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너스 (대상 4:9-10)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시간에 “하나님의 보너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정신병동에 있는 환자가 하루는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무슨 책을 읽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대답하기를 ‘이 책은 너무 나열식이고, 읽기에 지루하고, 구성도 엉망이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재미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책인가 확인을 해 보니 전화번호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구약성경 역대상을 읽어보시면 1장부터 9장까지 계속 족보가 나옵니다. 500명이 넘는 생소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성경 본문은 읽어도 전화번호부처럼 별로 은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지루해서 건너뜁니다.
그런데 4장에 유다지파의 6대손으로 46명의 이름이 계속되다가 중간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야베스인데 야베스만은 나열식이 아니라 그에 대해서 비록 짧지만 비교적 자세한 설명에다가 그가 기도하여 복 받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지루한 족보를 읽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달콤한 초코렛 같은 보너스를 준비해 뒀다가 주시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인기 있는 것은 이 지상의 복일지라도 하나님께 구할 때 이렇게 풍성하게 주시는구나 하는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야베스의 기도』(The Prayer of Jabez)라는 책을 쓴 부르스 윌킨슨(Dr. Bruce Wilkinson) 목사는 이 책으로 미국에서 발행되자마자 500만부 이상 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을 뿐 아니라 이 기도를 30년이 넘도록 드리고 있는데 놀라운 복이 임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야베스의 기도는 누구든지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구하면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 모든 복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매진하며 사는 자에게 보너스로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너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6:30-33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 나라가 성령으로 임하기를 갈망하며 그 앞에 바로 살기를 원하여 몸부림치는 자에게 구하지 않은 지상의 것도 보너스로 넘치게 채워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매진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구할 자는 열심히 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쓰는 자에게는 그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마10:29-30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답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마치 역대상을 읽는 자에게 보너스의 힌트를 느끼게 한 것처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보너스라는 말입니다. 역대상의 족보가 하나님 나라가 그 주제라는 점에서 신약과 일맥상통한 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신약의 야베스는 바로 거듭난 우리 성도들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한 대로 야베스의 뜻은 '고통'‘수고’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약의 성도의 예표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주셨고,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자녀요, 성령의 탄식하시는 피눈물 나는 기도와 전도로 믿게 된 사람 라는 점에서 진정 수로로이 낳은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갈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형제보다 귀중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뭔가 달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사역과 성화(성결)밖에는 없습니다. 일반 신자와 차이점은 딱 그것 두 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즉 그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주님 오시기를 바라고 신부단장 즉 그의 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실 부르스 윌킨슨이 쓴 ‘야베스의 기도’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응답 받는 삶을 살지 못했음에 부끄러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여기에 온전히 올인하기에는 조금은 미흡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도자에게 응답을 주시는 분은 확실하지만, 여기에 온전히 올인하기에는 기도제목이 조금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야베스의 복을 받은 다른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수고한 자 두 사람입니다. 그 둘은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향품을 가지고 온 니고데모가 바로 그들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마27:57)라고 했고,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서도 존경 받는 의원이요(막15:43),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막15:43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큰 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부자의 묘실에 안장했던 것을 보세요. 부자였습니다. 요19:39에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쯤 가지고 온지라.” 백 리트라면 30kg에 해당하는데 이건 왕의 장례에나 사용될 만큼의 많은 향품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직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한 거기에는 무언가 메시지를 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풍조에 물들지 않은 구별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들은 야베스가 받은 복을 다 받았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런 표본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자에 대한 복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박해가 두려워 배후에서 은휘하긴 했지만 날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자기를 단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야베스의 복은 기도하며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우리 모두에 대한 약속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면서 예수님의 신부되기에 합당하게 자기를 단장하는데 전력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너스입니다.
다시 상기해 봅시다. 야베스가 무엇이라 기도했습니까?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가 구한 기도의 내용은 크게 적극과 소극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 이 기도는 내 삶의 영향력을 확대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녀도 경제도 명예도 권력도 선한 일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주의 손으로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영육 간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두 가지이지만 우리의 모든 삶을 총망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간혹 건강 때문에 혹은 경제 때문에 구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기복신앙 번영신학 성공신학이 되고 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어쩌면 자기를 위한 기도이기가 쉬운데 그보다 더 좋은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 하셨고, 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셨으므로 이 말씀이 우리가 일생 매달려야 할 당당한 기도제목이요, 이것이 진정 드려야 할 야베스의 기도란 사실입니다. 이 속에 야베스의 복이 더욱 풍성하게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주를 위해 사는 자에게도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욱 힘쓰십시다. 기도와 전도에 힘쓰고 주님이 임하시기를 바라고 신부단장 열심히 하십시다. 우리 모두 올해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면서 신랑 되신 주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신부단장에 열심하셔서 야베스가 구했던 것 그 이상으로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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