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
14: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15: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령강림의 시기와 장소, 성령강림사건 자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사도행전 1-2장이 제공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라 성령강림사건은 유대인의 오순절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로 교회력에 반영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은 성령이 오시리라는 약속과 함께, 성령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성령에 대한 성서의 언급은 많지만, 복음서에서 성령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명시하는 곳은 고별담론(요14-17장)입니다.
고별담론 안에는 성령에 관한 다섯 말씀이 등장합니다: ①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성령(보혜사)을 아버지께서 보내신다(14:16); ② 성령(보혜사)이 너희를 가르치고 내(예수)가 말한 것들을 기억나게 하신다(14:26); ③ 진리의 성령(보혜사)이 예수를 증언하신다(15:26); ④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16:7-11); ⑤ 진리의 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16:12-15).
성령이 오시는 이유는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하나님)께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계시지 않는 상황을 우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그들이 고아처럼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버지께로 가신 예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4:18).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오심은 ‘성령을 보내심’을 통해서입니다. 성령이 온다는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 결과입니다. 그렇게 오신 성령은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14:16).
요한복음의 고유한 특징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른다는 것이지요. 보혜사라는 명칭은 성령이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를 암시합니다. 보혜사(保惠師, Paraclete)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칼레오(parakaleo, 옆에 세우다)라는 동사에서 만들어진 명사로 ‘법정에서의 변호사’를 뜻합니다.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일하며 그를 대신하며 의뢰인을 돕습니다. 말하자면, 성령은 누군가를 위한 변호사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보혜사는 누구를 위하고 누구를 변호하는 것일까요? 많은 신앙인들은 보혜사 성령은 ‘나’를 변호하고 위로하며 도와주는 영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의 요구를 따라 일하는 조력자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그 성령은 우리의 일을 도와 형통하게 하고 어려움을 해결하며 소원에 응답하신다는 기대를 가집니다.
과연 보혜사 성령은 나를 옹호하고 우리의 간구를 대변하는 영일까요? 요한복음 15:26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새번역) 이 말씀에서의 “나”는 예수를 가리킵니다. 즉 보혜사 성령은 예수를 위한 영으로서 예수를 증언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즉, 예수를 변호하고 예수를 돕는 예수의 변호사라는 얘기지요. 다시 말해, 성령의 의뢰인은, 내(우리)가 아니라, 예수라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은 ‘진리의 영’(13절)이라는 말도 옳습니다. 성령은 진리이신 예수(14:6)를 증언하고 대변하는 영이기에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영이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나게 하는 영입니다(14:26).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는 인간인 ‘나’를 변호하고 대변하는 영이라면, 그 영을 진리의 영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셔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면,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믿지 않은 세상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게 됩니다(9절).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죄는 잘못을 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이 보내신 아들을 믿지 않음입니다. 또한 성령이 오시면 의에 대한 세상의 오해가 바로 잡힙니다. 세상이 죄인으로 판결하여 십자가에서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부활시키시고 우편에 앉게 하셨다는 사실이 성령의 오심으로 판명됩니다(10절). 그러므로 예수는 의라는 진실이 성령의 오심을 통해 천명된다는 의미입니다(10절). 마지막으로 성령의 오심은, 예수를 죽인 세상의 권세자에게 심판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11절). 예수를 죽인 권세자는 제자들을 핍박하는 그들이며,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심판이 선언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떠나가신 세상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요한복음 공동체에게, 성령은 위로자이며 성령강림은 승리의 사건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12-15절).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은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성령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불신하는 세상 속에서, 험한 풍랑 가운데서, 핍박하는 자 앞에서, 시험과 고난 중에서, 죽음의 위협을 당할 때, 알 수 없는 갈림길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할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한 번에 다 알려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 모든 말씀을 기억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12절). 필요한 때에 성령께서 인도하심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 앞에 서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니 성령이 일러주는 바는 예수의 뜻이요, 예수께서 가지진 것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니 성령의 뜻은 곧 아버지(하나님)의 뜻입니다(14-15절).
성령강림이란, 우리 꿈이 실현되는 사건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우리가 성령의 힘을 빌려 우리의 목적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여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성서는, 성령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거나 출세했다는 사람을 모릅니다. 성령을 통해 자신의 바람을 이루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알지 못합니다. 반대로, 성령을 받아 자신의 길을 돌이켜 주님을 따라 살아간 사람과 그런 이야기엔 성서가 전폭적으로 긍정합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므로, 성령의 오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오심입니다. 성령은 예수를 증언하는 영이므로, 그 영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사건에서, 성령을 받은 이들이 너나없이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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