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부활이 준 선물(눅 24:44-49)

하나님아들 2024. 3. 31. 23:19

부활이 준 선물

 

 

(눅 24:44-49)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2차 세계 대전에 독일의 롬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장군은 19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 해안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이 프랑스 상륙을 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절대적으로 불리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 해안을 덮었습니다. 이 상황을 본 롬멜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롬멜이 자리를 비운 그 다음날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수부대 2만 4천명이 내렸습니다. 100만영이 상륙을 합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불렸습니다. '공격 개시 예정일'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 디데이로 전쟁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이 상륙한 후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했지만 마침내 그들이 패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납니다. 이 전쟁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하지 않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상륙 1년 후에 일어난 전승기념일입니다. 승리의 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D-day)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사건입니다. 어두움의 땅에 빛이 온 것이요,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 생명이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브이데이(V-day)’는 언제입니까. 사단의 머리는 상하게 하고, 모든 악의 권세를 끝을 낸 사건 말입니다. 이 승리의 날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부활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사망을 정복한 것이요.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사건입니다. 오늘은 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주일(主日)입니다.

 

역사가 요셉프스는 주전 167년경 한 전쟁을 소개합니다. 당시 안티오푸스 에피파네스 황제는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번제단에 돼지고기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 제사를 매월 25일에 지내게 했는데, 이 날은 에피파네스의 생일이었습니다. 이것에 분노한 마카비 유대 독립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황제의 군인들이,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적들과 싸우지 않고 몰살을 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모든 율법은 의식과 조문입니다. 무엇 무엇을 지키라, 혹은 하라 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율법에는 날과 달과 절기가 가득합니다. 한번 살펴봅니다. 먼저 7대 절기입니다.

 

제일 먼저 1월에 ⑴ 유월절(레23:4-5)이 있습니다. ‘넘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1월 14일 해질 때부터 4일 전에 준비한 수양을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웁니다. 출 애급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때에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2월 14일에 지킵니다. 이 유월절 다음 날부터 ① 7일간 무교절(레23:6-8)인데(15~21일)을 지킵니다. 이것은 누룩이 없는 떡을 먹으며 출 애급을 감사하고, 교육합니다. 그리고 그 무교절 기간 안에 ② 초실절(레23:9-14)이(1.16,)이 있는데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추수 곡식의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 다음이 ⑵ 오순절(레23:15-21; 행 2:1-47) 3월 6일경인데 이것을 칠칠절, 맥추절로도 부릅니다. 보리나 밀 수확으로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⑶나팔절(레 23:23-25)인데 이것은 7월 1일인데 유대인 민간 달력으로 새해요, 첫날입니다. 나팔을 하루 종일 일정한 간격으로 불며, 성회가 선포되고, 노동을 금하고, 속죄제 수 염소를 드립니다.

 

그 다음 ⑷대 속죄일(레23:26-32)은 7월 10이며 10일간 지킵니다. 특별히 이때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 ⑸초막절(레 23:33-34)로 7월15일에서 22일까지 인데 8일 동안 지킵니다. 이것은 수장절, 장막절이라고도 불리며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 외에도 부림절(에3:7) 12월 14일- 15일이 있는데, 금식하고,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읽습니다. 또 수전절(요10:22)은 9월 25일부터 8일간 지킵니다. 이것이 일 년 중 지키는 유대인의 절기입니다. 이것은 기본이고, 모든 유대인은 7일 단위로 안식일을 지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합니다. 여러분 율법은 많은 날과 달과 절기로 만들어 져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약시대에 절기는 사실상 하나밖에 없습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혹은 대강절 사순절 같은 교회력은 로마 가톨릭의 유산인데 개신교에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교회에서 더러 지키기는 하지만 구속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와 신자들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날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일(主日)입니다.

 

안식교회나 어떤 이단들은 십계명 4계명에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일은 사람이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구약율법은 패하여 졌습니다. 이제 신약 성경으로 넘어 오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식일은 신약성경에 지키라고 한곳도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율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약의 날이나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아십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약하고 무가치하며 유치한 율법으로 되돌아가 다시 종이 되려고 하십니까. 여러분이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킨다고 하니, 내가 여러분을 위해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갈4:9-11절)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성령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생긴 날이요. 또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모든 중요한 기념일은 1년에 한번 지킵니다. 그러나 부활은 신앙의 근본이고, 핵심이기에 매주일 마다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생긴 날입니다. 십계명은 구약이요, 율법입니다. 옛 언약입니다.

 

신약성경에 중요한 구약과 십계명의 내용이 다 넘어왔습니다. 또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지킨 교회도, 명령도 없습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회당에 간 것을 가지고 바울이 안식일 지켰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술 먹는 사람 전도하려고 간 것을 가지고 술 먹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이 주일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행2:1) 바울은 주일날에 떡 때며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행20:7) 고린도교회는 주일에 헌금을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고전16:1-2)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이날을 주의 날(계1:10절)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면 왜 안식일이 아니고 주일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의 절기와 날을 페하시고 주일을 세우고 예배를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놀라운 선물인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거리의 신호등을 보면 녹색 불은 가라는 신호, 빨강 불은 정지하라는 신호입니다. 달력을 보면 주일을 표시하는 숫자는 모두 빨강 색입니다. 이것은 하던 일을 멈추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신호인 것입니다. 운전자가 붉은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하면 큰 사고와 비극이 옵니다. 그래서 빨간불이면 무조건 서는 것입니다. 주일은 무조건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1813년 10월 17일 영국을 침략했다가 웰링턴 장군에게 망했습니다. 그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을 침공했다가 원자폭탄의 세례를 받고 망했습니다. 그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도 주일이었는데, 그 날 김일성이 남침을 했다가 북한은 저 모양 저 꼴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독립 전쟁을 할 때에도 주일은 꼭 쉬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남북 전쟁 때에 주일은 쉬었습니다. 윌슨 대통령도 1차 세계 대전 중에서도 병사들을 주일은 예배를 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미국의 20대 가필드 대통령은(James A. Garfield)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사이고, 히람대학(Hiram College)에서 학장을 지낸 사람인데 주일은 자동차를 타지 않고 교회에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미국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 1849년 3월4일 대통령에 취임해야 되는데 그날이 주일이라 취임을 거부하여 애치슨 상원의장이 24시간 대통령 임무를 대신했습니다. 대통령 취임보다도 주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 신앙인입니다.

 

미국이 저만큼 부강한 나라가 되고, 온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반면에 한사람 케네디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인기가 있는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대통령을 할 때 학교 채플(chapel)을 없애고, 성경교육을 패지 했는데 그 후부터 장발족이 생기고, 히피족이 생기고, 마약 복용 자가 많아지고, 총기난사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타락과 세속주의로 급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예수님을 예배하고 만나는 구체적인 생활이 주일마다 있어야합니다. 누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무슨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지금 보여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 그런 사람에게 분명하게 말해주세요. 너는 달력에 빨간 글을 보지 못했느냐. 너는 수많은 사람들이 2,000년 동안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이냐. 어디서 주일이 나왔고, 어디서 이 수천수만 수억만의 사람들이 주일 날 일손을 놓고 찬양하며, 기도하며, 기뻐하는 것을 정녕 보지 못하고 하는 소리냐고 말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일과 예배는 부활이 준 선물입니다.

 

2. 영생(永生)입니다.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비겁해 지기도 하고, 무력하고, 연약해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히2:15). 베드로도 죽음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주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한 곳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요20:19). 두려운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절대한계입니다. 인간의 희망과 꿈과 미래의 계획들은 죽음과 함께 끝납니다. 죽음은 인간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빼앗아 가고 삶의 모든 가능성을 무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부활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내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도 죽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음 위에 계시며, 죽음을 다스리십니다.

 

바울이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까. 이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고전15장 첫 머리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 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느니라."(고전15:3).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고전 15:8).

 

바울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우리가 담대히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8).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이 더욱 좋으나"(빌1:23). 그는 죽음 이후의 삶을 사모합니다. 바울은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람이었습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불로초(不老草), 불사약을 구했던 진시황도 결국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글자는 없다.’라고 하던 나폴레옹도 죽었습니다.

 

여러분 죽음이 보다, 죽음 뒤가 더 무섭습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이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롬3:10)고 했습니다. 요3:18절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믿지 않은 것이 심판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생명으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부활입니다. 굼벵이가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껍질을 벗고 죽습니다. 그런데 매미가 되어 나옵니다. 배추벌레가 꿈틀거리며 다니다가 역시 껍질을 벗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노란 나비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약속합니다. 요한복음 5:28-29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첫 열매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죽음 너머 있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부활을 통해서 확증 됩니다. 예수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고, 예수 생명이 됩니다.

 

3. 사명(使命)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크라이슬러는 또한 훌륭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원래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어느 날 동네의 골동품 가게에 들렀는데 좀처럼 볼 수 없는 훌륭한 바이올린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이올린을 사겠다고 했지만 한 수집가가 이미 구매했기 때문에 팔 수 없다고 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바로 바이올린 수집가를 찾아가 자신에게 팔 것을 부탁했지만 수집가는 박물관에 기증할 것이라며 거절하였습니다. 크라이슬러는 그러면 그 바이올린을 한 번만 연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넋을 놓고 감상했습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났습니다.

 

수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바이올린은 당신 거요. 이것은 박물관에 있어야할 물건이 아니란 걸 당신의 연주를 듣고 깨달았소. 어서 가지고 가서 방금 그 연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오.” 여러분 좋은 것일수록 사용할 때 빛이 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재능이나, 은사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부활을 아는 것, 믿는 것에서 전하는 것으로 나가야합니다.

 

우리는 도로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좌회전 승합차와 직진 승용차 추돌 장면 목격하신 분, 오토바이와 충돌하고 달아난 승용차를 보신 분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음’뭐 이런 식입니다. 왜 이처럼 목격자를 찾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목격자가 사건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억울하게 당했는데 문제를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격자가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됩니다.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어떤 차가 사람을 치고 달아났는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격자는 모든 논란을 잠재우는 결정적인 사람입니다. 이것이 증인의 사명입니다. 말해주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냥 입을 다물고 있으면 결국 한 사람이, 원통해서 병이 들어 죽거나 평생을 교도소생활 합니다. 바울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그의 증언에 의해서 개척되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울은 다시금 그들에게 문제 해결의 해답이요, 열쇠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요 그의 부활이요, 그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결론

 

레나 마리아는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 하보 마을에서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저 짧은 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가 처음 어린 레나를 품에 안았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울었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아이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웃는 것이다. 가슴이 저려왔다. 갑자기 그 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잘 키우면 돼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로 우리가 키워요.” 그 부모는 자신의 생각, 판단, 느낌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다.

 

어느 날 집으로 들어오는 레나가 시무룩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엄마는 조심스럽 레나야 표정이 좋지 않구나. 엄마! 난 왜 친구가 없는 거죠. 엄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친구가 없다니,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친구 말이예요. 그녀는 레나를 무릎에 앉히고는 꼭 안아 주었다. 친한 친구가 없기는 너에게는 늘 지켜주는 친구가 있단다. 누구요. 놀라서 바라보는 레나에게 말해주었다. 바로 예수님이다. 늘 레나와 함께 계시고 레나를 지켜주시는 분이시지,

 

그 아이는 무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 눈에는 안 보여도 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거죠, 알았어요. 그럼 나는 외롭지 않아요.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님은 항상 함께 계신단다. 어느 날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레나에게 말했습니다. “노래는 목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거야. 그렇지 않은 노래는 생명이 없어. 오늘은 그만 해야겠구나.”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걱정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나가신 후 레나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울었습니다. 노래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란 선생님의 말이 레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레나는 외로웠다. 미치도록 혼자라고 느꼈다. 이를 꼭 악물었다. 하지만 다문 입 사이로 신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나왔다.‘ 외로워하는 마음으로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겨우 눈물을 닦고 발로 수화기를 들었더니 “여보세요”하며.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나지요,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주님이 저에게 당신에게 전화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힘들고 외로울 때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레나 마리아는 그 전화를 받고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그랬다. 예수님이 함께 계셨다. 내 눈물을 닦아 주고 계셨다”그리고 레나는 다시 일어났다. 레나 마리아는 말했습니다.“누군가 나에게 예수님의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대 보라 하면 나는 나의 약한 육신과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는 나의 입술을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레나가 가진 이 부활 신앙은 그를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1995년에 비욘 클링밸과 결혼하여 스웨덴의 낫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녀 고백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악수할 시간이 없다. 팔이나 손이 없어서 편리한 점은, 절대 반지나 장갑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어릴 때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아빠가 데리러 와서 나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구 엄마는 내 장갑을 찾는 일에, 온통 신경을 쓰고 계셨다. "안 찾으셔도 됩니다." 아빠가 말했다.

 

▲조영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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