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배경사! 형성사!!

성경 사본과 사본의 종류

하나님아들 2024. 4. 21. 22:35

성경 사본과 사본의 종류   

 

(Photo : ) 마조레트 사본,출처:위키피디아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성경은 원본(Original)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보존된 사본을 비교 분석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즉, 이는 본문 비평 연구의 결과에서 얻어진 산출물이라고 하겠다. 사실 사본과 번역본에 대한 연구는 본문 비평에 속하는 것이다. 본문 비평에 대해서는 뒤에서 성경 비평에서 좀 더 다루기로 한다. 

사본(Manuscript)이란 원본의 보존을 위해 필사된 것이지만 원본이 사라진 후엔 이전의 사본을 필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원본이 전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사본의 재질로는 파피루스(Papyrus)와 양피지(Parchment)의 두 종류가 사용되었는데, 형태별로는 낱장을 모아놓은 단편들(Piece)과 책처럼 편철한 코덱스(Codex), 그리고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잇대어 만든 두루마리(Scroll) 형태의 사본들이 있다. 

사본은 구약은 서기관들에 의해 필사되어왔고, 신약은 교부들과 수도사들에 의해 필사되어왔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사본의 필사자들은 누락이나 오기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성경을 베끼긴 했지만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손으로 쓰다 보니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본 필사 과정에서 나타난 인위적 오류는 종류가 다양하여 중복, 탈락, 도치, 융합, 분리, 오사(誤寫), 오독(誤讀)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 때문에 때로는 성경 안에 서로 모순되는 표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구약의 경우는 모음이 개발되기 전에 자음만으로 기록할 때 오류가 많았을 것이고, 신약의 경우는 띄어쓰기가 없던 대문자 사본에서 오류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필사본의 경우 전적으로 일치하는 사본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은 어쩔 수 없는 실수와 더불어 필사자의 신앙과 신학적 배경에 따라 의도적으로 부분적인 첨가와 삭제의 관행이 있었음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발견된 사본들의 보존 상태도 문제가 된다. 사본의 재질은 보통 양피지와 파피루스였으며 대부분 많은 부분들이 훼손된 채 발견되므로 사본 중에서 온전하게 참고할 만한 것은 매우 드물다고 하겠다. 이렇게 사본이 희귀하고 보존성에 의문이 많게 된 데다가 수많은 역본까지 등장하게 되었으므로 성경 원본이 가르친 진정한 뜻은 사라지고 말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상존하였다. 


구약 사본 
구약 사본은 파피루스 형태가 드물고 대부분 양피지에 기록한 것들이 많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 수는 약 1,000여 개 정도로 추정된다. 구약 사본의 경우 고대에 벌써 사본이 안고 있는 한계와 많은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AD 2세기경의 랍비 아키바는 당시에 산재한 사본들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정통적인 히브리어 성경을 제정하고자 주창하였다. 이를 계기로 히브리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많은 구약 주석 방법이 개발되었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 내용을 구분하기 위한 절(節)의 구분과 각종 부호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노력은 계속되어 마침내 6-7세기경에 마소라 사본이 만들어짐으로써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마소라 사본) 
마소라 사본(Codex Massora)은 전통이라는 뜻을 가진 마소라(Massorah) 학자들에 의해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로 정확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히브리어는 원래 별도의 모음이 없이 단어를 이루는 글자 자체의 고유한 소리를 일일이 기억하여 발음하였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포로생활로 인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팔레스타인에서조차 히브리어가 그들의 생활 언어로 사용되지 않음으로써 히브리어 발음이 유실될 우려가 있게 되자, 마소라 학자들은 발음의 보존을 위하여 새롭게 히브리어의 모음을 고안하였는데 이를 마소라 모음이라고 한다. 

마소라 사본은 모든 자음에다 새롭게 고안된 모음을 붙여서 표기함으로써 정확한 발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랍비들이 성경을 필사함에 있어서 다시는 개인적 오류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글자 수와 글자 배열까지 치밀하게 규정한 표준 필사 법을 제정하여 그 기준에 미달한 성경은 여지없이 폐기하는 엄격함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마소라 사본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히브리어 성경은 비교적 정확하게 보존되어 갔다. 그러나 마소라 학자들은 자신들이 당시에 입수 가능한 모든 사본을 참조하여 그들 나름의 본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과 가문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소라 사본은 지역에 따라 바벨론 마소라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티베리아 마소라의 두 종류로 나뉜다. 바벨론 마소라는 근거 사본의 취약 때문에 가치가 적으며 티베리아 마소라가 중요하다. 티베리아 마소라는 다시 가문에 따라 벤 납달리 사본과 벤 아쉐르 사본으로 나뉘며, 벤 아쉐르 가문의 권위가 더 인정받고 있다. 벤 아쉐르 사본 중에서 9세기경 모세 벤 아쉐르가 필사한 레닌그라드 박물관 소장의 사본(Codex of Moses Ben Asher 또는 Codex Leningradensis)이 유명한데, 이는 전문이 보존된 상태였다. (사해 사본) 현존하는 히브리어 사본 중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사본이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이다. 사해 사본은 쿰란 사본(Codex Qumran)이라고도 하는데, 1947년 사해 근처 쿰란의 여러 동굴에서 양치는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사해 사본은 BC 2-1세기경 로마의 예루살렘 침략 때 무혈 저항하던 쿰란 종단에 속한 유대인들이 동굴에 은거하면서 당시의 성경을 필사한 것들인데, 외경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한편 사해에서 발견된 성경과 마소라 사본을 대조해 본 결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곧 마소라 사본의 신뢰성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기타 사본) 

그밖에 유명한 사본으로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오경의 일부만이 보존된 나쉬 파피루스 사본, AD 9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자음만으로 되어있는 대영박물관 사본, 또 현재 히브리 대학에서 발간 중인 HUB 히브리어 성경의 모체가 되고 있는 알렙포 사본(레닌그라드 사본 이전 것으로 추정) 등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히브리어 사본 중에서 주전에 필사된 사본은 사해 사본 말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마소라 인쇄본)

 1450년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는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으며, 인쇄된 마소라 사본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일 처음 히브리어 성경이 인쇄된 것은 1477년에 시편이었다. 곧이어 1488년에 구약 전문이 인쇄되었는데, 이것이 히브리어 인쇄본의 효시이다. 이후에 몇몇 히브리어 성경이 계속해서 출간되었는데, 그중에서 1524년에 야곱 벤 하임이라는 유대인에 의하여 편집되고 봄베 르그가 출판 제작한 '제2 랍비 성경(Bombergiana)'이 가장 유명하다. 벤 하임의 제2 랍비 성경은 기존의 마소라 사본들을 최대한 참고하여 편집한 것으로 20세기까지 세계 모든 구약성경의 근간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사본)

독일의 신학자 키텔은 1906년 벤 하임의 제2 랍비 성경을 토대로 BHK(Biblia Hebraica Kittel)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경 두 권(BHK과 BHK )을 차례로 펴냈었다. 그런데 키텔은 1937년에 제3판(BHK )을 내면서 본문을 벤 하임 인쇄본 대신 레닌그라드 사본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벤 하임 인쇄본이 15세기에 편집된 작품임에 비하여, 레닌그라드 사본은 9세기경의 권위 있는 랍비인 모세 벤 아쉐르가 직접 필사한 것이었고, 또 전문이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1977년에 독일성서공회는 BHK 의   오기와 난외에 마소라 주기를 보충하여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간하였으며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이것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신약 사본 

신약 사본은 구약 사본보다 훨씬 더 많아서 약 5,000 여 종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성경은 약 3,200여 종이 되며 나머지는 헬라어로 된 성구집과 설교들이다. 형태별로 보면 가장 오래된 형태인 파피루스 사본은 소량이며, 대부분은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들이다. 신약 27권의 최초의 글은 처음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피루스의 훼손되기 쉬운 성질 때문에 보존을 오래 할 수 없으므로 곧 필사본이 만들어져야 했고, 성경의 원본들이 얼마 후에 유실된 후에는 파피루스 사본들만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파피루스보다 재질이 견고하고 보존이 용이한 양피지가 개발되면서 파피루스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들은 크게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의 두 계열로 나뉘어 대립되어 있다. 대문자 사본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초기의 사본으로 숫자가 적게 발견되어 소수 사본이라고 하며, 소문자 사본은 비잔틴 계열의 다수 사본으로 대부분 9세기 이후 시대의 사본이다. 알렉산드리아 계열을 신뢰하는 학자들은 대문자 사본이 소문자 사본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우수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비잔틴 계열의 사본을 신뢰하는 학자들은 오래된 연도로만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문자 사본은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많이 사용되지 못했고 오히려 소문자 사본들이 원본에 가까워서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간에 공방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양자를 같이 비교하며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진다. 어느 일방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본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원본이 아닌 어디까지나 사본이기 때문이다. 

 

(파피루스 사본) 

신약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 파피루스 사본은 AD 2세기부터 8세기경까지 제작되었는데 현재까지 약 90여종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파피루스의 약한 특질상 많이 파손된 상태의 단편들뿐이며, 따라서 아쉽게도 어떤 파피루스도 신약의 완비된 부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파피루스 사본은 대문자 P로 표시하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한 조각의 P52라는 사본으로서 AD 13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한 면에는 요한복음 18장 31절에서 33절까지, 다른 면에는 18장 37절과 38절이 씌어있다.  

그밖에 역시 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P90과 P98이 있으며, 나머지는 대개 3세기 이후의 사본들이다. 1930년대에 베아티(Beatty)가 이집트에서 수집한 세 종류의 파피루스인 P45, P46, P47도 3세기경의 사본들로서 비교적 많은 쪽수가 발견되었으며, 곧 책으로 출판되어 그 내용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대문자 사본)
대문자 사본(Majuscules)을 언셜체(Uncial) 사본이라고도 부르는데, 현재까지 약 300여종이 발견되었으며 소문자가 개발되기 전까지 파피루스 사본과 함께 8세기경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파피루스 재질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양피지는 질겼지만, 글씨를 쓰기는 불편하였다. 더군다나 고대에는 초서체의 소문자가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대문자로 기록하였는데,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기록상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대문자 사본은 숫자가 적으므로 소수 사본(Minority Text)이라고 하는데, 이집트와 가이사랴 그리고 라틴을 비롯한 서방 지역에서 주로 많이 제작되었으므로 서방의 대표적인 지명인 알렉산드리아의 이름을 따라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문자 사본은 소문자 사본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나 발견된 시기로는 오히려 소문자 사본들보다 늦은 것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것들로는 먼저 4세기경의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 있다. 이는 아무 장식이 없어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히브리서 일부와 목회서신과 요한계시록이 없다. 그리고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도 4세기경의 것인데 구약의 일부를 빼고 신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사본이다. 그 다음 5세기경의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nus)이 있는데, 이는 신구약성경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세 개의 사본들은 모두 신약뿐 아니라 구약까지 포함하고 있는 사본들이다.
다음은 역시 5세기경의 사본으로서 원래 양피지에 성경을 기록했으나 12세기에 그 성경본문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에브라임이라는 사람의 설교를 기록한 에브라임 사본(Codex Ephraem)이라는 것이 있다. 또 프랑스인 베자에 의해 수집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이 포함되어 있는 베자 사본(Codex Bezae)과 사복음서와 예수님의 어록까지 포함된 워싱톤 사본(Codex Washington)도 있다. 그밖에 6세기경의 클라로몬타노 사본(Codex Clarnontanus)과 라우드 사본(Codex Laudianus)이 있고, 8세기경의 레기우스 사본(Codex Regius)이 있다.

(소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Minuscules)은 대문자 필사의 불편성을 개선하기 위해 초서체 소문자를 고안하여 필사하였기 때문에 초서체 사본이라고 부른다. 대문자 사본은 글씨가 화려하고 크며 더군다나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필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초서체 소문자 사본은 비교적 빠르고 쉽게 필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곧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현재까지 약 2,800여종이나 발견되었으며 다수 사본(Majority Text)이라고 부른다. 또 2,000여종의 성구집(Lectionaries)과 설교집도 거의 초서체 사본들이다.
 한편 서로마 지역은 주로 라틴어성경을 사용하면서 헬라어성경의 필요성이 감소되어 헬라어 필사본을 많이 만들지 않았으나, 비잔틴 지역의 동로마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어 문화권이었으므로 계속해서 헬라어 필사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잔틴 지역에서 많이 제작된 소문자 사본을 서로마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과 대비하여 비잔틴 계열 사본이라고도 부른다.
소문자 사본은 9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1450년에 구텐베르크에 의해 서양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많이 필사되고 널리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소문자 사본은 파피루스 시대와 대문자 사본 시대를 거쳐오면서 훨씬 후대에 필사한 것이므로 고대 사본들과 비교하면 더욱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그 신빙성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로는 비잔틴 사본(Codex Byzantine), 안디옥 사본(Codex Antioch), 시리아 사본(Codex Syrian) 등이 있는데, 이들은 동로마 지역에서 오랫동안 폭넓게 인정되고 수용된 사본들이지만, 그것들도 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지상에 존재하는 사본간에 완전한 일치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곧 인간이 필사한 사본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원본에서 조금씩은 이탈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만일 원본이 아닌 필사본에 불과한 어떤 사본을 맹신하면서 또 융통성 없는 문자적인 해석으로 경직화된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헬라어 사본의 인쇄)

하나님의 말씀은 필사자들의 손에 의해 계속 보존되어 왔으나,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는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는 더 이상 불필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즉, 1450년 구텐베르크가 자신이 발명한 인쇄방법으로 라틴 불가타 인쇄본을 출판한 이래 필사본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그 후에는 인쇄기에 의한 대량 출판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헬라어 사본을 최초로 인쇄한 것은 1514년『여러번역 대조성경(Complutensian Polyglot)』에 실린 헬라어신약이었으나, 헬라어 사본이 독자적으로 인쇄·출판된 것은 1516년 에라스무스가『헬라어신약성경』을 발표한 것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

인문주의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는 주로 동로마 지역에서 사용되던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을 종합하여 1516년에 헬라어신약성경을 출판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인쇄된 헬라어 사본으로 간주된다. 당시 에라스무스는 신약 전체가 포함된 사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사본을 종합하고 편수하여 새로운 본문의 헬라어성경을 만들었으며, 헬라어 사본을 구하기 힘든 경우에는 라틴어 불가타를 헬라어로 번역하여 재구성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결국 가능한대로 헬라어 신약성경의 원본을 복원하고자 한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본문은 표준원문 또는 수용원문(Textus Receptu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널리 사용되어져 왔으며, 계속 수정·보완되어 전부 5판이 출판되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은 후에 스테파누스의 헬라어성경을 비롯하여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역성경과 틴데일의 영어역성경 등의 번역 모체가 되었다.

(스테파누스의 헬라어성경)
에라스무스에 뒤를 이어 여러 형태의 헬라어성경이 출판되었는데, 거의가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을 반영하여 편수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프랑스 인쇄업자 스테파누스에 의해 1550년에 출판된 헬라어성경이다. 그는 구약은 마소라 사본을 채택하여 신구약이 포함된 원어성경을 펴냈는데, 이는 역사상 최초로 본문비평적 편집으로 출판되었으며, 또한 제4판부터는 숫자로 절(節)을 구분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또 1553년에는 제네바에서 올리베땅(Olivetan)의 불어 번역본도 출판하였는데, 여기서도 장, 절을 구분함으로써 이후 모든 성경의 표준이 되었다. 장의 구분은 원래 13세기 켄터베리의 주교(Cardinal)였던 랑톤(Langton)이 한 것을 그대로 준용하였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역시 13세기에 카로의 주교였던 유고(Hugo)가 장의 구분을 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베자의 헬라어성경)

칼빈의 뒤를 이어 스위스 개혁교회의 지도자였던 베자는 성경 수집과 사본 연구에 힘을 쏟아 대문자 베자사본을 발견하였고 또한 헬라어신약성경과 라틴어번역성경 등을 출판하였다. 그가 출판한 헬라어성경은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된 사본 편집의 방법을 따라 그때까지의 사본들을 수집하여 본문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많은 헬라어 사본을 종합하여 표준이 되는 본문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로써 표준(수용)원문이라는 개념을 일반화시키고 고정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베자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발견한 대문자 사본인 베자사본과 기타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을 편집하여 헬라어성경의 본문으로 채택하고 나서 1565년부터 40년 넘게 수정을 거듭하면서 무려 10판을 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헬라어 신약사본은 1611년 발행된 영어흠정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엘제비어 형제의 표준원문)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을 편수하여 종합한 본문을 표준원문 또는 수용원문(Textus Receptus)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1633년 독일의 인쇄업자였던 엘제비어(Elzevier) 형제가 처음 사용하였다. 그들은 에라스무스와 스테파누스의 본문을 재구성한 헬라어성경을 출판하면서 서문에서 '모두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본문'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후부터 수용원문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하게 되었으며, 줄여서 TR사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엘제비어의 헬라어 성경은 7개판이 나왔는데, 따라서 에라스무스판 5개, 스테파누스판 4개, 베자판 10개를 합치면 TR사본은 모두 26가지가 유통되었다.  
  
(웨스트콧-홀트 헬라어 성경)
17세기에 만들어진 TR사본들은 이후에 계속 보급되어 18-19세기에는 가장 널리 사용되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들어 본문비평의 발달로 TR사본의 가치가 의심스러워지면서 새로운 헬라어성경의 출판이 예고되었는데, 몇몇 신학자들은 TR본문의 근거가 된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고 더 오래된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대문자 사본을 근거로 하여 비평적 편집에 의하여 본문을 재구성하여 새롭게 편집된 헬라어 성경들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1881년 영국에서 성공회 소속인 웨스트콧(Westcott)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홀트(Hort)라는 두 신학자가 공동으로 출판한 헬라어 성경이다. TR사본이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면, 이들에 의한 헬라어성경의 본문은 주로 대문자 사본을 편수하여 만든 것으로 조금 뒤에 네슬레 헬라어 성경에  영향을 주었다.

(네슬레 헬라어성경)

독일의 네슬레(Nestle)는 1898년 독일성서공회 지원을 받아 헬라어 신약성경(Novum Testamentum Graece)을 펴내었다. 그는 웨스트콧과 홀트의 헬라어성경과 몇몇 발행된 헬라어성경을 비교하고, 또 초기의 대문자 사본을 많이 참고해가면서 다수의 사본들이 일치하는 새로운 본문을 만들었는데, 네슬레 헬라어성경은 부자(父子)간에 대를 이어 계속 발행되어 20판까지 출판되었다.
  네슬레 헬라어성경의 특징은 사본간에 본문과 번역 및 교부들의 인용구까지 비교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본문을 채택하여 철저하게 비평적인 편집을 한 것인데, 판을 거듭할 갈수록 우수한 본문으로 인정받으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권위있는 본문으로 서서히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TR사본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본문으로 평가되어 그 동안 누려오던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네슬레-알란트 헬라어성경)

네슬레 헬라어성경은 21판 편집부터 역시 독일인인 알란트(Kurt Aland)가 참여함으로써 21판부터는 네슬레-알란트판으로 불리게 된다. 이들은 공동으로 연구하고 보완하면서 거듭 수정판을 내었는데 네슬레판을 포함하여 1993년 현재까지 27판까지 발행되었다. 이들의 헬라어성경은 기존의 대소문자 사본뿐 아니라 AD 200년대의 파피루스 사본까지 최대한 많이 반영하여 수많은 사본을 분석하고 편집한 것인데, 비평적인 편집으로 결정된 헬라어 본문과 본문비평장치의 우수성 때문에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많은 현대 번역성경들이 네슬레-알란트판 헬라어성경을 번역의 저본(底本)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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