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 눅17:20-37, 계7:9-17

하나님아들 2024. 3. 12. 19:58

하나님의 나라 눅17:20-37, 계7:9-17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그만 우물 속에 빠졌습니다. 그 우는 소리를 듣고 농부가 달려 왔습니다. 우물 밑을 내려다보니 새끼 고양이가 물속에서 나와 돌출된 돌 위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농부는 급히 양동이에 끈을 매어서 우물 속으로 내려 보낸 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새끼 고양이를 양동이 속으로 유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는 작은 앞발을 뻗어 양동이에 오르려다가는 발을 다시 거두고 절망적으로 울어댈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오직 그 돌에서부터 양동이로 속히 옮겨야만 구원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은 한참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양동이 속에 물이 차 있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잔뜩 겁이 나서 이렇듯 주춤거렸던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새끼 고양이는 오랜 실랑이에 지친 나머지 하는 수 없다는 듯 양동이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끌어 올려 땅바닥에 고양이를 안전하게 놓아 주었습니다.

이 모습은 많은 신앙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믿고 맡기지 못하여 두려워하고 피곤해 하다가 지치고 아무방도가 없어졌을 때에야 몸을 맡깁니다. 교회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시인하고 가슴에 품고 영접할 때 하나님은 구원의 감격을 주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가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을 말하는가?

1)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

누가복음 본문 20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질문의 배경에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으로 보여야 하고, 강력한 통치자가 있고 백성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가며 행복한 생활을 누려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막강한 통치력으로 주변 국가들의 조공을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부강한 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의 모습이 바로 그런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그들이 꿈꾸는 그런 강력한 나라를 이루는 분이었습니다. 메시야 왕국이 임할 때는 하늘에 큰 징조가 있고, 큰 능력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기대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자신들을 압제하던 로마에서 해방이 되어 정치적으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들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정치적인 해방이나 부와 성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못된 생각입니다.

2)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호기심인 하늘나라가 언제 임할런지 그 시기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서는 대답지 않으시고 하늘나라의 성격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천국은 보이는 지상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사랑이 있는 곳에 임합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시인하는 심령 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령한 마음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을 모실 때 우리의 심령이 천국이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을 모실 때 우리의 가정이 천국이 됩니다. 우리의 교회에 하나님을 모실 때 천국이 됩니다.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하나님의 집은 어디에 있느냐고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하늘나라"라고 하는 대답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말입니다. 지미가 자신 있게 손을 들며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집 화장실입니다" "그건 왜 그렇지요?" 선생님이 놀래 물었습니다. "글쎄 우리 아빠는 매일 아침 화장실 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Oh My God! 당신 아직도 거기에 있소?'하고 말하기 때문이죠."

웃스게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우리의 마음에, 가정에,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3)주님은 세상에서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지리적 영토나 인간의 주권, 정치적 권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마가복음 1:14-15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지 않는 영적 무지에 빠진 바리새인들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주권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개성도, 재능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주권대로 행할 때 우리 안에 이미 천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자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1)의의 예복을 입은 성결한 자의 모습입니다.

신약 본문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했습니다. 이 무리에 대해 장로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 모습은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죄를 회개 하여 사함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성결해지고 성화의 역사가 진행됩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성결해지고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성화란 새로 입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거룩함을 입지 못한 사람은 벗은 자와 같습니다. 그래서 고후5:2-3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몸과 아울러 영의 신령한 몸까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엡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성화가 이루어지면 내 인격 전체가 변화되는 은혜가 임합니다. 즉 나의 주관이 바꾸어지고, 나의 속성이 바꾸어지고, 나의 마음이 바꾸어지고, 나의 사상이 바꾸어지고, 나의 가치관이 바꾸어져서 삶까지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 모습이 흰 옷 입은 자의 모습이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2)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어 세우는 직분이 세 가지가 있는데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기름 부었다는 뜻은 “선택했다.” “거룩하다.”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란 그 지위와 신분과 사명이 왕과 같고 제사장과 같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은 제사장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천국을 소유한 성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찬미의 제사, 기도의 제사, 선행과 봉사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제하고 화해시키는 임무를 맡은 자들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의 빛을 밝혀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기 위하여 거룩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희생적인 봉사를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섬기는 사명입니다.

3)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속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세상에는 사단에 속한 자들이 있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으며, 하나님이 책임지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에게는 특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 확장을 위해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롬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바 된 주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의 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3.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1)그 곳은 성도들을 위하여 주님이 예비하신 곳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기도하다 거룩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장차 각 나라와 족속에서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스런 모습을 계시록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구원 받은 흰옷 입은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은 곧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앞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이 많은데 특별히 어린양이라 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속죄 제물이 되신 어린 양입니다. 여기 어린양이란 구원과 관계가 깊은 이름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신 어린 양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린양 앞에서 찬송했음은 구원의 은총을 찬송한 것입니다. 10절에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했습니다.

흰옷 입은 무리들은 작은 소리로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큰 소리로 참으로 감격의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이 구원의 찬송을 다 같이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큰 환란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본문 13-14절에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또 중요한 사실은 흰옷 입은 무리들이 큰 환난을 거쳤다는 점입니다. 여기 큰 환난은 한문으로 대 환난입니다. 성경에서는 물리적 환난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크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신앙과 관련될 때만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고요히 잠든 이 세상 베들레헴 마굿간에 한 아기가 탄생할 뿐이었지만 온 우주는 찬양의 오케스트라로 가득 찼고 이것은 역사의 대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 환난이란 각인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연단하심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내가 예수 믿고 은혜로 옛 것이 죽어져 행실의 흰옷을 입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대한 사건이 됩니다. 이 때 하나님께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 큰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대 환난은 자기 백성들을 온전케 하시려는 연단의 역사요 반면 죄악에 대해서는 거대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그 환난은 외형상 크든 적든 하나님 보시기에 큰 것입니다.

그래서 롬5:3-5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했습니다.

3)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을 대적하여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종말에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관련된 몇 가지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종말의 때에는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니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번개가 비췸같이 매우 갑작스럽게 재림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공개적으로 누구나 보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종말에는 인간들이 노아의 때(창 6:1-7:240)와 롯의 때(창 19:4-25)와 같이 세속적인 욕망과 죄악에 빠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홀연히 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1-37절에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서 교훈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를 구별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속에 빠지지 말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답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가 없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던 것처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때에처럼 성적인 쾌락을 따라 사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오늘의 축복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주님은 좀 더 있다가, 세상의 쾌락을 더 누리다가 천천히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암암리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는 주님을 도적처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자의 모습은 의의 예복을 입은 성결한 자의 모습이요, 와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런 성도가 장차 주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복을 받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다시 오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3. 7. 28.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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