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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와 모형론의 역사와 차이점

하나님아들 2023. 7. 16. 22:40

알레고리와 모형론의 역사와 차이점              

 

성경이 지니고 있는 성격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을때에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수많은 노력중에 하나는 구약이 신약의 성도들에게 어떠한 연결점을 가질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가 유대교와는 달리 구약의 내용을 계승하기도 하면서 그러나 구약의 내용과의 단절을 하는 부분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많은 의식법들과 절기들과 성속의 구별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구약과 신약간의 관계가 연속이기도 하고 혹은 불연속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깊이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 자기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셨을때의 중심은 구약과 신약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된다. 특별히 예수님의 눅24:44에서 구약에 기록된 모든 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술에서 이룬다는 것과 마5:17에서 내가 온것이 율법을 폐하려 온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한다는 말씀의 완전케하신다는 것은 같은 헬라어 단어가 사용됨으로 구약이 특별히 기독론적으로 신약의 내용과 깊이 관련을 맺게 됨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신구약의 관련성이 있고 특히 기독론적으로 관련이 된다고 할때에 구체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찿으려는 노력이 성경기록시대로 부터 그리고 교회사에서 있어왔다. 이러한 연결이 구약에 대한 모형론적인 해석과 알레고리라고 하는 풍유적 해석을 결과하기도 했다.특별히 성막과 절기와 제사제도등 신약시대가 계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가 이루셨다는 내용들이 신약의 전망을 가진다는 연속의 문제를 다루게 될때 모형이라든지 알레고리라든지의 해석을 가하게 된다.


1.모형론의 역사적 배경


모형론이 신약의 기자가 구약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서 성경의 기록이후에 신구약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오늘날도 끊임없이 다루어지는 해석학의 한범주로 보았을때 그역사적인 흐름을 살피는 일이 의미가 있겠다.

1) 먼저 초대교회와 알렉산드리아의 알레고리학파를 살펴보면 모형론의 시작을 구약의 예언적 종말론으로부터 시작이 된다고도 하고 그리고 그레코 로만 시대의 성경외의 영역에서는 해석학적 접근으로서 모형론을 쓰지는 않고 있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초대교회에서의 모형론은 교부들에 의해서 사용되는데, 그들에 의해서 성경의 모형이 신적으로 의도된 그리스도의 예표나 혹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도래하는 복음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클레멘트와 바나바 서신에서 발견되는데 바나바의 서신에서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종말론적인 성격은 결여되었다. 그리고 상응의 관계가 우연적이고 피상적인 유사함에 머물렀다. 2-3세기의 변증가들인 저스틴 마터,터툴리안,이레니우스등이 영지주의와 유대주의에 반대해서 구약의 가치(영지주의)와 신약에서의 성취(유대주의)를 볼수 있는 모형론을 사용했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에서 헬라의 알레고리와 혼합이 되면서 모형론이 건전한 방향을 상실하게 되고 이것이 중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오늘날에 이르기가지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성경해석의 한 부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필로의 알레고리방식을 그리스도로 세례를 주었고 오리겐이 조직적으로 그 방법을 발전시켰다 .

먼저 필로의 알레고리 방식을 살피면,그는 알레고리의 방법을 기독교의 세계안으로 끌어드린 선구자이고,성경의 단어들 배후에 더 깊은 다른 의미들이 감추어져 있다고 믿었다. 그는 종종 스토익 학자들처럼 너무 무리하게 어원과 숫자에 근거해서 그 숨겨진 의미를 찿아냈다. 또한 그는 예표들과 실체들 사이에 상응 관계를 찿되,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에서 예표나 그림자를 찿고,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세계에서 실체나 실재를 찿으려 함으로 플라톤의 이원론에 근거함을 증거한다.그래서 그의 알레고리는 수평적이고 시간 역사적이 아니고 수직적이고 공간적이라고 한다 . 

폰 라드는 그의 모형론에서 인간이 원래부터 모형론적 심성을 가진것으로 말하면서 신화적 개념의 모형론을 소개하는데 이는 땅에 있는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라는 주장이다 . 이러한 플라톤적인 이원론에 기초한 신화적 모형론 혹은 알레고리는 알렉산드리아의 헬라화의 분위기 속에서 필로와 같은 학자들에게 인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변증적인 목적하에서 기독교의 성경을 해석하는 도구로 작용을 한다. 

그랜트는 말하기를 그는 유대주의의 통찰력도 바르게 이해된다면 헬라철학의 고상한 통찰력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헬라인들에게자신을 계시하셨던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철학적인 하나님과 헬라적인 범세계적인 인간관의 입장에서, 필로는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신인동형론적 표현과 이스라엘의 독특한 배타성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영향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해서 모든 단어의 의미를 5중적으로 이해하는 알레고리 방법이 체계화되고 오리겐으로 이르러서 3중적 의미로 정착이 된다. 이는 플라톤의 몸의 삼분설 즉 몸, 혼, 영에 대응하는 삼중적 의미를 강조하는데 문자적 의미와 도덕적 의미 그리고 영적인 의미이다. 오리겐은 앞의 두 부분은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영적인 해석에 몰두함으로 성경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상실하게 했는데, 창조 기사 등의 서술을 알레고리화시켜버린다 . 

이러한 알렉산드리아의 알레고리가 라틴계열의 학자들 포이티어의 힐러리, 암브로시스, 제롬, 그리고 어거스틴도 알레고리의 자유로운 사용을 하였다 

2) 안디옥 학파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레고리해석에 대한 강한 반기를 들었다. 안디옥 학파는 사모사타의 루시안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이를 지지하는 다소의 디오도루스와 몹수에스타의 데오도르는 오리겐의 해석방법에 강한 반대의 글을 섯다. 안디옥 학파는 역사와 성경의 문자적 의미에 기초를 하고서, 선지자들이 직접적인 역사적이고 미래의 메시야적 의미를 보고 기록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형과 원형의 관계도 알레고리와 같이 숨겨지거나 영적인 인식이 아닌 실재적이고 인지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2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가장 영향력있는 안디옥 학파의 주석가인 몹수에스타아의 테오도르가 네스토리안에 의해서 감염이 되었다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하는 정죄를 당함으로, 의심이 그가 속한 안디옥 학파 전체로 확산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문자적 의미에 대한 강조가 크리소스톰과 제롬의 설교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안디옥 학파는 다시 소생을 하지 못하고 중세의 천년간을 알레고리에게 해석학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

3) 중세의 시기에는 오리겐의 삼중의미에서 하나가 추가되어서 사중적 의미(Quadriga)가 주석학의 이론적인 원리가 되었다. 이는 존 카시안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문자적 의미와 세개의 영적의미로 나누었다. 세개의 영적 읨는 알레고리, 인류학적, 종말론적 등으로 나누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문자적 의미를 성경의 단어의 의미라고 하고 영적인 의미는 성경의 사건들의 의미라고 하였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와 사건들의 의미와의 차이가 로마교의 주석가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온다 .

4) 종교개혁시대에 루터는 시편을 강의하던 때에는(1513-15) 사두마차를 끌었지만 그러나 1519년에 갈4:24을 해석하는 가운데에 사중적인 의미를 찿는 것을 일종의 게임이라고 하면서 성경적 지지를 받을수 없다고 주장한다. 35년에 이르러서 갈4장을 주석하면서 루터는 사중적 의미를 찿는 자들을 게으르고 무식한 수도사들과 학자들이라고 공격했다.루터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강조하고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해석을 우선했는데 그에게 문자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중심적이었다.그레서 그의 모형론은 신약 성취에 대한 구약의 예표이고,역사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나 그는 자주 알레고리에 빠지기도 한다. 

칼빈은 알레고리의 체계가 성경의 권위를 깍아내리는 사탄의 고안물이라고 혹평을 하면서 참된의미는 구약의 모형과 관계하고 율법이 모형아래 던져진 것을 가리키는 것이 복음이라고 하였다. 신구약간의 또다른 차이는 모형에서이다. 구약은 실체가 없고 대신에 그림자로 대치된 진리의 미미지를 제시하고, 신약은 전진리의 체계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토마스 데이비스는 루터에게 있어서 모형론은 여러해석 방법중에 하나이지만 그러나 칼빈의 경우는 그의 신학에 있어서 핵심적이고 의미있는 역활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5) 정통주의 시대에는 요한네그 케르하르트가 모형론과 알레고리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모형론은 사실들의 비교인데 알레고리는 사실들에 관심이 없고 유용하며 감추어진 진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모형들은 신약의 그리스도나 복음에 대해서 그림자적으로 가리키도록 하나님에 의해서 규정된 구약의 사실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

6) 칵세이우스 학파는 모형론의 두가지 종류를 말하는데 첫째는 본유적인 모형이 있고 둘째는 추론된 모형이 있다는 것이다. 본유적인 모형은 성경이 정확하게 지시하는 것을 말하고 추론된 것은 믿음의 유추와 성경기자들의 관행을 따라하는 것이다. 이는 오리겐의 알레고리까지는 아니지만 구약의 모든 사건들이 신약의 역사나 혹은 심지어 현대의 정치적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서 니느웨를 건설하기 위해서 아술로 부터 나오는 것을(창10:11) 적그리스도의 영역을 구축하는 모슬렘 세력의 모형으로 보기도 했다.또한 아담이 잠에서 깨어난 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모형으로 보기도 한다 . 

그래서 페어번은 평가하기를 임의성과 변덕스러움이 첨가될 여지가 다분히 있었다고 하고 옛시대와 새시대 사이의 연결의 흐름,즉 예표와 실체간의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는 일에 실패하였다고 한다 . 결국 이학파는 모형론의 현안으로서 얼마나 성경에 모형이 있는가의 문제에 답하여서 무한히 많다는 개방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조류가 되지만 그러나 모형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공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조류는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의 영국과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에게 그리고 18-9세기에는 헤치소니안 그룹과 플리마우스 형제단에 의해서 사용되어졌다. 

7) 말쉬안 학파는 모형론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칵세이우스 전통에 대항해서 모형을 정하는 기준으로 오직 성경이 제시하는 것 이외는 허용하지 않았다 . 이러한 원칙이 앞으로 모형론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8)미키엘리스와 셈러의 입장과 역사비평학의 모형론 거부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가 모형론에 영향을 미쳐서 모형론의 개념에 중요한 변화를 격게 된다. 모형론은 게르하르트가 말한대로 역사적 사실들의 상으이 아니고 이제는 종교적 진리들과 관련을 맺는다. 이것이 미카엘리스의 견해이다.이것은 모형들을 신약과 관련시키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구약상징법 안에 포함된 영적인 진리를 해석하는 것이다. 셈러는 말하기를 어떠한 모형을 가정하지 않아도 별로 잃을 것이 없다고 한다. 기독교의 기초를 모형론에 둘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모형론은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에 기여를 하지 못하고 계몽주의의 바람에 힙쓸리게 된다. 

9) 페어번은 19세기 중엽에 말쉬의 업격한 입장과 칵세이우스의 방만한 입장의 중간에 서있어서 모형론적 해석의 원리를 제시한 사람이다. 그는 모형의 두 구성요소를 말하는데 하나는 모형에 공통되는 인물,행위,제도등이 복음에 대응되는 형태나 정신의 상응을 가진다. 둘째는 구약안에서가 아니라 신약에서 더나은 것을 바라보도록 한다.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다섯가지의 원리를 제시한다. 

째는 금지되고 죄악된 본성을 스스로 지닌 어던 것도 복음아래서 좋은 것의 모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둘째는 주어진 지식이나 고대의 예배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약의 계시와 빛아래서 모형의 성취를 제공하는 것으로 부터 모형의 존재를 인식한다.즉 구약의 사람들은 모형을 인식하지 못한다.

 

세째는 모형에서 제시된 진리나 개념들에 친숙해지는 것을 조심해야한다. 모형과 원형의 외적 유사성이 아니라 공통된 원리가 있을때만이 참된 모형론적 상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네째는 상징물이나 제도등이 단지 하나의 직접적인 읨만을 가지는 변면에,거기에 제시된 근본적인 원리나 개념은 복음의 실체들에서 한가지 이상의 적용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신구약간의 유기적 관계가 그안에 있는 부분들의 유기적 관계도 있음을 말한다. 다섯 째는 모형과 원형사이의 정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스텍은 페어번의 성경적 예표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예표들은 구약성경의 증거를 받는 역사적 실재들이다. 이 예표들은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교회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필요불가결한 것들로서 메시야의 사역과 왕국 안에서 실현됙 위해서 미리 정해졌다. 예표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왕국 안에서 완전히 구체화될 “영적인 하나님의 진리들”을 교회에게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그렇게해서 교회는 그 예표들이 구체화될때 그 진리들을 이해할수 있게 된다. 

이처럼 페어번의 예표론은 구약성경의 역사를 “하늘과 땅의 실재들에 관한 진리체계를 점진적으로 알려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교육적 도구”로서 이해한 데 기초한 일종의 역사해석인 것이다. 스텍은 페어번의 역사에 대한 유기적 개념을 거부하고, 하늘의 실재들의 영적인 진리들의 체계로서 보는 믿음의 내용의 개념을 거부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저등한 시대의 교육적인 목적으로만 구약의 역사를 다루는 것을 비판한다. 구약의 역사는 구원사이다. 

10) 폰 호프만은 신약의 사건들이 도래함으로 사라지거나 해체되는 구약과 대조되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예비적 역사가 결론이나 예언의 성취를 가져오는 원형이다.여기서 예언은 오는 사건에 대한 구두적인 예견이 아니라 역사 그자체가 그목적을 향해가는 것이다.예언적 역사와 성취의 관계를 모형론적이라고 한다. 이러므로 그의 입장을 구속사와 현대의 역사비평주의의 기본적 수용을 전제한 것으로 본다. 

11) 20세기의 논의들
먼저 고펠트는 모형론을 주해방법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역사적 구조속에서 해석자가 취하는 “영적 자세”로 간주하고, 예표론 관계의 본질적 요소를 상응과 상승으로 보았다.인간의 대신관계의 면을 표현하는 제도나 인물 사건등에서 모형론적인 연관성을 구한다. 그는 구원역사의 문맥에서 예표와 실체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종말론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 데이비드슨은 고벨트를 역사비평주의의 부흥이라는 항목에서 다루고 있다. 

폰라드는 전승사의 입장에서 전승사의 사건들을 선지자들이 예언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의 모형론을 전개한다. 구약이 역사책임을 강조하고서 실제적 역사라기 보다는 역사에 대한 믿음의 해석으로서 케류그마로 본다 선지자들이 구약의 한 사건을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도록 해석한 믿음의 사건으로서 이를 역사의 완성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적용을 신약의 기자들이 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구약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구약이 신약의 완성을 지향한다는 신약기자들의 역사해석을 모형론이라고 한다. 

폰라드의 입장은 역사비평주의에 근거한 구약의 역사에 대한 경시풍조와 비역사적임에 대한 신학적 메세지의 약화를 극복하고 믿음의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관련시키는 방식에서 모형론을 채택하고 있다. 폰라드의 모형론은 결국 전 성경의 전승의 역사속에 있는 역사의 해석방식이다. 메세지를 중심하여서 구약의 가치를 상숭시키는 듯이 보이는 그의 입장이 실제로는 결과된 관점에서 사건들을 해석해 들어가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실제적 의미의 예언이 아니라 예언이 되도록 상응을 시키는 기자의 믿음이 강조되는 모형론이다. 이는 역사 비평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나서 신구약을 상관있게 만드는 사람편에서의 의도를 신적인 구도로 바꾸어서 말한 것이다. 

세대주의적 관점에서의 모형론이 프리더리센과 로이 주크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는데 프리드리이센은 1970년에 달라스 신학교에서 학위 청구 논문을 제시하면서 말쉬의 원리(성경이 명시)에다가 세가지의 원리를 덧붙인다. 신적인 미리 정하심, 구약 성도들의 인지, 그리스도-구원론적 집중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서 프리더리센은 말쉬의 입장보다 더 좁은 의미의 모형론을 전개하는데 그는 진정한 의미의 모형은 레위기적인 제도들에서만 발견되고 그리고 원형에는 교회론적인 지시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입장은 구약의 모형은 오직 모세 제사제도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신약의 기자들이 분명히 알았다는 주장인데, 비록 다른 역사적 상응들이 성경의 분명한 지시어를 가지지만 그러한 것들을 예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의 것은 원형을 교회나 기독교인의 개인적 경험과는 유비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세대주의의 강한 입김이 작용하는 대목이다. 교회가 원래부터 의도된 하나님의 경륜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세대주의의 입장이기에 원형으로서 교회나 성도의 삶이 대칭되지 않는다. 

이러한 세대주의의 입장이 최근의 로이 주크에 의해서 좀더 공교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그는 프리더리센의 공리와는 약간 다르게 6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모형과 원형사이의 분명한 상응이 존재하는가? 모형과 원형이 역사적 실체들인가?,모형이 원형을 예표하는가?.원형이 모형의 성취나 상승의 의미를 가지는가? 모형과 원형사이에 신적인 계획이 존재하는가?,신약이 분명히 모형이라고 언급을 하는가? 

이상의 6개의 공리를 따라서 모형을 17개로 축소한다. 프리더리센과 마찬가지로 멜기세덱을 제외하고는 모두 레위기적 제사제도나 절기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의 원형으로 제시된 것은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 데이비드슨이 언급한대로 프리더리센이 주석적이고 언어학적인 근거를 제시함에 실패했다는 표현이 주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수 있다 . 세대주의의 입장은 자기들의 신학적 입장을 유지하려고 결국은 가장 협의의 모형론을 주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바톤 페인은 독특한 원리를 한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어진 내용이 미래에 모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전에 그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공리이다. 그렇기에 의식적인 예배등이 기본적인 관심의 대상이고 사람에 있어서는 아담과 멜기세덱을 제외하면 모두 관심이 제거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오늘날 많은 관심을 모형론에 보이고 있다. 신구약의 통일성과 성경신학을 언급하는 가운데 그리고 신약에서의 구약을 인용하는 글들에서 이러한 언급은 있게 된다.논자의 한계로 전부를 살피는 것은 무리가 있어 이상으로 역사를 살펴본다.


2.모형론과 알레고리의 차이


이상의 역사를 개관하는 가운데에서 알레고리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게 어떻게 들어 왔는가를 필로와 클레멘트 그리고 오리겐의 견해를 보고 안디옥 학파의 정죄로 인하여서 중세의 천년을 알레고리에게 해석학의 권죄를 내어준 후 사중적 의미가지 발전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이후 루터와 칼빈에 의해서 문자적 의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알레고리가 세력을 잃어버림을 알수 있다. 오늘날에 해석학의 조류에 알레고리가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게르하르트가 차이를 정의내린 이후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 모형론은 사실들과 관계하고 알레고리는 종교적 진리에 상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진리와 상응하는 것은 문자의 뒤에 있는 숨겨진 영적인 진리를 추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알레고리가 가진 최대의 문제점은 알레고리의 영적인 의미를 보장하는 근거가 너무나 임의적이고 인간적이라는데 있다. 성경의 본문이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고안물이기에 알레고리의 방식은 경건한 목적이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맞을 것 같다. 

비록 앞에서 로이주크가 설정한 모형론의 문제점을 제시하였지만 그러나 그가 설정한 모형론의 공리에 의거하여서 알레고리와 모형을 구분한 것은 많은 참고점이 된다. 

모형론 예시 알레고리

1.자연적 상응 자연적 상응 본문 뒤에 숨은 의미
2.역사적 실체로서 양자 역사적 실체에 의존 무시,문자적 의미 무시 간의 관계가 문자적 의미에 종속
3.예견과 그림자,예언적 단순한 보기 감춰진 의미를 추측,뒤만 볾
4.성취로 고양 성취되지 않음 성취 없음
5.신적 구도 진리의 묘사로서 신적구도 해석자의 상상력
6.신약에서 관계를 설정 모형으로 불리우지 않음 설정 없음

여기에 앞에서 살핀 바톤 페인의 공식을 집어 넣어서 본다면 모형은 당시대에 상징적 의미를 가지나 알레고리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든 말든 관계없이 해석할 수 있음을 알수 있다. 여기서 주크가 말하는 예시는 일반적으로 모형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것을 엄밀한 잣대로서 제외시킨 내용들이다. 주크에 의하면 아담은 예시에 속하나 페인의 잣대에 의하면 모형이 된다. 반대로 아론이 페인에 의하면 알레고리가 된다. 따라서 엄밀한 공리를 정용하여서 정의를 내리고 이를 실제로 본문에 적용하는 해석학적 입장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3. 알레고리와 모형론의 차이를 논하는 본 글에서 알레고리가 모형론의 잘못된 접근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가지고 모형론의 역사를 접근하여 가는 과정에서 알레고리의 역사와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로이 주크와 페인의 공리를 이용하여 알레고리와 모형의 차이를 설정해 보았다. 알레고리와 모형의 차이를 규정하는 역사적 실체들간의 자연스러운 상응관계가 그림자와 성취의 진전되는 관계를 가지면서 하나님이 설정하신 신적인 구도를 밝히고, 성경의 분명한 명시를 받으면서 또한 당대의 상징성을 보유하는지를 살펴서 알레고리와 모형을 구별하면 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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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Goldsworthy, According to Plan,1991:England,ivp.
G. Von Rad, 'Typ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 Essays in Old Testament Hermeneuctics, ed. C. Westermann, Atlanta:1979,
Roy Zuck, Basic Bible Interpretation,1993:
E, E, Ellis, Prophecy and Hermeneutic in Ea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