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시야의 나이는?(왕하8:26)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더라(왕하8:26).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 역시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더라(대하22:2).
유다 왕 아하시야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 나이는 얼마였을까요? 왕하 8장은 22세라고 말하고 대하 22장은 42세라고 합니다. 성경이 잘못된 것일까요? 분명히 모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기록된 사본들은 한결같이 22세와 42세라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나 개역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 자체의 문제로 보입니다. 실로 이것은 역본의 문제가 아니라 히브리어 사본 자체에 실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경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성경의 오류라고 지적하는 성경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고고한 학자들은 이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요? 예상했듯이 그들은 어김없이 여기서도 ‘사본 기록자의 실수’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 성경에 오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째 하나님의 성품과 잘 맞지 않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우리 비블리시스트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성경 본문의 모든 단어를 오류 없이 기록하시고 오류 없이 보존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이 전제 하에서 성경을 풀어 보면 성경이 이런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요.
구약 성경의 연대기를 공부할 때 우리는 다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1) 왕들의 연대기에서 성경은 항상 한 해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해의 일부는 대개 한 해로 표현됩니다. 또한 한 해의 일부는 실제로 두 번 계수될 때도 있습니다. 즉 물러나는 왕을 위해서 또 새로 즉위하는 왕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기 문제의 구절의 경우 이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세 명의 왕이 같은 해에 있었습니다. (a) 전쟁에 나간 아합 왕: 그는 곧 바로 죽었습니다. (b) 그의 아들 아하시야(그는 선왕과 함께 공동 왕 노릇을 했는데 영어로 이것은 co-Rex라 합니다. 그는 곧 격자창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c) 아합의 손자 여호람이 이 해에 왕이 되었습니다.
(2) 때때로 왕의 통치 기간은 그가 왕좌로 나간 때가 아니라 왕조가 시작된 때로부터 계수되곤 합니다. 여기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대하16:1에 있습니다.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했을 때 아사의 통치 기간은 르호보암 하의 연합 왕국이 분열된 때로부터 계수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왕상16:8의 문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역대기는 왕국의 기간을 기록하고 열왕기는 왕의 직무 기간을 기록합니다.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성경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3) 또 어떤 때는 왕의 통치 기간이 그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때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그가 실제로 왕이 된 때부터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는 이 두 일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셨지만(마2:2) 그분이 진짜 왕이 되는 것은 천년왕국에서 다윗의 왕좌에 앉을 때입니다. 여호야긴은 자기 아버지가 쫓겨난 후에 여덟 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대하36:9).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왕비로서 그를 대신해서 그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통치했습니다(왕하24:8). 그리고 세 달 뒤에 왕인 그와 그의 어머니 역시 추방을 당했습니다(왕하24:12).
(4)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서는 한 기간에 여러 왕이 통치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왕이 있는데도 그 왕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왕이 있었고(이 경우는 영어로 pro-Rex라고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왕과 함께 공동으로 통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이 경우는 영어로 co-Rex라고 합니다).
(5) 성경에서 ‘아들’은 종종 아버지의 연속되는 친아들이 아니라 손자나 후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실제로 할아버지가 될 때도 있고(단5:2) 양아버지가 될 때도 있으며 먼 조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마1:1).
지금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는 구절들은 이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린 왕들의 이름이 비슷해서 더 혼동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에 하나, 유다에 하나가 있어서 총 두 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A-A-J (아합-아하시야-여호람, Ahab-Ahaziah-Jehoram)
유다: J-J-A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Jehoshaphat-Jehoram-Ahaziah)
마지막으로 기록을 살펴보면 아하시야는 또 다른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하시야(대하22:1), 여호아하스(대하21:17), 아사랴(대하22:6).
그러면 이제부터 비블리시스트들의 문제 해결 방법을 살펴봅시다. 이 문제의 해결 실마리는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나옵니다. 특히 1장 8절에는 문제의 구절 당시의 다윗의 계보가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 참으로 이상한 것이 발견됩니다. 다음의 표를 보기 바랍니다.
구약 기록 |
그리스도의 계보(마태복음) |
아사 | 아사 |
여호사밧 | 여호사밧 |
여호람 | 여호람 |
아하시야 | - |
요아스 | - |
아마샤 | - |
웃시야 | 웃시야 |
마태복음의 그리스도의 계보에는 유다의 세 왕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출20:5, 민14:18, 시109:13-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의 통치에 문제가 있었기에 그들의 이름은 삭제되어 있습니다(대하22:2-4).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를 다윗의 씨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오므리의 후손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그의 어머니인 아달랴의 혈통과 영향에 대해 강조합니다. 물론 그녀는 오므리의 손녀였고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왕하8:18).
이제 배경을 공부했으므로 두 가지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1. 해결책 #1
아하시야는 유다의 왕위에 오를 때에 22세였습니다(왕하8:26). 그는 실제로 여호람과 아달랴의 아들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병에 든 그의 아버지 여호람과 함께(대하21:18) 1년 동안 공동 왕(co-Rex)으로 통치했습니다(왕하9:29—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11년).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12년, 왕하8:25)에 1년 동안 단독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주전 887년경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42년을 빼면 주전 929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아하시야는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22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에서 그의 통치는 사악한 왕 오므리 왕조가 시작된 주전 929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계수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령님께서는 다윗의 계보에서 이 사악한 자들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영어로 역대기하의 “Forty and two years”는 히브리 숙어로 “A son of forty two years” 즉 “42년의 아들”이 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그때가 오므리의 왕조가 시작된 지 42년이 되는 해라는 뜻입니다.
2. 해결책 #2
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 경우 아하시야는 왕위에 오를 때에 대하22:2에 있는 대로 42세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40세에 죽은 여호람의 친아들이 아니라 양아들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아달랴였지만 친아버지는 여호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20년을 뒤로 돌아가 보면(아하시야가 22세였을 때, 왕하8:26) 그때는 주전907년경이었습니다(여호사밧 왕의 통치 제8년). 바로 그때에 여호사밧은 아합과 인척관계를 맺었습니다(대하18:1). 여호사밧은 자기의 통치 제3년에 유다에서 부흥을 일으켰고(대하17:7-9) 그 뒤에 그의 왕국은 번영하게 되었습니다(대하17:12). 그러므로 아합과의 인척관계는 그 이후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합니다.
대하18장에서 우리는 아합과 여호사밧이 연합한 지 몇 년이 지난 뒤에 이 두 왕이 시리아를 치기 위해 공동 군사 작전을 펴는 것을 보게 됩니다(대하18:2). 그 두 왕은 함께 전쟁에 나갔고(대하18:28) 아합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대하18:33-34). 그 싸움이 있기 전에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아합을 책망한 대언자 미가야는 사슬에 묶여 아몬에게로 쫓겨납니다. 거기에는 이제 겨우 한 살이던 요아스가 거하고 있었습니다(왕상22:26).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대한 대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시야의 친아들인 요아스(대하22:11)가 ‘왕의 아들’(king's son)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하시야가 이미 그때에 왕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만일 여호사밧과 아합이 맺은 인척관계의 일환으로 이 당시에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즉 아하시야는 22세에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20년이 지나서 실제로 왕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인척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하21:2는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왕!”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유다의 단독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의 형제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러 통치자들도 죽였습니다(대하21:4). 그들이 유다 왕조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왕실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처지에 있었습니다(왕하22:6). 어쩌면 이 두 왕 즉 여호사밧과 아합은 70년 전에 쪼개진 왕국을 다시 하나로 합치려 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서로의 동기는 달랐을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여호사밧이 죽은 뒤에 자기들의 씨를 유다 왕국에 심어놓으려 했었을 겁니다. 사실 이것은 그들의 딸인 아달랴의 아들인 아하시야를 그 일에 배정해 놓음으로 - 즉 왕으로 기름을 부음으로 - 일찌감치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여호사밧을 죽이려는 아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대하18:29, 31-33) 아하시야는 20년을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유다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하시야는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22세일 수도 있고 42세일 수도 있었습니다.
즉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때와 왕위에 실제로 오른 때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아하시야의 친아버지는 누구일까요? 아합과 여호사밧의 인척관계는 사실 지저분한 것이 많고 또 복잡합니다.
(a) 여호람의 아들(대하22:1). 아하시야가 그의 아버지 여호람보다 두 살이 많으므로 그는 그의 양아들이었습니다. 즉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여호람과 결혼할 때에 그는 법적으로 그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b) 아합의 집의 사위(왕하8:27). 이 관계는 그가 시비아와 결혼함으로써 이루어졌을 것입니다(대하24:1). 이 시비아는 아합의 딸이나 손녀였을 것입니다.
(c) 여호사밧의 아들(대하22:9). 대하22:9를 보면 아하시야는 여호사밧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에 어느 정도 관용이 베풀어졌습니다. 이것을 볼 때 아마도 여호사밧은 그 당시의 관례를 따라(왕상3:1) 인척관계를 맺으면서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아내로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성경은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은 부정한 연합을 기뻐하지 않습니다(고전6:14-17). 그래서 주님은 여호람과 아사시야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요아스와 더불어 유다에 바알 숭배를 들여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삭제되어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죽었을 때에 하나님은 친히 왕가의 계보에서 아합의 집을 끊어버렸습니다(대하22:7-9).
이 두 가지 해결책 외에도. 두 명의 아하시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왕하 8장과 대하 22장의 아하시야가 동명의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즉 여호람의 친아들 아하시야와 여호람보다 나이가 많은 양아들 아하시야 - 물론 아달랴의 아들임).
여러분과 저의 손에 있는 킹제임스 성경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만일 이런 대답으로도 만족이 되지 않으면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께서 밝히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불신자들의 말에 위협을 받거나 그것으로 인해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롬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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