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나라
1. 하나님의 나라(vIerousalh,m이나 `Ieroso,luma)와 예루살렘(!l'iv;Wry])에 대한 관계성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전혀 없다. 그러나 용어의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은 구약 전체에 스며 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 나라를 통치하는 왕의 개념에 의해서 이다. 대개의 경우 여호와이신 하나님은 왕으로 나타나며, 어떤 경우는 왕좌의 주인으로 나타나고, 이따금씩은 그의 계속적인 혹은 미래의 통치에 의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명백히 왕과 관련된 특징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그 개념은 이스라엘과 이들이 섬기는 여호와이신 하나님과의 전체적인 관계의 기초가 된다.1) 여기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루살렘의 관계에 한정하여 이것이 갖는 구약적 배경에 의한 이해에서 보고자 한다.
1-1.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루살렘이 갖는 의미
‘하나님의 나라’(h` basilei,a tou/ qeou/)란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누가복음서는 더욱 두드러진다.2) 이는 누가복음을 공통된 예수님의 사역에서 함께 복음서로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과 비교해 볼 때도 그렇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이 ‘하나님의 나라’란 용어와 함께 ‘예루살렘’(!l'iv;Wry])도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두드러지게 많이 사용된다(30회).3) 그만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누가가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데 있어서 그의 중심 사상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예루살렘’은 신약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인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Temple of God)인 예루살렘 성전이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게서 그 나라의 ‘성’(도시)인 동시에 또한 그들을 한 곳으로 집중해 있게 하는 ‘성전’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마음에 항상 중심의 자리로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임재해 계셔서 통치하시는 나라요, 그들의 임마누엘이 되어주시는 곳이다.
1-2. 하나님의 언약 성취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와 예루살렘의 건설
온 세상을 구원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다룬 누가복음에서의 예수님의 행적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예수님이 구속 사역의 활동 지역을 다른 곳이 아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가지셨던 이유는 이곳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에서 그에게 주신 자손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땅의 약속으로 주신 곳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1-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과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 ‘후손’에 있어서, 아브라함에게 있게 하실 그의 후손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에서 살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는 것에서 자세히 알려주셨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고 이방 나라는 400년 동안 그들을 혹독하게 다룰 것이지만 그들은 4대 만에 큰 재산을 가지고 그곳으로부터 나와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창 15장).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를 세우고 그 수도인 예루살렘과 이곳에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에 의한 것이다.
이 예루살렘은 고대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이스라엘 왕국 초기의 수도이나, 왕국 분열 후에는 남의 유다 왕국 수도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이스라엘 공화국도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있으나, 국제적으로는 승인되지 않고 있다. 이 도시는 BC 19세기의 애굽 사료에도 나오는 오래된 도시로서, 다윗의 점령(BC 1000년경)부터 로마에 의한 함락(70)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유다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다.
이 예루살렘이 언제부터 있었는가는 그 시기를 아브라함 시대에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었던 때로부터 본다. 창세기 14:18에 보면, ‘살렘왕 멜기세덱’(!lev; &l,m, qd,x,AyKil]m')이란 말이 나온다. 여기서 멜기세덱을 ‘살렘왕’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그가 ‘살렘’(!lev;)지역을 통치하는 왕으로 있었기 때문이며, 이곳은 예루살렘을 가리킨 말로 생각된다.4) 성경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이곳이 현재의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으며, 주전 2000년경부터 있어왔다고 본다.5)
이곳이 예루살렘으로 불려진 최초의 성경 기록은 여호수아 10:1에서 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으로 아이(Ai) 성을 점령하고 여리고(Jericho) 성을 점령하여 진멸하듯이 아이 성을 진멸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브온(Gibeon)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Jerusalem) 왕 아도니세덱이 들었다는 것에서 ‘예루살렘’ 지역과 그 성읍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6)
이곳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것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여부스 사람의 요새였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서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음으로써 이다(대상 11:1-9).7) 다윗은 이곳에 성전을 짓고자 하였으며,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대상 22장). 그럼으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성(城)이자 성전(聖殿)이 있는 곳이 되었다.
1-3.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루살렘의 관련이 갖는 의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그들의 나라를 세우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에 세워진 나라의 이름은 ‘이스라엘’(Israel)로 불려지며, 그 땅에 세워진 수도와 그곳에 세워진 성전의 이름은 ‘예루살렘’(Jerusalem)으로 불려진다. 이스라엘이란 나라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이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곳을 통해서 하실 일의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 있었으므로 처음부터 신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성전이 있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온산에 궁전을 짓고 (삼하 5:11) 오벳에돔의 집에서 여호와의 법궤를 옮겨왔다.8)
예루살렘이 이처럼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성전이 함께 하고 있는 곳으로서 정치적으로도,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중심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운 민족으로서의 한 나라의 개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으로 아브라함을 인하여 천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심에 의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통치 개념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왕국)’을 계시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왕국을 세우고 그 왕국의 수도로서 예루살렘 성을 세우고 그 안에 성전을 세운 것은 단지 이스라엘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천하 모든 민족이 들어오게 하시는 것에서 이다. 예수께서 수가 성에 사는 여인과의 대화에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 1:1)에 의한 유다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이다.
2. 구약 성경에서 보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에 대해 암시적으로 드러내 주시고 있는 것은 곳곳에서 보게 되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대한 믿음에 있어온 것을 말해 주시고 있는 기록은 그 사실을 말해 주시고 있는 신약 성경에서 이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11장 8-16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신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온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다. 아벨, 에녹,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해 준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 땅이 어느 곳에 얼마나 멀리 있는 곳에 있는지 알지도 모르는 채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다. 그는 그 약속으로 주신 땅에서 오르내리며 천막을 치고 나그네처럼 살았다. 이러한 나그네적인 삶은 훗날 하나님께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랬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유리하며 나그네로 살았으며, 그의 생전에서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것의 성취를 지극히 일부에서 보았습니다만, 그것에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곧 자신이 받은 약속에 의해 세워질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고, 그곳으로 자신을 데려다 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기다리고 살았다. 이는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열거된 모든 사람들에게서 보는 공통된 믿음이다. 이들은 단지 자기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 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다. 그들은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훗날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에서 건설된 ‘하나님의 왕국’ 이스라엘 나라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울 영원한 참으로 견고한 나라를 다윗왕과 약속하셨다.
그에 따라서 열거된 믿음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 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다. 그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곳이 참된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그리워하며 바라봄에 있었던 참된 고향은 하늘에 있는 것이었다. 만일 이들이 이 세상을 전부로 알고 여기에 젖어서 살고자 하였다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고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 역시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하늘의 도성을 만들어 두셨다.
이들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며 그 기다림에 있었던 것은 이곳이 단지 자신들이 돌아갈 참된 고향인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이 그곳을 원함에서 살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인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갈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녀들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룰 것이며 이들이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 곧 이것이 지시하는 참되고 영원한 나라에 있게 될 것을 믿는 믿음에 굳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믿는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구원자 예수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으로 하나님은 그 믿음에 끝까지 있게 해 나가셨다. 그에 따라서 이들은 조소당하고 매맞고 쇠사슬에 매여 감옥에 갇히고 믿음을 버리기 보다는 기꺼이 죽는 편을 택하고 원수를 피하여 광야와 산을 방황하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지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리고 하여도 죽음 너머로부터 올 참된 기쁨을 알고 이를 즐거워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구원자 예수에게서 그 전형(典型)을 둔다. 왜냐하면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올 기쁨을 아시고 그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셨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계신다(히 11:36-12:2).
구약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는 자나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기다림에 있으면서 이를 즐김에 있는 것은 우리 믿음의 근원자이시며 또한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전형을 따름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의 몸된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이것이다. (*)
..................................
1) Joel B. Green, Scot Mcknight, I. Howard Marshall, Dictionary of Jesus and the Gospels, 요단출판사번역위원회 역, 예수 복음서 사전(서울: 요단출판사, 2003), p. 1229.
2)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직접 언급되고 있는 것은 모두 32회이며, ‘나라’, 또는 ‘그 나라’라고 하는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지칭하는 단어까지 합하면 37회에 이른다.
3) 장석조, “누가복음 18:31-34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신약연구」제7권 제3호(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08), p. 401.
4) 창세기 14:18의 ‘살렘’을 예루살렘으로 가리킨 말로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도 알 수 있다. (1) 시편 76:2의 ‘살렘’은 분명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2) 기원전 14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아마르나 서판‘(Tell-el Amarna Tablets)에는 그 이름이 ‘우루살림’(Urusalim, 또는 Urusalimmu)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앗수르 어원으로 ‘평화의 도성’(city of peace)이란 뜻이다. 히브리어원은 “평화의 근원”(a foundation of peace), 또는 “평화의 보존”(possession)이다. “살렘”은 “평화”의 뜻이다. 김희보, 구약 이스라엘사(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89), p. 208.
5) 원용국, ‘구약편 성서고고학(서울: 성광문화사, 1979), p. 204.
6)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할 때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왕 아도니세덱이 있었다(수 10:1). 예루살렘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당시에 여부스 사람들이 살았으므로 그 이름을 '여부스'라고도 했다(수 18:28; 삿 19:10). 김희보, loc. cit.
7) ‘예루살렘’이 ‘여부스’로도 불려지는 것은 다윗 왕이 이곳을 점령할 때까지도 계속 있어왔다(대상 11:4). 한편, ‘예루살렘’은 ‘시온’이라고도 불려진다. 그것은 사무엘하 5:7에 “시온”이란 말은 예루살렘 성이 건축된 산을 의미하는 것에서 이다(대상 11:7). 다윗은 이곳 위에 세워진 요새 성읍을 정복하여 자기 거처로 삼았으므로 그곳 이름을 ‘다윗성’이라고도 불렸다. 다윗은 이곳을 밀로 쪽에서부터 빙 둘러 성벽을 쌓고 그 성읍을 재건하였다. 후일에는 예루살렘 도성이 확대되면서 시온산은 그 도성의 여러 언덕(hills)의 한 부분이 되었다.
8)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돌려 받게 되자(삼상 6:8) 벧세메스를 거쳐(삼상 6:14-17)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을 머물러 있었다(삼상 7:1, 2). 다윗은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하다가 그만 아비나답의 아들 웃샤의 죽음으로 인하여(삼하 6:1-3) 다윗이 여호와의 궤 모심을 두려워함으로 도중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그것을 두어 머물게 하고 있었는데 그 기간이 석달에 이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법궤를 시온산에 지은 궁전, 곧 다윗성으로 불리우는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왔다. 김희보, op. cit., p. 209.
'하나님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하나님 나라와 교회, 게할더스 보스,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0) | 2012.11.21 |
---|---|
[스크랩] 하나님의 나라 -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0) | 2012.11.21 |
[스크랩]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 그레엄 골즈워디 (0) | 2012.11.21 |
[스크랩]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 H. Ridderbos (0) | 2012.11.21 |
[스크랩] 하나님의 나라 G.E.Ladd (0) | 201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