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누가복음 8:1-3

하나님아들 2024. 2. 27. 17:46

예수님을 섬긴 여인들

누가복음 8:1-3

2007.10.7(주일예배)

들어가는 말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12제자는 늘 예수님과 동행을 하였지만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병 낫기를 소원한 사람들, 귀신들인 가족을 치료하시 위해서 데리고 나온 사람, 오병이어의 체험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 받기를 원한 사람들, 영생의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한 사람, 죽은 딸을 살기를 원해서 나온 사람 등 수 많은 사람들이 항상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룹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병을 치료받은 사람, 죄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 등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라다녔습니다. 그 중에는 단순히 예수님을 따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면서 따른 여인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여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1. 예수님의 복음 사역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1절)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받은 예수님이 당신의 뒤로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구원을 선포한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다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습니다. 아마 이 지역들은 갈릴리지방에 있는 고을들이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2:9-14, 13:54-58; 요한복음 18:20을 볼 때 예수께서는 회당에서도 가르침을 베풀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루 다니시며'(디오듀엔)는 이 단어 속에는 '이리 저리 길을 만들다'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은 예수님의 사역이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으며, 성읍이나 촌, 또는 집이나 회당에서, 심지어는 노천이나 길 등에서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셨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각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의 반포하시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4:43).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하였던 일들을 보건대(7:22,48) 죄의 결과로 인해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복음이란 바로 이런 일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현재에 실현되기 시작했으며 장차 완성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요약됩니다(막 1:15).

    '하나님의 나라'는 단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초월적인 주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가 구약과 외경에는 직접 쓰이고 있지 않으나 그 사상은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출 15:18 ;시 29:10 ;사 43:15). 이런 사상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하나님의 왕권은 현재적 실재이면서 더불어 종말적 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현재 당신의 주권으로 통치하시고, 하나님은 최후의 날 당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완전히 전멸시킬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그 현재성과 미래성의 긴장 관계가 상존함을 보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 초두에 그 나라가 '가까왔다'(15절)고 선포한 데 대해 바알세불 논쟁시에는 그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마 12:28;눅 11:20)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활동으로 하나님의 지배가 이 땅에 임하신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또 다른 가르침에서는 그 나라가 여전히 미래적인 것임을 보게 됩니다(마 8:11;20:21). 실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 관계의 해소는 어느 한쪽을 거부함으로써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에 대한 양극단의 논리인 실현된 종말론은 그 나라의 미래성을, 철저 종말론은 그 나라의 현재성을 각각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함축한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으로 예수 안에서, 또 시간적으로 그 나라는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선포함으로서 가까이 왔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가까와진 하나님 나라를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음의 네 가지 개념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왕권, 통치권 혹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주권이라는 개념입니다(마 6:10;눅 17:21). 둘째는 완전한 구원, 곧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비롯되는 모든 영적이며 물질적인 축복의 개념입니다(눅 18:30). 셋째는 교회, 곧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사용될 때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마 16:18, 19). 넷째는 구속받은 우주, 곧 모든 영광으로 가득찬 새 하늘과 새 땅의 개념입니다. 이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최종적인 사역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의미합니다(마 25:34).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 열두제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열 두 제자는 누가복음 6:12-16에서 예수님의 정규 제자로 선택된 자들이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밤을 세우며 기도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은 공적인 예수님의 수행원(隨行員)으로 언급되고 있는 바 이들은 예수님의 선교를 수행하면서 스승의 사역을 계승할 수 있는 진정한 사도로 설 수 있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2. 예수님을 따르며 섬긴 여인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2-3절)

 

    열두 제자이외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또 한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께 은혜받은 여인들입니다. 그들은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은 남자와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고 온전한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몇몇 신실한 여인들을 전도 여행에 합류(合流)시킴으로써, 천국의 일꾼될 자격이 외적 조건에 달려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누가복음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하며 과연 천국이 어떤 자들의 것인지에 관해서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곧, 천국은 자신의 죄성과 연약성을 시인하고서 주님의 은혜만을 겸손히 간구하는 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18:13,14). 이 여인들은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여인들입니다.

 

    그 여인들 중에 첫 번째는 일곱 귀신이 나간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소개됩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매우 흔했으므로 이 특정한 마리아를 구별하기위해서 '막달라'라는 지명을 이름 앞에 붙였습니다. '막달라'는 '탑' 또는 '망루'라는 뜻의 지명으로 갈릴리 바다의 서해안 가버나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성읍입니다. 이 마리아를 특징지워 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그녀가 과거에는 일곱 귀신에 들려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였으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어 지금은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수라는 점뿐만 아니라 일곱 귀신은 최악의 상태를 묘사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는 점에서도(마 12:45) 이 여인에게 임한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은총을 입었으므로 그녀가 예수님께 전적인 헌신을 하였을 것은 당연한 일인 바 예수님을 따랐던 여성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짐작됩니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의 수난사에서 독보적(獨步的)인 증인이 된 점에서 충분히 짐작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할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며(마 27:55,56;막 15:40;요 19:25), 예수님의 시신이 매장되는 현장에도 있었고(마 27:61;막 15:47;눅 23:55), 주일날(안식 후 첫날)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려고 무덤을 찾았고(마 28:1;막 16:1;눅 24:10),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자도 바로 그녀였던 것입니다(막 16:9;요 20:1-18).

 

    또 다른 여인은 헤롯의 청지기 구스의 아내 요안나입니다. 요안나는 누가복음 24:10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두 천사로부터 통고 받은 인물로 나오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본절에서 그녀는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라는 사람의 아내로 소개됩니다. 여기서 헤롯은 당시 갈릴리를 지배하던 헤롯 안티파스로 보이며 구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만 나오므로 그 인물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직업을 말해주는 청지기는 그 직책이 무엇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청지기'('에피트로포스')가 '넘겨준다'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재산을 넘겨받아 관리하는 재정 담당관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직책을 가진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매우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고뎃(Godet)과 같은 학자는 '구사'라는 관리가 다름 아니라 그 아들을 예수님께서 낫게 하였던 요한복음 4:46이하의 관리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만약 그럴 경우 그의 아내 요안나가 예수님을 따르며 섬겼던 이유는 각별(恪別)한 셈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를 대비하여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낮은 계층의 여성과 요안나와 같은 부유한 계층의 여성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의 보편성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산나와 다른 여인들이 함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수산나라는 이름의 뜻은 '백합'인데, 그 이름대로 매우 친절한 여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외에는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된 세 명의 여인들 외에도 수명의 여자들이 함께 하였다는 사실도 전하여 주는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여자들을 제자로 받아들임으로써, 여자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여자를 남자들의 소유물 정도로 여겼던 유대인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해주었던 유대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들에게서도 남자들에게서와 똑같이 구원의 가능성과 복음의 증언자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그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섬긴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질적 재원을 어떻게 얻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줄 수 있는 일부분의 자료가 된다는 점과 예수님의 선교 사역 배후에는 이와같은 여인들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음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13:29에 의하면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에게는 공동의 '돈 궤'가 있어서 그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도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돈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이와같이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여인들이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신들의 소유를 헌금한 것에 의해 충당(充當)되었을 것입니다. 고대의 순회 설교자들이 부유한 여인들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은 경우는 흔히 있었던 일이나, 본문의 여인들이 예수님을 헌신적으로 섬긴 것은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며 그들이 예수님과 참된 정신적 영적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의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 '섬기더라'('디에코눈')라는 말이 미완료 과거 능동태임을 감안할 때 여인들의 재정적인 섬김은 일회적이 아니라 연속적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도움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입니다.

 

나가는 말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난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저마다 아픔이 있었던 여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육체의 고통을 치유받거나 가족의 고통을 치유받거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그 은혜가 감사하여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가지고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난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예수님을 만나고서 우리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세상을 향하여 죄의 속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항상 예수님을 따라 섬겼던 것처럼 우리의 시간을 항상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주님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을 북상하고 기도를 하고, 하루의 생활 속에서 모든 일에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 시간마다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지만 계속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분명히 우리에게 성령께서 항상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기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두 번째는 생활은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의 가진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께 드리기를 주저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삭개오처럼 자신의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고 자신이 부당하게 얻은 것은 4배로 돌려주게 됩니다. 사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도 건강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청지기와 같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알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우리에게 맡겨진 시간과 물질과 건강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여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