를 갖춘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바빌론 등 고도의 문화적 발전을 이룬 점령지에 대한 억압적 통치와, 무거운 세금은 국민의 반발을 샀다. 결국그처럼 강대하던 앗시리아도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B.C. 669-627 재위)왕이 죽은 뒤의 내분을 틈타바빌로니아에서 독립한 나보폴라사르와 메디아인의 동맹군의 공격을 받아, B.C. 612년 니네베의 함락과 더불어 멸망하였다.

 

36) Paul Bede Johnson, A History of the Jews, 김한성 역, 유대인의 역사 (서울: 살림출판사, 2005).

 

37) Flavius Josephus, The Antiquities of the Jews, 김지찬 역, 요세푸스 I: 유대고대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623.

 

38) J. A. 모티어 외, IVP 성경주석,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8), 887. John Watts, Isaiah 1-33, 강철성 옮김, 이사야 1-33, (서울: 솔로몬, 2006), 382-384. Watts는 이사야 14장의 주석에 있어서 특별히 부록으로 “여호와의 경영”에 관하여 정리하고 있다. John. Calvin, The Old Testament Commentaries Isaiah 1.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 Co, 1948. 사 14: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본문에 나타나는 "나의 땅", "나의 산"은 예루살렘 교외(郊外)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앗수르가 떠나게 되고 이스라엘에게 무거운 짐과 같은 앗수르의 압제가 물러갈 것을 가리킨다. 참고 사 36:2, 10:28-32.

 

39) J. Calvin, Calvin's Commentary on the Prophet Isaiah 33-66, (Michigan 1979).

40) 김성욱, “교회사 시대구분과 그 신학적 의미” in: 바른신학과 교회갱신, (서울: 필그림, 2010), 900.

 

41) James D. G. Dunn, WBC Romans 1-8, (Texas: Word Boos, 1987), 464-495. John Murry,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 Romans 2, 권혁봉 역, 로마서 하,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0), 62-73.

 

42) W. H. Neuser, "기독교강요 초판(1536)에 나타난 칼빈의 선택교리" in: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경기: 웨스트민스터 출판부, 2007), 424-425.

 

43)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표현을 "예언적 과거 혹은 예언적 완료" 라고 말한다. E. J. Young, Isaiah 53, 윤영탁옮김, 이사야 53장, (서울: 성광문화사, 1980), 41-50.

44) 로마서 9-11장에 나타나는 바울사도의 역사이해를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45) F. Smend, Adolf von Harnack : Verzeichnis seiner Schriften bis 1930, Leipzig 1990.

 

46) 이러한 흐름을 문화개신교운동(Kulturprotestantismus)이라고 부른다. 참고 김성욱, 리츨(Albrecht Ritschl) 의 신학적 고민, 215-221.

 

47) Adolf Harnack, Das Wesen des Christentums. ed. Trutz Rendtorff (Gütersloh, 1999) 하르낙이 100년전에 쓴 것을 Trutz Rendtorff가 편집하며 각주를 달았다.

 

48) Das Wesen des Christentums, p.3. “Was ist Christentum? - lediglich im historischen Sinn wollen wir diese Frage hier zu beantworten versuchen, d. h. mit den Mitteln der geschichtlichen Wissenschaft und mit der Le benserfahrung, die aus erlebter Geschichte erworben ist. 기독교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오직 역사적인 의미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그리고 체험된 역사로부터 얻어진 삶의 경험에 근거하여 해답을 제공하려고 한다.”

 

49) Das Wesen des Christentums,. p.11: “Zum Schluss lassen Sie mich noch einen wichtigen Punkt kurz berühren: absolute Urteile vermögen wir in der Geschichte nicht zu fällen. Dies ist eine Einsicht, die uns heute - ich sage mit Absicht: heute deutlich - und unumstösslich ist. 끝으로 간략하게나마 지적하고 넘어가야할 하나의 중요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역사 안에서 절대적인 판단(absolute Urteile)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 나는 의도적으로 오늘날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싶다 -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변경될 수 없는 하나의 통찰이다.”

 

50) Das Wesen des Christentums,. 11: “Die Geschichte kann nur zeigen, wie es gewesen ist, und auch,

wo wir das Geschehene durchleuchten, zusammenfassen und beurteilen, dürfen wir uns nicht anmassen, absolute Werturteile als Ergebnisse einer rein geschichtlichen Betrachtung abstrahieren zu können. 만약 우리가 순수하게 역사적인 고찰의 결과로서 절대적인 가치판단을 추상화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면, 역사는 과거가 어떠하였는가를, 그리고 아울러서, 어디서 우리가 이미 발생한 일들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요약하고 또 판단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가치판단은 언제나 감정과 의지를 만들어내는데,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주관적인 행위인 것이다.

 

51) Das Wesen des Christentums, 4-6.

52) Das Wesen des Christentums, 5. “Aber dieses nachzuweisen und auf dem Wege psychologischer und völkerpsychologischer Untersuchung das Wesen und das Recht der Religion darzustellen, soll nicht unsre Aufgabe sein. Es bleibt bei dem rein geschichtlichen Thema: Was ist christliche Religion? 그러나 이것을 증명하고 또 심리학적이고 민족 심리학적인 연구를 통해 종교의 본질과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강의(과제)는 순수하게 역사적인 저 주제 곧 ‘기독교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53) 하르낙은 기독교의 본질의 3, 8, 15, 36, 78, 98, 119, 121에서 자신이 역사가인 것을 밝히고 있으며, W.Schneemelcher도 하르낙에 대하여 19-20세기의 유명한 역사가이며 하르낙 자신도 항상 스스로 역사가이기를 원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W. Schneemelcher, Adolf von Harnack (1851-1930), 200.

 

54) Das Wesen des Christentums, 6.

55) Das Wesen des Christentums, 6-7. “우리는 그를 지도자나 주님으로 추앙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그의 반영과 영향을 주목해야만 한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에만 한정해버린다면 무엇이 기독교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하나의 충분한 해답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신 그의 제자들을 포함해서 생각하며 그들로부터 예수에게서 체험했던 것(was sie an ihm erlebt haben)을 경청해야만 할 것이다.”

 

56) 하르낙의 역사이해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Geschichte) -> 영향사(Nachgeschichte) -> 현재의 관찰자(heutige Betrachter)

57) Das Wesen des Christentums, 2.

58) Das Wesen des Christentums, 3.

59) Das Wesen des Christentums, 7, 9, 21, 36, 182.

60) 이러한 점을 볼 때 하르낙이 말시온에 관하여 큰 책을 쓴 것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전개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Adolf Harnack, Marcion: das Evangelium vom fremden Gott. Eine Monographie zur Geschichte der Grundlegung der katholischen Kirche, (1921).

 

61) Das Wesen des Christentums, 하르낙은 자신의 두 번째 강의에서 이 주제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다룬다.

 

62) Das Wesen des Christentums, 6: “Ja man darf sagen, je gewaltiger eine Persönlichkeit ist und je mehr sie in das innere Leben anderer eingreift, um so weniger lä́ßt sich die Totalität ihres Wesens nur an ihren eigenen Worten und Thaten erkennen. “그렇다. 인격이 힘있게 작용하면 할수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적인 삶 속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수록, 그 본질의 총체성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63) Das Wesen des Christentums, 118.

64) “그(사도 바울)는 희망보다 믿음에 더 강조점을 둔다 (Er betont weit mehr den Glauben als die Hoffnung.)”

 

65) Es ist keine Paradoxie und wiederum auch nicht »Rationalismus«, sondern der einfache Ausdruck des Tatbestandes, wie er in den Evangelien vorliegt: Nicht der Sohn, sondern allein der Vater gehört in das Evangelium, wie es Jesus verkündigt hat, hinein. 66) Harnack,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I. 16.

 

 

67) “기독교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오직 역사적인 의미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그리고 체험된 역사로부터 얻어진 삶의 경험에 근거하여 해답을 제공하려고 한다.” 참고 Harnack, "Was hat die Historie an fester Erkenntnis zur Deutung der Weltgeschichte", in: Reden und Aufsätze, 187.

 

68) Das Wesen des Christentums, 38.

69)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원인을 밝히면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라고 말씀하시거나,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복음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등에서도 이러한 논증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초대교회부터 모든 신앙적 신학적 사고의 기초가 되는 작업으로 삼위일체논쟁을 거치게 되고, 잘못된 복음과 사상이 교회에 퍼져나갈 때, 교회의 스승들은 이러한 생각을 비판하며 성경에 근거한 복음을 제시하고 변증하기도 하였다.

 

70) 가현설이 교회에 영향을 끼칠 때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하여 중세에 다룬 가장 중요한 내용은 ‘Qur Deus Home(하나님께서 왜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주제에 관한 것이다.

71) 그 대표적인 예로 교회사의 대가인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 Das Wesen des Christentums을 언급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1872)가 1851년에 쓴 기독교의 본질 Das Wesen des Christentums 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와 관념적인 헤겔철학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유물론적인 인간중심의 철학을 제기하였다. 이들보다 앞서서 슐라이어마허(Friedrich Ernst Daniel Schleiermacher, 1768~1834)는 기독교의 본질은 역사적인 형태를 넘어선 추상성 속에서는 파악될 수 없다며, 추상화된 종교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극복하면서, 1799년에 《종교론 Reden über Religion》을 통하여 인간이 형이상학이나 윤리 외에도 종교를 가능하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절대의존의 감정(Das schlechthinnige Abhängigkeitsgefühl)이라고 정리하였다.

 

아돌프 폰 하르낙, 기독교의 본질 Das Wesen des Christentums, 오홍명 옮김 (서울: 한들출판사, 2007). 참고 최신한, 슐라이어마허, (서울: 살림출판사, 2003). 에른스트 벤츠, 기독교 역사와의 대화, 이성덕 옮김,(서울: 한들출판사, 2007).

 

72) 20세기 세계교회의 흐름에 관하여 잘 정리하고 있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라. L. Praamsma, 20세기의 교회, 박종칠 역,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3); J. H. Nichols, History of Christianity 1650-1950, 현대교회사, 서영일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73) 로이드 존스,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능력, 김종호 역, (서울: 복있는사람, 2008). 1941년 3월 둘째 주간동안 에딘버러(Edinburgh)대학 당국의 초청을 받아 그 대학의 자유교회(Free Church) 본당에서 강의한 내용을 활자로 출판한 것이 바로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능력』이다.

 

74) 로이드 존스, 복음의 핵심, 이중수 역, (서울: 목회자료사, 2009).

 

75) 김성욱, 리츨(Albrecht Ritschl)의 신학적 고민, 222-226.

76) 김성욱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에 나타난 역사기록방법” in: 개혁신학 17집, (서울: 웨스트민스터출판 부, 2005), 233-257.

 

 

 

 

 

교회사 서술에 대한 방법론적 시도

논평 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1. 가치

 

김성욱 교수님은 본 논문에서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교회사 서술의 고전적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논문의 전반부에서 서양 역사서술의 다양한 흐름들을 진지하게 고찰한 후, 자유주의 역사서술의 대표적 인물인 하르낙의 입장을 분석했습니다. 이어서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역사에 대한 객관적 서술은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지의 실현과정으로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역사 및 역사서술에 대한 김성욱 교수님의 입장에 대해선 여러 각도의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일차적으로 단순한 역사가 아닌, 그리고 세속사와 구별되는 “교회사”의 본질 혹은 자기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본 논문에 주목하게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김성욱 교수님은 인간중심의 역사이해와 객관적 역사서술을 중시하는 현대 역사학의 일반적 풍토를 무비판적으로 교회사 서술에 수용함으로써, 교회사의 고유한 영역과 방법론이 위협 받고 있는 현재의 학풍에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문학적 방법들을 교회사 서술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구속사적 관점 혹은 섭리사관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현상에 대한 위기의식의 표현이며, 실증주의와 유물론적 사관의 과도한 영향 속에 교회사 고유의 장점 혹은 공헌이 간과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진단입니다. 이것은 세속도시 한복판에서 교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찰하고 서술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 앞에서, 현대의 교회사가들이 반복적으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2.

저는 개인적으로 김성욱 교수님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교회사가들 중,김 교수님께서 제기하신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당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역사의 전개과정을 하나님의 뜻의 실현과정으로 선언하는 김 교수님의 결론은 교회사가들에게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건들과 하나님의 뜻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신앙의 눈으로, 혹은 성경적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역사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적 신앙, 성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해석의 관점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런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바다에서, 하나님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서로 대립되는 주장들 속에서 정답을 찾아내거나, 합의점을 도출하 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는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거룩한 과정이며, 신앙적 관점에서 관찰해야하며, 역사의 궁극적 해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논리도 신앙고백적 차원에서는 충분히 타당하며 쉽게 인정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 특히 학문의 영역에서는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김 교수님은 자신의 입장에 대한 적절한 실례로서, 로이드 존스의 강연을 인용셨습니다. 즉, 제2차 대전의 비극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 것이며, 그런 비극의 궁극적 해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 측면에 대한 정당한 신학적 분석입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국가들 대다수가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며, 각국의 교회(그리고 목회자와 신학자들)들이 이 전쟁을 성경과 신학으로,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는 사실은 김 교수님의 진단과 처방에 쉽게 동의 혹은 만족할 수 없게 합니다. 즉, 역사는 단지 신앙/신학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하고 난해한 요인들이 존재하며, 그런 방식(신앙고백적 해석)을 고집할 경우,오히려 신성모독의 위험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3. 질문

 

이제 본 학회의 발전된 논의를 위해, 본 논문을 근거로 몇 가지 질문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먼저, 김 교수님은 “교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들도 계시를 전제하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5)라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내재된 하나님의 계시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재능(혹은 능력)은 무엇입니까? 또, 그런 교회사가를 양성하기 위해, 현재 한국의 신학교육에서 가장 긴급하게 요청되는 사항은 무엇일까요?

 

둘째, 김 교수님은 현대의 대표적인 인본주의적 역사서술로서 하르낙을 택하여, 그의 입장을 상세히 분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르낙과 대비되는, 그러면서 김 교수님과 유사한 입장에서 교회사를 서술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어떤 분을 추천할 수 있을까요? 또한 이런 관점에서, 현재 한국 교회사 학계의 풍토(혹은 경향)에 대한 교수님의 개인적 평가는 어떤 것입니까?

 

끝으로, 현재 한국 신학계 내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인문학과의 대화가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학적, 변증적, 혹은 주관적 역사해석을 지양하며, 보다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규범적(normative) 선언 대신, 기술적(descriptive) 서술방식을 선호하는 사가들도 있습니다. 분명히, 김 교수님은 이런 최근의 흐름에 대해 경계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역사학과 교회사 간의 대화가능성 혹은 필요성에 대한 김 교수님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대화무용론입니까? 필요성은 인정하되 조심하자는 신중론입니까? 만약 후자라면,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대화 중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논문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여 신선한 자극을 주신 김 교수님의 논문을 통해, 큰 도전과 배움을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한 김 교수님의 훌륭한 교회사 저서들을 기대합니다.

 

 

 

김성욱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논평 배덕만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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