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재림
이 교리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관심이 집중된 재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신약성경 전체 중에 오분의 일이 주의 재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추정하였다. 예수의 비유 네 개가 재림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재림을 강조하는 한 실례가 데살로니가전서에 있다. 바울은 주의 재림에 대한 언급으로 각 장을 결론짓고 있다(살전 1:10; 2:19; 3:13; 4:15-18; 5:23). 바울이 재림에 관하여 자주 언급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재림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입장을 바로잡기 위해서 데살로니가후서를 썼다. 사람은 신약성경을 읽기만 하면 반드시 초대교회의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 교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1. 주의 재림의 확실성 A. 어떤 사람들은 주의 재림을 의심한다. 아무 것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는 것보다 신약성경에서 더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없다. 이것은 진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크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 친히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베드로는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을 미리 말하였다. 사도는 말하기를,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한다"(벧후 3:3-4)고 하였다. 주께서 주의 재림을 늦추시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분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 45-51절의 비유에서 악한 종은 그와 동일한 잘못된 결론을 내린 후 영원한 슬픔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재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재림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려드는 자들도 있다. 종교지도자들의 한 부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게 될 때, 즉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분이 약속한 재림의 성취라고 믿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각 개인의 심령 속에 오실 때가 유일한 그리스도의 오심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또 다른 부류는 예수께서 1914년에 영적인 의미에서 오셨다고 고집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오순절 날에 성령을 통해서 재림하셨다고 가르친다(행 2장).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다. 예수께서 또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말씀하시면서 항상 그분의 교회와 함께 계셨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재림은 그분이 몸소 보이게 오는 것이다. B. 주의 재림의 증거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증거는 충분하다. 히브리서 10장 37절은 말하기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심지어 주의 초림보다 앞서 있기도 하다. 구역성경에서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단 7:13). 구약성경에서는 재림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다소 불분명하다. 이 위대한 사건을 분명하게 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몫으로 남겨졌다. 주의 재림에 관한 첫 번째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예수 자신에 의해서 예수는 공회에 말씀하셨다.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4). 이전에도 그분은 제자들에게 동일한 약속을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가장 사랑 받는 주의 약속은 요한복음 14장 3절이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승천하신 후 여러 해 후에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의 글을 통해서 이 소식을 세상에 재확신시켜 주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성경에서 바로 그 마지막 말씀은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이다. 예수께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하셨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2)천사들의 증언 사도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주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감람산에 서 있을 때에 흰옷 입은 두 사람의 출현으로 인하여 갑자기 그들의 생각이 세상 일로 되돌아왔다. 이 두 사람은 천사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이 말하기를,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고 하였다. 성경말씀들은 주의 재림 때에 천사들이 주와 함께 동행할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재림에 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들의 증거는 신뢰할만하다. 3)사도들의 증언 사도 베드로는 주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을 반박하면서 그것에 관하여 아주 강조하고 있다(벧후 3:1-14).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재림의 약속과 관련해서 주께서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멸망치 않고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참고: 행 3:19-21; 벧전 1:3-13; 4:12-13; 5:4).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많은 증인들의 목소리에 자기의 것을 보태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또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하기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고 하였고,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다"(요일 3:2)는 이 놀라운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 이상으로 주의 재림의 사실을 가르치고 기뻐하였다. 주 예수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은 바울이 언제나 그의 독자들의 마음을 그쪽으로 향하도록 했던 "복된 소망"이었다.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11)고 하였고, 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3-17)고 하였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참고: 행 17:30-31; 롬 2:16; 8:16-25; 13:11; 고전 1:7; 4:5; 11:26; 15:23, 50-52; 빌 2:16; 3:20; 골 3:1-4; 살전 1:9-10; 2:19; 3:11-13; 살후 1:7-12; 2:1-10; 딤후 4:6-8; 딛 2:13; 계 6:12-17; 14:14-15; 16:15-21; 20:7-15). 4)모형으로부터의 입증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을 장차 신약성경에서 나타날 사건이나 제도에 대한 그림자나 희미한 영상으로 가득 채우셨다. 이러한 예시들은 모형이라고 불린다. 이런 모형들의 상당수가 성막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막의 초대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히 4:14). 일년에 한번 속죄일에 아론은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하려고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곤 했다. 그런 다음에 그는 백성에게 되돌아와서 시은좌 앞에서 이루어진 속죄에 의해서 그들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확신시키고 그들을 축복하였다(참고: 민 6:24-26).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은 여기 이 땅의 시은좌 앞에서 우리를 위해 속죄하지 않으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내셨다"(히 9:24). 그리스도는 죄를 없이하기 위한 희생으로써 자기 자신을 드리셨고, 이제는 그의 소유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를 기다리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그리스도께서 이 모형의 첫 번째 부분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두 번째 부분도 완성하실 것을 확신한다. 5)주의 만찬의 증언 우리는 보통 주의 만찬을 갈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십자가처럼 주의 만찬도 두 가지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그것은 갈보리와 재림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표지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매 주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보여진 갈보리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 묵상하는 것처럼, 그는 또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자신의 완전한 구원을 고대해야만 한다. 매주마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들이 주의 재림에 일주일 더 다가갔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이것은 기쁨이 되어야 하며, 그들을 세상 끝까지 신실하게 붙들어줄 힘이 되어야 한다. 이 생각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이 짧다는 것과 잃은 영혼을 구원하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줘야 한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이 모든 확신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 사도 베드로와 더불어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그리고 그의 그 다음과 같은 충고를 기억하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2. 재림의 방법 성경은 주의 재림의 방법에 대해서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 주의 재림에 관한 몇 가지 기술들이 있다. A. 볼 수 있게 천사들이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사도들은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람산에 서 있었다. 그분이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을 때 그분의 발이 땅에서 들렸고, 그분은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셨다. 그분이 올리어 가실 때, 밝은 구름이 그분을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였다(눅 24:50-51; 행 1:9). 사도들은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분이 떠나 하늘로 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분이 가시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성경은 동일한 방법으로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계시록 1장 7절은 말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사람은 그분의 오심에 관해서 추측할 필요가 없다. 예수는 그것에 관해서 이러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지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분을 볼 것이다. B. 구름을 타고 구름은 항상 하나님의 구속사역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서 시내산에 임하셨다(출 24:16). 하나님은 또한 변화산에서도 구름 가운데서 임하셨다(마 17:5).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다(출 13:21). 시편 104편 3절은 하나님에 관해서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구름 가운데서 떠나셨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이다.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어떤 이는 말하기를 밝은 뭉게구름을 하늘에서 볼 때마다, 그는 주의 얼굴을 보려고 무의식적으로 구름을 살피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구름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말없이 상기시켜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C.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것은 정복하는 왕의 승리의 행진이 될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살전 4:16). 데살로니가후서 1장 7절은 말한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것이다." 예수께서 초림 때에는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셨다. 그분은 세상 사람 대부분이 보지 못한 가운데서 조용히 강림하셨다. 재림 때에는 왕으로 오실 것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 것이다. 그분이 초림 때에는 비천하게 오셨으나 재림 때에는 영광스럽게 오실 것이다. 그분은 하늘의 무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그분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승리의 입성"이라고 부른다. 그분의 재림은 진실로 이 땅으로의 주님의 "승리의 재입성"이 될 것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큰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강림하실 것이라고 말한다(살전 4:16). 이것은 "호령" 또는 "소집하는 큰 외침"으로 번역된다. 이 큰 소리나 외침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어떤 이는 그것이 예수와 함께 내려오는 하늘 무리의 큰 소리라고 생각했다. 이 성구는 또한 "천사장의 목소리"나 "천사장의 부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천사장은 구원받은 무리들이 그들의 구원자와 합류하도록 부르고 있는 것일 것이다(마 24:31). 이것은 분명히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 있게될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님의 나팔로써 예고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것을 "마지막 나팔"이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2). 천사장의 소리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부를 때에, 나팔은 성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기 위해서 사용될 것이다(참고: 요 5:28-29). 그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해서"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질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살전 4:17). D. 물질세계의 격동 중에 지구 자체가 그것을 만드신 분의 오심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 . . "(마 24:29-30). 로마서 8장 19-22절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새로운 자유를 즐기게 될 때를 고대하고 있다고 기술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베드로가 언급한 새 땅에서 실현되어 질 것이다(벧후 3:13). 3. 주의 재림의 시기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승천하신 이후로 사람들은 줄곧 주의 재림의 때를 생각해왔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자기들 생전에 오실 것을 매우 확신하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직업을 그만 둔 것으로 보인다(살후 2-3장).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주의 재림의 날을 1843년으로 정하였다. 찰스 러셀(Charles T. Russell) 목사는 재림이 1914년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분명히 이 모든 날들은 잘못된 것이었다. 몇 년 전에 워싱턴 D.C.에 있는 우정공사총재의 특별보좌관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하라고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그 특이한 요청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였다. "만약에 당신이 그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말해준다면 발행에 착수하겠오." 그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신문들이 그 사건을 보도했을 때, 우체국은 그 시간과 장소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수많은 신문 구독자들로부터 십여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우표는 결코 발행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날짜들이 1961년 7월부터 2061년까지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었다. 성경은 주의 재림의 확실성에 관해서 매우 분명하다. 계시되지 않은 단 한 가지는 주의 재림의 시간이다. 주께서는 재림의 날짜를 정하는 이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면 틀림없이 그 어떤 사람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사람이 알아야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주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다. 4. 주의 재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하다는 관점에서, 이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진실로 이 교리를 믿는다면, 그것이 그의 생활과 생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의심할 것도 없이 재림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냉담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는 재림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은 진실로 믿어진 이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많은 복된 변화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그 복된 변화를 가운데 몇 가지가 있다. A.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바울은 디도에게 권고하기를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고 하였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2-13). 베드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요한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요한일서 2장 15-17절에서 말하고 있다. 요한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는" 때인 재림에 관해서 말할 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였다. 이것은 재림의 교리에 대한 논리적인 반응이다. 만약에 "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이 태워 없어질 것"이라면, 사람이 하나님께서 멸망에게 넘겨주신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뚜렷하게 갈라서도록 지시 받는다. 신중한 사람이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주받은 건물에 접근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도들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을 향하고 있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멸망 받기로 예고되어졌다는 것을 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20-37). [Fred O. Blakely, The Apostles' Doctrine, Volume, I, p. 159.] B. 개인적인 거룩함 베드로는 말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요한은 동일한 원리에 따라 논하면서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3). 이 소망에 관한 실천적인 적용으로서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부정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모든 세속의 정욕을 거절하는 것이어야 한다. 긍정적으로는 우리가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면서 이 현세에서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딛 2:12-13).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측면들을 위한 동기이다. 몇 가지 측면들은 다음과 같다. 1)진실함 바울은 빌립보인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빌 1:10-11) 구하였다. 2)근신함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상기시켰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 . .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2,6). 분명히 이런 맥락에서 근신이란 말은 술취하는 것에 반대되는 뜻으로의 근신을 의미한다. 사람이 주의 재림의 위대한 순간에 술에 취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주께서도 이 무서운 죄에 대하여 경고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그분이 오실 때 그런 상태로 발견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의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은 근신할 것이다. 3)이타성(친절, 인내)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고 권면하였다. 4)참을성 히브리서 저자는 말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6-37). 이 인내는 확고부동함이며, 끝까지 참는 것이며,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동일한 맥락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과 박해를 참으라고 촉구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5)신실함 주의 오심은 교회 즉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장로들에게 신실함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4). C. 깨어있음 적어도 50회 이상 신약성경은 교회에게 주의 재림에 대비하여 깨어있으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4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막 13:37). 베드로는 주의 말씀에 화답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벧후 3:12. 비교: 눅 21:7-36; 빌 3:20-21; 고전 1:7; 살전 1:10; 살후 3:5)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깨어있음은 믿음을 가리킨다. 그는 주의 오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깨어서 기다린다. 깨어있음은 주의 오심의 고대를 가리킨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시는 구세주의 재림의 "그 복스러운 소망"을 진심으로 고대할 것을 권고 받는다(딛 2:13). 이 구원의 고대는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 용기를 주고 흔들리지 않게 한다. 알렉산더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은 묻는다. "만약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백보좌와 하늘과 땅이 그 보좌에 앉으신 자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들 마음의 눈앞에 선하게 비치고 있다면, 어떻게 그들이 동물적인 방종의 진창가운데서 뒹굴 수가 있겠는가?"[Fred O. Blakely, The Apostles' Doctrine, Volume, I, p. 162.] 대답은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실 축복과 상급 때문에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다"(롬 12:9)는 것이다. D. 일함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실하고 충분하게 말씀을 가르치도록 권하였고,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그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애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 ."(딤후 4:1-2). 예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에서 달란트를 사용하는 동기는 주께서 돌아오시면 회계를 요구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깨어 기다리는 종들과 지혜 있는 청지기의 비유는 말한다.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눅 12:43). 우리가 우주의 심판주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분이 "잘하였도다."라고 칭찬하는 것을 듣고 싶어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이 "잘하였도다."라고 칭찬하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을 수가 없다.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생전에 예수께서 오시기를 고대하고 기대해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주의 재림에의 기대는 그리스도인들을 움직여 의롭게 살게 하고, 신실하게 깨어있게 하고, 부지런히 일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오시는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어느 황금빛 새벽녘, 예수께서 오실 것이다. 어느 황금빛 새벽녘, 모든 싸움을 이겼다. 그는 승리를 외칠 것이다. 푸른 창공을 가를 것이다. 어느 황금빛 새벽녘에 나와 그대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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