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마라나타!!!

'휴거'에 대한 연구 - 워치만 니(통합본)

하나님아들 2024. 3. 18. 00:07

'휴거'에 대한 연구 - 워치만 니(통합본)

 

 

 

 

 

 

'휴거'에 대한 연구 A - 워치만 니

'휴거'에 대한 연구

휴거는 시대 끝(종말) 이전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휴거(rapture)」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3절까지에 있는 「영접하다 (receive)」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 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휴거되는 것은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휴거되는 것은 주님에 의해 하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는 특별한 용어이다.

그분은 속히 오실 것이며,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은 우리를 받으실 것이다.

휴거의 문제에 대해서는 믿는 이들 가운데 여러 가지 다른 의견들이 있다.

(1)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대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2)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대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3)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자 중 일부는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며, 일부는 환난 후에 끌어올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세 학파들은 각각 서로를 이단시하며 서로와의 교통을 단절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이 모든 학파들에는 잘 알려진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 학파에는 다비, 켈리 토레이, 브룩스, 제임스 그레이, 게블린, 와이스, 스코필드 등이 있다.

두 번째 학파는 뮐러, 고오든, 심프슨, 에드만, 무어헤드, 헨리 프로스트, 챔버린, 제임스 라이트, 뉴톤 등이 있다.

세 번째 학파에는 허드슨 테일러, 로버트 채프만, 로버트 고벳, 펨버, 팬톤등이 있다.

비록 세 학파들 중 어느 학파도 다른 학파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오직 한 학파만이 옳다.

이것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공평한 태도를 갖고자 한다. 우리는 변호사가 아닌 검사가 되겠다.

Ⅰ. 첫 번째 학파의 논리들..(환난 전 휴거)

A. 본 지지자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0절에서 「장차 노하심」이 대환난이라고 말한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 구절은 「건지시는」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휴거는 환난 이전이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이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그러한 노하심은 대환난과 같다고 말한다.

위의 증거가 대환난을 언급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되었다.

왜 여기서의 노하심이 대환난의 노하심이어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여기서의 노하심이..

대환난은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하심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믿는 이들에 대한 사탄의 징벌과 노이다.

믿는 이들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그들로 큰 고난 아래 처하게 하지만,

이것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노하심 아래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다.

B. 이들은 예레미야 30장 6절부터 7절까지에서 「야곱의 환난의 때」가 대환난이며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고 이방인들이나 교회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교회는 유대인들이 아니므로 이들의 관념대로라면 우리는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단12:1)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만일 온 성경이 이 두 참고 구절뿐이라면 대환난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들.. 예를 들면, 계시록 3장 10절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를 보아야 한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예레미야와 다니엘의 예언들은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이기 때문에「야곱」이나「당신의 백성」등이라는 용어들이 있다.

C. 계시록 4장 1절부터 4절까지 이 학파의 주창자들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1) 계시록 2장과 3장이 오늘날의 교회 시대를 말하며..

(2) 계시록 4장 1절은 교회를 언급하고..

(3) 계시록 4장 4절의 이십 사 장로들은 교회가 휴거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4) 계시록 5장과 6장은 계속해서 대환난의 시작을 언급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시록 4장 1절은 온 교회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리로 올라오라」고 할 때, 요한만을 부르고 있다.

이것은 밧모 섬에서 일어난 성취된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도행전 8장 39절에서 빌립이 데려가졌다는 것은 그 또한 휴거 되었다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24 장로들이 영화롭게 된 교회라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참으로 상식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1) 24 라는 수는 교회의 숫자가 아니고..

7과 7의 배수들이(예를 들어 일곱 교회들처럼) 교회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2) 성경에는 장로들이 교회를 상징하는 곳이 없다.

교회 안과 유대인들 가운데는 장로들이 있지만 믿는이마다 장로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셨고, 다음에는 유대인들을 선택하셨고, 끝으로 교회에 은혜를 주셨다.

어떻게 장로들이 교회로 여겨질 수 있는가?

(3) 계시록 4장과 5장에서 장로들은 보좌들 위에 앉아 있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서 계신다.

보좌들과 금 면류관들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들인데 그리스도가 영광 받기도 전에 교회가 영광을 받을 수 있겠는가?

(4) 어떤 이들은 장로들이 입고 있는 흰옷들이 주님의 의를 가리키며, 주님의 피로 씻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장로들의 옷들이 피로 씻어졌다고 말하는 기록은 없다.

죄 때문에 우리 옷들은 보혈로 희게 씻음 받을 필요는 있지만 이십사 장로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았다.

(5) 이 장로들은 결코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4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노래했다.

5장에서 그들은 구원의 노래를 불렀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구속된 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여러 권의 성경 번역본들은 9절의 그 부분을 「우리를 구속하신」으로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은 틀린 것이다.

「우리를(us)」이라는 단어는「사람들(men)」이 되어야 한다.

이십사 장로들을.. 교회가 휴거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교회가 다른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언급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

(6) 계시록 4장은 교회나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주를 언급 하고 있다.

(7) 계시록 5장 8절에 따르면 교회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가져올 수 없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8) 계시록 7장 13절에서 만일 요한 또한 교회의 부분이라면, 그것은 교회에게 간구하는 교회가 된다.

⇨ 왜냐하면 장로가 교회를 상징한다면 장로도 교회고 요한도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교회가 되므로..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9) 요한이 장로를.. 「님」 혹은 「내 주(My Lord)」라 칭하고 있으므로 분명히 요한의 지위는 낮다.

만일 이십사 장로들이 교회라면, 요한은 원로이기 때문에 그는 장로들 중의 장로가 되어야 한다.

(10) 이십사(24)라는 숫자는 문자 그대로 해석된다. 그것은 상징이 아니다.

장로들 중의 하나가 요한과 말했는데 어떻게 교회의 이십사분의 일이.. 요한과 말할 수 있겠는가?

숫자들이 확정되어 있으므로 장로들도 확정되어 있다.

이십사 장로들은 사실상 우주를 지배하는 천사장들이다.

심지어 사탄 밑에도 왕들과 주관자들이 있다.

D. 이들은,「데살로니가 전서 4장16절과 17절이 휴거를 언급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물론 그 구절들은 휴거를 언급하지만 어느 때인가 말하고 있지 않다.

거기서는 휴거의 사실은 언급되지만 휴거의 때는 언급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휴거가 환난 전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E. 고린도 전서 15장 50절부터 52절까지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다 부활하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것이 부활의 사실을 언급하지만 휴거가 환난 전에 있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휴거는 환난 후에, 즉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째 나팔에 있을 것임을 증명해 준다

(일곱째 나팔 여섯째 대접 재앙 때, 알곡 추수).

어떤 이들은 로마 관습에 따르면 나팔이 세 번 불려짐으로 마지막 나팔은 세 번째 나팔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릇되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계시하실 때 로마의 방식을 빌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련도 없고 의미도 없다.

F. 이들은 누가복음 21장 36절에서 주님이 분명히 교회가 대환난을 피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으며,

「인자 앞에 선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휴거라고 주장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러나 여기에서 이 약속은 조건적이다.

이 약속은 거듭남에 의한 구원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만일 사람이 깨어 기다린 후 자격 있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약속이 된다.

온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깨어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G. 계시록 3장 10절은 이 사람들(환난전 휴거 지지자들)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한 논증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것은 조건적인 약속이다.

사람은 이것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내의 말씀」이란 무슨 뜻인가?

오늘날 사람들은 주님을 욕하며 그분을 저주하고 그분을 부인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죽이고자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지 않는다.

주님은 그들을 징벌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인내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하지 않는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인내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믿는 이들이 휴거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믿는 이들이 다 환난 전에 휴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 논거라면 온 세상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따라 구원받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그들은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조건을 잊어버린다.

이곳 계시록 3장10절에서 주님의 약속은 빌라델비아 교회 전체에 대한 것이었다.

빌라델비아가 교회의 대표이므로, 온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 당시 소아시아에는 일곱 교회들이 있었지만, 주님의 이 약속은 모든 교회들을 대표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여섯 교회들 안의 이기는 자들은 휴거될 수 없으며 환난으로부터 구원받을 소망이 없을 것이다.

[출처] ◈ '휴거'에 대한 연구 A - 워치만 니|작성자 전달자

 

공개된 하나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어느 날 우연히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제 모든 것을 팔아 소유하려고 보니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고 귀해서 여럿이 함께해야 소유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곳으로 초대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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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에 대한 연구 - 워치만 니(통합본)

'휴거'에 대한 연구

휴거는 시대 끝(종말) 이전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휴거(rapture)」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3절까지에 있는 「영접하다 (receive)」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 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휴거되는 것은 스스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휴거되는 것은 주님에 의해 하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는 특별한 용어이다.

그분은 속히 오실 것이며,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은 우리를 받으실 것이다.

휴거의 문제에 대해서는 믿는 이들 가운데 여러 가지 다른 의견들이 있다.

(1)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대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2)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대환난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3)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자 중 일부는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며, 일부는 환난 후에 끌어올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세 학파들은 각각 서로를 이단시하며 서로와의 교통을 단절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이 모든 학파들에는 잘 알려진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 학파에는 다비, 켈리 토레이, 브룩스, 제임스 그레이, 게블린, 와이스, 스코필드 등이 있다.

두 번째 학파는 뮐러, 고오든, 심프슨, 에드만, 무어헤드, 헨리 프로스트, 챔버린, 제임스 라이트, 뉴톤 등이 있다.

세 번째 학파에는 허드슨 테일러, 로버트 채프만, 로버트 고벳, 펨버, 팬톤등이 있다.

비록 세 학파들 중 어느 학파도 다른 학파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오직 한 학파만이 옳다.

이것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공평한 태도를 갖고자 한다. 우리는 변호사가 아닌 검사가 되겠다.

Ⅰ. 첫 번째 학파의 논리들..(환난 전 휴거)

A. 본 지지자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0절에서 「장차 노하심」이 대환난이라고 말한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 구절은 「건지시는」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휴거는 환난 이전이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이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그러한 노하심은 대환난과 같다고 말한다.

위의 증거가 대환난을 언급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되었다.

왜 여기서의 노하심이 대환난의 노하심이어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여기서의 노하심이..

대환난은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하심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믿는 이들에 대한 사탄의 징벌과 노이다.

믿는 이들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그들로 큰 고난 아래 처하게 하지만,

이것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노하심 아래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다.

B. 이들은 예레미야 30장 6절부터 7절까지에서 「야곱의 환난의 때」가 대환난이며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고 이방인들이나 교회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어찌하여 모든 남자가 해산하는 여자 같이 손을 자기 허리에 대고

모든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졌는가/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교회는 유대인들이 아니므로 이들의 관념대로라면 우리는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단12:1)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만일 온 성경이 이 두 참고 구절뿐이라면 대환난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들.. 예를 들면, 계시록 3장 10절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를 보아야 한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예레미야와 다니엘의 예언들은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이기 때문에「야곱」이나「당신의 백성」등이라는 용어들이 있다.

C. 계시록 4장 1절부터 4절까지 이 학파의 주창자들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1) 계시록 2장과 3장이 오늘날의 교회 시대를 말하며..

(2) 계시록 4장 1절은 교회를 언급하고..

(3) 계시록 4장 4절의 이십 사 장로들은 교회가 휴거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4) 계시록 5장과 6장은 계속해서 대환난의 시작을 언급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시록 4장 1절은 온 교회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리로 올라오라」고 할 때, 요한만을 부르고 있다.

이것은 밧모 섬에서 일어난 성취된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도행전 8장 39절에서 빌립이 데려가졌다는 것은 그 또한 휴거 되었다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24 장로들이 영화롭게 된 교회라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참으로 상식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1) 24 라는 수는 교회의 숫자가 아니고..

7과 7의 배수들이(예를 들어 일곱 교회들처럼) 교회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2) 성경에는 장로들이 교회를 상징하는 곳이 없다.

교회 안과 유대인들 가운데는 장로들이 있지만 믿는이마다 장로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셨고, 다음에는 유대인들을 선택하셨고, 끝으로 교회에 은혜를 주셨다.

어떻게 장로들이 교회로 여겨질 수 있는가?

(3) 계시록 4장과 5장에서 장로들은 보좌들 위에 앉아 있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서 계신다.

보좌들과 금 면류관들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들인데 그리스도가 영광 받기도 전에 교회가 영광을 받을 수 있겠는가?

(4) 어떤 이들은 장로들이 입고 있는 흰옷들이 주님의 의를 가리키며, 주님의 피로 씻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장로들의 옷들이 피로 씻어졌다고 말하는 기록은 없다.

죄 때문에 우리 옷들은 보혈로 희게 씻음 받을 필요는 있지만 이십사 장로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았다.

(5) 이 장로들은 결코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4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노래했다.

5장에서 그들은 구원의 노래를 불렀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구속된 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여러 권의 성경 번역본들은 9절의 그 부분을 「우리를 구속하신」으로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은 틀린 것이다.

「우리를(us)」이라는 단어는「사람들(men)」이 되어야 한다.

이십사 장로들을.. 교회가 휴거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교회가 다른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언급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

(6) 계시록 4장은 교회나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주를 언급 하고 있다.

(7) 계시록 5장 8절에 따르면 교회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가져올 수 없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8) 계시록 7장 13절에서 만일 요한 또한 교회의 부분이라면, 그것은 교회에게 간구하는 교회가 된다.

⇨ 왜냐하면 장로가 교회를 상징한다면 장로도 교회고 요한도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교회가 되므로..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9) 요한이 장로를.. 「님」 혹은 「내 주(My Lord)」라 칭하고 있으므로 분명히 요한의 지위는 낮다.

만일 이십사 장로들이 교회라면, 요한은 원로이기 때문에 그는 장로들 중의 장로가 되어야 한다.

(10) 이십사(24)라는 숫자는 문자 그대로 해석된다. 그것은 상징이 아니다.

장로들 중의 하나가 요한과 말했는데 어떻게 교회의 이십사분의 일이.. 요한과 말할 수 있겠는가?

숫자들이 확정되어 있으므로 장로들도 확정되어 있다.

이십사 장로들은 사실상 우주를 지배하는 천사장들이다.

심지어 사탄 밑에도 왕들과 주관자들이 있다.

D. 이들은,「데살로니가 전서 4장16절과 17절이 휴거를 언급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물론 그 구절들은 휴거를 언급하지만 어느 때인가 말하고 있지 않다.

거기서는 휴거의 사실은 언급되지만 휴거의 때는 언급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휴거가 환난 전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E. 고린도 전서 15장 50절부터 52절까지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다 부활하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것이 부활의 사실을 언급하지만 휴거가 환난 전에 있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휴거는 환난 후에, 즉 계시록 11장 15절의 일곱째 나팔에 있을 것임을 증명해 준다

(일곱째 나팔 여섯째 대접 재앙 때, 알곡 추수).

어떤 이들은 로마 관습에 따르면 나팔이 세 번 불려짐으로 마지막 나팔은 세 번째 나팔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릇되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계시하실 때 로마의 방식을 빌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련도 없고 의미도 없다.

F. 이들은 누가복음 21장 36절에서 주님이 분명히 교회가 대환난을 피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으며,

「인자 앞에 선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휴거라고 주장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러나 여기에서 이 약속은 조건적이다.

이 약속은 거듭남에 의한 구원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만일 사람이 깨어 기다린 후 자격 있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약속이 된다.

온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깨어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G. 계시록 3장 10절은 이 사람들(환난전 휴거 지지자들)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한 논증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것은 조건적인 약속이다.

사람은 이것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내의 말씀」이란 무슨 뜻인가?

오늘날 사람들은 주님을 욕하며 그분을 저주하고 그분을 부인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죽이고자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지 않는다.

주님은 그들을 징벌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인내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하지 않는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인내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믿는 이들이 휴거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믿는 이들이 다 환난 전에 휴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 논거라면 온 세상이 요한복음 3장 16절에 따라 구원받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그들은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조건을 잊어버린다.

이곳 계시록 3장10절에서 주님의 약속은 빌라델비아 교회 전체에 대한 것이었다.

빌라델비아가 교회의 대표이므로, 온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 당시 소아시아에는 일곱 교회들이 있었지만, 주님의 이 약속은 모든 교회들을 대표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여섯 교회들 안의 이기는 자들은 휴거될 수 없으며 환난으로부터 구원받을 소망이 없을 것이다.

Ⅱ. 첫 번째 학파는 성경적인 기초가 부족하며 많은 근거 없는 가정들을 사용한다.

휴거와 같은 중요한 질문이 가정(假定)들에 근거를 둘 수는 없다.

그들의 가정(假定)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A. 이 학파의 사람들은 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가 교회에 대한 것이며,

계시록 3장 이후에는 다시는 교회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므로 교회는 휴거되었음에 틀림없다고 가정한다.

왕국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인내의 말씀이 없으며 의와 위엄만 있다.

이로부터 이 사람들은 1장부터 3장까지가 이 시대를 언급하며,

4장부터 9장까지는 대환난의 기간을 언급하는데, 그 때에는 교회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교회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비록 교회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4장부터 19장까지에는 교회에 대한 많은 언급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계시록 19장 14절에서 군대들은 교회가 아닌가?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 여기서 군대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첫째부활'로 나오는 '이기는 자'들로 여겨짐

따라서 이들은 교회의 일부가 된다.

또한 계시록 22장 6절부터 16절까지는(대환난의 일들을 포함한) 「이것들을」언급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 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 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 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 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 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분명히 그것은 교회들을 위해 기록된 것임을 가리킨다.

만일 그것이 교회와 믿는 이들에게 대한 것이 아니라면 왜 거기에 기록될 필요가 있겠는가?

계시록 5장 9절은 교회를 언급하며,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시록 17장 6절은 교회인 성도들을 언급한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비록 교회라는 단어가 언급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교회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B. 이들은 교회가 휴거된 후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렇게 구원 받은 자들은 대환난 안에 있는 성도들이 될 것이다.(계 7:9-17을 보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 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 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옮긴이 주: "대환난 안에 있는 성도들이 될 것" 이부분은 워치만 니와 요나한의 견해가 서로 다른 것 같다.

비록 14절에 ‘큰 환난 에서 나오는 자들인데’..라는 구절이 있다해도 요나한은 이들을 계시록의 대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 아닌

교회 시대 전반에 걸쳐 나오는 순교자들 중 일부와 교회시대의 첫열매 로서 환난전 여섯째인이 떼어질 때에 휴거되는 소수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교회시대 첫열매이자, 여자가 낳은 남자아이이며 새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으로 보고 있다.)

⇨ 나중에 혼동되지 않도록 언급하는 것입니다.계시록에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그들은 대환난 도중 구원받는다. 첫 번째 학파는 이런 가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를 정당시 할 수 없다.

만일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된다면 이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성도들이 어디에서 오는가?

(주:워치만 니는 환난 전에도 휴거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중 휴거를 주장하고 있다)

아무도 셀 수 없는 많은 수는 2억을 넘어야만 한다.

(옮긴이 주: 이 부분에서도 요나한은 비록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 표현했을지라도 워치만 니와 같이 2억명 이상으로 보지 않고

교회시대의 첫열매로서 환난 전 여섯째인이 떼어질 때에 휴거되는 소수<144,000명>로 보고있다)

⇨ 이부분은 밀의 첫열매와 여자가 낳은 남자아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워치만 니와 요나한이 다른 견해를 갖는 이유입니다. 계시록에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에서 가장 큰 수이다.

(계9:16)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오늘날 세계 인구는 18억이다.

(역자주 : 이 메시지가 주어질 당시 7장 이전에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이 죽고(계6:8) 십삼억이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천 년 전체에 걸친 모든 성도들을 언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C. 대환난 동안 성령은 하늘로 돌아가셨다.

이들은 교회는 성령과 함께한 것이므로 온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 될 것이라 가정한다.

그들의 근거는 데살로니가 후서 2장 6절부터 8절까지인데,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 심으로 폐하시리라

거기서 「불법의 사람」은 적그리스도와 같고 「막는 자」는 성령과 같다고 본다.

그러나 「막는 자」는 성령을 가리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중에서 옮기다는 구절의 어조는 성령을 가리킬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성령은 많은 이름들 그 영, 계시의 영이 있으며 거기에는 예외 없이 항상 영(spirit)」이라는 단어가 있다.

⇨ 이 부분도 워치만 니와 요나한은 견해차이가 있는 것같다.

비록 성령이 옮겨지는 때(요나한은 두 증인이 하늘로 승천할 때로 보고 있음)는 정확하지 않지만..

요나한은 막는 자를 성령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나중에 계시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들이 됩니다.

때문에 나중에 혼동되지 않도록 짚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보혜사」가 한번 사용되긴 했지만, 그 문맥은 분명히 보혜사가 성령이라고 가리키고 있다.(요 14:16).

성경에서는 성령이 한 번도「막는 자」로 불리운 적이 없다. 성령은 그 중에서 옮길 수 없다.

성경은 대환난 기간 동안 성령이 없을 것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더욱이 성령이 없다면 어떻게 몇몇 사람들이 대환난 기간 동안 믿는 이들이 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성령을 통해 구원받아야 한다!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것은 계시록에서 매우 분명히 말해진다.

(5: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대환난의 때는 엄밀히 늦은 비의 때다(행 2:15~21, 요엘 2:28-31).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이 성취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적들 곧 피, 불, 연기기둥, 태양이 흑암이 됨, 달이 피가 됨 등이 없기 때문이다.

오순절 날에 그러한 이적들이 없었다.

이 모든 다섯 가지 이적들은 대환난 기간 동안-

피(첫째 나팔), 불(첫째와 둘째 나팔), 연기(다섯 째 나팔). 해와 달(여섯째 인)-성취될 것이다.

오순절은 축소형에 불과하며, 그것은 단지 작은 미리 맛봄이었다.

베드로는 이것이 그 예언을「성취했다」고 말하지 않고 「이것이…다(This is)」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이것이…다」라는 단어는 그 예언을 성취한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그들이 먹고 있는 동안,「너무 빨리 먹지 마시오 당신의 음식이 씹어야 소화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자.

다음 날 A가 성경을 읽고 있었을 때 B가 A에게, 「당신은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야 그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 A는,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너무 빨리 먹지 말라고 말했던 그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대환난 기간 동안 해야 할 더 큰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성령이 없었다면 어떻게 성도들이 환난 기간 동안 설 수 있겠는가?

(옮긴이 주: 요나한의 견해는 막는 자를 성령으로 보고 있으며 대환난시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임할 것으로 보고 있다. )

D. 이들은 사복음서에서 「제자들」이라는 용어가 유대인들을 언급한 것이며,

그래서 주님은 유대인들인 제자들에게 「너희는 깨어 근신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이것을 근거로 이 학파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이므로 어떻든 우리는 다 휴거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사람들은 서신서들만을 따른다.

그러나 열 두 제자들은 교회 안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천 년 내에(즉 교회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기록된 적은 부분의 서신서들을 제외 하고는

그처럼 많은 것들이 왜 과도기(제자들의 시대)에 기록 되었 는가?

더 나아가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들」이라 부른다(마 28:19, 행11:26).

E. 그들은 사복음서, 사도행전 등이 이방 믿는 이들을 위해 기록되지 않았다고 생각 했다.

스코필드는 산상수훈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마태복음 28장 20절의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그들(족속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구절과,

요한복음 14장 26절의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는 말씀은 잊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의 근거로 바울의 말만을 사용한다.

러나 골로새서 3장 16절의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를 읽어 보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F. 「이 왕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원문 참조).

그들은 왕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왕국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는 주님이 땅에 계셨을 때와 환난전 때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은혜의 복음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은혜의 복음이 사람이 휴거되기 전에 온 세상에 전파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복음은 하나님의 왕국 복음과 같다.

사도행전 20장 24절부터 25절까지는 은혜의 복음을 언급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5절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나라)이라는 말은 앞의 24절에서 언급된 은혜의 복음 이다.

사도행전 1장 3절에서 주님은 장차 올 하나님의 왕국(나라)의 일들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G.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셨을 때 그분이 할례의 전파자 였다고 주장한다.

그분이 말씀하셨던 것은 유대인들의 배경에 위배되어 말씀하셨던 것이 사실 아닌가?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은혜시대 또한 주님으로 시작했다.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마태복음 11장 13절부터 14절, 누가복음 16장 16절, 「그 때 부터」

즉 그리스도 때 부터, 사도행전 10장 36절 37절가지의 「이 구원의 말씀」은 요한의 때부터 시작 되었고,

마가복음 1장 1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침례자 요한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누가복음 4장 17절부터 19절까지는 은혜의 복음이 「오늘…응하였느니라」(눅 4:21)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은 예수의 때부터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율법의 시대에 사람은 육신 안에서 규례들에 의해 하나님께 나아 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체를 만졌다면 그는 부정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영 안에서와 진실됨 안에서이다.

요한복음 5장 24절부터 25절까지는 「곧 이때라」고 말한다.

이 두 구절들은「바로 지금」인 은혜의 복음을 말한다.

Ⅲ. 성경에는 교회가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보여 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몇몇 참고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A. 데살로니가 후서 2장 1절부터 9절까지를 자세히 읽어 보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 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첫 구절은 주제로서 그리스도의 오심과 휴거에 대한 것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오심만을 말한 것도 아니고 휴거만을 말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휴거는 공중으로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휴거가 '환난 후'에 일어날 것임을 보여주는 암시들이 있다.

2절의「우리」라는 단어는 바울을 포함하며 「영(spirit)」이라는 단어는 성령(the Holy Spirit)이 아닌 또 다른 영을 언급한다.

「말」은 소문들을 뜻한다.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은 주님의 오심과 휴거의 날이다.

첫 번째 학파는 주의 날을 대환난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되었다.

비록 구약에서 주의 날이 항상 대환난을 언급 한다 할지라도 신약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들어, 베드로후서 3장10절 에서 주의 날은,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대환난 후와 천년왕국 후의 일들을 언급한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맥을 살펴 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1절은 아주 자연스럽게 두 번째 오심과 휴거를 언급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주님이 이미 오셨고 그들은 후에 뒤에 남겨졌다고 말함으로써 데살로니가인들을 속이려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다.

3절에서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것(it: 원문 참조)」은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며 「속이는(deceive)」은 ‘위협하는’혹은 ‘협박하는’의 뜻이다.

그러나 휴거 이전에 두 가지 표적들이 있어야 한다.

(1)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의 나타남과 (2)배도 혹은 변절이 그것 들이다.

이것은 불법의 사람이 성도들의 휴거 이전에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불법의 아들이 언제 나타나게 될 것인가?

물론 그는 대환난 기간 동안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는 환난 이후여야 한다.

여기에 근거해 볼 때 적어도 교회의 일부분은 환난을 통과해야만 한다.

B. 고린도 전서 15장 50-55절,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17절 :

첫 번째 구절은 부활과 변형을 언급하며,

두 번째 구절들은 부활과 휴거를 언급한다. 이 두 부분은 병행 부분이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모든 사람이 이 구절들에 언급 된 것들은 동시에 일어 난다는 데 동의한다.

그 시기를 지적하는 어떤 암시들이 있는가? 마지막 나팔을 부는 것에 있다.

우리는 이것이 틀림없이 환난 후인 것을 알고 있다.

첫 번째 학파는 마지막 나팔이 환난 전에 울린다고 말하지만 여기에 대한 근거는 없으며 성경의 단 한 구절도 이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마지막 나팔 부는 것은 환난 후에 발생할 것이다.

이 마지막 나팔은 일곱 나팔들 중 일곱째 나팔이다.

(옮긴이 주: 워치만 니는 마지막 나팔을 일곱 나팔들 중 일곱째 나팔로 보고 있지만, 요나한의 견해는 다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51절의 마지막 나팔과, 데살로니가 전서 4장16절의 하나님의 나팔소리는 다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마지막 나팔은 백보좌 심판 전에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가 부활할 때, 부는 나팔로 설명하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는 나팔로 설명합니다.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하므로 다른 곳에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환난 전에 울렸다면 마지막 나팔 후에 일곱 개 나팔이 더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인들 후에도 일곱 명의 인들이 더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닝(Janning)씨와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의 나팔이 환난의 나팔이 아닌 교회의 나팔을 언급한다고 말한다.

성경 어디에서 교회의 첫 번째나 마지막 나팔에 대한 어떤 것을 언급하는가?

형제회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것이 로마의 군사 용어로

온 군대가 행진하기전 불려지는 마지막 나팔을 언급한 것으로 바울이 그 용어를 인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은 로마 군사 용어를 빌리지 않으신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나팔이지 교회의 나팔이 아니다.

분명히 이것은 계시록의 일곱 나팔들 중 마지막 나팔이다.

더욱이 계시록 10장 7절에서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하나님의 비밀이 마쳐진다.

이 비밀은 교회를 언급한다.

C. 기타 증거들.

(1) 시대의 완결.

이것은 마태복음 24장 3절, 13장 40절, 28장 20절 로「시대」는 「종말」과 같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 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 에도 그러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대환난은 이 시대의 끝에 있다.

휴거가 환난 전에 일어난다면 이 시대는 삼년 반이 단축될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발 밑에 원수들을 굴복시킴.

이것은 고린도 전서 15장 25절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사도행전 2장 35절이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이 사건은 실지로 환난 후에 일어난다.

디모데 전서 6장 14절은,「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환난 후)까지…지키라」고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계시록에서 어떤 구절도 주님이 환난 전에 보좌를 떠나 공중에 오시리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그분이 보좌를 떠나시는 것은 환난이 시작된 후 땅의 곡식을 거두고 포도주 틀을 밟을 때이다.

(계14:14-20)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환난 전에 공중에 오시게 된다면 우리는 기다리며 근신하며 깨어 있을 필요가 없다.

Ⅳ. 비록 성경에는 믿는 이들이 환난 후에 휴거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든 믿는 이가 환난 후에 휴거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두번째 학파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성경은 어떤 이들이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보여 준다.

우리는 몇 가지 논증들을 살펴보겠다.

A. 모든 믿는 이들이 환난 후에 휴거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우리는 깨이거나 기다리거나 예비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이 삼년 기간 후에 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삼년, 오개월, 이십구일 동안 온갖 방식의 악을 행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의 매우 중요한 원칙에 모순된다.

B. 만일 모든 사람들이 환난 후에 휴거된다면 우리의 기다림은 그리스도를 위한 기다림이 아닐 것이다.

그대신 적그리스도를 기다림이 된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가 먼저 오기 때문이다.

C. 교회는 소망을 상실할 것이다.

디도서 2장 13절은,「복스러운 소망과…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환난을 피하는 축복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D. 두 번째 학파는 비밀스런 휴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님이「내가 도적같이 오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린다.

도적은 비밀리에 온다. 그는 군대 행진곡을 앞세우고 오지 않는다.

도둑은 가장 좋은 것들을 훔치러 온다.

E. 열 두 제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에 대하여 두 번째 학파는 그들이 다 그리스도인들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 중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첫 번째 학파와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실상은 열 두 제자들이 유대인 남은 자의 대표인 한편 그들은 동시에 또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0장 5절부터 6절까지와 23장 2-3절은 모두 유대교의 배경이 있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F. 휴거(성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오심)와 나타나심(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오심)에는 차이가 없음.

공개적인 휴거가 있다.

에녹의 예언으로 언급된 바와 같이 유다서에서 주님의 오심은 공개적인 휴거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분의 발을 감람산 위에 두시기 때문이다.

계시록 1장 7절은 같은 것을 말한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그러나 오직 공개적인 나타나심만을 믿는 사람들은 혼돈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학파에 속한다.

그들은 계시록의 오직 한 부분만이 성취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17장 이후의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1장부터 3장까지만 이미 성취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미래학파와는 정반대이다.

만일 계시록에 있는 사건들이 과거의 일들이라면 학자들이나 역사가들에 의해서만 이해될 것이다.

성경의 성취는 보통 문자적이다.

예를 들어 동정녀 마리아, 베들레헴 등은 모두 문자 그대로이다.

종종 상징적인 성취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그때 가서야 설명이 된다.

Ⅴ. 첫 번째 학파는 성경상의 증거가 결핍되었다.

두 번째 학파는 몇 가지 성경적인 증거가 있지만 많은 오류가 있다.

성경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가?

다음을 살펴보도록 하자.

A. 계시록 3장 10절 :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것은 대환난이다.

이 구절은 어떤 사람들이 대환난을 피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첫 번째 학파와 두 번째 학파 모두를 반박한다.

비록 빌라델비아가 은혜 시대에 진실한 교회를 대표한다 할지라도 그것 또한 그 당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소수(칠분의 일)만이 환난 전에 휴거될 수 있음을 안다.

더욱이 환난 전 휴거는 거듭남, 즉 다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에만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조건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믿는 이들이다 인내의 말씀을 지킬수 있는가?」라고 물어 볼 수 있기 바란다.

이로써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환난 전에 휴거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두 번째 학파는 이 구절이 환난 전 휴거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보존하시는 것을 언급하며,

그것은 대환난 기간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보존 하시는 것을 언급하며,

그것은 대환난 기간 동안 하나님이 환난을 통해 우리를 인도 하시리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어떤 집에 불이 났는데 한 방은 손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하는 것과 똑같다.

또한 이것은 고센 땅에 있는 동안 재앙을 당하지 않은 이스라엘인 들과 같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1) 여기에서는 「-을 통해」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으로부터」면하게 되는 것이다.

헬라어 원어에는 면하다(keep)라는 다음에 「-으로부터(out of)」를 의미하는 「에크」라는 단어가 있다

(예를 들면, 에클레시아는 부르심을 받아 나온 무리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을 통해서」면하게 되는 문제가 아니라 「-으로부터」면하게 되는 문제이다.

에크는「-으로부터(out of)」를 의미한다.

(2)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원문에 「지키다」와 「면하다」는 동일한 어근을 갖는다.)

시험의 때는 환난이 아니라 환난의 때이다.

일례로 나는 중일전쟁 동안 상해 북서쪽에 있었다. 나는 해를 입지 않았다.

이것은 그 환난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그 때를 면하게 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아야만 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보호하시기를 원한다면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그것은 죽음과 휴거이다.

빌라델비아 안의 사람들은 이미 죽었으므로 그들은 대환난의 때를 면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대환난의 때로부터 보호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를 죽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교회를 휴거시키는 것이다.

B. 누가복음 21장 36절도 교회 전체가 아닌 일부만이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을 입증해 준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과 마태복음 24장의 기록들은 거의 같지만,

마태복음은 주님의 오심과 환난을 강조한 반면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대환난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마태복음에는 질문들과 또한 많은 비유들이 있다.

(마 24:3)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누가복음에는 이러한 것들 중 아무것도 없다.

예루살렘에 관하여는 처음에는 A.D. 70년의 핍박이 있고 끝에는 대환난이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8절부터 9절까지는 끝 이전의 일들을 언급한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10절부터 19절까지는 믿는 이들이 고난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20절부터 28절까지는 예루살렘이 어떻게 멸망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28절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하게 될 것 같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29절부터 33절까지는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임을 보장해 주는 비유이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만일 34절부터 36절까지와 같은 부분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믿는 이들이 환난 후에 휴거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34절에서 어조는 바뀐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절은 이 날에 있을 땅의 일들을 언급한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절은 대환난을 피하기 위한 조건인 깨어 기도할 것을 언급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망에 의해서든지 또는 휴거됨으로써 된다.

「선다(stand)」는 단어는 능동태로 되어 있지 않고 수동태로 되어 있다.

그것은 인자 앞에 두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휴거를 언급한다.

사망은 축복이 아니다.

우리는 사망을 위해 기도하거나 바라거나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휴거의 조건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들이 다 휴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항상 기도해야 한다.

무엇을 기도하는가? 장차 올 모든 일을 피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의복과 음식을 위해 기도한다.우리는 결코 휴거 되는 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대환난의 두려움을 모른다면 그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36절은 「능히(counted worthy)」라는 단어들을 가지고 있다.

장차올 모든 일들을 능히 피하는 것은 은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자격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람이 가기를 원치 않는 곳으로 받아들이실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이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들의 마음에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건들이 매달려져 떠오를 수 없는 고무풍선들과 같다.

따라서 누가복음 21장 36절은 첫 번째 학파와 두 번째 학파로 침묵하게 한다.

(1) 첫 번째 학파는 사람의 휴거가 그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기의 침대에 누워 간음을 범한 사람도 휴거될 수 있느냐고 물어 볼 것이다.

(2) 두 번째 학파도「이 모든 일들」이 대환난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를 언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이라고 말한다. 방탕함과 술취함은 이러한 생활의 일들이다.

또한 이런 일들에 있어서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어떤 경우에든 그것들로부터 구출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하며 속임 당하지 말아야 한다.

C. 기타 증거들,

(1) 마태복음 24장43절과 데살로니가전서 5장4절은 두가지 휴거가 있음을 가리킨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2) 사람들이 다른 곳들로 휴거될 것이다. 즉, 그들은 다른 곳들로 올라갈 것이다.

(a) 계시록 7장 15절은 하나님 보좌 앞에 서는 것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b) 누가복음 21장 36절은 인자 앞에 서는 것을 말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c) 데살로니가전서 4장17절은 공중에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따라서 모든 사람이 다 휴거될 것은 아니며 휴거들은 모두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d) 마가복음 13장32절은 아무도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을 모른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오심이 일곱째 나팔 후에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렇게 차이가 있는 이유는..

전자가 '첫 번째 휴거'를 언급하는 반면..,후자는 '환난 후의 휴거'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Ⅵ. 각기 다른 휴거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질문들에 대한 응답들

A. 그리스도의 몸이 조각날 수 없기 때문에 교회의 휴거도 나누어질 수 없다는 논쟁이 있다.

그러나 몸은 사조로서 우리가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다. 우리가 후자에 따라 몸을 해석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오늘날 몸은 이미 나누어졌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바울은 죽었고, 우리는 여전히 땅 위에 남아 있으며, 어떤 이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B. 또 하나의 논쟁은 휴거가 구속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구속이 은혜에 의한 것이라면 휴거는 사람이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에 기초를 둘 수 없다.

우리가 심판을 피한 것은 이미 은혜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변형(바뀌는 행위, 고전 15:52)과 휴거는 행동에 따른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C. 이들은 「교회의 소망을 빼앗아 간다는 것은 잔인하지 않은가?」라고 질문한다.

그러한 소망은 조금도 없다. 그것은 거짓된 소망이다. 우리는 이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D. 이들은 고린도 전서 15장 23절이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행위는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우리 대답은 사람이 바로 이 한 구절 때문에 다른 모든 구절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구절은 휴거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부활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그 밖으로의 휴거가 아닌 그 안으로의 휴거라고 읽고 있다.

E. 이들은 「죽은 자들은 어떠한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반드시 환난을 통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너무 쉬운 것 같다.」라고 묻는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불의한 어떤 것을 하실 수 있겠는가?

천년왕국 기간 동안 이 사람들은 손실을 당할 것이다

(고후5: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이 구절을 워치만 니는 천년 왕국 때 일어날 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요나한의 견해에 따른다면..천년 왕국 기간이 아니라 백보좌 심판 때로서 이때 각 개개인이 행위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된다.

F. 이들은 고린도 전서 15장 50절 52절까지는 우리가 다 변화되리라고 말하는데,

「다(all)」라는 단어는 온 몸(the whole Body)을 언급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참으로 모두를 언급하지만 「동시에 모두」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 죽을 것이지만 같은 날 죽지는 않을 것이다.

G. 이들은 「밀과 가라지들 사이에는 차별이 있다 할지라도 밀과 밀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모두가 휴거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다툰다.

그러나 익는 시기는 다르다. 첫열매들과 수확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H.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5절은 남은 자들이,「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이들은 죽은 자들이 일곱째 나팔에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부활은 환난 후에 일어날 것이다.

만일 첫 번째 휴거가 있다면 그것은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결코…못하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휴거가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가?

15절과 17절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들」을 말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며 매우 귀하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것과 남아 있다는 것이 매우 같은 것, 곧 땅 위에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반복할 필요는 없다.

「남아 있는」이란 단어들은 먼저 죽은 무리가 있음을 가리킨다.

이들은 "바울이「우리」라고 말했는데 바울이 자신을 두 번째 무리

「살아남아 있는 자들」 가운데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인가?"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표현 수단일 뿐이다.

그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을 무리 중의 하나로 포함시키지 않고도 우리의 일상 대화 속에서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어떻든 바울은 계속 살지 않았고 남아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결론은 세 번째 학파가 옳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은 자 중 일부는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며,

일부는 환난 후에 끌어올려질 것이라고 말한 학파의 주장이 옳다는 것으로 결론이 남.

어떤 믿는 이들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고,

또 다른 믿는 이들의 무리는 환난 후 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후자는 환난의 시련을 당할 것이다.

<옮긴이 주>

이글(휴거에 관한 글)은 요한 계시록과 연결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과 함께 이해 되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요한 계시록을 소개할 때 부분별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와 요나한의 견해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도 토를 달아 언급하였습니다.

제가 볼 때,

워치만 니는 '첫 열매'에 대한 부분과 '마지막 나팔'에 대한 부분에서 계시가 완전히 열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요나한에게 이런 미약했던 부분이 계시로 열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 시대에 맞추어 발전적으로 열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에게 그동안 미약했던 부분이 요나한님을 통해 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마치 바울에게는 첫째 부활에 대한 계시가 열리지 않았지만, 요한에게는 모두 보여졌던 것과 같은 이치라 여겨집니다.

제가 이런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나중에 혼동이 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