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는니라. 로마서3장 31절
로마서3장 31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는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야 합니다.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개같이 여기셨습니다. 오직 유대인을 택하셔서 선민으로 여기셨습니다. 자손을 통해서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면 우리는 얻을 자격이없습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킨다고 해도 얻을 자격이 없습니다. 왜 안 되느냐면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약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의를 얻는다면 우리는 할 생각도 말고 포기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니까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해서 의를 얻게 하지 않고 믿음을 통해서 의를 얻게 하신 이유는 모든 이방인도 누구든지 의를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믿음을 선택 하셨습니다. 우리도 엄청난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옛날 이방인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이 지금도 그렇지만 이방인은 무조건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죽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놓아두면 너희에게 가시가 되니까 다 죽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이방인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이방인이라는 그 자체로 유대인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부족할지라도 유대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때에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아브라함의 자손 이외에는 모두 이방인으로 취급을 해서 하나님께서 다 죽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때에 법으로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없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었던 율법을 통해서 구원하시려고 하지 않고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방법을 제시한 것은 온 인류가 다 믿음을 통해서 구원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이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율법을 지킨 사람이나 율법을 못 지킨 사람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야만인이나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3:30절을 보면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할례자도 율법을 가진 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안 가진 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 자도 믿음으로 구원 받고 율법을 못 지킨 자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도 믿음으로 구원 받고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율법을 주장 한다면 할례 받는 것을 폐지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왜 할례를 폐하느냐 이것은 무슨 제사 제도가 아닙니다.
구약 당시에 제사 드리는 것은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으니까 양 잡아서 드리던 것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사 제도가 변경 되었다 할지라도 할례는 제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하다가 신약 시대에 그것을 폐했느냐면 이것은 오직 할례자도 믿음으로 무 할례자도 믿음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실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할례를 행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할례를 폐지시킨 것이 아닙니다.
할례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된 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된 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든지 이스라엘 백성이 안 되었든지 믿음을 통해서 구원 얻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할례를 폐지시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행위의 법이냐 믿음의 법이냐 이 두 가지를 논하고 있는데 모세의 율법이 아니고 오직 믿음의 법이다 믿음의 법을 지키면 할례자나 무 할례자나 죄인이나 의인이나 모두가 구원 받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결론을 내리고 보니까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이 결론에 이르면 대게 모든 사람들이 그러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렇겠지요? 죄인도 믿음으로 의인도 믿음으로 강도도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하니까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마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 그 다음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로마서3:31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는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은 조목조목 빼 놓지 않고 사람의 마음까지 미리 알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니까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네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못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리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가지고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니까 법을 안 지키고 죄를 지어도 되겠느냐 아니다 도리어 법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3장31절의 말씀을 아주 이상하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잘 이용하겠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이 잘 이용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아주 이 말씀을 가져다 펴 놓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봐라 율법을 잘 지키라고 한 말씀이 아니냐 그 결론이 율법을 잘 지키라는 말씀이지 믿기만 해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율법주의자들은 강력하게 주장 합니다. 복음을 말하면 이 말씀을 펴 놓고 여기 보라고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도 율법을 지키라고 했지 않느냐 그러면서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십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가져다 말하면서 십계명 안 지키면 지옥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깨닫고 나고 이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펼쳐 놓고 이 말씀을 해 버리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목사들도 그냥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로마서를 계속해서 보아왔기 때문에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구원 받는다고 해서 죄를 함부로 지어서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구원 받는다 할지라도 죄를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을 이상하게 합니다. 믿음을 통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잘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론 전체가 이 말씀 하나로도 흔들려 버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3장 전체는 무엇을 말씀하느냐면 20절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느냐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행위의 법이로냐 아니다, 믿음의 법이로다. 그럼으로 우리가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를 허락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무 할례자도 믿음으로 이런 결론에 이르다 보니까 율법주의자들이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 하고 질문하는 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미리 답변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이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요? 이 소리가 안 나오면 정상이 못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정상적으로 가르쳤다면 그 소리가 듣는 사람에게서 당연히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요? 그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해야 바로 전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 말씀을 해야 맞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 말씀만 먼저 꺼내서 이야기 한다면 무조건 잘못 될 수 있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는 말씀은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여러분의 잘못된 행위로 인하여 복음이 방해 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31장도 넘어가기 힘든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거의 이 말씀을 가지고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율법으로는 안 된다고 하다가 왜 갑자기 반대되는 이 말씀을 하는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씀한 것은 모두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계속 말씀을 하다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해 버리면 이제까지 믿음으로 했던 말씀은 이 한마디에 오직 믿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헐어 버렸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여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폐하신 율법을 세워야 합니까? 아니면 율법을 폐해야 맞습니까? 에베소서2 : 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씀은 헐어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헐어 버린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우는 것이 과연 맞는 말씀입니까? 여러분이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나중에라도 율법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헐어버린 것을 사도 바울이 다시 세워도 괜찬은 것입니까? 과연 율법을 세우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2:18-19절을 보면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에서는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헐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 바로 뒤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헐어 버렸기 때문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서 3장31절 말씀과 정 반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말씀을 하고 갈라디아에서는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범죄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범죄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지혜에 맡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 신앙의 양심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율법을 어느 한 가지라도 세우는 자는 갈라디아서에 말씀과 같이 영적인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말씀 하는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는 말씀은 율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에서 분명하게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죄 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혜롭게 행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만 저는 어느 율법이라도 세우는 것은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말씀은 그 전에 문맥으로 보아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느냐에 대한 답변으로서 죄를 짓지 말고 그런즉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과 의롭게 사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율법을 버리면 방종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율법에 구속을 시키려는 주장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의롭고 선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일조 안 낸다고 살인합니까? 주일을 성수하지 않는다고 밖에 나가서 도적질 하고 거짓말 합니까? 그런 율법을 지키는 것과 죄를 짓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로마서에서는 그 말씀을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느냐 아니다 믿음으로 살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도리어 굳게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에 말씀하고 있는 율법을 세우는 것은 죄를 짓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지 마치 구약의 율법을 세우는 것으로 생각하면 사도바울이 1장부터 지금까지 말씀한 것을 모두 뒤집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며 우리는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 반대 되는 말씀을 제시 하였습니다. 그 결정은 여러분 스스로가 하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말씀처럼 율법을 세우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며 어느 누구라도 하나의 율법을 세우면 온 율법을 세우는 자가 되어서 결국 사망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율법은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만약 어느 율법이라도 한 가지를 세우면 모든 율법이 다 살아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가진 성도는 복음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헌신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에 나와서 헌신하고 또 주님의 교회가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이런 것을 법으로 만들어 자기들이 세운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법을 잘 지키면서 의롭게 살되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 결론이 내려지면 됩니다. 법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요구입니다. 법을 잘 지켜야 하지만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3장의 결론입니다. 의롭게 살아야 하지만 율법을 잘 지켜서 천국 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비롯 죄인이지만 사함받은 죄인이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입니다. 출처: http://cafe.daum.net/ilmak/7xWb/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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