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권의 성경 배열
그런데 66권의 그라페 배열이 오늘날과 같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의 비블리온으로 엮여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초로 권위있는 영어 성경인 1539년의 'The Great Bible'에서 루터의 순서를 버리고 좀더 논리적인 순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오늘날과 같은 순서의 성경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에 한국성경신학연구소의 성경신학은 이러한 성경의 순서를 좇아 그 통일성에 대해 가르쳐 왔다. 이러한 통일성은 단일개념을 통해 획일화한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밝혀줄 '하나님의 일'의 개념을 통해 다양성과 아울러 성경 전체를 통일(統一)한 것이다. 여러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일곱날들의 우주창조와 또 우주 창조의 여섯번 째 날안에서의 인류의 역사와 관련된 10개의 톨레도트로 구성되어 있는 그라페이다. 그리고 여섯번째 데라의 톨레도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과 영원한 약속 곧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맹세를 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출1:1-18:)하시고 또한 구속하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성문화된 율법을 주시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수 있게 하셨다(출19:1-민10:10). 또한 저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민10:11-36:)하시고, 최종적으로 신명기에서 모세로 율법강론을 통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삶을 권고하셨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모세 오경의 내용이다. 모세오경이라는 표현은 그라페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나, 유대인들이 모세의 글을 5권의 두루마리로 구분하여 5개의 항아리에 담았다는 뜻에서 5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신명기서까지의 배열은 유대인들이나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나 같다. 알다시피 유대인들의 습관은 히브리어 성경을 율법서(창~신), 대언서(전기대언서~후기대언서), 성문서(시, 두루마리, 대언, 역사)로 구분히지만 현재 우리는 창~에스더까지는 역사서, 이어 성문서(욥기~아가서) 그리고 대언서(사-말)로 구분한다. 유대인들은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의 율법서 5권에 이어 대언서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전기대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총 4권으로 분류했다. 현 개역성경의 사사기와 사무엘상하 사이에 있는 '룻기'가 유대인의 히브리어 성경에는 마지막 책 성문서 중 두루마리(5권) 첫 머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후기 대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3권과 소선지서 11권이 한 권으로 되어 있어 총 4권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시'와 '두루마리' 그리고 '대언서', '역사서' 등의 11권으로 된 성문서가 있다. 먼저 시(詩)에는 시편, 욥기, 잠언의 3권과, 두루마리에는 룻기(오순절에 낭독), 아가서(이스라엘의 유월절에 낭독), 전도서(이스라엘의 초막절에 낭독), 애가서(예루살렘 성전 함락일에 낭독), 에스더(부림절에 낭독) 등 총 5권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예언서에는 다니엘서 1권이 있고, 역사서에는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상하의 순서로 3권이 있다. 그리하여 율법서 5권, 전기대언서 4권, 후기대언서 4권, 시 3권, 두루마리 5권, 예언서 1권, 역사서 3권 총 24권이 유대인들의 그라페이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주후354-430)가 '더욱이 내가 '구약의 권위는 이 24권으로의 책으로 끝난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을 따라 구약을 지칭하고 있었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히브리어 성경을 당시 관습대로 24권으로 말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이러한 순서에 변동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 이후 애굽을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주전285-247)인 필라델푸스가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도록 명하므로 완성한 70인경(Septuaginta, LXX)에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율법서(Tora), 대언서(Nebiim), 성문서(Kethubim)의 순서를 따랐으나, 이 70인경은 오늘날과 같이 창세기-에스더(역사서), 욥-아(성문서), 사-말(대언서)의 순서로 변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간섭이 느껴진다. 70인역본은 주전 3세기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일컫는다. 이 번역본에 관한 이야기는 '아리스테아의 편지'에 언급되었는데 약간 픽션이 가미되어 나타난다. 이 편지에 의하면 필라델푸스(Philadelphus)치하에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히브리어 원전과 72인의 번역자가 파송되므로, 72인은 애굽의 파로스 섬에 투숙하여 72일만에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번역본이 완성된 후 당시 유대인들이 축제까지 벌였다는 것으로 볼 때 필요에 의한 번역으로 여겨진다(유성덕, '성경형성개론', p. 18). 그런데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번역본은 권위가 인정되어 왔으나, 이스라엘의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성경 사본들을 통해서 번역이 매우 조잡스러운 것이 확인되어 오늘날은 이 번역본 대신 맛소라텍스트(MT)를 더 중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70인역본의 배열을 좇아 현 개신교나 로마교의 히브리어 성경의 순서가 확정되었다. 그런데 이 헬라어 성경 70인 역본에는 유대인들의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외경이라고 하는 것이 첨가되었다. 외경(外經)은 '감취어진' 혹은 '모호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형용사에서 유래한 복수명사 'apocrypha'에서 유래한 말이다. 로마교는 이 외경을 제2의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결코 정경이 될 수 없는 책이다. 여기서 잠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위경(僞經)과 외경(外經)의 차이이다. 위경(Pseudepigrapha)은 책의 저자 혹은 이름을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좇아 붙이는 버릇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70인 역본에는 토빗서, 유딧서, 에스텔서, 마카비서, 바룩서, 지혜서, 집회서 7권의 외경(外經)이 포함되어 있다. 70인역의 배열순서를 따르고 있는 성경에는 예레미아서에 시가서에 해당되는 예레미아애가가 첨부되어 있으나, 로마교 성경에는 외경인 바룩서가 대신 첨가되어 있다. 이집트에서는 예수께서 탄생하기 약 20-5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솔로몬의 지혜'(Wisdom)를 영감 있는 지혜서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종말론적인 대망을 가지고 사해동굴에서 100년 이상 살았던 유다인들 역시 다른 외경지혜서인 '시락서'를 정경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지혜서가 사해연안의 쿰란(Qumran)동굴과 그 근처의 마사다(Masada)에서 발견되었다. 외경의 역사서에는 유딧, 토빗, 그리고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가 있다. 이 역사서들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유다상황을 서술하고 있어 신구약중간기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정황을 밝혀주는 자료가 된다. 70인역 본에는 또한 에스더서와 다니엘서의 추가부분이 있다. 그러나 70인역에는 마소라본문 보다 적은 양의 책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LXX의 예레미아서는 MT(맛소라 본문)의 예레미아서보다 1/8이 적기도 하다(출처: http://www.kangnam.ac.kr/~jspark45/LXX-MT.htm). 무엇보다 70인역은 주후4세기 말경 제롬이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역본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오늘 한국의 로마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동번역성경은 제롬역을 좇은 것으로, 제롬은 외경이 포함되어 있는 70인역을 그대로 번역하므로, 로마교 성경에는 한결같이 이 외경이 제2의 정경으로 자리하고 있게 된 것이다. 불가타역은 교황 다마수스(Damasus, 382년)의 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히브리어 성경의 완성이 주후404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성경이 오늘날과 같이 보편적인 순서로 결정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인쇄술이 발명되므로 가능했던 일이다. 최초로 인쇄된 성경이 1456년 경 마인쯔에서 출판된 42줄짜리 라틴어 큰 책 성경이다. 이어 1534년에 완성된 루터의 새독일어 번역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에 기초하였다. 그가 헬라어 성경(1522년)와 히브리어 성경의 번역을 마쳤을 때,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지만 오래된 라틴어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책들이 있어, 이 책들을 루터는 외경이라는 이름 아래 그것들끼리 모아서 히브리어 성경 맨 뒤에 여전히 모아 두었다(유성덕, "성경형성개론", 성광문화사, 1987, p. 21). 루터는 헬라어 성경 각 권의 순서를 그 책이 '그리스도를 가르친 것'에 비례해 결정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복음서를 가장 우위에 두었고 히브리서나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은 헬라어 성경의 맨 마지막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권위있는 영어 성경인 1539년의 The Great Bible은 이와 같은 루터의 혁신적인 안을 버리고 좀더 논리적인 순서를 채택하였다. 즉 히브리서는 바울의 서신들 다음에 두고, 야고보서는 공동서신들 앞에 두었다. 이 성경은 또한 유다서를 공동서신의 맨 마지막에 둔 최초의 인쇄된 영어 성경이었다. 5, 6세기의 복음서 사본들은 마태-요한-누가-마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헬라어 성경의 순서에 있어서 좀더 놀랄만한 변화는 주후 4세기의 시내사본에서 나타났다. 시내사본은 완전한 대문자 헬라어 성경으로, 시내산 아래에 위치한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티센도르프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이후 계속된 방문으로 좀더 발견되어 1862년 페테스부르크 황제 도서실에 보관하였으나, 혁명후 1933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10만 파운드에 대영박물관으로 팔렸다. 이 시내산 사본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중에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헬라어 성경을 포함하고 있다. 좀더 오래된 헬라어 성경 사본에는 사도행전 뒤에, 공동서신, 야고보서, 베드로서, 요한서신, 유다서를 두고 있는 반면에, 윌리엄 틴데일 이후로 내려오는 성경들은 거의 예외없이 그 서신들 모두를 또는 적어도 그 중 다섯은 바울의 서신들 뒤에 두었다. 여기서 교회 개혁자 윌리엄 틴데일(Tyndale William, 1490?-1536. 8. 6)에 대해서 낯설어할 것같아 그에 대해서 잠간 살펴보도록 하겠다. 틴데일은 성경번역자로, 1522년 이미 성경 번역을 구상한 후, 번역한 성경을 쾰른에서 인쇄하기 시작했으나, 쾰른 의회에서 금지 조처를 당해 보름스에서 완성했다(1525). 그 후 교회에서의 성경의 권위와 국가에서의 왕의 권위를 주장하여 헨리8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로마의 계급정치를 공격하다가 헨리 8세의 총애를 잃고 로마 관원에게 체포되어(1533년) 사형선고를 받아(1555년) 스미스필드에서 처형되었다. 틴데일은 루터의 번역성경을 따라 1525년에 영어로 헬라어 성경을 완성하여 초판했다. 이렇게 개혁자들은 성경해석은 물론 성경 번역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개혁자들의 이러한 노력은 중세 로마교의 성경 독서금지에 대한 항거(抗拒)라 할 수 있었다. 요약컨대 15세기 이후 인쇄발명과 더불어 성경이 비로소 한 권의 비블리온으로 구성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금을 통해 66권을 이루고 있는 성경의 순서가 오늘날과 같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1세기로부터 17세기까지, 통상적으로는 19세기초까지 계속해서 히브리어 성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던 외경 중 현존하는 책들은 모두 제외되었다. 성경이 오늘날과 같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손에 들려지기까지 무수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성경은 폐할 수 없다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기록된 성경은 그 순서배열에 있어서까지 많은 변화를 겪어오면서 오늘날과 같이 일관된 논리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최초로 권위있는 영어 성경인 1539년의 The Great Bible에서 루터의 순서를 버리고 좀더 논리적인 순서를 채택하므로, 히브리서는 바울의 서신들 다음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공동서신들 앞에 두고, 또한 유다서를 공동서신의 맨 마지막에 둔 최초의 인쇄된 영어 성경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오늘 우리 손에 들려진 순서의 배열은 바로 1539년에 발행한 "The Great Bible"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성경신학연구소의 성경신학에서 밝힌바, 현 성경의 배열을 좇는 성경 전체의 일관된 논리는 'The Great Bible'의 배열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말해준다. 이는 결코 우연의 일치라 치부될 수 없는 부분이다. 만약 유대인들의 맛소라텍스트를 좇는다거나 혹은 외경이 포함된 70인역본을 좇아서 성경의 배열이 정해졌다고 한다면, 물론 그 자체로 성경의 권위는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성경 자체가 갖는 유기적 일관성은 결코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신학이론도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학이론은 언제든지 성경의 검증을 받아야 함이 명백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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