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복음과 한국종교와의 만남 김경재

하나님아들 2022. 9. 24. 15:31

해석학과 종교신학

복음과 한국종교와의 만남

Hermeneutics and Theology of Religions

Christianity and the encounter of Asian religions

(김경재, 한국신학연구소, 1994.)

요약 : 이병일(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 종교신학의 개념

1.1 문명전환기의 문화선교적 과제 : ① 고도로 발달한 자연과학 문명과 종교와의 새로운 관계정립과 상호이해의 문제 ② 종말적 위기상황에까지 이른 자연의 오염과 생태계 파괴라는 현실 앞에서, 그리고 날로 가중되어 가는 물신숭배적 향락의 시대조류 속에서 교회가 창조신앙을 새롭게 정립하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선포하며 실천하는 선교과제 ③ 다양한 가치와 진리체험들이 서로 만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다원사회 속에서, 삶의 다양성과 다원성에 대한 긍정적 개방 자세를 지님과 동시에, 그리스도교 복음의 고유성과 자기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는 일. / 종교란 인간 정신적 삶의 특수기능에 관련된 삶의 일부가 아니라, 그것의 모든 "깊이의 차원"이며 "종교란 문화의 실체(substance)이고 문화는 종교의 표현된 형식(form)이다." 따라서 문화신학이란 "하나님 선교" 신학의 구체적인 한 형태로써 문화 속에 내포되고, 문화현상으로 표현되는 인간 공동체의 궁극적 관신을 복음진리의 빛으로 분석하고, 복음의 생명력으로 새롭게 변화시켜, 문화의 형태와 형식 속에 거룩한 것을 육화시켜 담지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삶이 聖俗一如한 형태 속에서 자유, 정의, 사랑, 아름다움, 조화, 충만, 숭고함, 창조적 새로움 등이 넘치는 문화적 삶이 되도록 돕는 선교적 노력이다.

 

1.2. 종교다원 사회 속에서 종교신학의 과제 : 종교신학은 세계 종교현상들에 관한 신학적 이해 로서, 세계사 속에 현존하는 다양한 종교들이, 성서가 증언하는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계 구원경륜과 어떤 관계와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안에서 세계종교의 구원체험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보다 넓고 깊은 진리체험을 하도록 도와주며 성숙시킬 수 있는가를 검토하면서 교회를 봉사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한 영역이다. / 종교학과는 달리 종교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진리와 은혜와 생명의 실재를 모든 체험과 가치판단에서 해석학적 이해 관점으로 삼는다. 따라서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진리체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과 나의 신앙고백에 성실하는 것(commitment) 그 두 가지 양극이 종교신학에서는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 비교종교학과는 달리 종교신학은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해 왔고 지금도 현존하는 진실한 세계종교들을 유일하시며 진리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경륜, 영적 현존의 다양한 형태로 이해한다. 따라서 종교신학에서는 하나님이 경륜해 오신 우주적 종교에 대한 개방성과,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적 참여는 갈등적 관계이거나 양자택일할 선택 강요적 문제가 아니다.

 

2. 현대 해석학 이론과 종교신학

2.1. 서론 : 폴 틸리히의 상관의 방법론 ,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지평융합  이론, 그리고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  이론은 현대 해석학 이해이론으로서 종교신학의 기초이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해의 주체와 이해의 대상, 해석자와 텍스트, 그리고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서로 독립된 실체일 수 없고, 상호의존적·상호공속적·상호조명적인 해석학적 순환  구조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삶 자체는 선험적으로 불변하는 실체로서 또는 완성된 정신적 실체형태로 존재하는 초월적 정신 주체의 활동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것들과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하나의 해석학적 과정이다. 따라서 해석학은 우리 삶의 과정 자체에 대한 이해이론이며 인간의 존재양식에 대한 보다 깊은 자기 성찰이기 때문에, 종교신학의 성실한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과정이다.

해석학과 종교신학 - 김경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병일

 

 

2.2. 틸리히의 상관방법론과 역동적 유형론

# 틸리히의 상관방법 의 해석학적 의미 -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학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진리를 진리를 진술하고, 모든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 이 진리를 새롭게 거듭 재해석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신학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 메시지와 인간 상황의 양극을 오가는 변증법적·상관적 관계이다. / 여기에서 상황'이란 인간 실존이 스스로를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인간학적으로 대상을 접촉하고 파악/이해하기 전에 구체적인 시공간 안에서 이미 스스로 자기를 선파악하는 실존의 창조적 자기 해석의 총체 이다. 인간은 특정한 시대와 구체적인 삶의 표현으로서의 형태들과 상태 안에서 자기를 세계-내-존재 로서 이해하며 현존한다. /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수단인 언어'는 인간의 상황을 구성하고 가능케 하는 본질적 요소이고, 인간의 창조적 자기 해석 을 가능케 하는 존재론적 지반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위한 매개체이다. 신학은 이 언어의 투명성 과 언어의 계시적 힘 을 전제로 하여 상황과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진리를 상관시켜야 한다.

# 그리스도교 불변적 진리로서 복음과 케리그마 - 그리스도교 메시지인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알리는 궁극적 계시 가 나타났고, 그의 생명 안에는 모든 사람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존재의 능력 이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서 궁극적'이라 함은 결정적이고 성취적이며 능가할 수 없음을 의미하므로, 궁극적 계시는 모든 다른 것들의 판단척도가 된다. 그 케리그마의 핵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삶, 특히 십자가와 부활사건 그리고 성령강림사건을 통하여 계시된(행 2:14-36) 인간과 세계 구원의 진리이다. / 변증'(apologetics)은 이 진리를 세상 속에서 변호하고, 그 진리됨을 강력히 주장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종교적 진리주장의 보편성은 자기 자신의 근거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의 근거를 위해서 정신적 자유를 지향하는 개방성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과 메시지는 서로 상관관계 속에 있다.

# 상관의 방법과 해석학 - 문화신학 - 틸리히의 상관의 방법에 있어서 상관'은 구조적 전일성 안에서 사물과 사건의 진정한 상호 의존성이다. 변증적 신학은 대답하는 신학인데, 이 신학은 영원한 메시지의 능력 안에서, 그리고 상황에 의해서 제공된 수단을 가지고서, 상황 안에 내포된 물음에 대답한다.  상관의 방법은 메시지와 상황을 통전시키고 불가분리적 관계 속에 있게 한다. 상황은 궁극 이전의 관심들로서 구성되어 있으나, 궁극적 관심이 되는 영원한 메시지와 거룩한 구원의 능력의 담지자 또는 운반자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 - finitum capax infinitum  / 상관의 방법에서 계시'는 어떤 일련의 계시적 사건에 참여하고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해석학적 이해와 체험의 사건이다. 성서 자체가 성서 기자들의 상황과 계시적 사실들과의 만남에서 발생한 계시적 사건에 대한 문서적 또는 구어적 증언이요 그 증언의 전승이듯이, 비그리스도교 문화권 안에서 선교가 일어날 때 같은 해석학적 사건이 발생한다. 만약 인간의 종교-문화 안에 성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어떤 준비도 없다면 그 메시지는 이해되지 아니하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것이다. / 틸리히에게 있어서 선교 원리의 빛 은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이다. 그의 문화신학의 과제는 모든 문화적 표현들과 형식들 안에 내포되어 있는 궁극적 관심의 본질과 특성을 분석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궁극적 관심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 의 빛으로써 그것들 위에 조명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존재의 빛으로 조명하고 성찰한다 는 말은 각각의 종교-문화의 표현들 속에 내포된 궁극적 관심 의 유형적 특성을 비교/대화/상호조명함으로써 인간의 삶의 지평이 보다 온전하고 통전된 삶을 지향하면서 확대심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 틸리히가 그의 신학적 방법론 및 그의 신학적 해석학의 원리로서 상관의 방법 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메시지를 인간 실존에 전달하는 방법론적 접근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학사가 범한 오류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 세 가지 부적합한 방법은 개신교 전통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이 취하는 초자연주의적 방법 ,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취하는 자연주의적 방법  또는 인본주의적 방법 , 중세 스콜라 신학과 네오토미즘이 취하는 자연-초자연의 이원론적 방법 이다. / 틸리히의 상관의 방법은 매우 변증법적이고 해석학적이다. 변증법적이라 함은 그가 상관시키는 양극적 실재들 곧 이성과 계시, 존재와 하나님, 실존과 그리스도, 생명과 성령, 그리고 역사와 하나님 나라가 각각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상호 동태적 운동 속에서, 상호 대화적 관계 속에서 해명되고 있다는 뜻이다. 해석학적이라 함은 상관관계 속에 있는 대극적 실재들이 상호 공속적 운동 속에서, 상호 의존적 순환관계 속에서, 상호 침투적 통전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해석학과 종교신학 - 김경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병일

 

# 종교사의 의미 - 틸리히는 신학의 미래, 곧 그리스도교 선교의 새로운 지평과 새로운 형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세계 속에서 살아 숨쉬는 위대한 다른 세계종교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계시 실증주의 , 성서 절대주의 , 모든 형태의 환원주의 를 비판하면서 다음의 신학적 명제들을 주장하였다. ① 종교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곳 그 어디에서나 사람에게 주어진 그 무엇(계시나 구원)에 근거하고 있다. 모든 종교들 안에는 계시적 힘과 구원의 힘들이 있다. ② 계시는 유한한 인간(인간의 소외성) 상황 안에서 인간에 의해 받아진다. 종교가 목적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면, 계시는 항상 왜곡된 형식 안에서 받아질 뿐이다. ③ 인간 역사를 통하여 불특정한 다양한 계시적 경험들이 존재한다는 종교현상만이 아니라, 인류의 종교사 안에는 계시적 경험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 가운데서 적응에 실패하거나 왜곡된 종교들은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극복되어 간다. ④ 인류의 종교사 가운데서 어떤 중심적 사건 이 있을 수 있다. 그 사건은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며, 계시적 체험들이 진행되어 가는 종교사 안에서 형성된 모든 비판적 발전의 긍정적 요소들을 통합/통전한다.  ⑤ 본질적으로 종교사와 문화사는 나란히 병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스러운 것은 속된 것의 곁에 별도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the sacred)은 속(the secular)의 깊이의 실재이다. 이 진술들은 종교사가 신학자나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의미를 지니려면 받아들여져야하는 전제요건들이다.

# 종교간의 대화 - 역동적 유형론적 접근(dynamic typological approach) -  유형'이란 여러 사물들을 분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 정신능력이 사물의 공통적 특성이나 기본적 원리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이상형이다. 종교의 유형적 특성'은 특정한 구체적인 종교를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그 종교의 근본적 특성, 또는 원리들을 말한다. 유형론'은 어떤 사물과 실재를 다른 것과 구별하여 파악하는 데 편리하나, 어떤 실재가 가지고 있는 존재능력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파괴해 버리는 위험이 있다. 틸리히의 역동적 유형론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 여기에서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을 특징짓는 유형적인 특징적 요소들은 그것들 자체가 모두 성스러운 것 이며, 모두가 궁극적 실재 를 체험한 구체적 반응형태들이다. 특정 종교들을 존재하게 했던 힘들, 종교유형을 결정하는 요소들, 그것들은 거룩한 것의 본질에 속하며, 인간의 본질에 속하며, 우주 및 신성의 자기현현적 계시의 본질에 속한다. 따라서 종교간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해 당 종교의 유형적 요소들이 역사적으로 한정된 어떤 형태 안에서 구현된 현상적 구현체가 아니라, 바로 유형적 요소 그 자체이어야 한다. 즉 종교는 종교를 종교되게 하고 종교로 표현되게 하였던 신앙'과 구별해야 한다. / 틸리히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유형론적 특성을 총괄적으로 드러내는 종교적 상징이 하나님 나라 와 열반 으로서, 그 둘은 서로 다른 두 형태의 목적지향적 총괄 상징어(telos-formulars)가 될 수 있다. 모든 종교들은 존재론적 양극성 을 자기 안에 모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니르바나 상징이 드러내는 유형적 특성들을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종교간의(inter-religious) 대화  는 종교내의(intra-religious) 대화 로 발전해야 하고, 그것은 마침내 자기 안에서와 자기가 귀의하고 있는 종교 안에 잠재적으로 있는 존재의 양극성과 거룩자의 양극성을 이해해 가는 지평의 확대 심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종교간의 대화는 역사적으로 구체화된 두 종교 교리를 비교하는 작업이 아니라, 두 종교의 유형적 특성으로 드러난 궁극적 실재의 다양한 얼굴들이, 내가 귀의하는 종교 안에 이미 존재하고, 인간의 원형적 본질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 틸리히의 상관의 방법 과 역동적 유형론 은 종교다원적 현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종교신학을 돕는데 신학적 해석학의 근거와 원리를 제공해 준다. 특히 상황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상황과 메시지간의 진정한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해명은 높이 재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종교간의 대화에 접근하는 태도로서 역동적 유형론 은 여러 고등종교가 살아 숨쉬고 있는 한국의 문자-종교적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해석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2.2. 가다머의 지평융합 론과 영향사 의식  

# 인간의 세계경험 과정으로서 해석학적 과정 - 가다머의 해석학 이론은 인간의 존재양식을 투명하게 해명해 주는 인간 현상의 존재론적 구조와 그 토대를 해명해 준다. 그의 해석학은 텍스트나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이해의 기술론임을 넘어서, 인간과 세계와 존재가 해명되는 과정 곧 진리가 드러나는 과정에 대한 이론이다. 경전과 전통을 이해하는 이해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삶의 통찰력은 심화확대되고 진리가 새롭게 현시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며, 경험된 진리의 힘 안에서 소외된 생

해석학과 종교신학 - 김경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병일

 

명은 실천을 통해 변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삶의 행동과 사고는 독특한 해석학적 이해의 사건이며, 이해의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참여적 사건이다. 이해란 선험적으로 독립적 실체인 자율적 자기의식이 방법론적으로 기술을 발휘해서 객관적으로 자기와 대결하고 있는 대상물을 포착/조정/요리하는 자기의식의 주체적/능동적 정신활동이 아니다. 인간은 세계를 환경으로서 갖고 사는 존재가 아니고 인간의 해석학적 반응과 해석학적 경험의 방식이 세계를 구성한다. 이를 인간의 해석학적 존재양식이라고 한다. 역사적 전통과 생명의 자연적 질서가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세계의 통일성을 구성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적 전통을 경험하는 방식과, 우리 존재와 세계의 주어진 소여성을 경험하는 방식이 진실로 해석학적 우주를 구성하고, 그 해석학적 우주에서 인간은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의 기초는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로서의 인간현존 이해, 언어의 존재론, 근대적 주관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역사성에 대한 깊은 이해 등으로서 구성되어 있다.

#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 - 후설의 인간이해는 초월적 주체성으로서의 의식 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반하여,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은 인간을 역사성과 시간성 안에 있는 자로서 즉 세계-내-존재 로서 파악한다. 하이데거의 영향 하에 있는 가다머의 현존재의 해석학 은 인간존재를 선험적인 주관적 순수의식으로서 파악하지 않고 세계-내-존재 로 파악한다. 여기에서 세계'는 주관이나 객관을 앞서 있는 있는 그 어떤 것이며, 우리의 삶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의미가 그 안에서 이해되고 생성되는 삶의 그물망이며, 매우 포괄적인 생활세계의 의미연관구조의 총체적 맥락이다. 세계는 이해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실존적 삶의 존재구조이고, 이해는 세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가능하기 때문에 세계는 모든 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이다. 세계와 이해는 바로 인간 존재가 인간으로서 현존하는 데 있어서 불가분리적인 존재론적 모델이며, 인간임을 구성하는 구성인자가 된다. 세계인 생활세계 는 인간의 모든 경험과 이해의 지반이며 동시에 질료이다. 따라서 인간을 세계-내-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근대철학의 주체주의(SUBJECTIVISM)를 거절하고 인간을 철저히 시간성/역사성/과정성/관계성에서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시간성과 역사성은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듯이, 인간은 역사적 실재에 의해 형성되고 영향받는 존재라는 말이다.

# 이해의 조건으로서의 선판단 -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의 선판단은 인간 존재의 역사적 실재성 을 의미하며, 선판단 혹은 전이해는 이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순수 객관적인 해석 또는 아무 전제가 없는 무전제의 해석은 없다. 선판단, 전이해, 또는 선입관이나 전제가 완전 배제된 순수 정신상태란 공허하고 추상적인 것이며,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이해나 해석이 불가능하다. 부당한 권위적 전통은 비판적 이성에 의해 극복되어야 하지만, 타당한 선판단과 살아 있는 합당한 전통은 정당하게 긍정하고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해의 선구조는 주관-객관의 이분론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있는 생활세계와 가치세계의 의미연관 구조에 기초하고 있다. / 선교'란 기존 문화를 완전히 뽑아 내버리고서 그 자리에 그리스도교 문화 또는 종교를 이식시키는 종교 대치작용 행위이거나 종교문화 이식행위가 아니다. 선교란 복음이 전하는 그리스도교의 진리체험을 이해의 선구조 안에서. 그것과 함께, 그것에 의해서 이루어 가는 새로운 삶의 체험이다. 의미있는 새로운 삶의 경험지평이 확대심화되는 과정이 선교이며, 그 경험의 원초적 경험자료를 성서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의 힘이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해의 선구조 자체는 결코 고정되어 있는 불변적 실체가 아니며 정태적 형식도 아니라, 이해의 선구조 자체는 경험의 지평 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것, 삶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근본적 패러다임이다.

# 영향사적 의식 - 이해는 인간 그 자체의 존재방식이다. 이해와 해석의 과정에서 방법은 목적에 이르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진리 그 스스로 인간의 해석학적 과정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진리의 은폐성이 벗겨지면서 실재는 투영하게 되고, 삶은 더욱더 풍성하고 충만해지는 창조적 과정을 계속한다. 인간 존재 방식 자체가 해석학적 과정이며, 해석학적 이해의 연속동작이라고 할 때, 인간은 언제나 삶과 실재를 조망하는 어떤 지평 안에 있다. 지평'이란 특정한 관점으로부터 보이는 일체의 것들을 포함하는 視界範圍이다. 지평은 인간의 시각적 조망능력과 그 한계를 동시에 함축하는 시각기능과 관련된 은유이다. 그러므로 지평은 유한한 인간 존재의 진리체험과 진리인식의 한정된 범위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전망범위의 확장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매우 탄력적 은유이다. 인간의 삶과 사물이해의 어떤 지평을 갖는다는 말은 인간실존의 유한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지평의 한계를 부분적으로 이미 넘어서고 있으며 미래적 가능성과 지평확대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지

해석학과 종교신학 - 김경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병일

 

평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그 지평의 깊이와 넓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매우 역동적인 것이고, 인간이 소유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인간을 구성하는 구성요소 자체이다. 지평은 이해 자체가 곧 지평들의 만남과 융합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해란 곧 지평융합 이다. / 이해이론을 중요하게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종교간의 심층적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류 정신사의 창조적 변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해석학이기 때문이다. 이해의 과정 가운데에서는 항상 지평의 융합이 발생하는데, 모든 지평들은 역사적 지평들로서 낙인찍혀 있고, 새로운 지평의 형성과정 속에서도 항상 영향사적 의식 (the effective-historical consciousness)이 작용하고 있다. 참된 역사적 객체는 온전한 객관적 객체가 아니고, 역사의 실재와 역사적 이해의 실재간의 관계성의 통일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을 이해하려는 이해자의 이해행위 안에 이미 역사적 영향이 작용하고 있는 이해지평을 갖는다. 여기에서 이해는 사실 과거 역사적 지평과 현재 역사적 지평과의 만남이요 두 역사적 지평의 융합과정인 것이다.

# 존재의 언어성 - 철학적 해석학의 가장 신비한 핵심문제, 곧 이해가 이루어지는 존재론적 근거는 언어성'(linguisticality)이다. 이해가 가능하고 지평융합이 일어나는 가능성은 존재 자체의 언어성 때문이며,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극복하고, 서로 다른 역사적 지평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융합하면서 대화적 삶이 가능한 것도 존재의 언어성 때문이다. 언어성은 존재론저인 것이요, 인간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발명해 낸 도구가 아니다. 그 언어능력은 언어를 통하여 계시된 것에 의해 포촉된 것의 수단이다. 말과 언어가 사물을 싸는 포장지 같은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인간이 고안해 내고 약속에 의해 확정한 기호체계가 아니라, 반대로 사물이, 말과 언어 안에서 비로소 존재로서 드러나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가다머는 언어가 본래적으로 지닌 비도구적 성격, 존재와 진리를 현시해 내는 본래적 언어의 힘을 강조한다. 언어란 이해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매우 포괄적인 현상이며 언어 안에서 이해와 사유가 가능하고 발생한다. 모든 이해는 일종의 해석이며, 모든 해석은 언어의 매개를 통해 발생하며, 언어의 매개성은 대상을 말로서 나타나게 하고 동시에 해석자 자신에게 말을 허락한다. 이는 언어의 포괄성과 언어와 이해, 그리고 언어와 사유와의 불가분리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아의 주관적 의식 이전에 존재의 일부이다. 언어는 자아의 주관적 주체성이 만들어 내는 도구가 아니라 거꾸로 언어성이 인간에게 하나의 주체적 자아성을 갖게 한다. / 여기에서 언어성은 세계의 언어성 혹은 존재의 언어성으로서 로고스이다. 사유함과 말함의 동시성과 불가분리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존재의 언어성은 인간의 사유하는 이성의 힘과 말하는 능력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언어성 곧 로고스는 사유와 말보다 더 근원적인 신비이며, 이성과 말을 뛰어넘는다. 인간들 사이에 의사 소통으로서의 말과 글이 있기 전에 말행위를 가능케 하는 존재론적 언어성 곧 로고스가 있었다. 언어의 일차적 기능은 사물을 지시하는 지시기능에 있지 아니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계시적 기능에 있고, 세계-내-존재인 인간에게 바로 그 세계를 드러내서 현시해 준다. 세계나 언어는 개인을 넘어서 있는 초개인적인 것이고, 의미 연관구조로서 형성된 삶의 상호 작용영역을 만들고 세계를 가능케 하는 모든 사물과 인간들의 공통지반이다. 언어성은 사유의 가능성이고 사유의 합리적 이법이다. 모든 인간들이 존재론적으로 존재의 언어성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문화 양태와 역사적 경험상태가 다른 인간상호간의 이해가 가능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형성된 텍스트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진리체험을 전하는 선교행위가 가능하다.

# 내적 말씀  - 언어 안에 있는 이와 같은 존재론적 성격은 구체적으로 언표된 말이나 쓰여진 글을 넘어서고, 또한 앞서 있기 때문에 신앙체험은 내적인 말씀 교리 와 성령의 내적 증언의 교리 를 말해 온 것이다. 내적인 말씀도 들리거나 보이는 언어형태를 취하지 않았을 뿐 말씀의 한 존재방식이다. 내적인 말씀은 말이 지니는 계시의 매개체로서 기능의 변증법적 성격을 나타낸다. 말은 계시의 매개체이면서 인간의 말 그 자체가 계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글자 그대로의 실증적인 계시된 말씀이 아니다. 모든 경전의 말은 인간의 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한다. 곧 경전의 말씀은 신적 계시성을 담지한다. 내적 말씀'은 계시의 매개체로서 일상 언어에 대한 부정의 표현이다. 내적 말씀을 침묵, 명상, 관상 가운데서 듣는다는 것은 이미 거기에 말과 글을 통해서 밖으로 나타난 언어는 없을지라도 이미 거기엔 언어가 있다. 언어성은 존재의 지반이며 인간 세계의 근원적 가능성이며, 그의 존재론적 근거임이 명백하다. 성령의 내적 증언 이라는 교리의 참 뜻은 텍스트의 바른 이해는 인간 의식의 주체적 자아의 방법론적 탐구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해석학과 종교신학 - 김경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병일

 

형성하게 했고 텍스트를 이해하게 하는 힘이 해석자의 주체적 자아의식의 능력을 넘어서, 해석자와 이해자의 상호관계보다 더 근원적인 로고스의 자기 계시적 언어의 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적 증거 교리와 내적 말씀의 교리는 다 함께 모든 대화와 이해의 존재론적 기반으로서의 존재의 언어성의 신비와 그것이 직접적 포괄성을 말하고 있다.

# 지평융합으로서의 종교간의 대화와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 -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이해의 해석학'이다. 이해'는 하나의 역사적, 변증법적, 언어적 사건이다. 해석학'이란 이해의 존재론이요 이해의 현상학이다. 이해란 인간의 주체성의 행위가 아니라 세계 안에 있는 현존재의 기본적 존재방식으로서 파지되어야 한다.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조작과 조종이 아니라, 참여와 개방성이며, 지식이 아니라 경험이며, 방법론이 아니라 변증법이다. / 종교간의 심층적 대화는 경계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삶의 성숙을 위한 불가결한 과제이며, 그것은 곧 지평융합의 과정이다. 지평융합'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것들 즉 공통지반을 가진 것들을 수렴해 가는 단순확장 과정이 아니라 훨씬 더 변증법적이고 역설적인 삶체험의 질량적 확대심화 과정이다. 동질성의 인지와 차이성의 인지는 상호 변증법적이다. 무엇인가 진리체험 방식에서 차이성, 특수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이미 이해지평의 확대과정이다. / 하나님은 동질성과 차이성의 존재론적 지반이다. 인간은 항상 세계 개방적이고, 세계는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을 향해 개방적이다. 인간은 세계 개방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해 개방적이다. 종교의 구원체험과 삶의 지평이 다양한 것은 삶의 의미 연관구조 총체로서의 세계의 다양성 때문이지만, 세계의 다양한 얼굴들은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 언표불가능한 공, 또는 무에 정초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교간의 차이성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가능하고, 서로 대조적인 유형적 특성들간에도 지평융합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계경험 및 언어성의 존재론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구체적인 구성인자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세계를 경험하는 그릇이나 거울을 만드는 재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매개적인 직접성 속에서도 체험되는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을 항상 규정하고 초월한다.

 

2.4.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

# 패러다임 전환의 해석학적 기능 - 쿤의 패러다임 개념과 패러다임 전환 이론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인식론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해석학적 문제의 핵심을 우리에게 제시하였다. 과학의 획기적 발달과 진보가 통상적인 상식적 이해와는 배치되는 형식, 곧 앞선 시대의 과학적 업적들의 점진적 누적의 결과로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형태로 발생한다. 기존의 자연과학적 법칙으로써는 설명이 안되는 변칙적 현상들이 자연 안에서 자부 발견됨으로 인해서 야기되는 본질적 위기 극복은 기존 패러다임의 수정이나 보완 또는 더욱 전문화된 연구로써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틀의 출현 곧 패러다임 전환 으로써만 극복된다.   패러다임'이란 하나의 수용된 모형 또는 유형으로서 한 과학자 집단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이며, 그리고 과학자 집단은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패러다임을 특정 집단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 가치 기법 등의 구성체 라고 이해할 때, 패러다임은 세계관, 실재관, 신앙관이라 할 수 있으며, 사물과 가치들의 세계를 일정한 틀과 형에 맞춰서 인지하는 해석학적인 이해의 틀 을 말한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향과 그 방향에서 세계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종의 의미연관구조의 형태이다. 정상과학'은 과학적 업적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서 권위있는 과학자 집단이 연구사업의 기초로서 인정한 과학적 정설과 응용사례들의 집합체인데, 정상과학을 지배하는 집단의 소신이 확고하면 할수록, 그 경우 과학은 과학임을 이미 그치고 도그마가 된다. 패러다임은 일정 기간 동안 그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자 집단에게 과학의 방법론, 문제영역, 해결기준 등을 규정해 준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연구에 종사하는 세계를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세계가 패러다임의 변혁과 동시에 변화하지는 않지만 과학자는 그 후 다른 세계에서 일한다.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그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이전 시각적, 개념적 경험이 그에게 보도록 가르친 것에도 의존한다.  이는 그 의미에 있어서 전이해나 영향사 의식과 통한다. 결국 자연과학자들의 자연이해도 어떤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적으로 제한받으며, 특정 시대의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에 의해 구성된 해석된 자연이해이다. 그리고 한 과학자가 책임있는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패러다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과학자가 받아들인 패러다임은 자연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방법과 이해범위와 탐구의 도구까지 규정한다. /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써는 설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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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변칙적인 사례들이 반복되거나 누적되면서,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의 정합성에 의심이 가고 그 권위가 붕괴되면서 꾸준히 진행될 수도 있고 홀연히 천재적 과학자의 발견이나 발명에 기인할 수도 있다. 종교적 회심과 같은 특성을 지닌 패러다임의 전환은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듯 , 직관의 섬광처럼  발생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인해 해석의 틀이 새롭게 바뀌어지고, 자연을 바라보는 발상법과 관점이 새로워졌다. 그러나 기존의 패러다임이 지니고 있는 문제 해결의 방법과 이론 중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많은 것들은 지속되고 보존된다. 동양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때, 인간의생명이 생명의 주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고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써 살게 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분리적인 유기체적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는 통찰은 그리스도교의 성서에서보다는 기존의 종교들의 패러다임에서 배운 것이다.

# 패러다임 전환 이론의 신학적 적용 - 월등한 과학적 패러다임이 정상과학의 위치를 차지하기까지는 다양한 둘 또는 그 이상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듯이 신학적 패러다임 또한 그러하다. 신학에 있어서 정통신학'이 정립되기까지는 서로 경쟁하는 구원해석의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이 이 있었고, 그리스도교의 경전 자체가 다양한 구원 패러다임,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의 집합물이다. 한스 큉의 패러다임 분석 : 원시 그리스도교의 묵시문학적-종말론적 패러다임, 교부시대의 헬레니즘적 패러다임, 중세기 로마 카톨릭 패러다임, 종교개혁의 개신교 패러다임, 근대 계몽주의적 패러다임, 새로운 에큐메니칼 패러다임. 자연과학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이전 단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대체하고, 그 변화가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그 이전 상태의 패럴다임에로의 복귀란 불가능 하지만 신학의 영역에서는 다르다. 옛 시대의 신학적 패러다임은 새 시대에서도 여전히 존속할 수 있으며, 공존할 수 있으며, 지난 과거의 신학적 패러다임이 부활할 수도 있다. / 진지한 동아시아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위기의 본질은 통시적 문제가 아니고 공시적 시각에서 파악해야 하는 문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과 영생의 의미, 하나님과 진리의 영의 이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자연과 역사의 관계, 성과 속의 관계, 삶과 죽음과의 관계 등등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차이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지난 2천년간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시종교라고 가르쳐 왔으며, 모든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은 그리스도교가 전래되기까지의 잠정적, 부분적, 불완전한 진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성취설이 지금까지의 모든 서구적 선교신학의 신학적 패러다임의 기초적 원리였다. 그러나 선교신학적 상황의 변화는 새로운 선교신학의 패러다임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만이 구원의 종교요 진리의 종교라고 독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종교적 교만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그리스도교적 구원의 패러다임에만 매몰되어 다른 구원의 패러다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패러다임 전환 이론과 종교신학 - ① 인간의 모든 이해과정과 신념은 패러다임 의존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패러다임이 보여 주는 방식과 범위 안에서만 실재를 이해하고 체험한다.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이나 구원이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인간의 이해와 체험은 어떤 형태의 이해의 틀 을 전제한다. 따라서 종교체험과 구원체험에 따르는 각 종교마다의 특유성과 고유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자기가 체험하고 있고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패러다임에 의하여 자기의 구원과 진리체험의 유형적 특성이 조형되고 있다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독단주의와 배타주의적 열광주의 에 빠지는 위험이 있다. ②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해서는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홀연히, 회심처럼, 눈에 비늘이 떨어지는 것처럼, 새로운 형태를 보는 눈이 열릴 때 이루어진다. 자기가 실존적으로 씨름하고 있고,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인간의 궁극적 문제들을 자기가 귀의하고 있는 종교 안에서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 안에서 홀연히 답을 얻는다고 확신할 때 그는 다른 종교에로 전향할 수 있다. 구체적 실존 인간의 궁극적 관심의 문제가 새로운 패러디임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따라서 자기가 귀의하는 구원 체험의 패러다임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구원 패러디임을 가지고 있는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③ 어떤 종교들간에 서로 깊은 차원에서 대화할 때, 전면 긍정 아니면 전면 부정 이라는 논리로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지평융합을 하면서 만나고 있다. 그러나 양 종교 사이에 지평융합이 가능한 요소들은 지평융합이 내 마음 안에서 진행되지만, 비통약성'(incommensurability)의 요소들은 지평융합되지 아니하고 두 개의 패러다임이 어느 과학자에게 동시에 이해되듯이 나에게는 두 개의 구원의 패러다임으로서 상호 보완적으로 공존한다. 기존의 정통신학의 패러다임은 전능하신 창조주 신앙, 성경의 경전으로서의 계시적 성격과 그 권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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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도 중심적 구원관, 목적론적 구원사관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 만물의 종말론적 성취 등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동아시아에 전래되면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종교의 패러다임 전환은 자연과학에 있어서처럼, 혁명적 으로 발생한다기 보다는 역사적 상황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문화인류학적으로는 지평융합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개개인의 실존적 구원 패러다임의 전환은 회심하는 형태로서, 눈의 비늘이 벗겨지는 형태로서 발생하는 면 또한 있다.

 

2.5. 해석학 이론의 선교신학 및 종교신학에의 적용

# 틸리히의 신학적 해석학은 상관의 방법  속에 함축되어 있고, 그의 상관의 방법을 다가오는 인류 미래의 그리스도교 선교와 종교신학의 과제에 적용시킬 때는 역동적 유형론적 접근  방법으로 나타난다. 상관의 방법'은 인간의 상황과 영원한 그리스도교 구원 메시지 사이의 상호 해석학적 순환 관계 속에서 존재의 변화체험 을 기대하는 신학적 방법론이다. 상황'은 특정한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의 창조적인, 총체적인 자기해석이다. 복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의 힘 이다. 상황과 복음의 메시지는 상호 해석학적인 순환관계이다. 따라서 선교의 본질'은 인간의 총체적 자기 해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 있는 새로운 존재의 힘과의 만남이고 대결이며, 해석학적 상호조명이다. 선교의 본질적 활동은 인간의 총체적 자기해석으로서의 상황과, 영원한 진리로서의 복음의 핵심 곧 예수 그리스도 생명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창조적 변화를 기대하는 활동이다. / 선교에 있어서 상황'은 피선교지의 사회·정치·문화·역사적인 객관적 여건이나 평면적인 형편이 아니라, 그러한 여건과 형편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피선교지역 인간들의 총체적 자기이해이다. 복음'은 바로 기존 인간의 총체적 자기 이해, 옛 인간의 존재양식을 문제삼고 거기에 새로운 생명의 빛을 조명한다. 그 생명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삶, 십자가와 부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존재의 능력에서 비추어지는 것이다. / 복음의 말씀이 초월적 차원과 그것이 지닌 창조적 능력을 신뢰한다고 해서 상황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은 각각의 언어로 선포되는데, 각각의 언어'는 오랜 문화역사적 전승의 산물이며, 각각의 언어개념은 해당 문화권 인간들의 자기이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들이며, 각 문화 속에서 독특한 영향사적 개념을 구성해 온 것이다. 문화 전통의 흐름 속에서 구체적 인간은 인간으로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데, 그 문화 전통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종교다. 여기에서 종교'는 해당 문화권의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지향해 가는 궁극적 관심 바로 그것이다. / 따라서 문화정복론적 입장이나 혹은 문화 성취론적 입장에서의 선교신학은 설득력이 없고, 틸리히의 상관의 방법은 매시대의 변화하는 인간의 상황에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주는 신학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의 방법론은 유효하고 설득력이 있다. 상관의 방법은 매우 변증법적이고 해석학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복음을 맹목적 교리수용 형태로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고 이해를 동반하면서 복음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며,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고 쌍방적 대화를 통해 함께 성숙하게 만들며, 종교적 배타주의나 혼합주의를 허락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유형적 특성을 지켜 가면서 그리스도교 복음을 더욱 심화시키고 열려진 미래를 지향하게 해준다.

#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해석학의 본질은 문자로 쓰여진 텍스트나 전통을 바르게 이해하는 방법론 적인 기술이론이기 이전에 인간과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과 과정을 해명하는 인간 실존의 존재방식의 해명이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선교 메시지를 받아 응답하고 회심하고 개종하는 일련의 종교체험의 행위 또한 바로 해석학적 과정이다. 따라서 가다머의 해석학은 방법론적이라기 보다는 존재론적이다. / 지평융합 - ① 인간'은 누구나 그 나름대로의 어떤 지평 안에 있다. 인간이라는 초월적 주체적 자의식이 시간적으로 먼저 선행하고서 그 초월적 정신 주체가 이런 저런 세계관과 종교관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계-내-존재 로서 인간의 자기이해 과정이 그를 주체적 인간 실존으로 형성하고 구성하여 간다. 인간은 세계-내-존재요 해석학적 존재이다. ② 지평'은 고정되어 있는 어떤 사물을 이해하는 틀이거나 해석의 준거틀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끊임없이 새로워 가며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③ 지평융합'은 인간의 삶의 과정 중에서 어떤 결정적인 계기를 만나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삶 자체가 항상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져 가는 지평융합의 과정이다. 서로 다른 영향사 의식 들이 역사적/문화적 다양성과 특수성의 차이를 넘어서 이해가 가능하고 지평융합이 가능한 것은, 모든 인간들과 존재의 밑바닥에 있는 언어성 때문이다. / 신학적 적용 - ① 그리스

해석학과 종교신학 - 김경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이병일

 

도교 복음의 선교는 해석학적 과정을 동반하며, 그 과정은 지평융합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선교는 복음이 증언하는 새로운 삶의 지평과의 창조적 지평융합을 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 양자 사이의 지평융합은 종교혼합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더욱 명료하게 드러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② 그리스도교 복음을 듣는 사람은 이미 그들의 삶의 지평 안에 있다. 그들의 삶은 영향사적인 의식 의 끊임없는 확장/심화과정이다. 영향사적 의식의 모태는 전통이기 때문에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는 선교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피선교지 사람들의 지평 또는 전통은 복음 선교의 접촉점 이며, 모든 인간이 거기에 참여하고 기초하고 있는 언어성은 복음선교의 가능성 이다. ③ 그리스도교 복음의 선교가 해석학적인 지평융합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때, 그 지평융합'은 성서적 전통과 기존 피선교지 문화전통 속에 있는 동질적 요소들의 수렴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평융합 과정이란 삶의 역사적, 변증법적, 역설적 체험과정이기 때문에 동질성뿐만 아니라 이질성도 차별성도 용납한다.

# 쿤의 페러다임 전환 이론 - ① 인간의 인식과 체험과 이론화 과정에 순수 객관적인 사실모사적 방법은 없다. 모든 자연과학자는 일정한 패러다임에 의해, 정신과학자는 일정한 정신지평 또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의 시각은 제약되기 때문에 다른 패러디임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종교영역에서도 일정한 구원의 패러다임의 진리성에 대한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가 기존 구원의 진리체계에 의존한 신앙경력이 오래면 오래일수록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타종교를 통해서도 인간은 구원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② 자연은 패러다임에 따라 다양한 자연 세계의 얼굴을 펼쳐 보인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서 자연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에게는 패러다임이 달라지면 자연은 새로운 얼굴로 다가오고 체험된다. 이런 이론은 존 힉의 종교다원론과 관련있다. 궁극적 실재 그 자체는 여러 가지 이름을 지닌다. 모든 종교들은 궁극적 실재를 이해하고 경험한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문화적 패러다임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된 하나미의 얼굴들이다. 모든 다양한 과학적 패러다임은 그것들 나름대로 과학이듯이, 서로 다른 구원 패러다임을 지닌 세계의 종교들도 궁극적 실재를 드러내고 있으며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고 있는 하나의 손가락들이요 구원의 길인 것이다. ③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학지식의 누적 결과로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돌발적으로, 눈의 비늘이 떨어지는 것같이  일어난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급진성과 돌발성은 개종이 통과제의적 형식으로 홀연히 일어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전환 이전에 기존 패러다임으로써는 설명되지 아니한 변칙적 사례들에 대한 고민이 있듯이, 종교적 체험과 구원 패러다임의 전환에 있어서도 종교적 인간들의 실존적 고민과 해답을 갈망하는 존교적 물음이 있다. 그러한 변칙적 사례들에 해당하는 구원에 대한 질문들이 역사적으로 긴장을 충분하게 조성하였을 때, 한스 큉이 말하는 여섯 번의 신학적 패러다임 전환이 교회사 속에서 발생하였다. 개인적으로도 계시적 사건은 위에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나지만, 구원해답을 동반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계시로서 받아들이는 인간 편의 상황적 물음 곧 구원을 갈망하는 실존적 몸부림 없이는 계시적 대답은 공허하고 맹목적이고 무의미하다. 또한 기존의 과학적 패러다임과 새롭게 등장한 과학적 패러다임 사이에는 지평융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대체현상이 일어나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해서 전개되는 새로운 현실지평과 기존의 패러다임에 의해 열려졌던 현실 지평 사이에는 지평융합이 일어난다.

# 선교의 접목모델이 지닌 패러다임적 특성 - ① 접목모델은 생명 있는 두 나무들을 접목시키듯이 매우 역동적이고 과정적이며 변증법적이다. 살아 있는 것은 변하고 자라고 창조적으로 새로워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선교는 이미 대지 위에 자라나고 있는 살아 있는 나무에다 복음이라는 새로운 새순을 접목시키는 일이다. 여기에서 선교의 이유는 그리스도교 복음이 지닌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이 복음 안에 내재하여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접목은 원나무 臺木을 잘라버리거나 그 뿌리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 ② 접목모델은 대목(전통문화)과 새순(복음)이라는 두 주체간의 상호 의존적 기능과 쌍방적 공헌을 전제한다. 양자는 상관관계, 지평융합의 관계 속에서 이전 품종의 특성과는 다른 새로운 꽃과 열매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복음의 토착화는 전통문화의 역사의 현실 속에 복음이 들어가서, 전통과 현실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상호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로서 복음이 성육화하는 일이다. 접목모델은 그 양자가 동시에 주체요 동시에 객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양자는 서로를 살리는 주체이면서, 서로에 의해 변화받는 객체이기 때문에, 그 양자 관계는 상호공속, 상호의존, 상호보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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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해석학적으로 말해서는 상호순환 관계이다. ③ 전통과 상황으로 총괄되는 대목과 새순으로 요약되는 접목과정에서 복음은 전통과 상황 안에 보이지 않게 내재되어 있는 궁극적 관심의 원형적 구조 와 접목한다. 미시적으로 볼 때, 접목은 대목과 새순의 세포들이 지닌 분자생물학적 요소들의 생화학적 반응이다. 궁극적 관심의 원형적 구조 는 고정되어 있는 불변적 실체라기보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조금씩 창조적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 한국 종교사의 특성은 다양한 종교가 함께 살아서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정치사의 시대적 교체를 따라 한국 문화를 주도적으로 지배하는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력 종교가 교체되어 왔다. 인간의 종교사 및 종교간의 만남은 일반적으로 상관방법과 지평융합의 해석학적 원리를 따라 접목모델형으로 전개되어 가지만 일정한 상황의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급진적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 왔다.

3. 한국 종교사 속에서 종교간의 지평융합

3.1. 한국 종교사의 특성은 다양한 종교가 함께 살아서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정치사의 시대적 교체를 따라 한국 문화를 주도적으로 지배하는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력 종교가 교체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종교사 및 종교간의 만남은 일반적으로 상관방법과 지형융합의 해석학적 원리를 따라 접목모델형으로 전개되어 가지만 일정한 상황의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급진적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 왔다. / 현재 한국 종교인의 수적 비교에서 그리스도와 불교라는 구원 패러다임이 다른 두 고등종교가 압도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어서, 두 종교간의 상호 경쟁적, 갈등적 요소가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자의식적인 자기확인법에 근거한 조사이기 때문에 각 사람의 내면적 심성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중에도 그들의 종교 심성 밑바닥에 한국인의 종교적 원형심성으로서의 풍류도적인 기질, 무교적 세계관, 유교적 윤리관 등이 지평융합되어 있다.

 

3.2. 풍류도 : 풍류도는 주전 10세기에서 주전 1세기에 이르는 동안 한민족의 고대 성읍국가시대의 주류적 종교였다. 풍류도는 거의 동일한 고대 시대부터 한국에 들어온 巫와 습합하여 시대적으로나 종교현상적으로 거의 구별할 수 없고, 풍류도와 무교는 주후 3-4세기 무렵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도교 영향을 받은 仙敎와도 습합하여 풍류도의 원형을 분리하여 내기란 지극히 어렵다. / 풍류도의 구별요소 ①풍류도는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신앙하는 韓민족의 종교적 원형이다. ②풍류도는 天神 숭배신앙을 그 골간으로 하고, 광명한 빛으로 상징하는 일원론적인 범재신관이다. ③풍류도는 유일신론적 범재신관으로서 하늘과 태양과 높은 산을 빛의 상징으로 중요시하지만, 그것과 자연물을 신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④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서 풍류도를 유.불.성과 구별한다. ⑤한민족 고유의 종교의례들은 공동체적 추수감사제 형태의 하늘님 제사였다. / 풍류도 = 하느님 신앙 = 한사상.

한 = 한국인의 종교적 체험과 그 실체의 총괄 개념 : 한국인이 체험하고 신앙/경외하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명칭은 하느님이며, 그 이름은 여러 종교와 지평융합되면서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 '한 체험의 현상학<유동식> ①'한'사상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역설적 일치의 사상이다. '한'은 하나이면서 전체이다. ②'한'체험은 대립적인 차별적 현상이 조화.균형.상보상생하는 창조적 운동 속에서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의 형태로 드러나는 "반대의 일치"체험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신성이 현존하는 그 곳에 하나님의 내재성과 인간성이 현존한다. ③'한'체험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 삶을 긍정하고 거기에 온 생명으로 참여하는 참여적.실천적 삶의 철학을 낳는다. ④'한'체험의 종교적 감성은 聖俗一如를 달관한 무애인.자유인으로서 멋과 신명이 어우러지는 예술적 풍류심으로 나타난다. / 유동식에 의하면 풍류도란 체계화되고 일정한 종교적 교의와 상징체계로서 완성.고착된 하나의 종교라기보다는, 한민족이 안팎으로부터 들어오는 각종 종교 사조들과 철학 이념들을 수용하고,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서 변형시켜 가는 한국인의 정신적 구조와 원리, 종교문화의 장, 문화창조의 기초 이념, 즉 한민족의 영성이라고 본다.

 

3.3. 무교와 풍류도의 지평융합 : 무교는 한민족의 종교적 심성의 원형형태인 풍류도와 습합하여 고대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대사회를 지배하였다. 종교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반응 및 상징체계"라고 볼 때, 무교 또한 하나의 종교이다. 巫는 "여자로서 형태없는 것을 섬기고 춤을 추어 神을 내리게 하는 자"이며 무교는 인간세계에 생겨난 문제를 무당의 종교의례 곧 굿을 통하여 신령계와 교섭을 함으로써 초자연적 능력과 지허를 얻어 해결받는 종교적 구조를 갖는다. 신령계와 전문적 교통을 할 수 있는 엑스타시의 특별한 기법을 습득한 무당은 사제.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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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가무.판관 기능을 할 수 있다. 풍류도에서 지고신으로서의 유일신론적 하느님은 그 신성현현(Theophany)과 신적 능력의 현현(Kratophany)과 거룩의 현현(Epiphany) 과정에서 다신으로 형태변화하여 현현하되 그 본질은 하나의 신이다. 그러나 다령신앙인 무교의 신통계는 하느님을 최고신으로 하는 신적 계보의 위계질서를 가지면서도 본질적으로 다신론이다. 무교에서는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나 원리들을 하나로 통일하는 최고의 원리는 없지만, 그들간의 조화가 무의 원리이다.  

유동식이 "한국 종교문화의 지핵"이라고 한 무교가 풍류도와 습합한 구체적인 실증적 자료는 단군신화의 분석에서 볼 수 있다. 단군신화는 한민족 고유의 민족종교적 특징인 "제천의식"을 핵으로 하는 "하느님 신앙:과, 그 본질이 다령신앙에 기초한 무교적 세계관의 지평융합의 산물이다. 한민족이 지고한 하느님의 지고성.시원성.초월성 안에서 절대자의 내재성.현세성.구체성.역동성의 결핍을 느꼈을 때, 그들은 무교의 다신론과 다령신앙으로 그들의 구체적인 종교적 욕구를 충족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단군신화에는 지고한 하느님 신앙을 밑바탕에 깔로 있으면서도, 풍백.우사.운사 등 자연신령이나 재해초복하는 다령신앙을 동시에 지닐 수 있었다. 또한 단군신앙은 한민족의 지고한 광명숭배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신앙과 무교의 다령.다신신앙과의 습합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흔적은 신성현현의 장소와 성 속의 변증법을 이해하는 차이점들의 지평융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4. 대승불교와 한국 토착종교와의 만남 : 한국 불교의 특징은 ①"하나"를 지향하는 通佛敎, 一乘 불교라는 점이요<聖俗一如, 定彗雙修, 禪敎合一, 頓悟漸修>, ②보살의 정신을 함양하고 실천하려는 실천적 대중불교라는 점이요<서방정토신앙>, ③한국의 전통종교나 타종교사상과 쉽게 습합하기를 주저하지 아니하는 절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화랑오계, 팔관회, 호국불교>는 것이다. / 대승불교의 화엄사상이 한민족에게 환영받고 흥할 수 있었던 것은 화엄사상이 지니는 궁극적 실재관이 한민족의 한사상 및 풍류도와 서로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 형태로 한민족의 마음 속에 종교적 원형으로서만 존재하던 한사상이 화엄사상을 만남으로써 불교적 형태의 옷을 입고 꽃이 피면서 양자가 접목되었다<화랑도, 불국토설, 팔관회, 三聖閣>.

한국에 전래된 불교 중에서 "특히 화엄사상과 선불교는 한국 불교의 중심적 테마였다." 원효의 화엄-여래장 사상은 그의 대승기신론소에 잘 나타나 있다. ①일체의 종파주의적 불교사상을 통전하는 圓融會通, 和諍論, 삼라만물의 실상이 理事無碍, 事事無碍의 세계. ②일체의 이원론적 사유체계와 실재관을 부정하는 聖俗一如, 一心二門, 眞如門과 生滅門은 하나. ③모든 인간은 본래의 淸淨心, 本來的 一心, 眞如心을 지니고 있다는 종교적 보편주의에 서서 이론과 신천의 통일, 보살사상에 입각한 利他行, 자유인의 실천적 윤리. ④한 궁극적 실재(眞如)의 세가지 존재양태인 體[法身佛], 相[報身佛], 用[應身佛]이 하나. / 의상의 華嚴一乘法界圖는 事事無碍 法界緣起, 즉 모든 삼라만산(법계)은 산호 연관성.침투성.의존성.상자성을 지니면서 생성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특징과 다양성을 지니고 구체적 존재자로서 현현하면서도, 서로 걸림이 없이 원융회통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①법성 곧 실재 그 자체는 이름.형상.속성을 넘어서 있다. ②법성 그 자체는 창조적 연기 안에, 연기와 함께, 연기로서 있다. ③事事無碍法界의 실재관.

 

3.5. 유교와 한국 종교와의 지평융합 : 유교는 한민족의 부족국가 시대부터 여러 교률를 통하여 접촉하게 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보편적 철학사상이요 보편적 세계종교였다. 따라서 유교사상은 한민족 사회의 정치적 통치이념, 도덕적 가치규범, 사회적 관습과 행동양식, 종교적 패러다임으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한민족의 의식이 가장 깊고 넓게 내재화되어 있는 가치체계이다.

3세기에서 13세기까지 유교는 종교로서의 기능보다는 국가사회의 법령과 행정조직의 사회조직기능으로서, 충효를 골간으로 하는 보편적 사회도덕규범으로서, 사회상류계층 자녀들과 국가관료 인재양성의 교육기능으로서, 문예와 역사편찬 등 문화기능으로서 보다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이는 불교를 국가종교로 삼은 고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교가 한국 종교사에서 종교적인 우주론과 인간구원론을 가지고 종교적 가치규범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때는 13세기말에 안향이 주자학을 수입한 이후 조선 500년 동안이다. 원시유교가 실천적 도덕철학, 수기치인의 도였다면, 신유학은 인간의 근원적 심성의 본질을 추구하는 철학적-종교적 인간학(心學)이고, 우주의 근원적 본질과 현상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존재론(理學)이고. 그러한 실재관에서 우주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우주론이요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학으로서의 윤리학이었다. 실천적이고 현세적이고 합리주의적 사상으로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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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새로운 세계관의 패러다임으로서 한민족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15-17세기의 300년간이다.

이황과 이이는 주희의 理氣論에 기초를 두었다. <주희의 존재론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태극 또는 무극이라고 표현한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理氣二元論으로 설명한 것이다. 理는 형이상학적 실재로서 형태도 없고 속성도 없는 우주만물의 생성[형성]원리로서 理의 총체적 모습을 태극 또는 무극이라고 한다. 氣는 형이하학적 실재로서 우주 생성의 근원적 질료, 理가 현존할 수 있는 존재론적 집으로서 각양각색의 속성을 생성론적으로 나타낸다. 理와 氣는 서로 혼동할 수도 없고 서로 교체될 수도 없고 서로 분리될 수도 없는 존재론적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황은 理를 氣보다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主理論[理氣互發說; 四端-理發, 七情-氣發]의 관점에 섰고, 이이는 氣와 理의 불가분리성과 氣의 능동적 운동성에 일차적 관심을 두는 主氣論[氣發理乘一途說; 四端.七情-氣發]의 입장에 섰다. 主理論은 보수적.전통고수적.규범주의적.관념주의적 가치체계를 낳았고, 主氣論은 진보적.혁명적.생명현실적.경험론적 가치관을 낳았다. 주기론은 유교적 합리주의, 유교적 공리주의인 실학사상과 연결된다.  

동양사상이 종교이면서 철학이요 실천적 도덕이면서 인간의 전 존재를 걸고 귀의하는 신앙이지만, 종교를 궁극적 실재에 관계하는 인간의 구원과 자기완성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유교도 종교라 할 수 있다. 또한 유교의 종교성은 天[天命]사상과 제사문제와 관련된다. 공자에게 천은 경해야 할 우주만물의 절대주재자이며, 인간의 도덕적 근원이며, 하늘이 맡기는 천명을 바로 깨달아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섭리자로 이해되었다. 공자의 종교관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이며, 비합리적이고 주술적인 종교를 배격하였다. 또한 공자는 귀신을 경외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대하는 대상으로 이해하였다. 공자에게 제사는 돌아가신 선조의 영혼에 대한 효성의 표현으로서 報本의 의미를 지니는 도덕적 차원 뿐만 아니라, 종교적 차원을 인정하였다. 인간은 氣[하늘의 신령한 기운의 정수, 魂氣]와 形[땅의 신령한 기운의 정수, 形魄]이 합하여 생명으로 태어났다가 죽으면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간다. 공자에게 조상과 신령에 대한 제사는 종교적-영적 非因果的 同時性과 사람과 영적 존재자간의 交感可能性을 암시한다. 그러나 후대 성리학에서는 천은 우주의 이법 곧 천리로서 인간의 인식의 대상이며, 일체의 초자연적 신령한 존재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의 툭수한 존재양태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유교를 한민족은 도덕 윤리규범으로 받아들이며, 종교적 욕구는 무교나 불교에서 충족시켰다. / 한민족에게 부락제는 유교와 한민족의 제천의식 혹은 산신제와 종교습합, 조상제례를 중심으로 하는 상례는 무교와 유교의 종교습합, 성리학은 유.불.도의 지평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3.6. 한민족의 하느님신앙과 천도교 : 19세기 한국 사회의 종교적 상황은 기존 종교들이 그 창조적 에너지를 탕진하고 대체로 민중을 구원하는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교적 힘의 공백기와 황무지와 같은 폐허의 상황 속에서 동학은 최제우의 창도로 말미암아 거대한 사회운동과 민중의 종교로서 발전해 갔다. 동학의 창도는 타락한 양반지배계층이 축적해 온 민족 사회의 모순을 혁파하려는 민중들의 혁명적 저항운동이요, 일본을 대표로 하는 외국 식민세력들의 국권 침입에 대한 민중들의 민족주권의식의 발로가 최제우의 새로운 종교적 구원 패러다임에 의해 요원의 불기처럼 사회 저변으로 번져 나갔던 종교적-사회적 생명갱신 운동이었다.

최제우의 종교체험의 중요한 두 사상은 "하느님을 모신다"는 侍天主 사상[신관]과 "새 세상을 열어 시작한다"는 後天開闢 사상[역사관, 실재관]이다. 이 종교체험의 본질은 오랜 옛날부터 한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면면하게 흐르는 종교적 심성의 발현이다. 최제우가 경험하고 동학이 믿는 하느님은 분명히 기도의 대상이요 誠.敬.信으로 모셔야 할 절대자이지만, 절대적 타자, 타계적 초월자, 현상계를 넘어서 예지계의 본질자가 아니다. 동학의 하느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적 조화 가운데서 생성시켜 가는 우주의 궁극적 기 지극한 기운으로 "내재적 초월자"였다[汎在神觀, 포월신관]. 이러한 신관은 신유학의 主氣論的 존재론과 한민족의 고대 하느님 신앙이 지평융합된 영향사 의식 아래 있는 것이다. <養天主, 體天主, 人乃天, 向我設位>. 후천개벽사상은 자연의 순환구조에 따라서 역사도 변한다는 주역적인 時運論, 시대 순환론적인 역사관을 지니면서도 역사는 창조적 참여과정을 통해 새롭게 이어져 간다는 책임적 역사의식을 포함한다. 새롭게 개벽해 가는 역사의 중심은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생명의 현재이다.

동학은 유불선 삼교의 사상을 융해한다. 기일원론적 실재관은 신유학의 기철학과 궤도를 같이 하고, 無爲而化, 敬天命順天理, 修心正氣, 氣化之神, 天地人三才, 五行之理, 天道, 與天地合其德 등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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