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 보혜사 하나님!!

성령님 사역

하나님아들 2023. 10. 22. 13:19

성령님 사역               

 

시대는 점점 악해져가고 있다. 이제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할만큼 모든 사정이 악화되었다.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크리스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성령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신학과 전통을 내려놓아야한다. 성령을 신학과 전통으로 묶어서는 안된다.

 

성령사역의 초점은 성령을 체험하고, 교제하며; 잃어버린 영적권세와 능력을 회복하고 활용하여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은 내 힘과 열심히 가능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교회의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수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하시려는 일이 사명이고,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는 일은 교회의 일은 될지언정 사명감당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성령사역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내재하는 영적권세의 회복사역이고, 잠들어 있는 영을 깨우는 사역이다. 성령사역은 논리보다는 체험사역이다. 성령에 젖는 체험, 성령에 빠진 체험, 성령과 동행하는 체험이 기본이다. 실습과 체험이 중요하다. 성령사역에서 찬양은 매우 중요하다. 찬양은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며, 심령을 활짝 열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시간마다 열심히 찬양하라.

 

1. 사역의 동기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순절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는 한 마음, 한 동기로 모였다. 성령사역을 시작하려는 우리의 동기는 무엇인가?

 

모든 사역의 동기는 매우 중요하다. 동기가 좋지못하면 과정도 좋지 못하고 결과도 좋지못하게 된다. 순수한 동기를 가지라. 첫발걸음부터 좋은 동기를 가져야 제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성령사역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은 있으나 사역에서 실패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성령사역은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동기가 혼탁하면 안된다. 성령은 언제나 순수하신데, 우리가 순수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 마귀에게 이용될 여지가 너무 많다. 역사는 나타나는데 악한 영에게 사용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게 된다. 성령사역은 매우 오염되기 쉬운 사역이다. 성령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특히 순수해야 한다.

 

1). 이기적 동기

은사를 받기 위하여,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교인들에게 자신이 능력의 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교회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하여, 자신의 은사를 확인, 정리, 발전시키기 위하여, 내가 치유받기 위하여,

 

이러한 것들은 전부 성령을 이용하려는 동기들이다. 이러한 동기들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2). 참된 동기

내영혼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성령에 대하여 알기 위하여, 성령과의 깊은 교제를 위하여, 더 뜨겁고 확고한 신앙을 위하여,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하여.

성령사역은 사역의 방향과 목적이 순수해야 한다. 이것이 분명하고 변함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 환경, 물질은 우리의 동기를 순수함에서 혼탁함으로 바꾸는 영향을 끼친다. 순수한 동기를 오염시킨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야 한다. 순수한 동기는 성령사역의 지도와 같은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방향감각을 유지해야한다. 그래야 잘못되지 않는다. 늘 자신을 점검하고,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야 한다. 사단은 쓰러뜨리고 썩히고, 변질시키고, 오염시키는 명수이다.

롬 12:2 ..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말씀은 ‘동기를 새롭게 함으로, 동기를 순수하게함으로, 동기를 점검하고 새롭게 함으로’ 라는 말이다.

 

기본적동기: 본능적 동기, 의식주 해결

사회적동기: 친화, 소속, 성공, 명예, 권력, 인기

영적동기: 더 깊이, 더 높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동기.

 

우리는 기본적, 사회적 동기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영적동기가 가장 앞서서 이끌어가야 한다.

이 순서가 바뀌게 되면 사역이 병들고, 길을 잃고, 오염된다.

이것이 잘못된 성령사역은 정말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병든 사역이 된다.

성령사역이야말로 가장 성서적 사역, 가장 질서있는 사역, 가장 인간적인 사역이 되어야 한다.

가장 힘든 사역이며, 그러나 또한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사역이다.

 

2. 성령사역에 대한 자세

 

1). 성령사역에 대한 태도

(1). 성령사역에 대한 적대감 : 잘못된 동기를 가진 성령사역자에게 상처를 입은 경우.

(2). 중립적 태도 : 이래서도 안된다.

(3). 어느 정도의 관심 :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4). 약간의 체험, 경험이 있는 상태 : 깊은 체험의 상태로 들어가라.

(5). 성령사역에 관심이 있는 상태 : 이 사역에 모든 것을 걸라.

(6). 실제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상태 : 여기에 모든 것을 걸라.

 

기독교는 지금 세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적으로, 복음적으로. 치유사역과 영적능력과 영적전쟁..등등 모든 면에서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분다는 것은 지금이 추수의 시대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는 추수의 시대이다. 이 시대를 맞이하여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것이다.

추수시대의 성령사역은 씨를 뿌리는 시기가 아니다. 이제는 추수, 즉 구분의 시대이다. 성령사역을 하는 이들은 더 충만한 사역을 하게 되고, 성령을 부인하는 이들은 더욱 더 강퍅해지는 시대이다.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시 시대의 변화를 잘 파악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대에 우리를 맞추어야 한다. 내 중심으로, 내 고집만 부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2). 기독교인들의 3가지 관심

(1). 성경 말씀만을 중시하며 다른 어떤 현상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

      성령에 관하여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태도.

(2). 체험, 신비, 은사, 기적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태도.

(3). 사회운동, 인권운동, 구제, 사회정의 실현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

진정한 성령사역은 이들 중 어느 한부분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

말씀, 체험, 신비,은사, 기적, 사회운동, 인권운동, 구제, 사회정의실현 등 모든 분야에

골고루 균형있는 사역을 하여야 한다. 예수님도 이들 세부분에 모두 관심을 가지셨고 사역을 하셨다.

 

3). 성령사역에 대한 무관심

(1). 신학, 교단적인 전통과 위배된다는 생각.

신학이란 신학자의 영적체험, 신관, 사상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어느 일부분의 현상만을 설명하는 것이므로, 전체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신학은 신학자의 주관적인 입장에 국한됨으로, 신학자가 체험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분야는 언급을 않거나 부정적으로 대한다.

신학은 신학이 집성된 시대의 문화조류에 의하여 많은 영향력을 받게 되며, 시대가 지나면서 신학은 수정되거나, 더 조직적이며 논리성을 띤 신학이 나오면 과거의 신학은 빛을 잃게 된다.

 

바람직한 신학은:

①. 영성성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②. 교회성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③. 성경중심이며, 성경의 사건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④. 영적성장에 대한 도전을 일으켜야 한다.

⑤. 철저한 성경중심이어야 하며, 성경을 뒷받침하거나, 성경을 보조하는 기능을 지녀야 한다.

⑥. 성경의 사실을 왜곡, 축소, 변형하거나, 자기 교단을 위한 이기주의적 해석을 하면 안된다.

⑦. 특정 교단, 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신학이 되어서는 안된다.

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⑨.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 사람들의 목마름을 일으켜야한다.

⑩. 신학은 열려있어야 하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2). 가지고 있는 세계관(고정관념)에 의한 거부.

우리는 누구나 일정한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그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반응한다. 유연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발전하지만, 고정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발전하지 못한다. 급변하는 현시대는 특히 유연한 세계관을 요구한다. 고정된 세계관은 성령사역에 대한 동경을 저지하고 현상을 부인하고, 무관심, 부정적 태도로 이끈다. 성도는 늘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늘 새로운 관념, 세계관을 가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넓어져야 한다. 높아져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이 출애굽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늘 새로운 세계, 늘 새로운 관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출애굽의 하나님에게는 늘 열려있는 마음, 마귀에 대해서는 굳게 닫혀있는 마음을 가지라.

 

가치관은 문화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다시 가치관에 반영된다. 누구나 이러한 문화속에 살고 있다. 문화는 물과 같고 사람은 그 속에 사는 물고기와 같다.

서구문화에 들어 있는 서구적 세계관은 이성과 논리, 분석을 앞세우는 세계관이다. 나타나는 현상을 과학과 이론, 이성으로 설명하고, 납득되어지는 것만을 수용하는 세계관이다. 유물론적이고, 합리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이다. 동양문화에 들어 있는 동양적 세계관은 신비주의적이다. 나타나는 현상을 초월적, 신적, 인과응보등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이다.

 

현대의 문화는 점점 물질문화, 비인간적 문화, 인터넷문화로 변화되어 가면서 점점 성령사역을 거부한다.

성령사역은 이러한 잘못된 세계관이라는 낡은 옷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가져온 세계관, 가치관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관, 안목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